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69
제270화
톡톡 톡톡톡….
얼마나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을까?
그런 의문이 떠올랐을 때쯤 밤의 어둠이 물러나고 새벽의 빛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벌써 날이 밝은 건가….
밤새 화면을 두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도 화면을 두드린 것을 멈추지 않았다.
톡톡, 스으, 톡톡톡, 후우….
톡톡, 스으, 톡톡톡, 후우….
화며 두드리는 소리에 맞춰 태천의 호흡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는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자고 있었는데, 깊이 잠들지는 못했다.
호흡 소리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바로 그 증거다.
흡족하게 잠에 빠졌더라면 태천이는 코를 쿨쿨 골아댔을 거다.
[그대여, 문을 열어줘요.] [내가 당신을 기다리고-]스마트폰이 울렸다.
벨 소리는 오랫동안 이어지지 못했다.
태천이 선잠에서 깨어나서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스윽.
화면을 밀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태천이 전화를 받자마자 스마트폰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크지 않았던지라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누구 목소리인지는 알 수 있었다.
서인철.
어젯밤 크라우드의 아지트로 추정되는 곳을 탐색하러 갔던 그의 목소리였다.
“너 혼자 보내 놓고 어떻게 편히 자.”
그렇지.
편히 자진 않았지.
자긴 잤지만.
“어? 지금… 도운이랑 둘이 있어.”
태천이가 나를 힐끔 바라봤다.
아마 서인철의 질문은 “지금 누구와 함께 있냐?”였을 것이다.
녀석이 찾던 사람은 물론 내가 아니었을 테지.
머리가 좋은 한재임이 함께 있길 바랐을 거다.
안타깝게도 한재임은 여전히 훈련실에서 훈련에 힘쓰고 있었다.
“잠깐만….”
태천이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커다란 손으로 작은 화면을 톡 두드린다.
그러자마자 스마트폰에서 서인철이 홀로그램 영상으로 튀어나왔다.
녀석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 백도운….
“왜?”
– 너 지금까지 크라우드를 몇 명 상대했다고 했지?
“글쎄? 세 명이었나, 네 명이었나. 그랬던 거 같은데.”
– …….
“왜?”
서인철은 손으로 눈두덩을 짚었다.
그 모습 그대로 천천히 말했다.
– 빌어먹을 괴물 새끼….
“뭐? 이게 갑자기 왜 욕이야?”
– 대체 그런 놈들을 어떻게 세 명이나 상대한 거야?
“……?”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그런 놈들, 이라니?
크라우드를 대단하게 평가하는 것 같아 이상하다.
왠지 예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세계수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긍정합니다.] [과거에 관리인 동생이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었다고 전합니다.]아, 맞네.
도희가 크라우드 보고 강한 놈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어.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지만.
그놈들을 어떻게 봐야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와. 저 새끼 모르겠다는 표정 짓는 것 좀 봐.
서인철은 어이가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옆을 쳐다봤다.
아마 녀석의 시선 끝에는 이현욱이 있을 것이다.
– 저런 놈은 쥐어패도 무죄 아니야?
– 무죄겠냐.
– 제길…. 우리나라 법은 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
– 네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만….
“…시끄러워. 알아낸 거나 제대로 말해. 그러려고 연락한 거잖아.”
– 안 그래도 그럴 거였거든?
그리 말하며 서인철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녀석의 오른손은 가운뎃손가락만 펼친 채였다.
그것에 보답하고자 나도 가운뎃손가락을 펼친 왼손을 녀석에게 내밀었다.
곧 맞은편과 홀로그램 속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태천이와 이현욱이 동시에 한숨을 내쉰 것이다.
“인철아.”
– 내가 다녀온 곳은 총 세 군데였어.
태천이가 부르자 서인철은 곧바로 대답했다.
싸가지 없는 새끼.
내가 말하라고 할 땐 손가락이나 펼치더니….
왜 백운천 간부 놈들은 전부 도희와 태천이한테 죽고 못 사는 거지?
– 다녀온 순서대로 말하자면, 서쪽의 낙천 잣길 전망대, 동쪽의 ‘백약이오름’, 북쪽의 ‘제주시청’이야.
“잠깐만. 내가 잘못 들었나? 제주시청?”
– 제대로 들은 거 맞아.
“…….”
태천이 입을 다물었다.
그 때문에 내가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태천이가 왜 입을 다물었는지 이해한다.
시청에 범죄자들의 아지트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도 모르겠으니까.
그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따르고자 그런 위험을 감수한 건 아닐 거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공무원들이 잔뜩 돌아다니는 시청에 잠복하고 있다고 보는 게 옳겠지.
그 목적이란….
“…시청의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건가?”
– 아마도.
떠오른 생각을 중얼거리자 서인철이 긍정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덧붙였다.
– 그곳에 있는 놈들은 워프 게이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어. 다른 곳에 있던 놈들과 달리 방심도 하지 않았지. 아마… 그중에서도 엄선된 놈들이지 않았나 싶어.
“설마….”
“응?”
– ……?
태천이와 서인철이 나를 바라봤다.
방금 “설마…”라면서 추측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눈초리다.
“…제주도잖아.”
“그걸 누가 몰라?”
– 야. 우리가 지금 바로 그곳에 있거든?
“워프 게이트를 차지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 4면이 바단데. 배로 들어가든 비행기로 들어가든 그만인 곳을.”
“……?”
– ……!
태천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면 서인철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떠듬떠듬 말했다.
– 워프 게이트…. 그것만 차지하면, 제주도를 고립시킬 수 있다….
“……!”
–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냐, 백도운?
“맞았어.”
역시 서인철….
태천이보다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걸.
퍼억….
– 말도 안 되는 소리!
손바닥이 나타나 대뜸 서인철의 머리를 밀어냈다.
이어 홀로그램 영상엔 서인철 대신 이현욱이 떠올랐다.
– 백도운. 제주도는 면적이 1,850㎢야.
“알아.”
– 알기는! 그 넓은 곳에 결계를 치려면 반년 정도는 족히 걸려!
“그래? 도희는 4개월 정도 걸릴 거라고 했는데.”
– …나와 도희는 마법사로서 격이 다르니까 당연한 거지! 무엇보다, 도희가 그렇게 말했다면 네 말은 더더욱 말이 안 되지. 도희조차 4개월이 걸리는 일을 놈들이 2개월 만에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어!
“2개월?”
– 인철이가 알아낸 정보야. 놈들은 2개월 전에 제주도로 모였었다더군.
불쑥.
홀로그램 영상 모서리에 손가락 2개가 튀어나왔다.
이현욱에 의해 비켜난 서인철이 내민 것이었다.
그게 2개월을 나타낸 것인지 승리의 브이를 나타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네가 의심할 것 같아 말해주는데, 이거 확실한 정보야. 놈들 중 한 명이 작은 섬에 처박혔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거든.
목소리가 신난 것을 보니 후자인 것 같다.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면, 확실한 정보이긴 하겠다.
2개월….
“2개월 전이라….”
– 크라우드가 도희도 못 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
이현욱이 물었다.
그 질문에 대답하자면….
“할 수 있겠지….”
– 뭐?
이현욱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녀석뿐만이 아니다.
홀로그램 뒤에 있는 태천이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그들의 놀람을 이해한다.
내가 도희도 못 하는 일을 다른 놈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는 얼마 없었으니까.
굳이 꼽자면 나나 태천이를 설명할 때 정도 말해봤을 거다.
하지만….
이번엔 그리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골 브로치.
새싹이가 ‘완전하게 혐오스러운 기운’이라고 표현한 그놈이라면 분명 할 수 있을 테니….
그 사실을 부러 말하지 않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놈들이 워프 게이트를 주시하는 이유가 설명이 안 돼.”
– …….
이현욱은 입을 다물었다.
방금 내가 한 말처럼 다른 이유를 댈 수 없어서다.
하지만 녀석은 내 말에 동의하는 말을 하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서인철에게 자리를 비켜줬다.
그냥 인정하면 어디가 덧나나….
밀려났던 서인철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녀석은 십자 모양의 귀걸이를 어루만지며 태천이를 바라봤다.
– 또 놈들은 웬 기계장치 같은 걸 하나씩 갖고 있었어.
“기계장치?”
–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놈들이 그걸 가리킬 때마다 ‘발사’라느니 ‘터뜨린다’라느니 말하더라.
“무기인가?”
– 내 예상으로는 그래.
“그런 걸 동쪽, 서쪽, 북쪽에 하나씩 설치해놓았다, 라….”
– 좋은 짓을 할 속셈은 아닌 것 같지?
“절대로 아니지.”
태천이와 서인철의 대화를 잠자코 들었다.
크라우드가 가진 기계장치….
그것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마치 예전에도 들어봤던 것 같은 기분이랄까?
[어린나무는 익숙한 게 당연하다고 전합니다.] [관리인은 크라우드가 갖고 있던 기계장치를 본 적이 있다고 설명합니다.]내가?
내가 언제 그런 기계를….
아, 기억났다!
납치당한 유재이를 구했을 때.
그때 고철 덩어리들을 발견했었어.
우연후가 그걸 가지고 가 연구했었고.
그 기계가 ‘발사장치’로 판명이 났었지, 분명?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기억을 잘 떠올렸다며 관리인을 칭찬합니다.]서인철이 본 것이 그것이 맞는다면, 무슨 발사장치인지 알아내지 못한 게 아쉬워지는걸.
우연후는 더 연구해보겠다고 말했었지만….
그것에 관한 연락이 지금까지 없는 걸 보면 알아내지 못한 거겠지.
속으로 아쉬워하는 동안, 서인철이 씩 웃고는 말했다.
– 그리고, 놈들이 언제 움직일 생각인지도 알아냈어.
“정말? 언젠데?”
– 28일 밤.
“이틀 후잖아…. 정말이야?”
– 확실해. 말 브로치를 단 놈이 어젯밤 ‘사흘 후 이 시간에 의식이 시작된다’라고 말했거든.
“의식…?”
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인철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뭔지는 당연히 모르겠지?”
– 의식에 대해서 떠든 놈은 그 말 브로치 놈이 전부였어.
“아쉽구만….”
– 백도운. 넌 모르냐?
“나?”
– 그래. 넌 그래도 그놈들을 많이 상대해봤잖아.
“…글쎄.”
의식이라….
내가 놈들을 자주 상대해보긴 했어도, 앞으로 벌일 짓까지 알 도리는 없었다.
지하에 처박아 놓은 놈에게 물어봐도 크라우드의 계획을 말해주지는 못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물어는 보러 가봐야겠다.
“모르겠는걸?”
– 그거 안타깝게 됐네.
“뭐?”
– 말 브로치 놈이 말했었어. 계획대로 된다면 제주도는 그분의 것이 된다고.
“그분….”
그분이라면, 마족을 가리키는 것일 거다.
대장 노릇을 하는 해골 브로치 놈을 뜻하는 것이거나.
놈들 계획이 제주도를 마족에게 바치는 건가?
– 그리고 세계수 관리인은 죽고 세계수는 시들 거라고 했지.
“…뭐?”
[어린나무가 당황합니다.] [마족의 권속들이 벌이려는 짓에 의문을 가집니다.]“인철아, 그게 정말이야?”
– 정말이야. 아무리 내가 백도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너한테 이런 거로 거짓말 칠 리가 없잖아?
“그렇지….”
태천이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얼굴엔 걱정스러움이 묻어나 있었다.
정말이지….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A+급 헌터이자 이무기의 친구이며 세계수 관리인인 나를 걱정하다니.
“괜찮아.”
“하지만….”
“바보. 크라우드는 날 죽이고 싶어 안달 난 놈들이야. 항상 날 죽이고 싶어 계획을 세웠지. 하지만…”
두 팔을 활짝 펼친다.
두 손의 검지로는 나를 가리켰다.
멀쩡히 그의 앞에 앉아있는 나를.
“후….”
태천이 짧게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에서는 날 향했던 걱정을 찾을 수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톡톡….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 의미로, 우린 이틀 후 낮에 놈들 아지트에 쳐들어가는 거로.”
“이틀 후? 내일 바로 가지 않고?”
“바보. 내일 바로 가면 재미없잖아.”
“뭐?”
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미없다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이걸 바로 이해하지 못하다니….
그동안 나랑 떨어져 지내다 보니 감이 떨어진 건가?
“놈들은 그 의식이란 걸 2개월 전부터 준비해왔다잖아.”
“그래. 그러니까 서둘러야지. 그 의식이란 걸 막아야 하니까.”
“아니지, 태천아. 이뤄지기 직전에 쳐들어가서 난장(亂場)을 쳐줘야 말짱 도루묵이 되지. 그래야 놈들이 좋아 죽을 거고.”
“…….”
– …….
[…….]침묵이 깔렸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들 내 생각에 감탄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