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88
제289화
새싹이 말대로다.
폭식이 제주도에 있다면 마냥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는 아니다.
태천이와 무기가 있으니까 별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현재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궁금하긴 한걸.
“제주도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압니까?”
“아니. 난 듣지 않아 모르네.”
최희석은 메스트의 앙상한 손목에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마나 운용을 방해하는 능력자용 수갑이었다.
메스트는 손목에 찬 수갑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우습게도 그녀가 “휴우….”하고 내쉰 한숨에는 안도(安堵)가 담겼다.
덕분에 생경한 모습을 자주 보는 것 같다.
제 손목에 찬 수갑을 보며 안심하는 사람이라니….
“직접 듣는 게 좋겠지.”
그리 말하며 최희석이 통신기를 건넸다.
통신기를 집어 들고 귀에 꽂는다.
그러자마자,
– 수고하셨습니다, 백도운 헌터. 빠르게 설명하겠습니다.
배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그녀가 전체 상황을 보고 있었나 보다.
그녀는 덤덤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 당신 동료들이 크라우드 간부들을 전부 제압했습니다. 발사장치도 장악했고요.
“폭식은 어떻게 됐죠?”
– …움직인 것 같습니다.
“같다, 고요?”
– 제주도에 있던 우리 쪽 사람들과의 모든 연결이 끊겼습니다. 그 탓에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어요.
“결계가 전개된 겁니까?
– 순간이동 마법과 우회기가 통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들어갈 유일한 방법은 워프 게이트뿐인데….
“가동되지 않아요?”
– 그렇습니다. 반대편에서 동의해야 이동할 수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깜깜무소식입니다.
“…….”
이상한 일이다.
워프 게이트가 있는 제주시청은 태천이가 담당하기로 했다.
크라우드 놈들도 제압했으니 별문제 없이 가동할 수 있었을 텐데.
폭식에게 당했다…?
“…아니, 그럴 리는 없나.”
한재임이라면 모를까.
태천이라면 멀쩡할 거다.
어떤 이유가 있어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겠지.
싸우다 워프 게이트가 고장 났다거나.
전투 끝내고 쉬다가 잠들어 버렸거나.
– 백도운 헌터는 곧장 강원도청으로 가십시오.
“강원도청이요?”
– 네. 그곳에서 워프 게이트를 타고 광주광역시청으로 이동하는 것이 제주도로 향하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알았습니다. 그럼 차를 타고 곧장-”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차보다 더 빠른 교통수단을 준비해 뒀으니.”
최희석이 차로 돌아가려던 나를 말렸다.
그러고는 손가락 휘파람을 분다.
날카로운 소리가 퍼지자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갯짓하는 소리의 주인은 거대한 독수리였다.
“오….”
구름이 태양을 가린 듯 그늘을 만들어낸 독수리가 천천히 내려왔다.
독수리의 발이 땅을 밟자, 등에 타고 있던 사람이 보였다.
울릉도에서 한 번 봤던 얼굴이었다.
‘나쁜 몬스터는 없다’ 채널의 주인 곽형원.
그가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도운 씨.”
“오랜만이네요.”
“얘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타십시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두근두근하는데.
거대 독수리 등에 타다니.
바로 뛰어올라 독수리 등에 올라탔다.
“생각보다 푹신푹신하네요?”
“그렇습니까?”
“네. 무기는 비늘 때문에 딱딱했거든요.”
“그랬군요, 저도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걸요?”
“하하.”
시답잖은 소릴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무기에게 태워달라는 소릴 했다간 절대 좋은 꼴 못 볼 거다.
불벼락을 맞고 끝나면 다행이겠지.
곽형원은 은근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게 말로 부탁하는 거보다 더 압박된다는 걸 아는 거다.
하지만.
“…할 말이라도 있어?”
그보다도 더 은근한 압박을 보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메스트다.
아까부터 그녀가 가만히 서서 날 꾸준하게 응시했다.
“폭식은 비겁하고 비열하기로는 세계 최고예요.”
“그래 보여.”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의 가슴을 바라봤다.
정확하게는 심장을 본 것이다.
제 딸 심장을 매개로 마법을 쓰게 한 미친놈이다.
머리가 정상적인 상식으로 움직이는 놈은 절대로 아닐 테지.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정말이지 잘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는 건 내 전문(專門)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본능적으로 해왔던 일들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걸 보여줄게.”
“재미있는…?”
“기대하고 있으라구.”
그리 말하며 빙긋 웃었다.
그런데….
“…….”
“…….”
“…….”
착각인가?
왠지 날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불안함이 느껴지는걸.
[어린나무는 착각이 아니라고 전합니다.] [메스트를 포함해 관리인을 보는 사람들은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덧붙이자면.] [어린나무도 관리인이 앞으로 벌일 작정인 일이 걱정된다고 털어놓습니다.]아니….
기대하라고 했는데 왜 불안해해?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늘어뜨립니다.] [그걸 모르는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문제는 무슨.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형 못 믿어?
[…….]어허.
거기서 줄임표를 보내면 어떡해?
믿어.
믿어줘, 좀.
***
제주 상공에는 여러 헌터가 떠 있었다.
정부와 협회들이 보낸 헌터들로, 그들은 전부 제주에서 벌어진 일을 해결하고자 모인 것이었다.
그러나 제주도 전체를 뒤덮은 결계는 그들 실력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결계에서 웬 검은 것이 튀어나와 끌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그들이 제주 상공에 남아 있는 건 오기(傲氣)였다.
맥없이 그냥 돌아갈 수가 없는 거다.
“…죄송합니다, 사숙.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저로서는 저걸 부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김서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최희석의 부탁을 받고 제주도로 날아왔지만 결계를 어찌할 수 없었다.
들어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한 채 상공을 날고 있을 뿐이다.
그의 옆에는 채정연이 날지 못하는 황시열을 붙든 채 날고 있었다.
“시열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력을 다해 부딪쳤는데, 결계는 멀쩡했어요. 오히려 결계에 흡착되어 힘을 빼앗겼죠.”
“쩝….”
황시열은 입맛을 다셨다.
결계 표면에 달라붙어 힘을 빼앗기던 경험은 끔찍했다.
웬만한 일을 즐기는 그라도 무력함을 맛보는 것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그럼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툭….
김서준은 통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동료들을 돌아봤다.
시선이 닿자 날갯짓을 하던 채정연이 물었다.
“최희석… 선배예요?”
“네. 도운 씨가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군요.”
“백 형이 이곳에? 그럼 폭식은? 백 형이 이긴 거야?”
황시열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의 어깨를 붙잡고 날고 있던 채정연이 투덜거렸다.
“야, 가만히 좀 있어.”
“하지만 궁금한걸! 김 형. 누가 이겼대? 응? 응?”
“어휴. 이곳으로 온다잖아. 당연히 백도운이 이겼겠지.”
“아, 그런가?”
“아니. 이기지 못했다던데요.”
“네? 그럼 졌어요? 그럼 여긴 어떻게 온대요? 상황이 상황이라 휴전 맺었나? 아니, 그건 말이 안 되는데. 폭식이란 놈이 그래 줄 것 같지도 않고….”
“지지도 않았고요.”
“……?”
채정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서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다.
이기지도 지지도 않았다니.
설마 또 그 재미없는 장난을 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채정연을 향해 그가 설명했다.
“그곳에 있는 게 폭식이 아니었답니다.”
“엥?”
“최 선생이 확실하다고 했었잖아? 사진도 그렇고 마나도 그렇고.”
“사숙께서 말씀하시길 딸이 변신한 거였대. 그래서 마나가 비슷했다는 모양이야.”
“따아아알?”
“잠깐만. 그럼 폭식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건데요?”
“…….”
김서준은 대답하는 대신 제주도를 바라봤다.
그 행동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다.
채정연과 황시열도 그를 따라 제주도를 바라봤다.
검은 결계에 뒤덮인 제주도를.
“설마….”
“네. 그 설마입니다.”
“폭식이 제주도에 있었다니….”
“어라…. 그럼 지금쯤 저 안에 있는 백 형 동료들 다 잡아먹혔겠네.”
“그러려나. 난 의외로 다들 멀쩡히 살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누님이 그걸 어떻게 알아?”
“백운천이잖아. 백도운 놈의 동료들.”
“…….”
평소라면 황시열은 ‘그게 이유가 돼?’라고 따져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 말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놀랍게도 채정연의 말을 듣고 수긍해버렸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도운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범위 내의 사람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도운의 동료들도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그려졌다.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법한데요? 정연 씨 말대로 오히려 폭식을 압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에이, 김 형. 그건 너무 나갔다.”
“맞아요. 아무리 백운천이라고 해도 A+급을 어떻게 압도해요?”
“응. 응.”
“버티고 있는 정도겠죠.”
황시열과 채정연이 손사래를 쳤다.
그 탓에 황시열이 바다로 떨어질 뻔했고, 채정연은 황급히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둘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누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말로 해줘.”
“설마 일부러 그랬겠니?”
“혹시 부길마 자리가 탐나는 거라면-”
“그러니까, 그런 자리 필요 없다고 했지.”
실없는 대화가 이어지는데,
“폭식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황시열과 채정연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봤다.
둘뿐만 아니라 김서준도 고개를 돌렸다.
별로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교복을 입은 분홍 머리 소녀가 거대한 막대사탕을 마치 보드처럼 밟아 부유(浮游)하고 있었다.
또 그 막대사탕과 똑같아 보이는 걸 입에 물고 있었다.
“제주도에 태천 오빠랑 도희 언니가 함께 있다면 그리 틀린 예상도 아닐걸요.”
“이영지….”
채정연이 소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영지는 사탕을 빨며 그녀를 바라봤다.
“나 알아요?”
“당연히 알지. 우리나라 최연소 A급 헌터 기록을 갈아치운 천재 마법사잖아.”
“어머. 이 언니는 별걸 다 아네. 자요.”
이영지는 주머니에서 막대 사탕을 꺼냈다.
다가와서 채정연에게 내밀었지만, 그녀의 두 팔은 황시열을 붙든 탓에 건네받을 수가 없었다.
바스락.
할 수 없이 이영지는 막대사탕 껍질 깐 후 그녀의 입에 물려주었다.
냠….
“어, 음…. 고마워?”
“됐어요. 근데 언니는 누구예요?”
“어?”
“누군데 우리 아저씨를 아냐고요.”
“우리 아저씨…?”
“도운 아저씨요.”
“백도운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야?”
“그럼 뭐라고 불러요?”
“…….”
채정연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사탕을 입에 물려주었는데도 이영지가 미웠다.
백도운을 ‘아저씨’라고 지칭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나이는 도운보다 많은-
“흠, 흠!”
채정연이 헛기침을 거칠게 해댔다.
갑자기 그러고 싶어진 탓이다.
그녀가 그러고 있을 때, 김서준이 대신 대답했다.
“우린 도운 씨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입니다, 영지 양.”
“헤에…. 그럼 세 사람은 이곳 일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이네요?”
“그렇죠? 늦어버리고 말았지만요.”
“열 받네….”
“네?”
오도독오도독.
이영지는 막대사탕을 깨물어 먹어 치웠다.
주머니에서 새 막대사탕을 꺼내 그것을 커다랗게 만들었다.
휙! 휙, 휘익!
그러고는 막대사탕이 지팡이라도 되는 양 휘둘러댔다.
그럴 때마다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우리 길드 일을 간부인 나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어, 안 되죠? 보통의 경우라면.”
“그래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화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인 거예요. 그렇죠?”
“음….”
김서준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이영지의 말은 정론(正論)이었다.
길드 간부로서 내부의 일을 외부 사람보다도 모른다면 화가 나는 것이 당연했다.
문제는 이영지가 그 보통의 경우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천재라고 불린다고 한들 그녀는 미성년자였다.
그는 백운천이 이번에 한 선택을 완벽히 이해하고 공감했다.
그 또한 그리했을 테니까.
“함께 하지 못한다면 부숴버리는 게 나아….”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영지는 섬찟한 말을 중얼거리며 마법진을 그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