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10
제311화
“…반갑습니다, 최희석 헌터 님.”
“당신이 윤박 교도소장인가?”
“그렇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음…. 빈말로도 반갑다고는 말하지 못하겠군. 날이 좋지 못하니.”
“…….”
윤 교도소장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최희석이 말한 대로 날은 좋지 못했다.
본인이 반갑다고 말한 것도 그저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그 최희석을 처음 만나 무례하게 굴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따라오시죠. 안내하겠습니다.”
“부탁하지.”
“후우….”
교도소장이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옮겼다.
최희석은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그들이 얼마간 걸어 도착한 곳은 3평 정도 되는 독방이었다.
독방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침대는 붉은 피로 흥건했다.
피비린내도 진동해 교도소장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반면 최희석은 조용히 두 눈을 감고 묵념했다.
교도소장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최희석이 다시 눈을 뜰 때쯤 유니폼 외투 주머니에서 사진들을 꺼냈다.
“…메스트는 침대에 누운 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누운 채였다?”
“네. 자는 사이 당했습니다. 아마 자기가 죽는다는 것도 모르는 채 죽었을 겁니다. 이게 당시 사진입니다.”
“음….”
최희석은 교도소장이 내미는 사진을 건네받았다.
사진엔 교도소장의 말처럼 편안한 얼굴을 한 메스트가 촬영돼 있었다.
가슴에 흉기가 박히지 않았다면, 죽은 게 아니라 자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교도소장이 두 번째 사진을 내밀었다.
메스트의 심장을 찌른 단검을 가까이에서 촬영한 사진이었다.
“…응?”
최희석이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 단검의 회색 자루엔 작은 나비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게 트레이드마크입니다. 덕분에 용의자를 추정할 수 있었죠.”
“이 나비 문양이?”
“네. 자기 이름을 본뜬 것입니다.”
“이름을? 정체를 알고 있는 건가?”
“블린더 흐레이스라고 하는 네덜란드 여자입니다.”
교도소장이 또 다른 사진을 건넸다.
사진엔 무언가를 바라보며 입술을 핥는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회색 나비’라는 뜻으로, 몇 년간 A급 헌터로 활동했었죠.”
“회색 나비…? 처음 듣는 이름이로군. 이렇게 실력이 깔끔한 킬러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도 한데…?”
“아마 킬러가 아니라서 듣지 못했던 걸 겁니다.”
“음?”
“그녀는 밤손님입니다.”
“도둑이라고…?”
최희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옳게 들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나비 문양이 도둑의 트레이드마크라고?
“네. 다른 건 다 내버려 두고 아름다운 액세서리만 훔쳐 가기로 유명한 도둑입니다.”
“회색 나비…. 도둑이 메스트를 죽였다…?”
“현재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군….”
“네? 도둑이라서 그리 생각하시는 겁니까? 도둑이라고 해도 그녀는 A급 헌터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쯤은-”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네.”
최희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교도소장이 건넸던 첫 번째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 속의 메스트는 잠을 자는 듯 편안해 보였다.
“살해 현장에 자기 문양이 새겨진 검을 남기고 갔잖나. 이건, 자기가 살해했다는 걸 알리고 싶은 거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복수 같은 거겠죠. 메스트는 세계적으로 활동하던 범죄자의 딸이었으니….”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네.”
“네?”
“이렇게 살해 도구까지 남기고 갔으면서, 왜 메스트는 자고 있을 때 죽인 거지?”
“아…?”
“복수라고 보기엔 너무 편한 죽음이네. 자기가 살해하고 있다는 걸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그건, 그렇군요….”
교도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최희석의 말마따나 복수라고 생각하기엔 앞뒤가 맞지 않았다.
자고 있을 때 죽는 건 너무나도 편한 죽음이었으니까.
복수하고자 하는 사람이 그런 죽음을 원할 리 없었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기를 바랄 터.
잠들어 있더라도 일부러 깨운 후 죽이는 게 복수자의 당연한 행동이리라.
“그래서 킬러라고 생각했던 건데….”
최희석은 커다란 손으로 턱을 거칠게 쓸었다.
킬러라고 가정한다면.
편하게 죽음을 이르게 한 것도.
살해 도구를 남기고 간 것도 이해가 되었다.
킬로로서의 명성을 떨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도둑이라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게 되었다.
“혹시, 킬러로서의 첫 업무…인가?”
“네? 그녀가 도둑에서 전직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교도소장도 말했잖나. 전 A급 헌터니 사람 한 명 죽이는 것쯤 별일도 아닐 것이라고.”
“분명 그리 말씀드리긴 했습니다만….”
“도둑이라면 밤중에 몰래 방문하는 것도 전문일 테고.”
“그 또한 그렇습니다만….”
교도소장은 미심쩍은 얼굴로 침대를 바라봤다.
그는 애초에 사적인 감정에 의한 살인이라고 생각했었다.
전문 킬로로서의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탓에 최희석의 의견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아.”
탁.
교도소장이 이마를 쳤다.
곧바로 독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 가지 더 보여드릴 게 있다는 걸 깜빡했군요.”
“음?”
“바로 이것입니다.”
교도소장이 걸어간 곳은 관물대 앞이었다.
드르륵.
손을 뻗어 관물대를 치웠다.
그러자 허리 높이까지 자라난 꽃 한 송이가 드러났다.
푸른 꽃은 어쩐지 낯이 익었다.
“끄응….”
최희석이 눈을 질끈 감았다.
편두통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신음을 흘렸다.
“그래. 그게 바로 나 백도운이지.”
머릿속에서 자기 동생에게 거들먹거리던 후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이 굴뚝 같아도 참을 거라더니.
탈옥시키지 않을 테니 믿으라더니.
후배는 동생과의 약속을 간단히 저버렸다.
도대체 서로 간에 믿음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일까.
“…최희석 헌터 님?”
“음…?”
최희석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독방으로 들어갔던 교도소장이 다시 나와 앞에 서 있었다.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올려다봤다.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
“아, 괜찮네. 요새 워낙 바쁘다 보니 쉬질 못했거든.”
“죄송합니다….”
“아니. 교도소장에게 뭐라고 하는 것 아니니 괘념치 말게.”
“네…?”
툭툭….
최희석이 교도소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최희석의 커다란 손에서 온정을 느꼈다.
이유 모를 동정심도 함께.
“그리 걱정하지 말게.”
“네?”
“오늘 일이 자네 인사고과에 기재될 일은 없을 테니.”
“네…?”
교도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스트가 누구인가.
세계 헌터 협회가 걸어놓은 현상금만 무려 696억인 범죄자의 딸이다.
그 딸이 밤중에 살해당했는데 인사고과에 기재되지 않을 것이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대로 해고를 당해도 변명할 말이 없을 터였는데….
“어차피 아무도 막지 못했을 테니….”
최희석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작은 나머지 교도소장은 듣지 못했다.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무것도 아니네. 슬슬 돌아가 봐야겠다고 말한 것뿐.”
“벌써 돌아가십니까?”
“급히 전화를 걸어야 할 데가 생겼거든.”
“전화…요?”
“아무튼. 이곳 일은 협회와 정부가 처리할 테니 크게 걱정하지 말게.”
“그, 그래 주시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 일로 교도소장이 많이 바빠지겠지. 그건 고생 좀 해주게.”
툭툭.
최희석은 또다시 교도소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아까와 같이 커다란 손길에서 온정과 동정을 느꼈다.
심지어 목소리에서는 안쓰러움마저 느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만 가네.”
“모시겠습니다…!”
“괜찮네. 혼자 갈 수 있으니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겠군.”
그러더니 최희석은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교도소장은 어떻게든 안내하려고 서둘렀으나 따라가지조차 못하고 멀어졌다.
다리 길이가 몇십cm나 차이 나는 탓이었다.
그는 곧 멀어지는 최희석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최희석은 걸어가는 동안 허허 웃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나오는 웃음이 분명했다.
“왜 저러시는 거지…?”
교도소장이 의문을 느낄 때, 최희석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는데, 멀리 떨어진 탓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의 귓가엔 딱 두 글자만이 확실히 들렸다.
“…도운?”
그건 이름이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헌터의 이름.
***
화면을 두드리고 있는데, 최희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슬슬 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힌트는 줬었으니까.
“여보세요?”
– 도운?
“네.”
– 지금 어디인가?
“은마 매립지죠.”
– …….
“왜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수화기에서는 최희석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느낌 탓일까?
다 알면서 뭘 모르는 척하냐고 따지는 것 같다.
–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 전화했네.
“하세요.”
–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나?
“그럴 생각이니 꽃을 남겨두고 왔겠죠.”
아예 숨길 요량이었으면 꽃을 뽑고 왔을 거다.
그럼 최희석이라도 알아내지 못했겠지.
그 장소에 있었던 일을 알아내는 마법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걸 방지하고자 남겨놓은 게 흐레이스의 단검이었다.
용의자가 있는데 굳이 고위 마법사까지 불러 마법을 쓸 리 없었다.
– 대체 어떻게 한 건가? CCTV에 자네가 접근하는 모습은 찍히지 않았던데. 순간이동 마법은 교도소에서 쓰지 못할 테고.
“에이, 방법을 가르쳐주면 재미없죠.”
– 이게 재미 문제는 아니지 않나.
“뭐, 방법이 있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끄응….
교도소에 순간이동 방지 마법이 걸려있다 한들.
씨앗 심어놓기 스킬엔 무용하다.
일단 씨앗을 심어놓기만 하면 되니까.
물론, 그것이 유일한 어려운 점이었는데,
[세계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치켜듭니다.]그건 우리 새싹이가 했다.
노린 건 절대 놓치지 않는 백발백중의 명사수니까.
새싹이에게 독방의 창으로 씨앗을 던져 넣는 것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최희석이 다른 의문을 물었다.
– 메스트는?
“당연히 살아있죠. 제 앞에 있습니다.”
그리 말하며 메스트를 바라봤다.
메스트는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뭐, 죗값을 치르겠다고 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 그럼 그 시체는 뭔가?
“마법으로 만든 거예요.”
– …자네가 그런 마법도 쓸 줄 아나?
“뭐, 그렇죠.”
물론.
그런 마법을 쓸 줄 아는 건 내가 아니다.
메스트 옆에 흰 번데기 상태가 되어 있는 흐레이스가 번데기 마법으로 만든 것이었다.
해골을 비롯한 크라우드의 핵심 멤버를 속이려고 했던 마법이다.
부검의를 속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 혹시 해서 묻는 것이네만, 진짜 시체는 아니겠지?
“어휴, 끔찍해라. 무슨 그런 질문을 합니까?”
– …….
“100% 가짜예요.”
– 다행이로군….
최희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시체라도 될까 걱정했던 모양이다.
– 도운.
“네.”
– 자네가 벌인 일이니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네.
“고맙습니다.”
– 대신, 메스트는 앞으로 어떠한 문제도 일으키지 말아야 할 거야.
“그럴 겁니다.”
– 그 누구도, 살아있다는 것조차 알아선 안 되네. 만약 알려지게 되면 내가 나서야 할지도 몰라.
“…….”
최희석이 나선다, 라….
솔직히 말하면 그를 상대하는 거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여러모로 귀찮아지기는 할 것이다.
태천이 같은 사람이니까.
그와 같은 유형의 사람은 그보다도 그 주변 때문에 귀찮아지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 그래.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네.
“명심하죠.”
– 그럼 이만 끊네.
“넵.”
최희석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엄중하고 엄숙하게 경고한 것을 보니, 이번엔 꼭 지켜야겠다.
여기서 선을 넘게 되면 진짜로 사이가 틀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잘 들었지?”
“들었냐고 해도…. 전 애초에 탈옥할 생각이 없었는데요, 도운 님.”
“알아. 죗값을 치르고 싶다며.”
“그걸 아시면서 왜-”
“어차피 할 거면 나와 새싹이 옆에서 해.”
“새싹이…라고 하시면, 세계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스마트폰을 내민다.
화면 속 새싹이가 나뭇가지를 살살 흔든다.
“걱정하지 마. 앞으로 많이 힘들어질 테니까.”
“네…?”
“평생 부려먹을 거거든. 쟤랑 같이.”
손을 뻗어 흰 번데기를 가리켰다.
움찔….
흰 번데기가 미세하게 떨린 듯 보이면 그저 착각인 걸까.
메스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견디기 어려운 대우네요.”
“응?”
“하겠습니다. 어차피 일은 벌어져 버렸으니.”
“잘 생각했어.”
“그래서요? 이제 제가 뭘 하면 되죠?”
“삽질.”
그리 말하며 인벤토리에서 삽을 꺼냈다.
메스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걸 바라보았다.
“삽…?”
“자.”
메스트에게 삽을 억지로 쥐여주었다.
그녀는 삽을 받아들면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나를 바라봤다.
내 말이 그렇게 어려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