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32
제333화
푹, 푹, 푹…!
열심히 땅을 판다.
역시….
물건은 저마다 쓰임새가 있는 법이다.
아르카로도 땅을 파기엔 충분했지만, 진짜 삽과는 효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정말 신기하네요.”
쓰레기를 옮겨온 메스트가 감탄했다.
그녀의 시선은 내 두 손에 들린 삽을 향했다.
끊임없이 파대는데도 흙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하얀 삽으로.
땅을 파며 묻는다.
“뭐가?”
“그, 삽…? 말이에요.”
“아아….”
메스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삽이라고 지칭하는 순간 잠깐의 주저함을 내비쳤는데, 그럴 만도 했다.
처음 인벤토리에서 꺼냈을 땐 삽의 형태가 아니었으니까.
“나도 어젯밤 도희한테 받았을 땐 놀랐었어.”
완벽한 삽의 형태로 땅에 박히는 이것은 원래 단검이다.
어젯밤 도희가 선물한 단검, ‘엑실리스 아쿠스(Exīlis Acus)’.
라틴어로 ‘작은 송곳’이라는 뜻인 그것이 삽 형태로 변한 거다.
마나를 불어넣으면 아르카가 칼자루와 목검 형태로 변하는 것처럼.
다 파낸 듯해 구덩이에서 벗어났다.
“자, 쏟아부어.”
“네.”
메스트가 옮겨온 쓰레기를 바로 부었다.
이어 알테라-쇼넴을 쓰기 위해 파낸 흙으로 뒤덮는데….
[세계수 어린나무가 하늘에서 권속의 마나를 느꼈습니다.]새싹이의 메시지에 멈췄다.
권속의 마나를 느꼈다고?
[어린나무는 임페일의 것이라고 전합니다.]임페일이 찾아왔다는 건가?
푹.
삽을 땅바닥에 박아넣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한낮의 푸른 하늘만 보였다.
엄청 높은 곳에서 날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겠지.
“도운 님? 왜 그러세요?”
“임페일이 왔어.”
“네? 임페일 님이요?”
메스트도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하늘에 작은 점 하나가 보였다.
새카만 점은 크기가 순식간에 커져 임페일의 모습이 되었다.
미소년 버전의 임페일이 추락하듯 낙하해 내 머리 위에 멈췄다.
임페일은 날 보자마자 고개를 기울였다.
「…관리인. 대체 뭘 들고 있는 거지?」
“응? 아, 이거? 삽인데?”
「짐은 그걸 묻는 게 아니다. 왜 그 삽에서 물뱀의 마나가 느껴지는지를 묻는 거다.」
“물뱀…?”
설마….
저 물뱀이란 게 알루키노르를 지칭하는 건가?
허허, 당황스러운걸.
알루키노르가 저런 소리를 들었다간 임페일은 그 자리에서 한 입 거리 간식이 돼버릴 텐데.
그럴 일은 없을 듯하지만, 혹시라도 만나러 가게 된다면 임페일은 놓고 가야겠다.
“그야 알루키노르 님의 송곳니로 만든 거니까.”
「…….」
임페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불만과 황당이 마구 뒤섞인 눈빛이었다.
“왜?”
「지금 드래곤의 송곳니로 삽을 만들었다는 거냐?」
“설마 단순한 삽일 리가 있겠어?”
「……?」
단순한 삽이 아니면 뭐냐.
임페일의 얼굴에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후후, 직접 보여줘야겠구만.
바로 삽에 마나를 불어넣는다.
엑실리스 아쿠스는 내 의지를 따라 순식간에 원래 형태로 되돌아갔다.
순백의 단검 형태로.
“짜잔.”
「단검…?」
“응. 원래는 단검이야. 삽으로 형태를 변환할 수 있는 거지.”
「…….」
원래 형태를 보여줬는데도, 임페일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불만과 황당이 뒤섞인 눈빛이다.
「정말이지, 황당무계하군….」
“저도 동의해요.”
임페일이 중얼거리자 메스트가 긍정했다.
둘 다 뭐가 황당무계하다는 걸까.
뭐….
“단검 얘긴 됐고. 여기까진 갑자기 웬일로 온 거야?”
「아. 짐은 할 말이 있어서 온 것이다.」
“할 말?”
「그렇다.」
그리 말하면서 임페일은 천천히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장소를 옮기자는 뜻이다.
고개를 돌려 메스트를 바라보자, 그녀는 곧바로 웃어 보였다.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세요.”
“응. 아, 이거.”
메스트에게 엑아를 건넸다.
건네기 직전 마나를 불어넣어 삽 형태로 바꿨다.
그녀는 감탄하면서 조심스럽게 엑아를 받아들었다.
“저보고 이걸 사용하라고요? 괜찮겠어요?”
“안 괜찮을 건 뭔데?”
“…고맙습니다.”
“고맙긴 뭐가 고마워? 혼자 일 시키고 잡담하러 가는데.”
“아….”
하여간 착해빠져서 걱정이다.
아마 여기에 그녀가 아니라 흐레이스가 있었다면 입술을 댓 발 내밀었을 거다.
둘이 어디 가느냐고 따져댄 후 자기도 일 안 할 거라면서 흰 번데기 위에 벌러덩 드러눕겠지.
생각해보니, 그건 그것대로 걱정인걸.
「…….」
뒤따라간 임페일은 책상다리를 하고 있어 꼭 허공에 앉아 있는 듯했다.
팔짱을 낀 모습에선 어떤 고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매립지가 일이란 게 일어날 환경은 아닌데.
아.
흐레이스가 이상한 짓이라도 벌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겠구나.
「관리인.」
날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대체 뭔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목소리를 깔아?
「짐이 메스트에게 듣길, 어제 가야 할 곳이 생겨서 다녀왔다더군.」
“맞아. 새싹이에게 줄 비료 얻으러 갔다 왔지. 놀러 갔다 온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오해 따윈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려고 온 것도 아니고.」
“응? 그럼?”
「혹시 알고 있나? 관리인이 떠난 후 메스트는 나와 흐레이스가 있는 곳으로 왔다는 걸.」
“…뭐?”
메스트가 은마 매립지에?
쉬라고 했는데 거길 왜 갔지?
반문하자 임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이었다.
「메스트가 왜 그랬을 것 같나?」
가장 먼저 떠오른 대답은 ‘착하고 성실해서’였다.
뒤이어 정답이 되지 못하는 답이라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그런 거였다면 메스트는 딱히 은마 매립지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이곳 난지도 매립지에서 쓰레기 파묻는 작업을 계속해도 됐을 테니까.
굳이 은마 매립지로 장소를 옮겼다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그리고 그 이유는….
“흐레이스와 함께 있고 싶어서…?”
「외로워서다.」
“아….”
비슷하게는 맞췄네.
메스트는 지금까지 늘 혼자였다.
옆에 에리크가 있긴 했지만, 둘 사이를 ‘함께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렇게 살던 사람 옆에 다른 누군가가 생겼으니….
혼자 있는 걸 외로워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또 짐이 흐레이스한테 듣길, 관리인은 혼자 돌아다니는 일이 잦은 것 같더군.」
“그렇긴 했지….”
그 말대로다.
매립지 일은 두 사람에게 맡기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임페일도 그러다가 만난 것과 마찬가지였고.
앞으로도 그럴 터였다.
지금은 얌전히 매립지에서 알테라-쇼넴을 쓰고 있지만, 곧 배수현이 제안했던 A+등급 퀘스트를 깰 겸 외국으로 나갈까 고민 중이었다.
그 주위에 파묻혀 있는 노다지들도 캐야 했으니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겠다.
“즉, 구성원을 바꾸잔 거지?”
「알아들어 다행이군.」
“알았어. 내일부턴 나와 네가 여기 오는 거로 하자. 메스트와 흐레이스가 은마 매립지로 가게하고.”
「짐은 바로 그걸 원했다.」
임페일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올라간 입꼬리에선 만족스러움이 느껴졌다.
뭐지?
생각보다 메스트를 잘 챙겨주는걸.
외로워하는 거 걱정까지 해줄 거면서 처음엔 왜 무시하고 그랬대.
괜히 뭐라고 했나 싶을 정도네.
“…아. 임페일.”
「음?」
“넌 괜찮은 거야?”
「뭐가 말이냐?」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겠냐고.”
「……!」
임페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입 또한 한껏 벌어져선 마치 ‘살다 살다 별소릴 다 듣는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걱정해줬는데 저런 얼굴은 좀 아니지 않나.
「관리인은 짐이 어린애로 보이는 건가?」
어린애로 보이느냐니….
무슨 저런 농담을 하는 걸까.
현재 그의 모습은 지나가는 사람 누구한테 물어봐도 “애처럼 보인다”라고 대답할 터였다.
검은 날개와 뾰족한 귀가 아니라면 몬스터일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겠지.
아니.
외모 버프로 인해 코스프레 의상을 착용한 거로 생각할지도…?
“…거울 보여줘?”
「짐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관리인.」
그야 그렇겠지.
뱀파이어니까.
그런데 세계수 권속이 된 지금도 그러려나?
***
황정희 장관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이 없는 장관실엔 배수현이 혼자 앉아 있었다.
그녀가 곧바로 일어나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장관님.”
“배 국장. 그거 아나?”
황 장관은 질문을 던지며 자기 자리에 가 앉았다.
배수현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보고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음 주가 우리 딸내미 생일이네.”
“…혹시 오늘 생일 파티를 하고 계셨습니까?”
“파티는 당일에 하는 법이지.”
배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딸 생일 도중 빠져나온 아빠를 만들지 않아 다행이라며 한시름 놓았다.
그러나….
“대신 오랜만에 남편 노릇 좀 하려고 아내랑 데이트하기로 했지.”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있었다.
“그래. 난 지금 아내를 바람맞히고 복귀한 거네. 그러니 아주 중요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난 오늘 집에 돌아가서 아내한테 죽을 거고. 내일의 난 자넬 죽일 테니까.”
“…….”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여우를 피한 줄 알았더니 호랑이가 있는 상황이었다.
조심스러워 한숨도 내쉬지 못했다.
짝.
황 장관이 분위기를 환기할 목적으로 손뼉을 쳤다.
“자. 그럼 어디 보고를 들어볼까?”
“…일전에 보여드렸던, 소년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소년? 아. 분신 마법 소년.”
“네.”
배수현은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크루오르 임페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땅을 파묻고 쓰레기를 묻는 등의 모습들이.
“백운천이 외국에서 발굴한 신인 아니었나?”
“알아보니 아니었습니다. 최근 백운천에 가입한 건 ‘만티코어’ 지상욱과 ‘투창(投槍)’ 김재식뿐이었어요.”
“그럼 이 소년은 누구지?”
“…….”
“배 국장?”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듯했다.
“…우선, 그는 인간이 아닙니다.”
“뭐?”
“몬스터였습니다.”
“…몬스터라고?”
황 장관은 사진을 집어 들었다.
뾰족한 귀와 검은 날개를 가리켰다.
“이게 진짜란 건가? 귀 장식 같은 게 아니고?”
“네.”
“몬스터라면, 이무기에 이어 두 번째인 거로군.”
“네. 두 번째, A+등급 몬스터입니다.”
“……뭐?”
툭.
그는 사진을 떨어뜨렸다.
소년이 몬스터라는 사실은 이해했다.
백도운은 이무기와도 친구가 되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시 A+등급 몬스터일 거라는 생각까진 미치지 못했다.
“정체…가 뭔데…?”
“뱀파이어 로드입니다. 트란실바니아 던전의 보스 몬스터.”
“백도운이 언제 거길…. 아. 알렉스가 제안했던 던전이 그곳이었지.”
황 장관은 다시 사진을 들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진 속 소년은 열심히 땅을 파고 쓰레기를 묻었다.
“…찾아볼 수가 없군.”
“네?”
“표정 말이야. 그 뱀파이어 로드가 이런 잡일 따위를 하는데, 얼굴에서 불평불만을 찾아볼 수가 없어.”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배수현은 그처럼 사진들을 자세히 바라봤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으나 황 장관의 말마따나 불평불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대체… 이 일이 무엇이기에 그럴 수 있는 거지?”
“거기까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알아내도록 해.”
슥….
황 장관은 사진을 들어 올렸다.
임페일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찍힌 사진이었다.
“뱀파이어 로드가 묵묵히 하는 일이잖아. 단순히 쓰레기를 없애고 땅을 정화하는 정도의 일이 아닐 거야.”
“…알겠습니다.”
툭!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서 황 장관은 사진은 던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엄청난 일이지만…. 단순히 정화하는 게 목적이라면 한 매립지에 계속 있진 않을 테지.”
“제 생각도 같습니다.”
“후우…. 아무래도 진환의 예상이 옳았던 것 같군.”
“예상이요?”
“그래. 백도운이 S급 헌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던 예상.”
“아….”
배수현은 탄성을 흘렸다.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상황이 그리 말하고 있었으니까.
“생각할수록 모르겠군.”
“무엇을 말입니까?”
“S급 헌터가 될 수 있으면서 테스트는 치르지 않고 왜 쓰레기 따위를 없애고 있는지 말이야.”
“…….”
배수현도 그리 생각했다.
쓰레기를 없애는 일은 분명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차원으로서였다.
개인으로서는 S급 헌터가 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할 터였다.
그러나 백도운은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지금 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듯이.
“A+등급 몬스터를 두 마리 거느린 S급 헌터라…. 꼭 에디탓 그위친 같군그래.”
“식물 마법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그위친은 온갖 마법을 다 사용하긴 하지만요.”
“흐으음….”
황 장관은 눈두덩이를 짚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빠르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주로 백도운과 그위친이 왜 유사한지였다.
물론,
“…모르겠군. 모르겠어.”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정보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황 장관이 눈을 떴다.
“그래도 한 가진 알겠어.”
“그게 무엇입니까?”
“오늘 밤 아내한테 죽진 않겠어.”
그러면서 황 장관은 쌍 엄지를 내밀었다.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
[본 보증서는 제품이 J.Y. 정품임을 보증] [제품 이름 – 엑실리스 아쿠스Exīlis Acus] [제품 등급 – S등급] [제품 설명 – 그린 드래곤 ‘알루키노르 루모스’의 송곳니(S등급)로 제작한 단검] [공격력 S등급] [내구도 S+등급] [‘+’가 붙은 이유는 자동 회복 효과 때문] [일정 범위 내 마나 압박 저항] [마나를 불어넣으면 형태를 변경할 수 있음] [변경 형태는 삽] [AS 기간은 구매일로부터 평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