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38
제339화
“…….”
바로 붉은숲 던전으로 가려던 내 계획은 틀어졌다.
S급 헌터들이 한국에 왔을 때처럼.
내가 중국에 갔었을 때처럼.
우크라이나 정부가 준비한 연회에 참가해야만 했다.
마음 같아선 연회고 뭐고 다 무시해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백운천의 백도운이다.’라는 생각을 되뇌며 참아냈다.
그래도 나를 환영하기 위한 연회인데, 무시하며 참가하지 않는다면 제2의 스미르노프 같은 평가를 받게 될 테니….
그 이미지만은 사양하고 싶다.
[세계수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어른스러움을 칭찬합니다.]어른스러움이라니….
나와 정말 안 어울리는 단어네.
“팀장님.”
나와 함께 우크라니아로 온 이성훈이 다가왔다.
불만스러운 얼굴을 보니 불평을 쏟아낼 생각인 듯하다.
자길 왜 데려왔는지 묻고 싶은 거겠지.
“이제 통역 필요 없으시잖아요.”
“그렇지.”
“근데 전 왜 데려온 거예요?”
“한국에서 혼자 행복할 꼴 보기 싫어서?”
혼자서만 여자친구랑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는 걸 어떻게 참아?
나도 함께하고 있다면 모를까.
“…….”
녀석이 눈을 질끈 감는다.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게 휘두르고 싶은 듯했다.
주변에서 우릴 지켜보는 사람들만 없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곧 주먹 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생각보다 차분함을 빨리 되찾는걸?
“…일부터 하죠.”
“일?”
“저분이 팀장님을 찾아요.”
이성훈이 한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보니, 갈색 머리 여성이 내 쪽을 보고 서 있었다.
누구지?
도희가 준비해줬었던 우크라이나 인물록엔 없던 얼굴이었다.
아니면….
연회장이라는 장소 때문에 평소 이미지와 달라져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거나.
“올레나 웨보이(Olena Werbowy).”
이성훈이 여성의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듯해 설명해준 거다.
올레나…?
어디에서 들어본 이름이었다.
분명….
“팀장님이 들어갈 붉은숲 던전 관리소의 소장이에요. 총 책임자죠.”
“…후자였네.”
“네?”
“아냐. 아무것도.”
도희가 준비한 인물록에서 봤던 올레나 웨보이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홍수정의 것과 비교하고 싶을 정도로 둥글고 두꺼운 안경을.
그걸 벗고 렌즈를 낀 데다가 머리 스타일까지 달라졌으니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인물록에 따르면 그녀는 한진환이 붉은숲 던전에 갔을 때도 있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총 책임자가 아니었지만.
“잘됐네.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물어보고 싶은 거요?”
“총 책임자니까 던전에 대해서 잘 알겠지?”
“그야 당연하죠. 그나저나 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요?”
“그건 내가 이제 저 숙녀분에게 물어볼 거고.”
“…그래요, 그럼.”
이성훈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재수 없게 어디서 토라진 척이야?
딱!
녀석의 이마에 딱밤을 살짝 때린 후 웨보이 소장에게로 걸어갔다.
앞에 서자 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푸른꽃 백도운.”
오.
[어린나무가 눈앞의 인간이 마음에 든다고 전합니다.]새싹이가 곧바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 새싹아.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반갑습니다. 웨보이 소장님.”
“절 아시는군요?”
“앞으로 들어갈 던전의 관리소장님인데요. 당연히 알죠.”
“그렇긴 하네요. 저희 붉은숲 던전을 소탕하러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그녀에게 손을 휘저었다.
사실 그녀가 고마워할 일은 아니었다.
순전히 날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으니까.
노다지들이 땅에 파묻힌 채로 날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안 올 수가 있겠는가?
우후후….
“저… 백도운 헌터.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질문이요?”
“인터뷰 영상을 봤거든요. 정말로 던전으로 들어가실 건가요?”
“네. 들어갈 건데요.”
“…….”
대답을 들은 웨보이 소장이 뺨을 긁적였다.
가려운 것이 아니라 당황스러워서 자기도 모르게 긁은 것이다.
그녀는 뺨을 긁던 손을 내리고 다시 질문했다.
“그러니까,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실 생각이신 거죠?”
“방호복이요? 아뇨. 그냥 이대로 들어갈 건데요.”
“그대로요?”
“아. 당연히 정장은 갈아입어야죠.”
목에 걸린 나비넥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웨보이 소장은 시선을 내리깔고 나비넥타이를 봤다.
그렇게 시선을 몇 초간 고정했던 그녀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한국인은 원래 다들 그렇게 혈기 왕성한가요?”
“네?”
“한진환 헌터도 그랬었거든요. 그 난리를 쳐가며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나? 방사능으로 오염된 던전으로 진입하려고 했었죠.”
“한 선배가요?”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지는 말이다.
내가 아는 한진환이 맞나?
그렇게 열정적인 양반이 아닐 텐데?
“하지만 한 선배님은 안 들어갔잖아요?”
이성훈이 끼어들었다.
나를 힐긋 바라보고는 덧붙였다.
“분명 들어가지 않고 원거리 마법으로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랬었지. 나도 들어가려고 했었다는 건 몰랐어.”
“…제가 말렸어요. 아까웠거든요.”
그 인간을 말렸다고?
가장 친한 지인인 최희석도 말리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양반을?
뭐지.
한진환의 새로운 모습을 여러 번 듣게 되는걸.
어렸을 때라 성격이 지금이랑 좀 달랐던 건가?
그런데….
“아까웠다고요?”
“그렇지 않나요? 겨우 A+등급 던전 하나 소탕하려고 A+급 헌터가 방사능에 노출되겠다는 건데.”
“…….”
“전 세계의 수많은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사람이 방사능에 노출된다니, 어느 면에서나 엄청난 손실이잖아요?”
그야 그렇긴 하지.
그 던전이 자기 나라를 좀먹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순수하게 엄청난 손실이라며 아까워할 수 있다니, 대단한걸.
아무튼, 웨보이 소장이 당시의 한진환을 말렸다고 그랬지.
그렇다면….
“웨보이 소장님은 이곳까지 날 말리려고 온 거군요?”
“맞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생각한 대로였군.
“이 말을 또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아까운 짓 하지 말아요. 방사능은 가볍게 볼 게 못 돼요.”
“그렇긴 한데, 여유를 부릴 상황도 아닐 텐데요?”
“네?”
“한 선배 이후로 붉은숲 던전은 소탕한 적 없잖아요. 이따금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게 전부죠.”
“…그래서요?”
“계속 내버려 뒀다간 언젠가 붉은숲 던전이 우크라이나를 뒤덮을 겁니다?”
“후….”
웨보이 소장은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그런데….
“……?”
입가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내가 한 말이 틀렸다는 듯이.
뭐지, 이 여유는?
배수현이 준비한 서류의 정보가 틀렸나?
“혹시 내가 모르는 일이라도 있는-….”
질문을 끊어내듯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걸려온 거다.
이 타이밍에 누구야?
꺼내서 확인하니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한진환이었다.
정말이지….
“이 인간도 양반은 못 되는군.”
“네?”
“전화 건 사람이요. 한 선배예요.”
“어머.”
오…?
갑자기 웨보이 소장이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검지와 엄지로 머리카락을 꼬기 시작한 것이다.
[어린나무가 눈앞 인간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했다고 전합니다.]하여간….
이런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잠깐 전화 좀 받아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죠!”
그녀는 지금까지 중 가장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때문일까?
이성훈도 그녀의 감정을 알아차린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여보세요?”
– 통화 괜찮냐?
“네. 연회 중이에요.”
– 그래. 좀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어.
“그전에. 먼저 안부 인사부터 하시죠.”
– 뭐? 갑자기 뭔 소리야?
“제 앞에 한 선배 지인이 있거든요.”
– 내 지인?
질문하는 한진환을 무시하고 스마트폰을 내민다.
어느새 얼굴이 붉어진 웨보이 관리소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갑자기 통화하도록 스마트폰을 넘겨줄 줄은 몰랐던 거겠지.
“…오랜만이네요. 진환.”
– 응? 이 목소리는… 올레나? 뭐야. 네가 왜 거기 있어?
“후후. 당신처럼 붉은숲 던전에 들어가려는 사람을 말리려고 왔죠.”
– 아아…. 백도운을 말리려고 온 것이로군.
헤에….
진짜로 웨보이 소장이 한진환은 말렸었나 보네.
굉장한걸?
웬만해선 남 말 따위 안 듣는 양반인데.
– 그렇다면 헛고생했는걸.
“헛고생이요?”
– 그놈은 괜찮거든.
“괜찮다니…. 내 가르침이 부족했어요? 방사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설명해줘요?”
– 괜찮습니다, 선생님. 잘 기억하고 있어요.
“…….”
웨보이 소장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당황스러운걸.
사랑에 빠진 여자는 다 소녀라더니.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데도 귀여워 보인다.
– 내가 괜찮다고 한 건 녀석에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야.
“믿는 구석이요?”
– 응. 녀석은 엘릭서를 갖고 있거든.
“…엘릭서를요?”
– 역시 몰랐구나. 백도운 그놈이 속한 백운천이 이번에 엘릭서 만들어낸 곳이야.
“네? 정말요? 제가 알기론 크리스탈 공방이란 곳에서 제조한 줄 알았는데요?”
크리스탈 공방…?
아.
수정 공방이니까 크리스탈이구나.
– 그 수정 공방이 있는 곳이 바로 백운천이거든.
“……!”
웨보이 소장이 나를 바라봤다.
한진환이 한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 얼굴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100% 정확한 말은 아니었다.
J.Y.대장간과 수정 공방이 백운천 건물에 있긴 하지만, 단지 그뿐으로 소속된 건 아니었으니까.
사실을 일부러 솔직하게 말해줄 필요는 없으니 숨길 거지만.
빙긋 미소를 짓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 행동이 대답이 된 듯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과연…. 엘릭서가 있다면 방사능에 노출된다고 해도 괜찮겠죠.”
– 그렇지?
“그나마 다행이네요. 당신 후배는 누구처럼 무모하지 않아서.”
– 혹시 그 무모하다는 누구가 날 말하는 거야?
“어머. 알겠어요?”
– 그땐 잘못했다니까 그러네….
“후후….”
[두근두근.] [어린나무가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올레나. 미안한데 혹시 백도운과 통화 좀 해도 될까?
“아. 그럼요. 반가워서 그만…. 미안해요.”
– 아냐. 나도 반가웠어.
“네. 저도요.”
웨보이 소장은 다시 내게 스마트폰을 넘겼다.
넘기는 손길에서 아쉬운 감정이 뚝뚝 묻어났다.
인기 좋네, 한진환.
스마트폰을 건네받자 한진환은 비밀리에 말할 수 있는 곳을 요구했다.
지금부터 나눠야 하는 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다른 나라에 왔으니 조심하는 건 당연한 거겠지만.
이성훈을 내버려 둔 채 연회장 발코니로 빠져나갔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에 훅 끼쳐왔다.
이제 겨울 다 되긴 했군.
“말하세요.”
– 칠죄종들이 움직였어.
“오. 나태와 분노가 싸운 거예요?”
– 그럴 줄 알았지.
“…뭐야, 게네 안 싸웠어요?”
– 싸우긴커녕 동맹을 맺었어.
“헤에…?”
뭐야.
협의가 틀어져서 날 찾아왔던 게 바로 며칠 전인데.
어쩌다 갑자기 동맹을 맺게 된 거지?
– …….
“…한바탕 했어요?”
– 나 혼자 있었다면 그랬을걸.
최희석 일행이 함께 있어 싸움을 피했다, 란 뜻이군.
목소리에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과연 뇌제야.
칠죄종 두 명이 동맹을 맺었는데도 자신만만하다니.
“그럼 왜 그러는데요?”
– 너 때문에.
“나요?”
– 서지혁이 물러날 때 이상한 말을 했거든.
“…무슨 말을 했는데요?”
– 자기들과 싸울 땐 네가 아무 도움이 못 될 거라나?
이런….
서지혁 이놈이 설마 말했나 보다.
협의했다는 사실을.
– …야.
“네.”
– 설마… 정말 그놈이랑 협의한 거냐? 그런 내용으로?
“…….”
– 아니지? 네가 그 정도로 바보 멍청이는 아니길 진심으로 빈다.
“후후…. 선배, 날 믿어요.”
– 그건 너무 어려운 말 같은데. 널 믿으라고?
“네. 난 능히 그럴 수 있는 바보 멍청이거든요.”
– …….
“헤헷.”
– …좋아. 이 정보는 하얀 성녀에게 그대로 전달하마.
한진환은 빡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여기에서 갑자기 도희가 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