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44
제345화
TV 화면엔 백도운과 한진환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나왔다.
우크라이나를 떠날 준비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촬영된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정희 장관이 리모컨의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맞은편의 배수현을 보고 말했다.
“…붉은숲의 방사능이 모두 정화됐다고.”
“네. 우크라이나 정부가 그렇게 알려왔습니다. 완전히 정화되어 가이거 계수기로도 전혀 측정되지 않는다더군요.”
“허! 기가 차는군.”
황 장관이 허탈한 듯 웃음을 흘렸다.
턱을 쓸면서 TV 속 도운을 바라봤다.
톡톡 톡톡톡….
화면 속 도운은 평소와 같이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음소거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가 황 장관의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그는 이제 도운을 보면 화면 두드리는 소리가 저절로 들릴 정도가 되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다.
“땅을 정화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마저 가능할 줄은 몰랐군.”
“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본인은 예상했겠지. 이렇게 될 걸 알아서 자신만만했던 거였어.”
“…….”
배수현은 TV를 바라봤다.
화면에선 도운과 한진환의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왔다.
기자의 ‘백도운 헌터가 공략에 성공했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라는 질문이 자막으로 지나갔다.
기분이 상할 만한 질문을 받았는데도 한진환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백도운과 기자들이 짧게 웃었다.
반면 황 장관은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황당하고 당황스럽군….”
“네?”
“백도운의 동료들은 꾸준히 매립지에서 쓰레기들을 없애고 있어. 땅은 이미 정화되었는데도 말이야.”
“…즉. 땅을 정화하는 게 부수적(附隨的)인 일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군요?”
“알아내지 못했나?”
“죄송합니다….”
배수현은 고개를 숙여 보인 후 품에서 사진들을 꺼냈다.
사진엔 세 남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난지도 매립지의 크루오르 임페일, 은마 매립지의 메스트와 흐레이스였다.
“정보를 알아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아마 저 행동에 관한 정보를 아는 건 백도운 본인과 이들뿐인 것 같습니다. 굳이 더 추가하자면-”
“백도희와 이태천이겠지.”
“네. 해서 직접 파악해보고자 정보원을 보냈는데….”
“실패했군.”
“그렇습니다. 정보원이 어느 정도 다가가니 뱀파이어 로드가 모든 작업을 멈추더니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답니다.”
그 말을 하면서 배수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귀여운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A+등급 몬스터인 뱀파이어 로드였다.
100개가 넘는 눈동자가 자신만을 쳐다보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일 터였다.
그녀는 상상만으로도 몸이 떨렸다.
동시에 정보원에게 격려금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고요.”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그 정보원 친구의 실력이 부족한 건…?”
“일단 저희 소속 정보원 중에선 가장 실력이 출중한 친구입니다. 그가 들켰다는 건, 다른 누가 가도 들킨다는 거죠.”
“후…. 그럼 알아내기 위해선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황 장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직접 물어본다고 해서 도운이 술술 말해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짝.
그가 분위기를 바꿀 생각으로 손뼉을 한 번 쳤다.
“땅 얘긴 이만하면 됐고. 보스 몬스터 얘기나 좀 해봐.”
“아, 네. 보스 몬스터는 오래된 트렌트에 깃든 드라이어드였습니다.”
“뿔 개수는?”
“백도운의 말로는 열 개가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눈과 귀에까지 자라난 모습이었다더군요.”
“눈과 귀에까지? 엄청 징그러웠겠는데?”
황 장관이 눈을 찌푸렸다.
비위가 상한 모습에 배수현은 동의했다.
“그랬다고 합니다. 형체도 없이 죽이는 바람에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만….”
“뭐, 설마 그런 거로 거짓 보고를 하진 않겠지.”
“네. 그동안 한 번도 공략되지 않았으니, 뿔이 그만큼 자라난 것도 거짓은 아닐 겁니다.”
“더욱더 진환이 저놈의 추측이 들어맞을 가능성이 크단 소리고.”
“그럴 것 같습니다. 뿔이 자라날수록 강력해지니까요…. 뿔이 열 개가 넘게 자라났다면, 그건 절대로 평범한 A+등급 몬스터가 아닙니다.”
“그런데 백도운은 20분도 걸리지 않고 사냥하고 나왔지….”
황 장관은 중얼거리면서 TV를 바라봤다.
화면엔 여전히 도운과 한진환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인터뷰가 끝났는지 둘은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출국하고자 비행기를 타러 가는 것이 분명했다.
‘두 A+급 헌터, 곧 우크라이나 떠나…’라는 자막이 천천히 지나갔다.
“…그런데. 수현아.”
“네?”
“저거 나만 이상해? 왜 진환이 저놈이 저기 자연스럽게 끼어 있는 거야?”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허, 참. 왜 아무도 저놈이 저기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건데?”
“…그러게요.”
배수현은 자기도 모르게 목을 긁적였다.
그동안 그녀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 장관이 말하기 전까지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한진환이 벌이는 허무맹랑한 짓에 길들여진 것이었으나, 그녀는 아직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제가 마중 나가는데, 왜 거기 있었던 건지 물어볼까요?”
“됐어. 자기가 사냥하지 못한 보스 몬스터가 어땠는지 궁금했다는 별 시답잖은 이유로 간 걸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마중 준비를 하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휙휙.
황 장관이 손을 휘젓는 걸 보며 배수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
그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부하 직원들에게 급한 용무가 아니면 전화하지 말라고 명령해 놓은 상태였는데도 벨이 울린 것이다.
지금까지 함께 일해왔던 사이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황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배수현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황 장관을 바라봤다.
“뭐야. 무슨 일인데그래?”
“…교황청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교황청? 설마, 홍수정이 제조한 엘릭서 때문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젠장.”
황 장관은 대뜸 욕을 내뱉었다.
갑작스러운 욕에 배수현은 당황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손을 슬쩍 들어 보였다.
“아, 미안. 앞으로 긴 보고서를 읽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네? 보고서를요…?”
“하기야…. 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자네보단 낫겠군.”
“…….”
황 장관이 불길한 말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배수현은 왠지 욕을 내뱉고 싶어졌다.
***
톡톡 톡톡톡….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회의실로 끌려왔다.
현재 회의실엔 도희와 태천이, 한재임, 그리고 홍수정이 있었다.
홍수정이 바로 우리가 회의실로 모여야 하는 이유였다.
“…….”
[…….]「…….」
우리 셋은 홍수정을 빤히 바라봤다.
그녀는 나처럼 무기를 목에 감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기처럼 생긴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무기 무기 노래를 부르더니….
저런 걸 만들어서 목에 두르고 다니는 건가.
소름이 다 돋는구만.
그런데….
“배수현은 교황청 두 개의 파가 동시에 움직였다고 했어요.”
“음? 녀석들은 서로 대립하고 있었지 않나?”
“맞아요.”
왜 아무도 저 목도리에 대해서 따지질 않는 거지?
도희도, 태천이도, 한재임도.
모두 익숙한 모습인 듯 그냥 넘어갔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나만 이상한 것 같았다.
[세계수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어린나무도 당황스럽다고 전합니다.] [무기 또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입니다.]다행이다.
나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서.
새싹이와 무기도 당황하고 있다면,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저들이다.
용기도 생겼겠다.
따져 물어야겠다.
“저기-”
“미안한데, 두 개의 파가 뭔데? 설명 좀 해줘.”
“아…. 그러네요. 태천 오라버니가 알 리가 없죠.”
태천이가 손을 들고 내 말을 끊어냈다.
도희와 한재임은 서로 사이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희가 두 손가락을 펼치며 말했다.
“현재 교황청은 성녀파와 추기경파로 나누어져 있어요.”
“성녀파? 바티칸에 성녀가 있었어?”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해요?”
“모를 수도 있지.”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렇죠. 근데 우리는 천주교 재단 보육원에서 자랐잖아요.”
“하하.”
태천이는 맑게 웃었다.
뭇 여성들이 보면 한눈에 반할 정도로 시원한 미소다.
물론, 그런 미소에도 눈 깜짝하지 않는 게 우리 도희다.
“…제가 왜 굳이 ‘하얀’ 성녀라고 불리겠어요.”
“온통 하얘서.”
“바티칸에 진짜 성녀가 있으니까 구분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런 거였어?”
“성녀라고만 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거든. 이단으로 몰릴 수도 있고, 마녀사냥을 당할 수도 있고.”
“마녀사냥이라니…. 요즘 세상에?”
“시대는 변해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 법이지.”
한재임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 잠깐 나를 바라봤다.
어쩐지 “변하지 않는 법”이라는 말이 나한테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요즘 들어 날 대하는 게 좀 달라지나 했더니….
“아무튼. 성녀파는 온건파, 추기경파는 급진파라고 볼 수 있죠.”
“급진…. 이름부터 불안한데.”
“생각하신 대로예요. 우리가 이렇게 모인 이유가 바로 그들 때문이죠.”
“놈들의 목적은 수정 씨를 암살 혹은 납치하는 걸 겁니다.”
“우우….”
홍수정이 몸을 움츠러뜨렸다.
그러면서 목에 둘린 무기 목도리를 두 손으로 꼭 붙잡았다.
암살이나 납치가 목적이라니 두려움을 느낀 사람으로 보일 만한 행동이었다.
물론,
「…….」
그 모습을 무기가 좋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다.
무기의 게슴츠레한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희는 홍수정의 손을 붙잡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공방주님. 저희가 전력을 다해 보호해드릴 거니까.”
“아, 네…. 고맙습니다.”
홍수정은 감동한 얼굴로 도희를 바라봤다.
도희의 연기력이 너무 출중한 걸까.
홍수정이 바보인 걸까.
우리가 그녀를 지키는 건 고마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엘릭서를 제조한 사람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었으니까.
내가 부탁을 안 했다면 그녀는 위험에 빠지게 되지도 않았을 거다.
“다 좋은데.”
톡.
스마트폰 화면을 한 번 세게 두드렸다.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난 지금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게 있다고.”
“궁금한 거요? 뭔데요?”
“저거.”
화면을 두드렸던 검지를 내뻗는다.
회의실에 있는 모두가 내 검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홍수정의 목에 감긴 무기처럼 생긴 목도리를 바라본 것이다.
“왜 아무도 저거에 신경도 안 써?”
“아.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는 우크라이나에 가셔서 몰랐었죠?”
“……?”
톡, 톡.
도희가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두드렸다.
몇 번 두드린 끝에 내게로 스마트폰을 내민다.
우리 백운천 길드 사이트의 메인 화면이 떠올라 있었다.
[백운천 세 번째 굿즈, ‘무기 목도리’ 출시!] [18만9000원!]굿즈…?
우리 길드에 이런 게 있었던가?
아.
그러고 보니 태천이의 사진집을 판매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절대로 입 밖에 꺼내지 않는 흑역사다.
그게 첫 번째 굿즈라고 한다면….
두 번째 굿즈는 뭐였지?
「나처럼 생긴 목도리를 만들어 팔 생각을 하다니….」
“똑똑하죠?”
「미쳤냐고 말할 생각이었다만. 이런 걸 사는 인간이 있을 것 같은가?」
“…….”
도희는 홍수정을 바라봤다.
우리의 시선이 모이자 홍수정은 해맑게 웃으며 뺨을 무기 목도리로 마구 비벼댔다.
도희가 다시 무기를 바라본다.
마치 “여기 있네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홍수정이 이상한 것이다.」
“그 말씀엔 동의하는데요.”
“네? 그걸 동의하시면 어떡해요?”
“놀랍게도 인간들은 조금 이상한 점이 많거든요.”
도희는 홍수정을 무시한 채 말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암살당할 위험에 무서워하던 사람과 지켜주겠다던 사람이 맞나 싶다.
딴 사람들 아닌가.
「이상한 점이 많다고?」
“네. 현재 이 목도리가 이번 겨울 인기 상품으로 떠올랐거든요.”
「인기 상품…. 저걸 산다고? 인간들이?」
“압도적인 판매율을 보이고 있죠.”
「하…. 인간들이란 정말 알 수가 없군.」
“그리고…. 저희가 이걸 만든 건 전부 무기 님을 위해서이기도 해요.”
「나를 위해서라고?」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무기 님을 무서워하는 거 알고 계시죠?”
「…….」
무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형태로 다닌다고 해도 A+등급 몬스터인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종의 차이에서 오는 두려움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만들어 판매하면 무기 님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많이 불식될 거예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럴 리 없지 않나.」
“과연 그럴까요? 인간들은 익숙하면 친근함을 느낀다구요.”
「익숙하면, 친근함을 느낀다…?」
“네.”
「…….」
무기는 도희를 빤히 바라봤다.
도희의 말을 믿어도 좋을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우웅…!
그 순간, 도희의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왔다.
화면에 떠오른 걸 잠깐 읽어보았다.
[부길마 님. 네 번째 굿즈 시안입니다.] [확인하시고….]벌써 네 번째 굿즈를 만드는 중이야?
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부하 직원이 보내온 시안은 파란색의 바디필로우였다.
무기처럼 생긴.
“…….”
기분 탓일까.
도희의 눈이 ‘₩’으로 보이는 건.
하.
친근함이 어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