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46
제347화
한밤의 백운천은 조용했다.
바닥에 깔리는 달빛을 지우며 세 개의 인영(人影)이 나타났다.
온통 검은 옷을 입은 그들은 마치 어둠이 인간의 형상을 한 듯이 보였다.
맨 앞에 있던 남자가 손을 뻗었다.
우뚝!
“…역시 결계가 펼쳐져 있군.”
남자는 손을 뻗던 것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손으로 눈을 잠깐 덮고 뗀다.
“호오….”
“왜 그러십니까?”
“최상급 결계다. 한 개인이 이 정도 수준의 결계를 펼치다니…. 감히 성녀라는 별호를 쓸만하군.”
“흥. 최상급 수준이라고 해봐야 저희한텐 무용지물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품에서 금줄이 달린 향로를 꺼냈다.
향로에 마나를 불어넣자 곧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흰 연기가 닿자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결계에 구멍이 뚫렸다.
촤락….
남자는 향로를 목에 걸었다.
“…공방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네…!”
부하들의 대답과 함께 남자는 결계를 통과했다.
그들이 지나가자 구멍이 뚫렸던 결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수복됐다.
복도를 미끄러지듯 달린 그들은 순식간에 수정 공방에 다다랐다.
조심스럽게 공방의 민트색 문으로 다가갔다.
“이런, 이런….”
“……?”
“잠금 마법이라도 걸려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도 조심성이 없군그래.”
그러면서 남자는 문을 열었다.
그들은 여러 종류의 포션이 가지런히 정리된 공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인기척을 느꼈다.
분명 이곳 공방주의 것이 분명했다.
휙, 휙…!
남자가 손으로 공방 안쪽을 가리켰다.
그 동작과 함께 그들은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갔고,
“후욱, 후욱….”
암살 대상인 홍수정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 확인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작은 체격에 옅은 갈색의 단발머리.
눈을 가릴 정도로 두껍고 둥근 안경.
백운천이 굿즈로 출시한 이무기 목도리까지.
그런데도….
“……?”
그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이상함을 느껴야 했다.
후욱, 후욱….
웬 푸른 꽃 앞에 앉아 있는 그녀는 전력 질주라도 한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기 때문이다.
또 무언가를 움켜쥐고 싶은 듯 자꾸만 두 손을 허공에서 쥐었다가 폈다.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
그들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 행동하는 것을 이해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차피 대상을 암살하기 위해 온 것이었으므로.
남자는 조용히 단검을 뽑았다.
암살자로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죽는다는 사실도 모르도록 죽이는 것.
조용히 다가가는데,
「거기까지다….」
두 다리가 멈췄다.
등급이 높은 게이트에 들어온 것처럼 온몸이 굳고 무릎이 굽혀졌다.
털썩, 털썩…!
그뿐만이 아니었다.
뒤에 있던 부하들도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었다.
스르륵….
그와 동시에 살결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앙…!”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홍수정의 신음과 함께.
그녀는 입술을 핥으며 무기를 바라봤다.
「…….」
무기는 그녀의 시선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암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선과 신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허공에 떠 있는 무기를 올려다보며 의문을 중얼거렸다.
“설마, 목도리가 아니라 진짜였다고…?”
「전혀 몰랐나? 내 연기가 썩 쓸만했나 보군.」
“그래, 전혀 몰랐다. 설마 목도리 흉내를 내고 있을 줄이야….”
「……?」
무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에게서 여유로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직 자신들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가?
그리 생각하며 무기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빠지직!
푸른 번개가 튀어 오른 순간, 어느새 암살자들의 몸이 포박돼 있었다.
그들은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대단하군, 푸른 용….”
「조언하자면,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
「스스로 통구이가 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조언 고맙군…. 그런데, 별로 쓸모는 없는 친절 같은데?”
「뭐라고?」
촤르륵….
남자의 목에 걸려 있던 향로가 흰 연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몸을 포박하던 푸른 번개가 사라졌다.
굳었던 다리도 풀렸는지 그와 부하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마법을 무효화한 건가….」
“그런 셈이지.”
툭, 툭.
남자가 무릎을 털어내며 말했다.
무기는 그제야 남자가 여유를 부렸던 것을 이해했다.
아직 체크메이트가 아니었다.
“질문이 하나 있다. 푸른 용. 우리가 올 걸 어떻게 알았지? 감시하던 W.H.A. 놈도 우리가 빠져나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글쎄…. 대답해줄 의리는 없는 것 같다만.」
“혹시 그녀가 가르쳐주었나?”
「그녀…?」
“모르나 보군….”
「……?」
“뭐, 됐다. 돌아가서 직접 물어보면 될 일.”
그리 말하며 남자는 팔을 내뻗었다.
오른손에 들린 단검이 홍수정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어느새 꺼냈는지 무기 목도리를 목에 두른 채였다.
「날 마주하고도 포기하지 않은 건가.」
“우리가 헌터였다면 포기했겠지.”
「헌터였다면…?」
“우리는 암살자거든. 굳이 너와 싸울 필요가 있을까?”
「암살만 하고 돌아가겠다? 그게 가능할 것 같나? 내가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
“못할 이유도 없지.”
남자는 두 팔을 활짝 펼쳤다.
현재 그들이 선 장소를 가리키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전력을 낼 수 있겠나?
그리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무기는 남자의 의중을 바로 알아차렸다.
또 순순히 전력을 낼 수 없음을 인정했다.
강력한 번개는 실내를 전부 불태울 터였으니까.
지켜야 할 대상인 홍수정까지도 함께.
“후후, 후…!”
남자가 미끄러지듯 내달렸다.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홍수정과의 거리를 빠르게 줄여나가는 그의 귓가로,
「…네놈이 간과한 것이 세 가지 있다.」
무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빠지직…!
푸른 몸에서 번개가 튀었다.
「첫째. 이곳이 백운천이라는 것.」
우르르 쾅…!
천둥이 쳤다.
남자가 멈춰 서지 않았더라면 천둥을 뒤집어쓰고 통구이가 됐을 것이다.
바닥으로 떨어진 천둥의 한 가닥이 홍수정에게 튀었다.
“앗, 뜨아, 따! 따가워요…!”
홍수정이 호들갑을 떨었다.
통구이가 돼야 했었는데도 멀쩡했다.
바로 그녀의 몸을 감싼 실드 덕분이었다.
남자는 그 실드를 누가 걸어주었을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하얀 성녀….”
「바로 맞췄다. 관리인 동생의 실드는 내 번개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지.」
“…….”
「물론, 저 실드가 있다고 해도 내가 전력을 다하지 못하는 상황이란 건 변하지 않는다만…. 그렇다 한들 뭐가 문제일까.」
“뭐라고…?”
「이것이 두 번째다. 전력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네놈들이 강해진 건 아니라는 거.」
“감히, 몬스터 주제에 나를 무시해…!”
빠드득!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
흥분한 얼굴로 성을 내며 달렸지만, 나아가는 방향은 무기가 있는 쪽이 아니었다.
이곳까지 온 그의 목적을 잃지 않은 것이다.
「푸른 용, 푸른 용 거릴 땐 언제고 몬스터 취급인가….」
무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남자가 홍수정의 바로 앞까지 다다랐는데도 무기는 허공에서 구불거리기만 했다.
그 여유를 후회로 바꿔주겠노라.
그리 생각하며 남자는 단검을 앞으로 찔렀다.
그 순간,
「세 번째.」
무기가 말했다.
동시에 푸른 꽃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화아악…!
「실내에 자란 푸른 꽃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
빛이 사그라들며 도운이 나타났다.
도운은 두 팔을 한껏 벌렸다.
마치 자신에게 달려드는 남자가 팬이라도 되는 양 꽉 안아주려는 듯이 보였다.
“큭…!”
남자는 붙잡히지 않기 위해 돌진 속도를 줄였다.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기세가 훨씬 강하지 않았더라면 도운의 앞에 다다르기 전에 멈췄을 것이다.
결국, 남자는 멈추지 못했고 앞으로 내뻗었던 팔도 거두지 못했다.
곧 팔을 붙잡히고 제압을 당하리라.
눈을 질끈 감은 채 고통에 대비하려고 하는데,
푹…!
남자의 귓가에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이 살을 꿰뚫고 들어가는 소리였다.
이해할 수 없는 소리이기도 했다.
“……?”
남자는 눈을 뜨고 앞을 바라봤다.
앞엔 여전히 도운이 서 있었다.
공격을 막아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도운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오른손에 스마트폰으로 쥐어져 있었고, 검지로 화면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으니까.
톡톡 톡톡톡….
도운은 자신의 배를 한 번 내려다보고는 히죽 웃었다.
“…대단한데?”
그 웃음을 보고 남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 우린 죽는구나.
악마도 저것보다 잔혹한 미소를 짓지 않으리…!
***
[세계수 어린나무가 공포를 느꼈습니다.] [눈앞의 인간이 관리인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합니다.]새싹이가 암살자가 느끼는 감정을 설명해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배를 내려다봤다.
손목을 넘어 팔뚝까지 통과한 손을 보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지금껏 내 실드를 뚫은 건 한진환뿐인데 말이야.”
그것도 가지치기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날 이후로 시간도 많이 지났고, 가지치기도 몇 번이나 했다.
지금은 아무리 한진환이라고 해도 나무껍질을 이토록 쉽게 뚫어내진 못할 거다.
그런데도 세계수의 나무껍질 스킬이 보기 좋게 뚫렸으니….
바티칸이 결계나 실드에 있어선 한 수 위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군.
분명 저 흰 연기를 뿜어내는 향로 덕분이겠지.
“도, 도운 씨…. 괜찮은 거예요?”
뒤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재생력이 좋다는 것쯤 알고 있을 텐데….
복부가 뚫린 모습이 보기 좋진 않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괜찮아요. 이게 그렇게 안 보여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거거든요.”
“네?”
“그러니까, 붙잡았다는 거예요. 내가, 이 암살자를.”
“…….”
홍수정이 입을 다물었다.
끔뻑끔뻑….
붕어가 입을 벌렸다 닫는 것처럼 눈만 감았다가 떴다.
[어린나무는 홍수정이 황당함을 느끼고 있다고 전합니다.] [또 걱정도 하고 있다고 덧붙입니다.] [아마 친구를 걱정하는 것 같다고 설명합니다.]…쓸데없이 자세한 설명 참 고맙다.
“…응?”
암살자가 품에서부터 또 다른 단검을 뽑아 들었다.
오른손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새로운 무기를 꺼내 든 것이다.
그런데….
“오….”
공격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내 복부에 붙잡힌 오른팔을 잘라내기 위해서였다.
암살자는 자신의 팔을 깔끔하게 베어내고는 나와 거리를 벌렸다.
판단이 빠른걸.
홍수정을 암살하는 데 실패했음을 순순히 인정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자살하려고?”
“……!”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럴까.
실패한 암살자의 선택이야 뻔한 건데.
뒤에 서 있는 홍수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암살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홍수정을 향했다.
“소용없으니까 그만두는 게 좋아. 여기 누가 있는지 잊은 건 아니지?”
“…설마 엘릭서라도 먹일 셈이냐.”
“자살하려고 한다면 그럴지도 모르지.”
“겨우 암살자를 살리겠다고 엘릭서를 사용하겠다고?”
“그러면 안 되냐?”
“…….”
날 쳐다보던 암살자는 눈을 감는다.
뚝, 뚝, 뚝… 뚝….
잘라낸 팔에서 흐르던 피가 멈췄다.
스스로 지혈(止血)한 것이다.
정말로 엘릭서를 먹일 거라는 내 진심을 이해한 듯하다.
판단이 빨라서 좋네.
푸학!
내 복부에 꽂혀 있던 암살자의 오른손을 빼냈다.
그러고는 인벤토리에서 중급 포션을 꺼냈다.
“그건….”
“중급 포션이야.”
“날 치료해주는 거냐?”
“조금 따끔할 거니까 각오해.”
“그게 무슨 소…!”
암살자는 눈을 부릅떴다.
내가 말했던 대로 따끔거리는 감각을 참기 위해서다.
놈의 팔을 이어주기 위해 붓고 있는 중급 포션은 엘프들이 만들어준 것이었다.
콜라의 맛을 본뜨고자 만든.
즉.
아주 약한 폭발 마법이 걸려 있다는 소리다.
마셔도 멀쩡할 정도로 약하디약한 마법이지만, 절단 상처에 직접 부으면?
“따, 따가워! 잠깐…! 포션이 왜 따가운, 앗…!”
겨울철 정전기가 일어난 것처럼 따가운 고통이 잇따르게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