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40
제441화
김서준과 만나고 나흘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전국의 A등급 이상의 게이트를 전전하며 결실 에너지를 모았다.
[결실 저장고 – 20% 이상]한숨도 자지 않았던 덕분일까?
나흘 동안 결실 에너지를 20% 이상 모았다.
이 속도라면 일주일 후면 전부 모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지금처럼 결실 에너지를 모으는 데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백운천 녀석들이 영약을 복용하는 것을 도와줘야 했기 때문이다.
태천이가 보낸 메시지에 따르면 그동안은 성질에 맞는 영약들을 복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성질에 맞지 않는 영약들만 남아 체내에 제대로 흡수하기 위해 내가 도와줘야만 한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영약 절반의 절반도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 어쩔 수 없었다.
[세계수가 관리인에게 백운천으로 돌아가길 제안합니다.] [나흘 동안 깨어 있었으니, 한숨 푹 자고 일어나는 게 좋을 듯하다고 전합니다.]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
새싹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빠르게 A등급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세계수 관리인이 된 후로 피곤을 잘 느끼지 않았지만, 제대로 자지 않으면 정신 상태가 평소와 달라졌기에 쉬는 시간은 꼭 필요했다.
오늘로써 나흘째 잠을 자지 않았으니, 이젠 쉴 때가 됐다.
부르르!
게이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오면서 메시지들이 한꺼번에 수신되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메시지들의 수신과 함께 통화도 함께 걸려 왔다.
[위버멘쉬, 김서준]김서준이 전화를 걸었다면….
전 스승이자 마인 길드의 마스터인 윤건과 만날 날을 정한 게 분명했다.
“여보세요?”
“도운 씨. 스승….”
김서준이 말을 하다 말았다.
조용히 침묵하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스승이 아닌 자를 계속 스승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그런 내 생각을, 그가 다음으로 내뱉은 말이 긍정해주었다.
“…아니. 윤건과 날을 잡았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언제 만나기로 했나요?”
“오늘 밤 10시입니다.”
“그렇게 빨리요?”
“윤건이 되도록 빨리 만나길 원했거든요.”
빨리 만나길 원했다고?
내가 마인 길드의 비밀을 알고 있어서인가.
비밀 유지라도 해주길 바라나?
“날을 다시 잡을까요?”
“그럴 필요 있나요.”
“네. 그럼, ‘염석도’로 오시면 됩니다.”
염석도…?
처음 듣는 지명이다.
내 침묵에서 모른다는 기색을 느꼈는지 김서준이 짧게 설명해줬다.
“남해에 있는, 윤건 소유의 섬입니다.”
“섬….”
잘됐는걸?
비밀리에 만나기에 좋겠어.
“알겠습니다. 오늘 밤 10시까지 그곳으로 가도록 하죠.”
“네.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뚝.
김서준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곳에서, 라니.
설마 김서준도 오는 건가?
그리 중얼거린 순간,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했다.
[받지 마! 받지 말라고, 미친 새끼야!]도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톡.
화면을 클릭하자 도희가 며칠 동안 보내온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언제 돌아와요?] [잠은 잘 자고 있어요? 밥은 먹고 있고요?] [내일은 꼭 돌아오세요.] [언니 오빠들 성질에 맞는 영약이 다 떨어졌….]슥, 슥.
메시지를 빠르게 내려 방금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
[한진환이 돌아왔어요.] [옥상에 이상한 짓을 하고 있어요!]이상한 짓?
도희가 다음으로 보낸 메시지는 여러 장의 사진이었다.
옥상 사진인 것을 보니, 한진환이 하고 있다는 이상한 짓을 촬영해 보낸 것이 분명했다.
톡, 톡.
바로 사진들을 클릭해 확인했다.
“얼씨구…?”
당황스러운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한진환은 도희 말대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번개를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을 높이 쳐들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물건에선 당연하다는 듯 푸른 번개가 마구 튀어댔다.
도희가 그를 말리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도 그래서였으리라.
슥.
두 번째 사진은 한진환이 그것을 옥상 한가운데에 내리꽂는 모습이 담겼다.
“…저걸 왜 박아?”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중얼거리면서 세 번째 사진으로 넘겼다.
세 번째 사진에선 한진환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도희의 명령을 받은 듯 맹렬하게 돌진하는 태천이의 뒷모습과 함께 말이다.
푸른 번개가 튀었지만, 태천이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슥.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사진.
한진환은 온데간데없었다.
태천이가 옥상에 꽂힌 물건을 붙잡았다가 감전된 모습이 전부였다.
그 와중에 태천이는 옷이 홀라당 타버렸는데, 다행히 드로즈 팬티가 형체를 유지하고 있어 19금 사진이 되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우리 도희가 끔찍하고 흉물스러운 것을 볼 뻔했다.
“이 양반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감상을 중얼거리며 도희가 사진 다음으로 보낸 메시지들을 읽었다.
방금 전송된 메시지로, 간략한 상황 설명과 함께 도희의 결심이 담겨 있었다.
[저거 안 빠져요.] [태천 오라버니도 못 빼겠대요.] [빼려고 하면 건물 전체가 뽑힐 거라나?] [후우….] [그러므로 나는 오늘 결심했어요.] [한진환 저 양반 내가 죽여버릴 거야.]으음….
도희가 화가 많이 났나 보다.
뭐, 그럴 만도 하지.
남의 집 옥상에 제멋대로 피뢰침을 박아 넣었으니, 화를 내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일단 도희를 진정시켜줘야겠다.
무수한 ‘ㅋ’를 보내서.
***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염석도는 남해에 많고 많은 무인도 중 하나였다.
원래 이름도 붙지 않은 작은 섬에 불과했는데, 윤건이 사들인 후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염제 윤건이 거주하는 돌섬’이란 뜻으로 말이다.
[세계수가 크고 작은 역겨운 마나를 느꼈습니다.] [작은 마나가 조주현의 것이니, 다른 큰 마나가 염제 윤건의 것일 듯하다고 짐작합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와 동시에 무기도 날아가던 방향을 바꿨다.
오른편에 보이는 외딴섬이 목적지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흠….”
눈을 가늘게 뜨고 섬을 노려보자 사각의 링같이 보이는 곳에 다섯 사람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외형으로 보건대, 마인 길드의 윤건과 조주현 그리고 위버멘쉬 길드의 김서준과 채정연과 황시열이 분명했다.
「조심해라, 관리인.」
금세 섬의 상공에 도착한 무기가 곧바로 몸 크기를 줄였다.
탁….
작아진 무기의 몸에서 뛰어내려 사각의 링 위로 착지했다.
이 링은 아무래도 윤건의 훈련장인 듯하다.
윤건이 우리에게 걸어왔다.
“어서 와라. 나는 윤건이다.”
“백도운입니다.”
“잘 알지. 늦었지만, S급 헌터가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 말하며 손을 내밀기에 맞잡았다.
맞잡은 손에서 굳센 힘이 느껴졌다.
물론 유치하게 힘을 강하게 쥔 건 아니었다.
그저 진심으로 내 손을 맞잡은 것일 뿐.
왜 이래?
“…….”
“…….”
“…하하!”
윤건이 생뚱맞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눈을 찌푸리는데, 뒤로 당황스러운 얼굴을 하는 그의 제자와 전 제자가 보였다.
저 얼굴들을 보아하니 윤건이 호탕하게 웃는 게 흔한 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윤건이 맞잡은 손을 살살 흔들며 말했다.
“내가 자네와 자네 친구 덕분에 얼마나 즐거운지 아나?”
“네…?”
“한진환 그 얄미운 놈이 1등 자리에서 밀려났잖아. 하하!”
윤건이 또 호탕하게 웃었다.
한진환이 1등 자리에서 밀려났다는 건, 윤건 본인의 순위도 밀려났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즐겁다고 웃다니, 그동안 한진환의 라이벌을 자처하던 인물답지 않았다.
설마 나와 태천이의 등장으로 두 번 더 밀려났다고 다 포기 한 건… 아니.
모든 걸 포기한 사람의 눈은 아니군.
그럼, 다른 속셈이 있다고 보는 게 옳겠지.
“근황 인사는 이것으로 끝내지.”
윤건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웠다.
방금까지 웃고 있던 게 전부 연기였다는 듯이.
슥.
그가 엄지로 김서준을 가리켰다.
“김서준 길드장한테 듣기로, 자네가 우리 길드의 핵심 비밀을 알아냈다던데?”
“네.”
“어떻게? 새어나가지 않게 각별히 신경 썼는데 말이야.”
“우연히 알아냈죠. 오만이 당신들과 비슷한 짓을 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마나가 비슷했거든요.”
그 비슷한 마나를 우리 새싹이가 정화하면서 자세히 살폈다.
따라서 새싹이가 역겨워했던 이유를 알아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설마 몬스터를 이용해 신체를 개조하고 있었을 줄이야….”
오만, 그리고 마인 길드.
그들의 몸에선 개조에 사용된 몬스터들의 마나가 함께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 새싹이가 역겨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
윤건의 몸이 움찔했다.
마치 공격이라도 할 것처럼 미세하게 마나가 모여들었다.
물론, 나를 공격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모여들었던 마나가 금세 흩어지는 걸 보니, 그건 생각하고 한 행동이 아니라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마나를 흩트린 그가 머쓱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
“…….”
침묵이 흐르고,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만 들렸다.
지루해진 황시열이 하품을 하려는 찰나 윤건이 질문을 던졌다.
“원하는 게 뭐지?”
“원하는 거요?”
“그 사실을 알고서도 협회나 정부를 찾아가지 않고 날 만나자 했지. 그건 나한테 바라는 게 있어서 아닌가?”
“아아.”
과연.
그는 내가 거래를 하러 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비밀을 지켜주는 대신 대가를 내놓으라고.
하지만, 그럴 목적으로 만나자고 한 게 아니었다.
“난 마인 길드를 도우러 왔어요.”
“뭐라고…?”
반문한 윤건이 나를 훑어봤다.
도와주러 왔다는 말을 믿지 못하고 내 의중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파악하지 못할 거다.
도우러 왔다는 건 진심이니까.
물론,
“공짜는 아니지만요.”
“흐음….”
윤건이 또다시 날 훑어봤다.
이번엔 의중을 파악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바로 질문했다.
“대체 뭘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거지?”
“마인 길드는 몬스터를 통해 신체를 개조하고 있죠. 그게 정말로 괜찮을 거로 생각해요? 아무 문제도 없이?”
“…….”
입을 다문 윤건의 얼굴이 굳는다.
역시 아무 문제 없을 리 없었다.
“그 시술은….”
윤건이 털어놓듯 천천히 말했다.
신체를 개조하는 것을 자기들끼리는 시술이라고 표현하나 보다.
“자주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겠죠.”
“어느 순간부터 마나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게 되거든.”
“오.”
“우린 그걸 인간의 심장이 몬스터의 것처럼 변한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지.”
인간의 심장에, 몬스터처럼 변한 몸.
마나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윤건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그동안의 통계로 3회까지는 안전하다는 걸 알아냈지.”
“3회가 마지노선인 거군요.”
“맞아. 그 이상 받으면 어딘가 꼭 고장이 나더군. 설령 마나 순환이 된다고 해도 말이야.”
“그래서였나….”
윤건의 말에 김서준이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는데, 아무래도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윤건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김서준 길드장은 3회를 다 받았었지.”
“…….”
빠득….
김서준이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윤건은 계속 말했다.
엄지로 조주현을 가리키면서.
“그에 반해 주현이는 이제 겨우 1회째.”
즉, 3회를 다 받은 김서준보다 1회만 받은 조주현이 더 강했던 거다.
재능의 차이는 명백했으니 김서준은 내쳐졌고, 뒷세계로 흘러 들어가 바이올렛 바이올런스를 복용하게 됐다.
사연 없는 무덤 없다더니 그의 삶도 퍽 기구하군.
뭐….
[세계수는 윤건을 향한 아니꼬운 시선들을 느꼈습니다.] [채정연과 황시열이 윤건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고 전합니다.]저런 동료들을 얻었으니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으리라.
도저히 “그 덕분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시선들을 느낀 윤건이 픽 웃고 말했다.
“설명한 것처럼, 우린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횟수만 조심하면 되니까.”
글쎄.
그건 그쪽 생각이고.
“다른 문제도 있던데요?”
“문제가 있다고?”
“네.”
“…그럴 리 없어. 우린 이 힘을 오랜 기간 연구해왔거든.”
오랜 기간 연구?
그들의 연구가 어쨌건, 그래 봐야 우리 새싹이가 면밀하게 조사한 데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만남은 이걸로 파하면 되겠죠.”
“…….”
윤건이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내 당당한 태도에 딴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생각한 것 같다.
다른 놈이 이렇게 말했다면 무시했겠지만, 난 S급 헌터가 아닌가?
그럴 리 없다고 그냥 무시해버리기엔 찝찝함이 남을 터였다.
그리고… 난 세계수 관리인이자 새싹이의 형으로서 선의를 갖고 도와주겠다고 한 거였다.
그런데 그가 내 도움을 받지 않겠다면…?
인간 백도운으로서 집으로 돌아가 잠이나 잘 거다.
난 아쉬울 게 하나도 없었고, 그들이 죽든 말든 관심도 없었다.
그러므로,
“선택은 그쪽이 하세요.”
경고하듯이 단호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