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83
제485화
“으윽…!”
핵심 전투원들을 제외한 이들이 신음을 흘렸다.
난 곧바로 도희에게 달려가 세계수의 마나를 끊임없이 불어넣었다.
“괜찮아?”
“견딜만해…. 고마워, 요….”
“말하지 말고 추스르고 있어.”
힘겹게 대답하는 도희에게 말하며 주변을 돌아봤다.
태천이는 한재임을, 리롄제는 진지우를, 밀러와 리우이호는 이자벨 성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보호가 빨랐던 덕분일까.
다행히 심각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이 정도면 검은 구슬로 변하지는 않겠군.
“곤란하군그래….”
리롄제가 중얼거렸다.
그 말 대로였다.
검은 구슬이 되지 않을 뿐.
절대 좋은 상황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 꼴을 한 채로 블랙 드래곤과 싸울 순 없으니 말이다.
『나아진 점이 없구나, 관리인이여.』
“뭐?”
『예전에 들어왔을 때도 너흰 이 꼴이지 않았느뇨?』
“…….”
『이번에도 도망칠 것인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전력으로?』
“속 참 좁기도 하지. 그걸 여태 기억하고 있냐?”
『큭큭큭….』
블랙 드래곤이 비웃음을 들으며 주변을 살폈다.
확실히 비슷한 상황이긴 했다.
그땐 리롄제가 리우이호와 밀러를 보호하느라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비슷한 것이지 온전히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이번엔 성장한 리우이호가 예전의 리롄제 역할을 맡게 될 테니까.
핵심 전투원이 아닌 그에게 딱 맞는 역할이기도 했다.
『여는 너를 기억한다.』
블랙 드래곤이 조롱하듯 말했다.
『맡겨 달라?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던 인간이여. 그것은 오기(傲氣)이니라.』
“…….”
『단언컨대, 너는 5분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약한 인간아.』
“…흑룡. 너의 생각은 틀렸다.”
리우이호가 성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눈빛이 얼마나 매서운지….
보호해야 하는 사제가 없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블랙 드래곤에게로 돌격했을 것 같다.
『호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느뇨?』
“그래. 네놈은 성공한 적이 없으니까.”
『성공한 적이 없다고?』
“마족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아 이곳에 내쳐진 게 그 증거 아닌가.”
『…….』
블랙 드래곤의 불편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럴수록 리우이호는 허리를 꼿꼿이 폈다.
뭐랄까.
저러고 있으니 소위 대륙의 기상이라고 부르는 기개가 느껴졌다.
물론,
“으하하! 그렇지! 그리 말해야 이 리롄제의 제자지!”
온갖 주책을 떨어대는 리롄제를 보고 금세 사라졌다.
저 용 오타구 영감 밑에서 어떻게 저렇게 훌륭하게 자란 걸까.
[세계수가 자신처럼 훌륭한 교사가 있었던 덕분인 것 같다고 추측합니다.]새싹이 너처럼?
그게 무슨 소리야?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자신은 백도운이라는 훌륭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있어 잘 자랄 수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하긴.
내가 훌륭한 교사이긴 하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데.
이러쿵저러쿵.
새싹이가 쏟아내는 말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섰다.
빡 친 블랙 드래곤이 무슨 짓을 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도희야.”
“네? 아. 네. 이자벨 성녀님.”
도희는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 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깨달았다.
이자벨 성녀를 부르자 그녀는 왜 쳐다보았다가, 도희가 마법 주머니를 뒤지는 것을 보고 이유를 깨달았다.
이어 도희처럼 마법 주머니 속에서 투명한 액체가 담긴 포션을 꺼냈다.
포션의 생김새는 현대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생수병…?”
리롄제가 중얼거린 대로, 포션은 플라스틱 생수병처럼 생겼다.
높이가 절반 길이로 짧은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달칵.
뚜껑을 열며 도희가 빠르게 설명했다.
“수정 공방주가 제조한 ‘전용(專用) 버프 포션’이에요.”
“전용…?”
“지난해 교황청에서 준 성수의 원액으로 제조한 포션이죠.”
바로 그 때문에, 도희와 이자벨 성녀처럼 ‘빛의 마나 소유자’들에게만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는 특성이 생겨버렸다.
빛의 마나 속성이 아닌 사람이 마시면 저 포션은 그저 맹물에 불과하다.
“…적절하진 않은 것 같은데, 질문이 있습니다.”
“하세요. 진지우 씨.”
“수정 공방에서 제조했다면, 혹시 그것도…?”
“…….”
진지우의 질문에, 도희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뚜껑을 연 전용 버프 포션을 벌컥벌컥 마셨다.
도희를 따라 이자벨 성녀도 바로 그것을 마셨다.
“음. 아주 부드럽고 시원한….”
“시원한…?”
“물맛이네요.”
“…예?”
“화산층 특유의 천연 자정작용으로 매우 순수하고 깨끗한 물맛이라고요.”
“……?”
도희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진지우의 갸웃거리는 각도는 더 심해졌다.
리롄제와 리우이호도 마찬가지다.
그럴 수밖에.
중국인인 그들이 한국에서 25년째 부동의 1위 생수인 제주 X다수 맛을 어떻게 알겠는가?
“……!”
그때였다.
도희와 이자벨 성녀의 머리에서 둥그런 빛이 뿜어졌다.
그것은 후광(後光)이었다.
각종 종교에 있는 성자(聖者)의 머리 위에서 나오는 그 빛 말이다.
“으, 으음….”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 줄래요?”
두 성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충분히 이해가 갔는데, 나 같아도 머리 위에서 빛이 뿜어지면 민망할 것 같았다.
종교적 상징물인 ‘이콘(icon)’이 실체화한 것도 아니고….
그래도 민망한 모습과 달리 효과는 확실했다.
[시전자의 능력 상승에 따라 빛의 성역이 강화됩니다.] [지금부터 2배였던 버프 효과가 4배로 증가합니다.] [또한, 2배였던 디버프 효과도 4배가 됩니다.]원래보다 2배 더 증가해 4배가 되었다.
큰 폭의 상승은 아니었지만,
“오…. 어쩐지, 훨씬 나아진 것 같은데요?”
진지우의 감상처럼 블랙 드래곤의 결계에 잡아먹힐 정도는 아니었다.
이 정도면 핵심 전투원들이 지켜주지 않아도 괜찮을 터였다.
우리가 열심히 추측했던 대로 말이다.
「…괜찮겠군.」
임페일도 그리 생각한 모양이다.
지금껏 조용히 있던 그가 밀러에게 제자를 건네받은 후 하늘로 빠르게 올라갔다.
새싹이의 꽃에 구슬로 바뀐 이들을 넣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순간,
“어라?”
발밑의 그림자가 이상하게 꿈틀거렸다.
블랙 드래곤이 행동에 나서기로 한 것이 분명했다.
늪을 밟고 서 있는 듯한 감각….
그 감각을 예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림자에 맞닿은 두 발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의 그 느낌이다.
정말이지, 놈에겐 아쉬운 일이리라.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휙휙 휘젓습니다.] [이 마법은 이미 관찰이 끝났다고 기고만장합니다.]우린 이미 대비할 방법을 찾아 놓았다.
블랙 드래곤이 그림자로 발을 붙드는 마법을 쓴다는 것을 아는데, 왜 여유롭게 땅에 두 발을 디디고 서 있었겠는가?
이상한 낌새를 진작 알아차렸을 임페일이 아래를 전혀 돌아보지 않겠는가?
이 마법을 무효로 할 굉장히 간단한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바로,
흡수하는 것이었다.
마법이란 결국 마나로 구성하는 것이지 않은가.
마나가 없다면, 그게 설령 드래곤의 마법이라고 해도 발동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 새싹이는 세상에서 마나를 가장 빠르고 많이 흡수할 수 있는 아이였고.
땅 밑으로 잔뜩 뻗어 나간 뿌리를 통해서 말이다.
괜히 세계수 소환 스킬이 일정 지대를 새싹이의 영역으로 바꾸는 게 아니다.
쏴아아…!
그림자에 담겨 있던 블랙 드래곤의 마나를 모두 빨아들인 새싹이가 나뭇잎을 흔들었다.
바다에 온 듯한 파도 소리가 게이트에 울렸다.
그 소리를,
『세계수….』
블랙 드래곤은 비웃음처럼 들은 모양이다.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세계수는 세계수다, 이건가. 제법이로구나….』
제법?
이 도마뱀 놈이 말하는 본새 보소.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가 아주, 심히, 거슬리는걸?
하지만… 자기와 싸울 자의 자격이 있고 없음을 선별하는 놈이 아니던가.
오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얕보던 인간에게 역으로 조롱당하긴 했지만 말이다.
『축하해주마.』
“……?”
『너희에게 여와 싸울 자격이 있음을 인정해주겠다.』
“…….”
갑자기 웬 축하를 하나 했더니….
자격을 인정해줘?
지금 장난하나.
“네 인정 따위 필요 없어, 인마.”
퉁명스럽게 되받아쳤다.
그러나 블랙 드래곤에게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아무래도 텔레파시 마법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모양이었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다니.
이게 무슨 전화… 아니, 텔레파시 매너야?
“…여러분.”
속으로 구시렁거리는데, 도희가 우릴 불렀다.
고개를 돌려 보자 도희는 경고를 전했다.
“다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겠어요.”
“응? 왜? 새싹이도 소환했으니 좀 다치는 것 정도는 괜찮은데.”
한 방에 즉사하거나 엘릭서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다치면 모를까.
웬만한 상처는 새싹이가 뿌리를 내린 땅 위에선 금세 치유될 터다.
그것을 잘 아는 도희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멀쩡했던 바네사 씨가 정신적으로 무너져 구슬로 바뀌었잖아요.”
“그랬지. 그래서?”
“그건 아마도 정신적인 문제만 해당하는 게 아닐 거예요.”
“아…?”
“신체적 컨디션이 나빠졌을 때도, 저항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요.”
“오. 그럴듯한 추론인걸…?”
“…말하자면.”
리롄제가 끼어들었다.
자기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큰 부상을 입을 경우 싸울 자격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리 생각하면 되겠나?”
“네. 세계수가 소환돼 있으니, 어느 정도의 부상은 금세 회복될 거예요. 하지만-”
“회복하는 동안 구슬로 바뀌어버릴 수도 있겠군.”
“바로 그거예요.”
“음…. 그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수단은 적절하지 않겠구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니….
도희에게 설명을 듣자마자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애초부터 그럴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다.
밀러도 그걸 눈치 챘는지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하지 마세요.”
“…알았네.”
리롄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기에 퍽 놀라웠다.
걱정이 담긴 말이라고 해도 단호한 명령조에 순순히 긍정할 줄은 몰랐다.
리우이호와 진지우도 나처럼 생각한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런 두 제자를 가는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리롄제는 도희에게 질문했다.
“또 조심해야 할 게 있겠나?”
“아직은 없어요. 또 알아내는 게 있다면, 바로 전달해드릴게요.”
“음.”
리롄제가 만족스러운 듯한 감탄사를 내뱉은 후 허공을 밟고 올라갔다.
그러고는 두 제자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흰 백운천을 도와라.”
“예?”
“저희가요?”
“그럼 놀고만 있을 게냐? 어차피 할 일도 없지 않더냐.”
“…알겠습니다.”
“으으….”
리우이호가 힘없이 대답하고, 진지우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하기 싫다고 말하는 듯한 그 태도가 황당했다.
이 와중에도 저럴 수 있는 정신머리라니.
적어도 밀러의 제자처럼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일은 없겠는걸.
리롄제가 고개를 돌려 무기를 올려다보았다.
“청룡이여.”
「…날 부른 건가?」
“그렇네.”
「아직 이무기이다만.」
“노부의 눈엔 훌륭한 청룡이거늘 어찌 그리 부를 수 있겠나? 물론, 혹여라도 듣기에 기분이 상한다면 이무기라고 부르겠네.”
아부가 술술 나오네.
입술에 침은 발랐나 몰라.
「…그럴 필요까진 없다.」
“그렇군, 그렇군.”
「그래서 날 부른 이유가 뭔가?」
“혹, 흑룡 앞까지 이 노부를 태워줄 수 있겠나? 그리 해준다면 큰 기쁨이 될 것 같은데….”
리롄제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와, 저 영감탱이가 노망이 났나.
징그러운 모습에 이번에야말로 노인 공격할 뻔했다.
「한 번으로 만족하도록.」
우르릉!
무기는 번개까지 뿜어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민망함을 느낄 정도로 단호한 거절이었으나 리롄제를 허허 웃기만 했다.
고즈넉한 한낮 반려동물이 뛰노는 것을 바라보는 노인이 떠오를 정도로 인상이 좋아 보였다.
반면,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은 기괴한 광경을 본 사람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톡, 건드리면 불만과 불평을 쏟아낼 것만 같다.
평소 리롄제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할 수 없이 혼자 가야겠군.”
“하하. 대신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할 수 있겠지만, 저희가 함께하겠습니다.”
“음? 으음….”
태천이와 밀러가 리롄제 옆에 선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리롄제는 탐탁지 않은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바로 조금 전까지 허허 웃던 노인이 맞나 싶었다.
심술궂은 얼굴로 돌아온 리롄제는 군말 없이 출발했고, 태천이와 밀러가 바로 뒤따랐다.
「관리인.」
무기가 내게 다가온다.
출발은 세 사람이 먼저 했지만, 도착은 우리가 먼저 할 터였다.
“도희야.”
“네.”
“준비 끝나면 새싹이한테 말해.”
그리 말하며 무기 위에 올라탔다.
도희가 바로 대답했으나 내 귀에 닿지는 못했다.
목소리가 내게 다가오는 속도보다 나아가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