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9
제49화
골목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이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차로는 더 나아갈 수 없을 정도다.
아무래도 김무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구경 나온 모양이다.
하긴, 한국 랭킹 47위 헌터를 보는 게 어디 쉬운가.
나 같아도 이런 일이 아니면 구경하러 나왔을…것 같진 않군.
할 수 없이 차를 인근에 세워 두고 내렸다.
“딱지 붙으면 어떡하지?”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돌아봤다.
몰려든 사람을 막아서고 있는 경찰들이 보였다.
누가 보면 테러리스트라도 나타나 저지선을 만든 줄 알겠다.
불쌍하게도, 쓸데없는 일로 고생이 많았다.
그렇게 안타까워 하고 있는데 경찰 하나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 경찰의 시선을 따라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얼굴을 알아봤는지 자기들끼리 수군거려 댔다.
내 앞에 선 경찰이 말했다.
“여기 차 대시면 안 됩니다.”
“아, 저는 저기 볼일이 있어서 온 겁니다.”
“볼일이요?”
“네, 제가-”
“그 사람이다!”
상황을 설명해 주려고 입을 여는데 주변 사람들이 끼어들었다.
나를 알아본 사람들이다.
그들이 경찰에게 나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와 경찰은 함께 당황해서 그들의 설명을 들었다.
타인에게 듣는 내 얘기라는 게사람 기분을 조금 심란하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에요! 김무연이 찾는 사람!”
“백도운? 맞아, 백도운. 그런 이름이었어!”
“백도희 오빠, 이태천 친구!”
“지금 김무연이 여기 찾아온 게 어떤 동영상 때문인 건 아시죠?”
“이 사람이 그 영상 주인공이에요.”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말을 한꺼번에 다다 쏟아 냈다.
내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돼서 편하긴 했지만, 이렇게 잘 알고 있으니 좀 무서웠다.
이따금 태천이나 도희의 팬들이 찾아와 그들에 관해 떠들 때도 무섭긴 했는데, 그것보다 조금 더 무섭다.
아무래도 내 일이 돼서 그런 것 같다.
경찰도 나처럼 무서움을 느낀 건지 당황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침을 한번 삼켰다.
그러고는 나를 들여보내 주기로 한 듯 한걸음 비켜섰다.
“지나가시죠. 이 상황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으니까.”
“아, 네. 그런데요.”
“네?”
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살짝 뜸을 들이자 경찰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중요한 말을 할 것으로 여긴 듯하다.
그 생각대로 중요한 말이긴 했다.
진중한 얼굴을 할 필요까지는 없는 내용이지만.
내가 무슨 말을 내뱉을지 기대하는 사람들의 눈빛도 부담스러웠다.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차는 어떡하죠?”
질문하니까 진중했던 경찰의 얼굴이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바뀌었다.
사람들도 경찰처럼 얼빠진 얼굴을 했다.
아니, 어처구니가 없는 건 나야, 이 사람들아.
일 끝내고 돌아왔는데 주차 위반 딱지 붙어 있으면 어떡해?
일부러 여기 차를 주차하고 싶어서 주차한 것도 아닌데.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그럼 뭐가 중요합니까?”
경찰의 질문에 곧바로 되물었다.
“지금 딱지 떼이는 거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딱지 떼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입니까?”
“네, 정말입니다. 정 걱정되면 제가 여기에 서 있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죠.”
그가 차 앞에 서 있으면 다른 경찰들이 와서 위반 딱지를 붙이지도 않을 거다.
경찰은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힘없이 부탁을 해 왔다.
“그러니 어서 가서 이 문제 좀 해결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하하, 네. 알겠습니다.”
경찰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은 사람처럼 피곤하고 괴로워 보였다.
그럴 거다.
일개 경찰이 헌터 랭킹 47위에 올라 있는 놈의 난동을 어떻게 막겠는가?
원래라면 비슷한 랭킹의 헌터나 군대가 나서야 할 일이다.
그러지 않은 건 폭력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지연이 말했던 대로 말만으로 뭐라 뭐라 떠들어 댔겠지.
아마 지금쯤 협회는 골머리를 썩이고 있으리라.
“잠시, 길 좀….”
몰려든 사람들에게 걸어가 양해를 구하려는데,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내 줬다.
이쪽을 보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서다.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옮기자 그 옆 사람들도 자연히 밀려났다.
밀치지 말라고 따지려던 사람들도 나를 발견하고는 알아보고 자리를 비켜 줬다.
그렇게 순식간에 홍해가 갈라지듯 길이 생겨났다.
…편리한걸?
“음, 고맙습니다.”
부담스러움을 느끼며 그 길을 걸어갔다.
사람들 시선 속엔 이따금 방송국 카메라도 끼어 있었다.
나를 알아본 기자들이 카메라를 보며 뭐라 뭐라 떠들어 댔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드디어 백도운이 왔습니다!” 따위의 말을 내뱉고 있겠지.
난동 부리는 모습이 전국적으로 방송이 될 정도라니….
랭킹 47위 헌터답다.
사람들을 가로막고 있던 경찰 하나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다가오면 안 된다고 길을 막으려고 할 줄 알았더니,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경찰은 대뜸 내 이름을 불렀다.
“안녕하십니까, 백도운 씨. 저는 김홍대 경감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리 안녕한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하하, 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김홍대 경감은 짧게 웃으면서 동의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김무연을 바라본다.
녀석은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법 차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누가 보면 신중한 사람인 줄 알 것 같다.
뭐, 정말 신중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난동을 부려서 일을 크게 만들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운천에 연락을 드려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말만 계속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뭐, 정말로 연락이 닿지 않긴 했죠.”
“네? 아, 게이트에 계셨던 겁니까?”
아뇨, 특별 이벤트 장소에 있었습니다.
“네. 알게 되자마자 바로 온 겁니다.”
“이런, 서장님이 백운천에 이 일을 기억해 둘 거라고 하셨는데….”
“오해는 풀면 되죠. 태천이는 그런 거로 기분 나빠할 녀석이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역시 천공의 기사답군요.”
그 말대로다.
괜히 사람들에게 ‘기사’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자기를 욕하는 걸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대인 중의 대인이기에 경의를 받는 거다.
기사 앞에 붙은 ‘천공’이라는 단어는 자기가 멋대로 붙인 말이었지만.
무슨 뜻으로 붙인 거냐고 물어도 빙긋 웃기만 할 뿐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대장간 앞에서 유재이가 나를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앞에는 김지연과 심윤진이 버티고 서 있다.
그녀들은 경찰이랑 뭘 떠들고 있냐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어서 빨리 이쪽으로 오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 미안합니다. 지나가십시오.”
“네, 그럼.”
김홍대 경감을 지나쳐 유재이에게 걸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지나쳐 가는 내게로 모였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못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다가가자 김지연과 심윤진이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유재이는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랬지.”
“근데 왜 왔어?”
“내가 당신이 오지 말라면 오지 말아야 해?”
“뭐?”
“내가 갈 곳은 내가 정해.”
도희와 태천이조차 나를 막지 못한다.
유재이도 내 행동을 막을 수는 없다.
“어휴, 그게 지금 상황이랑 맞는 말이냐구.”
그리 말하면서 유재이는 한숨을 내쉰다.
옆에 서 있던 김지연과 심윤진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이제 세 사람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번져 있다.
설령 어이가 없어 웃은 거라고 해도 웃은 건 웃은 거다.
아까는 너무 못마땅하고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드디어 왔나.”
뒤에서 김무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녀석은 감았던 눈을 뜨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캐주얼한 차림에도 녀석의 몸은 탄탄한 근육이 돋보인다.
키는 한 180cm 좀 넘으려나?
“반갑다, 백도운.”
“그래? 넌 반갑냐? 나는 네가 하나도 안 반가운데.”
“…그래, 인정한다. 지금 우리의 만남이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니라는걸.”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눈을 찌푸리며 김지연을 쳐다봤다.
김지연은 내 시선을 느끼자 ‘당신 생각이 맞아요’라고 말해 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지금 김무연은 ‘차분한 사람’을 연기하고 있었다.
구경꾼들과 방송국 카메라까지 와서 촬영하고 있었으니 제 성질대로 행동할 수 없겠지.
아마 구경꾼과 방송국 카메라가 없을 땐 노발대발했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된 건 백도운 너 때문이다.”
“뭐래, 미친놈이. 지금 상황 파악 안 돼? 이 사달이 난 게 나 때문인 거 같아?”
그러면서 주변을 가리킨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아니라 김무연을 보고 있다.
내가 이번에 영상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고 해도, 그게 헌터 47위를 넘길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김무연은 그 시선들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귀한 물건이 자격도 없는 녀석에게 넘어간 것을 참을 수 없었을 뿐이다.”
“나한테 자격이 있건 없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많은 상관이 있지. 내가 유재이를 대장장이로서 인정하니까.”
그러면서 김무연은 유재이를 지그시 쳐다봤다.
그녀는 놈의 시선이 못마땅한지 눈을 찌푸렸다.
대장장이로서 인정?
지랄하네. 누가 봐도 여자를 보는 남자의 얼굴이면서.
유재이가 저놈의 시선에 눈을 찌푸리는 것도 절로 이해가 간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와, 저 여자 대단한 대장장이인가 봐”
“그렇겠지. 영상 속 무기 만든 사람이잖아?”
“능력을 인정받다니, 좋겠다….”
따위의 말들을 해 댔다.
대장장이로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여자로 보고 있는 것도 못 알아차린 거다.
다 눈이 옹이구멍으로 된 사람들뿐이군.
김무연이 두꺼운 오른손을 내밀었다.
“자, 그것을 내게 넘겨라. 진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
“…….”
“…염병하네.”
무슨 말을 지껄여 댈지 궁금해서 잠자코 지켜봐 줬더니.
아주 기가 살아서 들을 가치도 없는 말들을 막 해 댄다.
저놈은 무시하고 상황 정리부터 해야겠다.
그리 마음먹은 순간, 홀로그램 창이 떠올라 시선을 빼앗겼다.
[C등급 전대 세계수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퀘스트 내용 – 관리인 백도운은 현재 세계수 아이템 소유자의 자격을 의심받고 있습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세계수 관리인의 위엄’을 보여 다시는 헛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십시오.] [성공 보상 – 전대 세계수의 나뭇잎.] [실패 시 세계수 새싹의 실망을 받는다.]“응?”
뜬금없이 떠오른 퀘스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일로 퀘스트가 뜰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C등급 퀘스트라서 그런지 보상은 이미 한 번 받은 세계수 나뭇잎이다.
얻게 되면 홍수정을 찾아가야겠다.
힐링 포션이나 더 만들어 달라고 해야지.
“그것을 내놓고 싶지 않다면 너에게 자격이 있음을 보여라!”
내가 가만히 있자 내놓고 싶지 않아 버티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뒤에서 유재이가 한숨을 푹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한번 쥐어 보게 해 줘.”
“뭐?”
유재이의 입에서 예상치 못했던 말이 나왔다.
김지연과 심윤진도 놀랐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녀를 돌아봤다.
그녀는 싸늘한 시선으로 김무연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걸 쥐어 보면, 진짜 자격이 없는 쭉정이가 누구인지 알게 될 테니까. 사람들 다 보는 데서 창피나 느껴 보라 그래.”
“뭔 소리야?”
영문을 모르겠는 말에 질문했지만, 그녀는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일단 그녀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사람들 다 보는 데서 창피를 느끼게 될 거라는 말을 보면 그녀에게도 무슨 생각이 있는 걸 거다.
인벤토리에 있는 아르카를 꺼내기 위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따스한 손길을 쓰며 아르카를 호명했다.
그러자,
[세계수 새싹이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새싹이가 웃었다.
갑자기 불안하게 무슨 회심의 미소를….
그 순간, 인벤토리 설정에서 분출 속도를 새싹이에게 맡겼던 사실이 떠올랐다.
새싹이가 왜 웃는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연실색하며 검지를 쳐다본다.
“안 돼, 진정해. 새싹아!”
쾅!
내 바람과 달리 앞으로 내뻗은 검지에서는 굉음이 내뿜어졌다.
손바닥에서 굉음을 내고 튀어나온 아르카가 김무연에게로 날아갔다.
아니, 돌팔매질의 차원이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