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35
제537화
하늘의 해골은 들끓는 어둠으로 휩싸여 있었다.
지상을 가득 메운 수천 마리의 언데드도 마찬가지였는데, 들끓는 어둠은 그위친과 밀러의 공격을 무력화했다.
특히, 밀러의 모든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들끓는 어둠에 담긴 성질 때문인지, 밀러의 마법이 그것에 닿았을 때 모든 힘을 잃고 흩어져 버린 것이다.
그나마 정령 마법만이 들끓는 어둠을 뚫고 데미지를 주었지만, 그마저도 별 소용은 없었다.
스켈레톤, 구울, 리치, 흐뢰칼 등등….
A등급 수준에 해당하는 언데드들의 몸은 금방 수복됐고, 설령 큰 데미지를 입어 죽어도 곧 되살아나기 일쑤였다.
“그위친….”
언데드 군세의 전진을 한창 막아내던 밀러가 하늘에서 해골과 전투 중인 그위친을 올려다봤다.
지상에 있는 언데드 군세를 완전히 소탕할 방법은 그위친이 해골을 제압하거나 죽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정령으로 소환된 그위친은 밀러의 힘이 부족해서 전력을 낼 수 없었던 탓이다.
“크하하핫!”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해골이 들끓는 어둠을 이용한 공격을 그위친에게 감행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위친은 공격을 막아내면서 한창 싸우던 도중 웃어대는 해골을 미친놈 바라보듯 바라봤다.
“약하구나! 약해졌어, 그위친!”
“지금 전력을 낼 수 없을 뿐…. 약해진 건 아니다만.”
그위친은 여유롭게 대꾸했다.
그 모습을 해골은 가소롭게 여겼다.
“그걸 약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가?”
“모르겠느냐? 예전이었으면 네놈은 혼자서 나와 나의 군세를 막아냈을 것이다!”
“…그래. 내가 약해진 걸 수도 있겠지. 그런데,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게 네가 기뻐할 일인가?”
그위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심으로 어째서 해골이 기뻐하는 것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네놈이 강해진 것은 아니지 않나.”
“큭! 크큭…. 약해지니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그렇게라도 자위하고 싶은 거냐?”
“아니. 그저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만.”
“크크큭! 그래, 그래. 진실 타령이나 실컷 하거라! 그 사이 원이 유지성의 딸을 죽이고 열쇠를 빼앗아올 테니!”
“…….”
휙.
그위친이 고개를 뒤로 돌려 건물을 바라봤다.
유재이가 헤미스파이리움을 개조하던 작업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두 명의 백운천은 심하게 다쳐 전투를 이어나갈 수 없는 처지였고, 원은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가고 있었다.
“저런…. 도운이 화를 내겠는걸.”
그리 중얼거리는 그위친에게 해골이 비아냥거렸다.
“봐라! 진실이 무엇이든지 간에, 예전이었으면 네놈은 절대로 원이 지나가는 것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겠지.”
해골의 말이 옳았기에 그위친은 순순히 인정했다.
이곳에 소환되어 온 것이 아니었다면, 그위친은 원이 감히 자신을 지나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위친의 인정에 신이 난 해골이 계속 소리쳤다.
“그리고 이렇게 유지성의 딸이 죽는 꼴을 멀리서 두고 봐야만 하지도 않았으리라!”
이어 해골은 두 팔을 한껏 벌렸다.
몸에서부터 들끓는 어둠이 퍼져 나와 공간을 새카맣게 메웠다.
“자. 후회해라. 절망을 느껴라!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아니. 난 후회하지 않는다. 크라우드.”
“뭐라고?”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지 못하지 않았으니.”
“…미친 것이냐? 보거라! 방금 원이 유지성의 딸에게서 열쇠를 빼앗았다! 이제 저년이 죽을 일만-”
그 순간이었다.
승리감에 취해 소리쳐 대던 해골의 새카만 입이 멈췄다.
딱, 딱….
검은 턱뼈가 힘없이 떨렸다.
“말도… 말도 안 돼…!”
예상하지 못한 일을 마주한 사람이 느끼는 허탈감이 제멋대로 머리를 들이민 것이었다.
“후후….”
반면 그위친은 웃음을 흘렸다.
순식간에 변해버린 해골의 꼴이 우스웠던 탓도 있었지만, 그가 예상했던 일을 마주한 것이 즐겁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 작업실에서 새로이 느껴지는 마나가 가족을 만난 것처럼 편안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말이다! 어떻게, 어떻게 백도운이 벌써 이곳에 올 수 있다는 말이냐! 분명 제바달다의 심상 세계에 가둔 것을 확인했거늘!”
“정말로 이리될 줄 몰랐나?”
“뭐라고?”
“제바달다의 심상 세계는 분명 대단하지. 그러나, 이리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웃기는군! 네놈이 지금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냐!”
“물론이지.”
“……!”
“세계 속에 또 다른 세계를 가둔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위친…!”
빠드득!
해골이 새카만 이를 악물었다.
이어 거친 소리를 쏟아냈다.
“세계수 관리인이 왔다고 바로 기고만장하게 구는 것이냐? 네놈의 꼴이 진실로 우습구나!”
“그런 적 없다. 애초에 네놈 상대는 내가 아니었으니.”
“뭐라고…?”
해골이 반문하자 그위친은 눈을 찌푸렸다.
자신의 말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귀가 없어서 들리지 않는 거냐?”
“……?”
“이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이 울려대고 있는데…. 어떻게 듣지 못하는 거지?”
그리 말하면서 그위친은 검지로 뒤를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뒤를 돌아본 해골이 그제야 그위친이 한 말을 깨달았다.
우르르!
푸른 번개가 쏜살같이 날아오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푸른 번개 위에는 조각가의 역작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미남이 서 있었다.
“천공…!”
“그래. 그가 바로 네 상대다. 그리고 너의 잘못을 깨닫게 해줄 남자이기도 하지.”
“잘못?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냐?”
“기뻐했던 것.”
“뭐?”
“타인이 약해졌다고 기뻐해서 뭘 하지? 네가 강해진 게 아닌데.”
“……!”
“그렇게 타인이 불우하고 불행하기만을 열망하니, 너는 매번 패배하고 마는 거다.”
“그위친…. 그위친…! 그위치이인!”
해골이 그위친을 연신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위친은 해골을 신경 쓰지 않고 떨어지듯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언데드 군세를 홀로 막고 있던 밀러를 어깨에 들쳐메고 재빠르게 이탈했다.
“그위친? 잠깐만요. 어째서-”
“이곳에 있으면 휘말리게 돼.”
“네? 그게 무슨… 헉!”
당황하는 밀러의 질문에 그위친이 간략하게 설명했다.
휘말린다.
그 말의 뜻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한 밀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보게 되었다.
꿍! 꾸웅!
수천 마리의 언데드가 동시에 내리찍듯이 무릎을 꿇고, 이어 머리를 찧는 모습을.
심지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르르 쾅!
언데드의 군세 한가운데에 푸른 벼락이 떨어졌고, 벼락은 사방팔방 연결된 것처럼 퍼져 나갔다.
들끓는 어둠에서 보호받고 있던 언데드들은 다시 수복된 기미도 없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그 광경을 보고, 밀러가 허탈한 목소리로 그위친을 불렀다.
“그위친….”
“응?”
“예전부터 조금씩 생각했던 건데, 나 S급 헌터 내려놓을까 봐요….”
“후후. 정령을 소환하고 혼자서 수천 마리의 언데드를 상대한 대마법사가 할 소린 아닌 것 같은걸.”
“하지만 저렇게 한순간에 죽이지는 못했잖아요….”
“저건 네가 부족한 게 아니라 저 친구가 대단한 거란다.”
그위친은 하늘 위에 떠 있는 무기를 올려다봤다.
하늘을 뒤덮은 들끓는 어둠 속에서도 무기의 푸른 비늘은 그 빛을 잃지 않았다.
“이젠 저 이름도 바꿔야 할 것 같지만 말이야.”
“이름을요?”
“더는 이무기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
“……!”
밀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고는 푸른 번개를 두른 모습의 이무기를 자세히 살폈다.
얼핏 봤을 땐 몰랐던 그녀는 다시 보니 무기의 모습이 어쩐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변신 마법을 쓰고 있네요. 설마…?”
“아니. 용이 된 건 아니야. 절반은 용이고 절반은 이무기인 상태지.”
“아하. 그럼 변신 마법을 쓴 것은 세상에 혼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숨기려는 거겠네요.”
“으음….”
“이무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드래곤이 한 길드에 소속돼 있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되니까….”
밀러는 그위친의 추측에 수긍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추측을 덧붙였는데, 그건 완전히 틀린 추측이었다.
도운과 무기는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되다만 사건’이라고 불리는 일을 없었던 일로 덮어버릴 생각일 뿐이었다.
쾅!
그때,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회전하는 륜을 탄 원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소리였다.
동료인 해골도 쳐다보지 않고 곧장 날아가는 모습에서 밀러는 원이 도망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위친! 크라우드가 도망치고 있어요!”
“음. 그렇구나.”
그위친은 다급한 밀러와 달리 느긋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해골이 원을 따라 도망쳤다.
아주 잠깐 그위친을 노려보았는데, 그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고 그저 시선을 마주하기만 했다.
그위친의 그 모습이 분명 불만스러웠을 테지만, 해골은 남지 않았다.
원과 언데드 군세 없이 혼자 남는 것은 자살 행위였기 때문이다.
밀러가 점으로 멀어지는 크라우드를 가리켰다.
“아니, 왜 그렇게 여유로운 거예요? 어서 쫓아가야죠!”
“태천이와 무기로도 충분하단다.”
“속도야 그렇겠죠! 하지만 순간이동 마법이라도 쓰면 제가 필요할 거예요!”
“그렇겠지.”
“아이, 알면서 왜 그러는 거예요?”
“그럴 필요 없단다. 밀러. 이 세상에서 도운이 마음을 정했을 때 쫓을 수 없는 존재는 몇 없거든. 그 몇 없는 존재 중에선 아마 내가 가장 약할 테고.”
“……!”
밀러는 금세 그위친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쫓을 수 있는데도 쫓지 않는다.
그것은 도운이 크라우드를 보내 주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뜻이었다.
또 그위친이 가장 약할 거라는 몇 없는 존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 것이었다.
레드 드래곤과 그린 드래곤.
그들을 지칭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째서요? 미스 유를 건드렸으니 미스터 백이 봐줄 리가 없잖아요?”
“그 미스 유가 대담한 짓을 저질렀거든.”
“네? 대담한 짓이라니… 어?”
되묻던 밀러는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재 작업실에선 재이의 마나가 끊임없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마나의 흐름이 어째서 가능한 것인지, 밀러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미스 유가 하트 브레이크를 쓴 거예요?”
“맞아.”
“설마, 헤미스파이리움의 열쇠를 없애려고…?”
“그렇겠지.”
“바보 같은 짓을! 그런 것 때문에 목숨을… 아!”
그제야 밀러는 도운이 크라우드를 그냥 보내 준 이유를 깨달았다.
도운은….
“미스 유를 구하는 걸 선택했군요.”
“당연한 선택이지. 크라우드야 다음에 붙잡으면 그만인걸.”
“그위친 말이 맞아요. 그다음을 기약해야 한다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요….”
“아니.”
그위친이 밀러의 말을 부정했다.
그러고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밀러, 네 생각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은 거야.”
“네?”
“도운은… 지금 정말 화가 많이 났거든.”
“……!”
“아주, 아주 많이….”
그위친이 나지막한 말을, 밀러는 바로 수긍했다.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건드렸을 때 가장 화가 많이 나는 법이었다.
다만, 밀러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재 세상 사람들이 도운을 ‘광운’이라고 부르는 데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을.
그 현상이 뜻하는 진정한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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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운 미친 짓 벌이기까지 앞으로 6시간 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