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36
제538화
엘릭서를 먹인 후 유재이를 의무실로 데리고 왔다.
그녀는 괜찮다면서 쉬지 않으려고 했지만, 도희가 데리고 온 홍수정의 강압으로 침대 위에 얌전히 있게 되었다.
사각, 사각….
홍수정이 과도로 초록빛의 사과를 깎는다.
“…….”
“…….”
“…….”
현재 의무실엔 한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는 인원이 있었다.
그런데도 사과 깎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홍수정에게서 풍기는 싸늘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크라우드를 그냥 보내준 사실에 대해 따지려고 안지민과 함께 날 찾아온 배수현 국장조차 홍수정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었다.
그때, 새로운 손님이 찾아왔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앨릭스 협회장이었다.
그는 배수현과 안지민과 달리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고, 그래서 날 보자마자 따져댔다.
“도운! 자네 정말로 크라우드를 그냥 돌려보냈나?”
“네. 그랬는데요.”
“아니…. 대체 왜 그랬나? 자네라면 놈들을 충분히 붙잡을 수 있었을 텐데…!”
“뭐, 그랬겠죠?”
“그랬겠죠, 라니…. 응?”
앨릭스 협회장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제야 의무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거였다.
하여간 누가 세계 헌터 협회장 아니랄까 봐.
분위기를 파악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 같다.
“혹시 무슨 일 있었나?”
“놀랍네요. 설마 세계 헌터 협회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눈뜬장님이었을 줄은 몰랐어요.”
도희가 비아냥거렸다.
앨릭스 협회장이 당황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자, 도희는 퉁명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오라버니가 왜 의무실에 있겠어요?”
“아…?”
“재이 언니가 위험했어요.”
“……!”
“언니를 구하려고 크라우드를 보내준 거고요. 설마, 언니가 죽든 말든 크라우드를 잡았어야 했다는 건 아니죠?”
“아니! 아니. 오해네. 난 그런 상황인지 몰랐어. 정말 미안하네.”
앨릭스 협회장이 바로 사과를 전해왔다.
보고를 들을 거면 잘 좀 듣지….
아무래도 그는 내가 크라우드를 순순히 돌려보내 줬다는 말만 듣고 당장 찾아온 것 같다.
그가 사뭇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재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재이 양. 몸은 좀 괜찮나?”
“네. 괜찮아요.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아, 그렇-”
푹!
앨릭스 협회장의 말을 끊어내듯이 홍수정이 과도로 사과를 찍는다.
그 살벌한 소리에 자연스럽게 의무실에 모인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헷갈렸네.”
푹.
홍수정은 사과 조각을 찍은 과도를 빼내고는 포크로 새로 찍은 후 재이에게 건넸다.
“괜찮아?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아. 그게 그러니까….”
“하트 브레이크를 써놓고선?”
“으응….”
오물오물….
재이는 변명하는 대신 홍수정에게 건네받은 사과를 조용히 받아먹었다.
지금 홍수정에게서는 앨릭스 협회장조차 입을 다물게 하는 위압감이 풍기고 있었다.
잘한다, 홍수정.
재이 쟤는 더 혼나야 돼.
[세계수가 관리인에게로 향하는 홍수정의 시선을 느꼈습니다.]엇?
“도운 씨.”
“…네?”
“우리 재이를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푹.
홍수정은 내게 고맙다면서 사과를 찍은 포크를 건넸다.
“별말씀을 다 하네요. 당연히-”
“근데 늦었다며.”
“아…. 그게….”
“늦어?”
“…….”
오물오물….
나도 재이처럼 변명하는 것을 그만두고 홍수정이 건넨 사과를 받아먹었다.
쩝. 늦고 싶어서 늦은 건 아니었는데….
“흠, 흠….”
앨릭스 협회장이 조심스럽게 헛기침을 했다.
홱!
홍수정이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 강렬한 눈빛에 그는 더듬더듬 말했다.
“그러니까… 도운에게 전달해야 할 사항들이 있어서, 말이오. 아시다시피 오늘 참 많은 일이 있었지 않소…?”
놀라워라.
홍수정의 눈빛이 살벌하긴 한가 보다.
앨릭스 협회장의 태도가 그답지 않게 퍽 정중했다.
푹!
홍수정이 재이가 쥔 포크를 빼앗고는 새 사과 조각을 찍고 다시 돌려주었다.
“하세요.”
“음, 음. 양해해줘서 고맙소….”
그리 말한 후 앨릭스 협회장을 나를 바라봤다.
그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사항은 오늘 백운천 녀석들이 제압한 크라우드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 놈들을 이곳으로 이송 중이네.”
“이곳으로요?”
“자네는 놈들 몸속에 있는 마족의 힘을 흡수할 수 있다면서? 한곳에 모아두면 자네가 편할 거라고 생각했지.”
“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센스였다.
마족 권속의 권속….
제대로 된 마족 권속이 아니라서 흡수할 수 있는 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머릿수가 제법 되지 않나.
새싹이의 나뭇잎과 흙 등을 합치면 A등급 비료 정도는 제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놈들 처분은 정해졌습니까?”
“음? 일단 능력자용 교도소에 처박을 생각이네만.”
“흠….”
“왜 그러나?”
“교도소에 처박힌다고 놈들이 후회할 것 같지 않아서요.”
“뭐, 그야….”
앨릭스 협회장이 내 말에 떨떠름하게 긍정했다.
여러 범죄자란 놈들이 모인 교도소.
그곳에 처박힌다고 과연 마족 권속이었던 놈들이 후회할까?
글쎄.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자신을 붙잡은 우리 백운천을 원망하는 마음이 더 클 거다.
힘을 빼앗긴 것을 더 안타까워할 테고.
그런 썩어빠진 정신 상태를 가진 놈들이었으니까.
“좀 아깝기도 하고요.”
“아깝다니. 뭐가 말인가?”
“놈들을 발전기처럼 만들 수 있는데 그냥 처박는 게 아깝잖아요.”
“음? 발전기라고?”
“힐링 포션 재료를 무한히 자라나게 하는 발전기요.”
“……!”
앨릭스 협회장이 눈을 부릅떴다.
역시….
그라면 이 말에 솔깃해할 줄 알았다.
당연히,
“잠깐만요.”
배수현이라면 딴지를 걸어올 거라고도 생각했다.
“굉장히 비도의적이고 불법적인 일일 것 같은데요. 백도운 헌터.”
“그렇기는 하죠.”
“심지어 인권까지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일일 것 같고요.”
“그건 아니고.”
“아니라고요?”
“영혼을 팔아 마족의 권속이 된 놈들이에요. 그 힘에 취해 테러를 저질렀고. 몬스터가 된 놈들이나 마찬가진데 인권은 무슨 인권?”
심지어 마족 권속의 목적은 세상을 전복하는 거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인류를 멸망시키려 했던 블랙 드래곤보다 더 끔찍한 짓을 저지르려는 것이다.
그 목적에 동의하고 명령을 따른 놈들의 인권 따위, 난 지켜줄 생각이 아주 조금도 없었다.
“오해하지 마시죠.”
“……?”
“저도 놈들의 최후가 비참해져야 한다는 데엔 동의합니다.”
“어라?”
“제가 걱정하는 건 이 일이 알려졌을 경우입니다. 분명히 인권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아. 난 또….”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는군.
주변을 돌아보며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얘기 다른 데 가서 떠들 사람 있어요?”
“…….”
“…….”
잠시 침묵이 흐른다.
다른 데에서 떠들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의무실에 태천이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마 태천이는 가만히 있는 도희나 한재임과 달리 반대표를 던졌을 거다.
놈들의 인권 때문이 아니라, 내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 자체가 싫다는 이유로 말이다.
“됐죠?”
“한 가지만 더요.”
“……?”
“조사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협박당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좋아요.”
있겠냐?
그리 비꼬는 대신 동의했다.
돌이켜 보면, 별생각 없이 크라우드가 됐었던 멍청이가 하나 있었다.
그런 바보가 또 하나쯤 없으리란 법도 없지….
“이 얘긴 나중에 다시 상세히 하기로하고. 도운. 대체 제바달다 선사의 무덤에 있는 그건 뭔가?”
“무덤에 있는, 그거요…?”
“법복 입은 채로 참선하는 스켈레톤 말이네.”
“아.”
제바달다 말하는 거군.
누가 스님 아니랄까 봐.
그 와중에 참선하고 있었네.
하긴, 그 꼴이면 다른 데 돌아다닐 수도 없었겠지만….
“설마 퇴치한 건 아니죠?”
“무덤 인근을 통째로 격리했네. 법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참선하고 있어서 그런가…. 왠지 성스러운 느낌이 들어 건드릴 마음이 들지 않았다더군. 그리고….”
슥.
앨릭스 협회장이 내 머리 위를 바라봤다.
시선이 위로 향하는 이유는 분명….
“자네처럼 머리 위에 새싹이 자라나 있기도 했고 말이네.”
“아항.”
“도대체 그 스켈레톤은 뭔가?”
“제바달다요.”
“음? 갑자기 그분 이름이 왜 나오나?”
“그 스켈레톤이 제바달다라고요. 23년 전에 죽었던 생불이요.”
“…….”
앨릭스 협회장이 멀거니 나를 바라본다.
이놈이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지?
그렇게 따져 묻고 싶은 얼굴이다.
하지만 그게 진실인 것을 어쩌겠나.
난 그곳에서 내가 겪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끔찍하기 그지없군…. 제자가 스승을 죽인 것도 모자라 그 시체를 네크로맨서에게 넘겨 언데드로 만들어 버렸다? 하!”
설명을 듣고 난 앨릭스 협회장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스켈레톤이 정말 제바달다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진절머리가 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대개 비슷했는데, 그럴 만했다.
상식적인 선에서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으니까.
듣기만 해도 비위가 상하고 기가 차는 일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당황했었지 않나.
힐끔….
앨릭스 협회장이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 일을 종단엔 뭐라고 설명한다.?”
“하하. 그건 알아서 하셔야죠.”
“끄응….”
이 양반이 어딜 날 끼워 넣으려고.
내가 그런 귀찮은 짓에 휘말릴 것 같나?
뭣보다, 난 오늘 밤부터 아주 바빠질 예정이었다.
저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그때, 앨릭스 협회장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리고 자네가 생포했던 버섯 말이네.”
“그놈이 왜요?”
“죽었네. 형체도 없이.”
“……?”
버섯이 죽었다고?
갑자기 왜?
내가 눈을 찌푸리자 앨릭스 협회장이 상황을 설명했다.
“남은 거라곤 까만 잿더미뿐이었지.”
“잿더미만 남았다고요?”
“그렇다네. 아마, 마족 권속인 버섯이 억지로 세계수의 뿌리를 풀어내려다가 정화돼버린 것이 아닌가 싶네만….”
“설마, 그렇게까지 멍청할까요.”
“그게 아니면 놈에게 당한 이들의 머리에 자라났던 버섯들이 죽은 게 설명이 되지 않네.”
그러고 보니 그런 일이 있었지.
재이를 걱정하느라 깜빡했다.
그런데….
“머리에 자란 버섯들이 죽었다고요?”
“한꺼번에 죽어서 머리에서 떨어져 나왔지.”
“얼씨구….”
버섯 그놈이 정말로 죽은 건가?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다고?
솔직히 믿을 수가 없는걸….
“장소의 기억을 읽으면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불가능해요, 오라버니. 룸비니 지역은 성지라서 그런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거든요.”
“아, 그래? 그건 몰랐네. 괜히 성지가 아니구만.”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애초에 종단이 그걸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하긴….”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제바달다의 일도 20년 넘게 숨겨온 집단이다.
어떤 비밀이 밝혀질 줄 알고 성지의 기억을 읽도록 허락해주겠는가?
“흠….”
이어 앨릭스 협회장이 곤란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
뭔가 말하기 어려운 걸 말하려는 사람 같다.
그래도 말할 사람이기에 그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도운. 자넬 향한 여론이 별로 좋지 않을 거네.”
“……?”
“크라우드를 열 받게 해놓고 그동안 가만히 있지 않았나.”
“아.”
“아마도 세상은 오늘 벌어진 일이 다 자네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떠들어대겠지.”
그의 말대로 그럴 가능성이 컸다.
크라우드 놈들이 일을 벌일 때 내 탓을 했으니 더더욱.
그러거나 말거나.
“…괜찮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죠.”
“음?”
“그런 말들은 금방 사라질 테니까.”
“금방 사라질 거라고? 그걸 자네가 어떻게 아나?”
“글쎄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까나?
***
백도운 미친 짓 벌이기까지 앞으로 3시간 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