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51
제553화
“…….”
푸른 빛줄기를 토해내던 세계수 꽃들의 소환을 풀었다.
목적을 이룬 열 송이의 푸른 꽃들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세계수가 아바돈에게서 혐오스러운 기운이 완전히 소실(消失)됐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어 아바돈을 계속 관찰합니다.]새싹이가 보낸 메시지를 읽으면서 놈을 올려다봤다.
아바돈은 여전히 하늘에 있었으나 스스로 날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나간 자리에 풀을 자라나게 하는 솔라빔의 효과로 인해 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솔라빔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놈의 온몸에서 온갖 풀들이 자라나 지상까지 이어졌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세계수가 관찰 중입니다.]새싹이는 관찰을 이어나갔다.
조금 전 아바돈이 솔라빔을 얻어맞으면서 했던 ‘최후의 발악’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저 솔라빔을 버티려고 그랬나 보기엔 기운을 마구 발산했던 이유가 납득 되지 않는다.
『…….』
또르르….
아바돈이 눈동자를 굴려 자기 몸을 내려다본다.
솔직히 저 꼴이 되고서도 아직 현현이 풀리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다.
이제 그만 돌아가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돌아가게 된다고 아쉬울 사람도 없고.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바돈이 중얼거렸다.
『역시, 이 머저리 같은 놈의 ‘육신’으로는 무리였나….』
“당연하지.”
『당연하다고…?』
“그래. 원과 해골은 글러 먹은 놈들이었거든. 뭐, 그런 놈들이니까 너 따위를 숭배했던 거겠지만.”
『크, 흐흐….』
아바돈이 신음 같은 웃음을 흘렸다.
어쩐지 놈의 웃음에서 내 말을 향한 공감이 느껴졌다.
『인정하는 바다…. 여도 원래는 ‘펜데오’의 육신에 현현하고 싶었지.』
“…….”
펜데오.
아바돈과 처음 조우한 네크로맨서다.
그러고 보니, 아바돈은 왜 그자에게 현현하지 않았을까?
역시 해골과 원과 똑같은 놈들이라 제 몸을 내주지 않았던 것이려나….
그때, 아바돈의 입에서 내 생각과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펜데오는 자꾸 선을 넘으려고 들었지….』
“선?”
『그래. 감히 여를 지배하려고 했었거든.』
“……!”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아바돈을 지배하려고 했었다니….
그 행동 하나는 마음에 드는걸?
그저 숭배하려고만 했던 권속들과는 확실히 다르네.
『그래서 죽였다.』
“당연히 그러셨겠지….”
전대 세계수까지 죽인 아바돈이다.
자신을 지배하려고 드는 인간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설령 이 세상의 존재를 알린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그게 여의 오랜 실수였지.』
“실수였다고?”
『펜데오를 죽이는데, 놈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다른 네크로맨서를 이용했거든.』
“다른 네크로맨서…. 어째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그 네크로맨서가 해골의 먼 스승일 것 같은데?”
『정답이다. 세계수 관리인.』
아바돈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과연….
해골의 먼 스승은 해골 같은 자였던 거다.
‘오랜 실수’라고까지 표현하는 게 절로 이해가 가는군.
나 같아도 두고두고 안타까울 터였다.
펜데오를 죽이고 해골 같은 놈을 골랐다면 말이다.
『음…. 시간이 다 된듯하군.』
아바돈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현현이 풀리는 건가?
그리 생각했을 때, 아바돈이 손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응축된 들끓는 어둠이 놓인 손이.
『세계수 관리인. 여가 이 얘기를 왜 해주었을 것 같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실수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거다.』
“……?”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법이었다.
물론, 엎지른 물을 치우고 다시 채워버릴 수는 있겠지만.
…아?
설마, 이놈의 목적은-
『지금 이곳에 그 펜데오보다 더 훌륭한 자원(資源)이 있지 않나!』
내 생각을 끊어내려는 듯이 아바돈이 소리쳤다.
그 순간, 땅이 사라졌다.
나와 태천이의 발밑에 있는 것이라고는 온통 새카만 암흑뿐이었다.
[세계수가 ‘무저갱(無低坑)’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뭇가지를 부르르 떱니다!] [다행히 무저갱은 입구가 열리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그 원인을 아바돈의 기운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추측합니다.]아. 역시….
이 온통 새카만 것은 아바돈이 태어났다던 무저갱의 입구였다.
최후의 발악으로 뭘 하려고 하나 했더니….
아바돈은 태천이를 권속으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태천이의 의사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강제로 말이다.
『여는 이번에야말로 그 힘을 손에 넣겠다! 문지기!』
아바돈이 소리침과 동시에 무저갱의 입구에서 들끓는 어둠이 새어 나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태천이를 향해 뻗어 나갔다.
무저갱의 입구를 내려다보고 있던 태천이는 반응이 살짝 늦었다.
새싹이가 가르쳐줘서 알게 된 나와 달리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탓이다.
내 실수였다.
바닥에 깔린 것이 무엇인지 바로 가르쳐줬어야 했건만….
그렇게 실수를 자책하고 있을 때,
「기다리고 있었다. 아바돈.」
무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 쾅!
영역이 폭발한 이후로 존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우리 무기가 그야말로 벼락처럼 떨어져 태천이를 감쌌다.
정확한 타이밍에 날아와 태천이를 보호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무기는 아바돈의 이 노림수를 예상했던 것 같다.
태천이의 허리를 휘감은 무기는 그 상태로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우르르!
푸른 번개를 세차게 뿌려대면서.
그 모습을,
『…….』
“…….”
아바돈과 내가 멍하니 바라봤다.
둘 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렸기 때문이었다.
방금 아바돈은 닭 쫓다가 지붕을 쳐다보게 된 개 꼴이 되었다.
하지만 그 꼴이 나에 비하면 좋은 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무기야? 나도 지금 무저갱 입구에 서 있는데….”
무기가 날 데리고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저갱의 입구 위에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홀로 서 있게 된 것이었다.
그때였다.
『…….』
아바돈이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그 시선에 담긴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황당하디 황당한 생각….
“야. 그게 되겠냐?”
『…….』
아바돈이 눈을 질끈 감았다.
당연히 통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무기의 난입으로 인해서 태천이를 강제로 권속으로 삼는다는 놈의 발악은 아무런 의미 없이 끝나버렸다.
쿠구우….
곧 무저갱의 입구가 사라지고, 발을 디디고 있던 땅으로 되돌아왔다.
그위친의 숲에서처럼 구덩이가 생기지 않은 건, 아마 입구가 완전히 열리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아바돈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이것으로….』
“응?”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세계수 관리인.』
“오.”
『여는 다시 돌아온다…. 그때 반드시 관리인을 죽이고 문지기의 힘도 갖겠다. 물론, 그때 가장 먼저 여가 죽이는 것은 저 전기 뱀장어가 되겠지….』
“그래. 삼류 악당처럼 결연하게 다짐하는 모습, 보기 아주 좋네. 근데 그럴 방법은 있고?”
『…….』
내 질문에 아바돈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오롯이 현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자신도 잘 아는 것이다.
원은 이미 현현했고, 해골은 내게 제압당했다.
A+등급 이상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가 진화하기를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게이트야 관리하면 그만이었다.
설령 게이트 관리에 실패해 현현하게 된다고 해도 의미는 없었다.
데이모스나 알루키노르 정도면 또 모를까.
A+등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 따위에 현현하면 오늘처럼 나한테 된통 당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될 뿐이다.
그렇기에 나를 노려보는 것만이 놈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나와 달리.
『……!』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톡, 톡톡….
화면을 두드리자 아바돈이 눈을 부릅떴다.
놈에게서 모욕감을 느낀 사람의 분노가 느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톡톡 톡톡톡!
더 잘 보이게 화면을 두드렸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세계수 관리인…!』
“나 부르지 말고, 이제 그만… 어라?”
『…….』
날 부르던 아바돈이 우뚝 멈췄다.
분노가 활활 타오르던 두 눈도 빛을 잃었다.
현현이 풀린 것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분노를 토해내다가 돌아가게 된 것은 제 의지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을 거다.
파삭! 파사삭….
그런 내 예상을 증명하듯 아바돈의 몸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아바돈을 현현한 원의 몸이 스러져 내린 거다.
역시나.
갑자기 현현이 풀린 건 원의 몸이 더는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아까워라….”
“응? 뭐가?”
무기와 함께 내려온 태천이가 질문을 던졌다.
슥.
턱짓으로 가루가 되어 흩날려 가는 원을 가리켰다.
“저거.”
“아…. 역시 저 상태로는 비료를 만들지 못하겠지?”
“뭔 소리야? 갑자기 비료가 왜 나와?”
“얼레? 비료 못 만들어서 아깝다고 하는 거 아니었어?”
“아닌데. 난 제바달다한테 원을 선물로 줄 수 없게 돼서 아깝다고 한 거야.”
“아. 그렇구나. 그거 정말 아깝네.”
태천이 대충 대꾸했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내 말을 대강 넘긴 거다.
저런 저런….
지금 나한테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란 걸 인지하지 못한 것 같군.
그렇다면 몸으로 직접 느껴야겠지.
도희한테 미주알고주알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해버릴 테다.
태천이의 처분을 정한 후 무기를 응시했다.
그런데 무기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태천이만 데리고 간 것에 미안함을 느낄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은 거다.
심지어 무기는 평소처럼 인사까지 건넸다.
「수고했다. 관리인.」
“뭐지? 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태도는?”
「음?」
“와…. 너 정말 뻔뻔하구나?”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가. 관리인.」
“모르는 척하지 마! 너 아까 왜 태천이만 데리고 갔잖아!”
「아. 그것 말인가.」
“아? 그거?”
무기의 태도는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어떻게 나만 빼고 가놓고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구는 거지?
무기가 몸을 구불거리며 말했다.
「관리인도 알고 있겠지만, 아바돈이 무저갱의 입구를 소환한 것은 문지기를 사로잡아 권속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나도 알아. 태천이를 구한 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고. 근데 나는?”
「음?」
“나는 왜 안 데려갔냐고.”
「말의 요지를 모르겠군. 왜 관리인을 함께 데려가야 하지? 아바돈이 감히 권속으로 삼을 수 없는데.」
“…….”
정론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아바돈도 순순히 포기했었지 않나.
하지만….
“대신 내 마음이 다치잖아. 혼자 남게 된 내 마음이!”
「…….」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아바돈이랑 서로 마주 보는데 내가 얼마나 민망했는지 알아?”
「음…. 그랬군. 그거 정말 민망했겠어.」
무기가 조금 전의 태천이처럼 대충 대꾸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너무하는구만.
둘 다 소소하게 복수해주겠어….
먼저 태천이부터 해줘야지.
왜냐하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흰빛이 발산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태천아.”
“응?”
“네가 가르강튀아로 하려던 짓 도희한테 다 이를 거야.”
“뭐? 야. 그건 아니지. 그 일은 우리만의 비밀이어야지!”
“우리만의 비밀이라니. 너 지금 도희를 속이겠다는 거야? 나한테 거짓말을 시키는 거?”
“거짓말을 시킨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냥 말을 하지 말라는 것뿐이지!”
“아. 그렇구나.”
누가 내 친구 아니랄까 봐.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을 그대로 써먹는군.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 태천아.
“어머나.”
“……!”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멀지 않은 숲속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이내 도희의 흰 얼굴로 나타났다.
희고 예쁜 우리 도희의 얼굴을 보자마자 태천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기분 탓인가?
아바돈이 무저갱의 입구를 소환했을 때보다 더 놀란 것 같은데.
뭐, 이해 못 할 바도 아니긴 하지만.
“오라버니들 사이에서는 말을 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었군요?”
…어라?
잠깐만.
오라버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