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누구시지?”
수겸을 따라 1층으로 내려온 최영지가 밖에 서서 수겸을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를 보며 궁금해했다.
“그러게요. 저도 모르겠네요.”
조태규도 모르기는 매한가지.
“최철민 팀장이네요.”
정답은 동철이었다.
“그게 누구입니까?”
“예전에 사장님과 함께 중국에 갔던 국정원 직원.”
이은호의 질문에 대한 동철의 대답이었다.
“아아. 그렇구나.”
모두가 궁금증을 해결하던 때에 수겸은 최철민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팀장님이 직접 오셨네요?”
“그럼요. 누구 일인데 제가 직접 챙겨야지요.”
최철민의 수겸의 손을 양손으로 덥석 잡으며 말했다.
“하하. 이거 왜 이러십니까.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커피는 없어도 음료는 있어요.”
“저야 좋지요.”
최철민이 수겸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오는데 그때 멀찍이 주차되어 있던 밴에서 검은 정장의 사내가 급히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사내의 손에는 흰색보다는 은색에 가까운 빛이 나는 가방이 쥐어져 있었는데 겉보기엔 충격 흡수를 완벽하게 해낼 것 같이 탄탄한 재질이었다.
“팀장님, 여깄습니다.”
사내가 최철민에게 가방을 건네며 말했다.
“응. 너희는 사무실로 바로 복귀하도록 해. 난 조금 있다가 따로 갈 테니까.”
최철민은 수겸을 쳐다보던 눈빛과는 완전히 다른 냉철한 느낌으로 부하 직원을 대했다.
“예, 그럼.”
고개를 꾸벅 숙이고 뒤돌아 가는 부하 직원을 뒤로한 채 최철민은 수겸이 안내한 자리로 향했다.
“이게 그거인가요?”
수겸은 최철민이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듯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거 맞습니다. 미국에서 보내준 것들입니다.”
수겸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공항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 조건, 잊지 않았겠죠?”
“수겸! 우리를 의심하지 마라. 약속한 건 지킨다.”
찰리가 가슴을 탕탕 쳤다.
“찰리 말이 맞습니다. 계약한 건 당연히 지키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데이비드 역시 수겸의 눈을 응시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자신감을 넘어서 미국에 대한 자부심까지 묘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근데 이게 제가 계약 조건을 너무 두루뭉술하게 한 것 같단 말이죠? 그냥 100년 묵은 산삼 이렇게 적었어야 했는데, 그냥 고품질의 약초라고 해버려서 찝찝해서 그러죠.”
“그 부분은 제가 책임지고 챙기겠습니다. 너무 염려 마세요.”
“그리고 지금 우리는 수겸이 만든 시약이 필요해. 잘 보여야 하는 건 우리.”
찰리의 어눌한 한국말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맞네. 성에 안 차면 다시 가져다 달라고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하하. 가능하면 찰리나 제가 직접 가려고 노력하겠지만, 상황에 따라 물건만 갈 수도 있을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꼭 제가 한국에 다시 들어가겠다고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될지 모르겠네요.”
“저도 그런 기회에라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때가 아니라도 다시 꼭 본다. 행운을 빌어, 수겸.”
찰리가 수겸과 손을 맞잡고 어깨를 부딪쳐 사나이들의 인사를 나눴다.
‘결국 물건만 왔구나. 아쉽네.’
“엇. 제가 지금 수겸 씨 얼굴을 보니까 알겠는데요? 지금 뭔가 섭섭한 게 있으신 거죠? 혹시 제가 와서 마땅치 않은 건가요?”
귀신같은 최철민의 예측에 수겸은 뜨끔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절대로. 제가 얼마나 기다리던 물건인데요. 타이밍도 어찌나 절묘한지.”
“그러면 한 번 열어보시겠어요? 사실 저도 안에 든 내용물이 엄청 궁금하던 차였거든요.”
최철민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수겸은 기다렸다는 듯 가방을 자기 쪽으로 돌려 비밀번호를 돌리기 시작했다.
사전에 데이비드에게서 전달받은 번호였다.
‘이러니 아직 팀장님도 내용물을 못 봤겠지.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국정원을 그냥 우편배달부 취급을 한 셈이네.’
수겸은 건방지다는 생각을 하며 번호를 맞췄다.
철컥―
가방 내부에서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자 수겸은 서서히 가방 한쪽을 들어 올렸다.
가운데에는 흡사 커다란 알약처럼 생긴 세로로 기다란 원통이 두 개 있었는데 그 안에는 아마도 약초가 자란 곳의 흙일 것으로 추정되는 흙이 있었고, 그 위엔 이끼들이 깔려 있었다.
‘이건 아마도 습도 때문이겠지.’
첫 번째 통 안의 흙에 심어진 건 붉은 색이 인상적인 버섯이었다.
“이게 붉은갓광대버섯인가 보네요.”
“어? 이걸 아세요?”
“미국에서 보내올 때 텍스트로는 정보를 주었거든요. 정보만 주고 열어보는 건 금지했죠. 치사한 새끼들.”
최철민의 감정이 잔뜩 실린 목소리는 한 귀로 흘리며 수겸은 광대버섯을 자세히 살폈다.
‘마나 양은 극상이 맞아.’
“근데 약초 종류로 요청한 것 아닙니까? 이건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독버섯이라고 하던데요?”
“아아. 그건 괜찮다고 제가 이야기했어요. 독초와 약초는 한 끝 차이거든요. 버섯 종류도 마찬가지구요. 저한테 중요한 건 얼마나 자연 속에서 좋은 기운을 많이 품으며 자랐냐 라서요.”
“그러면 괜찮긴 하겠네요. 저도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 버섯이 일본에서 발견된 독버섯 중에는 제일 크기도 크고, 추측하기론 제일 오래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좋네요.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수겸은 버섯이 담긴 원통을 완충제 사이에서 빼내 손에 꼭 쥐었다.
“나머지 하나도 보시죠.”
다른 하나의 원통 안에는 줄기 끝에 새하얀 꽃이 소담스레 피어나 있었다.
“일단 보기에 예쁘네요. 이 버섯, 보다 보니까 비교되기도 해서 그런가, 되게 이쁘네.”
수겸의 말대로 광대버섯이 원산지가 지옥인 것마냥 새빨간, 아니 시뻘건 색이라면 이건 거꾸로 천사들이 한아름 품에 안고 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모양새였다.
“이 꽃의 이름은 두갈래흰나비꽃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뭔가 와닿지 않아서 찾아보니까 영어를 번역해서 그렇더라구요.”
“무슨 전래동화라도 있을 것 같은 이름이네요.”
“뭐, 비슷합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이 붙인 이름인데 양쪽으로 갈라진 두 갈래 길에 팔랑이며 날아다니는 흰 나비가 있더랍니다. 근데 다시 보니 그게 바람에 날리는 이 꽃이었다고 하네요.”
“아까 버섯을 볼 때는 왜 이런 썰 안 푸셨습니까? 너무 분위기가 다른 느낌인데요.”
“하하. 요새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꽃에 마음이 가네요. 그리고 광대버섯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건 맞지요.”
하여튼 수겸은 광대버섯과 흰나비꽃을 확인하고는 다시 가방에 잘 수납했다.
“직접 전달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겸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닙니다. 이럴 때라도 봐야 수겸 씨가 제 얼굴을 안 잊지요.”
“하하. 제가 어떻게 팀장님을 잊겠어요? 근데 너희는 언제부터 거기 뒤에 서 있었니?”
수겸이 문득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최영지와 이은호가 뒤에 서서 수겸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겸이 가방 속 내용물을 보는 동안 조태규와 동철은 올라가 버린 상황.
둘은 재밌는 구경거리라며 계속 훔쳐보고 있다가 걸린 것이었다.
“하핫. 너무 궁금해서요. 저희 사장님이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저… 팀장님이 찾아오는 거라고 하셨거든요.”
최영지가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는지 호칭만으로 최철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저는 최철민이라고 합니다. 절 기다렸다고 하시니 괜히 기분 좋은데요?”
최철민이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좀 전에 가방을 전해준 부하 직원이 보면 기가 찰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저는 최영지라고 하고, 여기는 이은호 오빠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야, 난 내가 소개해야지. 이은호라고 합니다.”
“네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어라? 저희 이야기를요?”
“그럼요. 중국에 갔을 때 방에서 뭘 했겠어요?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여러분 이야기도 하시더군요. 너무 믿음직스러워서 자기가 혼자 이렇게 나올 수 있었다고.”
“아이참. 팀장님 그만하시죠.”
“사장님! 뭐에요. 이거 은근 감동인데?”
“야, 됐어. 이제 일하러 올라가.”
수겸이 괜히 버럭 화를 내며 최영지를 다그쳤다.
“두 분이랑 수겸 씨 모습을 보니까 왠지 편안한 기분이 들어요. 저도 그냥 지금 회사 그만두고 여기 취업이나 할까요?”
“도대체 무슨 소리이십니까?”
천하의 국정원을 그만둔다니 수겸은 어이가 없어서 더 할 말도 없었다.
‘아닌가? 이제 우리 아르케가 더 이름값이 있나?’
수겸은 갑자기 든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쓸데없는 생각은 여기까지.
수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최철민도 타이밍을 맞춰 함께 일어나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럼 팀장님. 오늘은 조심히 가시고, 나중에 저희 같이 밥이나 해요.”
“좋아요. 그때는 수겸 씨가 밥 사는 겁니다?”
“물론이죠. 오늘 감사했습니다!”
수겸은 떠나가는 최철민을 한 번 보고는 닫아둔 가방을 쓰다듬었다.
‘이제 시작할 수 있겠어.’
* * *
끼이익― 철컥.
물건이든 집이든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면 낡아가는 건 똑같은 듯했다.
수겸이 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나온 이래로 줄곧 비워진 채 방치된 집의 현관문을 열자 경첩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케켁. 어우 먼지! 이래서 집주인이 바로 알겠다고 했나?”
“당연하지, 미친놈아.”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수겸을 외계인 보듯 민환이 쳐다봤다.
“이게 웬 궁상이야. 아니, 네가 집이 없어? 작업실이 없어? 근데 왜 굳이 집주인한테 부탁까지 해 가며 여길 들어온다고 한 거야?”
민환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처음 연금술을 했거든. 처음 스크롤을 만들 때, 금 연성 한 번 해보겠다고 난리 부르스를 춘 것도 이 집이었어.”
수겸이 아련한 눈빛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래서 뭐라도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여길 꼭 다시 한번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지.”
“네가 감성에 취한 덕분에 이제 몸이 고생할 거다. 여기 청소를 언제 다 해!”
터억.
민환이 손에 들고 있던 커다란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자 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대충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 계속 살 것도 아니잖아. 빨리 끝나면 아마 일주일이고 길어봐야 한 달이면 될 텐데.”
“그동안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을 거냐? 기본은 해야 할 거 아냐. 이 미련한 곰탱아.”
민환이 소매를 걷어 올리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야, 빨리 치우자. 난 이 정도인 줄도 모르고 저녁 약속을 잡았네. 후딱 끝내.”
“흐흐. 역시 너를 데리고 오길 참 잘했어.”
수겸이 참으로 꼴 보기 싫은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렇게 청소하는 데 걸린 시간은 5시간.
감성에 취한 값을 치르느라 녹초가 된 수겸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강수겸. 이제 궁상은 그만. 이런 것도 이제 그만 좀 하자. 명색이 유일한 연금술사가 이게 무슨 꼬라지냐? 어휴.”
“하하. 알겠어. 이제 그만 할게.”
“나는 약속 있어서 간다. 뭐라도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바로 올 테니까.”
민환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도망친 건가?”
하여튼 이제야 온전히 혼자가 된 수겸이 한 구석에 쌓인 재료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해볼까?”
호문쿨루스 제작을 시작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