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33
33화
둘의 술자리는 길고 길었다.
탁 터놓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이디어는 끝없이 나왔다. 가끔은 농담따먹기도 하고, 가끔은 서로의 아이디어를 비방하며 회의 아닌 회의를 하다보니 어느새 지하철이 끊길 시간이었다.
“와. 우리 여기 개시 손님이었는데, 오늘 징하게 먹었네.”
“배터지겠다. 맥주를 몇 잔 먹었지? 생맥으로 다섯잔은 넘게 먹은 것 같은데. 근데 이상한게 뭔 지 알아?”
민환이 불쑥 배를 내밀며 물었다.
“취하질 않아. 평소 주량은 훨씬 넘긴 것 같은데 정신이 말짱해.”
“재밌어서 그래. 우리가 언제 돈 벌 궁리를 이렇게까지 해봤냐. 난생 처음으로 제대로 돈 좀 벌어볼 생각을 하니까 취하질 않는거지. 나도 지금 말짱해.”
시뻘건 얼굴을 한 수겸이 말했다.
“빨간 토마토가 쎈 척 오지네. 그럼 내일은 작업실로 가면 되냐?”
“어. 일어나는대로 보자. 벌써 몸이 근질근질거린다.”
수겸이 양 팔을 비볐다.
그 때 수겸이 가방을 열더니 무언갈 찾기 시작했다.
“뭐하냐?”
“잠깐만. 찾았다! 이거 먹어봐.”
수겸이 꺼낸 건 새끼손톱 절반 크기의 동그란 약 두 알이었다.
“먹으라고?”
“어. 나도 먹으려고.”
둘은 동시에 한 알씩 사이좋게 입에 넣었다.
신기하게도 엄청 단 맛이었다. 설탕을 먹어도 이정도로 단 맛을 느끼려면 크게 한 숟가락은 입에 넣어야할 것 같은 느낌.
혀 끝에 단 맛이 사라질 때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말짱하다지만 기분이 좋을 정도로 취기가 있었는데 정신이 맑아지는 게 아닌가.
“야, 이거는 또 뭐냐? 후우. 엄청 시원하네.”
“후우. 어때? 기가 막히지?”
수겸이 민환에게 준 것은 심심풀이로 만들어본 해독제였다.
일전에 작업실에서 금 연성을 마치고 혼술을 하고 혹시 몰라 먹어보니 술 깨는데 그야말로 직빵이었다.
민환이 약의 효과로 신기할 때 둘 옆으로 둘과 마찬가지로 술에 취한 여자 둘이 지나갔다.
“아오. 술냄새!”
“도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빨리 가자.”
술에 취해서 그런지 마음 속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듯 했다.
자기한테 냄새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둘은 되레 큰소리로 웃었다.
“야, 그냥 이것만 팔아도 떼부자 되겠는데? 숙취해소제 그딴게 무슨 소용이야. 그냥 영업사원들한테만 팔아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겠구만.”
“오? 그것도 좋네. 이래서 브레인 스토밍을 해야한다니까? 내가 혼자 생각하면서 이것도 팔리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거든. 근데 왜 접었는지 아냐?”
“왜 접었는데?”
“이거 식품 허가를 못 받아. 신고할 때 원재료를 적어야 하는데. 크크크. 이름 모를 풀. 야산에 자라는 나무의 수액. 이런 걸 어떻게 적어. 하하.”
수겸은 자기 말에 자기가 웃어가며 말했다.
“네가 그래서 부자가 안되는거다. 생각이 겁나 옹졸해. 멀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냐. 쉽게 살면 쉽게 인생이 풀리는 법이야. 법? 개나 주라 그래. 문제가 생기면 그 때는 그 때의 해법이 생기는거야.”
민환이 답답한 듯 혀를 찼다.
“쉽게 살면 쉽게 풀린다고?”
수겸은 민환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긴 했지. 남들 같으면 그냥 들이박을텐데도 혼자 고민하다가 혼자 포기하고. 쉽게 살자. 수겸아. 이 멍청아.’
수겸은 스스로를 질책하며 새로운 인생 철학을 세웠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수겸을 스쳐 지나갔다.
수겸은 고개를 달은 커녕 반짝이는 별 하나 없는 시커먼 하늘을 보며 읖조렸다.
“이제 쉽게 생각하자. 단순하게. 단순한게 무조건 나쁜건 아니니까.”
“그렇지! 그런 말도 있잖냐. 심플 이즈 베스트 (Simple is best). 내가 너였다면 애진작에 10억은 모았을거다.”
민환은 수겸이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을 하며 읖조리자 스승이 제자를 칭찬하듯 말했다.
“야, 민환아. 내가 진짜 이번 생에 처음으로 너한테 배웠다.”
“이 새끼가?”
“여튼 집에 좀 가자. 술은 깼는데 너어무 피곤하다.”
“인정.”
***
다음날 수겸이 한참 신나게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잠자고 있을 때.
드르륵. 드르륵.
식탁 위에 올려둔 수겸의 휴대폰이 진동하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드르륵. 드르륵.
다시 한번 진동이 울리고, 수겸은 결국 몸을 일으켜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이제는 왠만한 일은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는 최영지가 아침부터 전화를 했다는 건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수겸은 눈을 비비며 정신을 좀 차린 다음 전화를 받았다.
“어. 무슨 일이야?”
『사장님!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벌써 몇 번째 전화를 한 줄이나 아세요?』
역시 사장 보기를 돌같이 하는 최영지답게 대뜸 혼부터 내고 시작했다.
“미안. 어제 좀 늦게 자서. 근데 왜?”
『지금 여기 난리났다구요! 사장님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인데? 말을 해줘야 내가 가던지 말던지 할 것 아냐.”
『지금 본사에서 이 대리님이랑 촬영 기사도 오고 난리도 아니에요.』
“이 대리? 이승준 대리 말하는거야? 그 새끼가 또 왜 왔지. 전화 온 것도 없었는데?”
『뭐라고 말씀은 하시던데. 여튼, 우리가 매출 향상이 많이 됐다고 취재 나왔다고 했어요.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고 했어요.』
“하아. 하여튼 이승준. 도움 진짜 안돼.”
『일단 빨리 오세요! 출발하신다고 이야기 해둘게요.』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수겸은 전화를 끊고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안그래도 오늘부터 바쁜데, 두고 보자. 이승준.’
***
택시에서 내려 편의점에 들어서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야외 테이블에서 도시락, 라면을 먹는 사람들과 그 옆에 빈 자리를 열심히 닦고 있는 최영지가 보였다.
편의점 안에는 수겸의 원수, 이승준이 누군가에게 이리 저리 손짓을 해가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복잡한데 밖에서 이야기할 것이지 멋하러 안에서 저러고 있담.’
최영지의 말대로 역시 수겸이 와야 정리가 되는 판이었다.
“사장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한참 기다렸어요. 저기 이 대리님 옆에 나이 좀 있으신 분이 되게 높은 분이래요. 이 대리님이 어찌나 아부를 하던지 옆에 있기만 해도 소름이 쫘악 올라오더라니까요. 이 대리님 사회 스킬은 역시 이거에요. 이거.”
최영지가 다다닥 쏟아내면서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려 최고 표시를 했다.
“고생했겠네. 저 새끼 저거 말 겁나 많았지?”
“엄청요. 빨리 들어가세요. 늦는다고 사장님 혼날까봐 조마조마했네요.”
“괜찮아. 높은 사람? 권위, 직위에 눌리지 마. 어차피 계약 관계니까.”
돈 문제가 해결되고, 금전적으로는 남 부럽지 않게 되면서 차츰 자존감과 자신감이 올라가는 수겸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냉큼 뛰어가서 90도로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를 했을거다.
‘어떻게든 잘보여서 프로모션 하나 따고, 지원 좀 해달라며 아부를 했을지도 모르지.’
수겸은 시선은 본사 직원들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아하. 또 하나 배웁니다.”
그 때 안에서 땀이 나도록 설명하고 있던 이승준이 수겸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띠링-
이승준이 편의점 문을 활짝 열고 수겸을 맞이했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한참 기다렸네.”
“하하. 요새 공사가 다망하네요. 여긴 어쩐일로?”
“아, 내 정신 좀 봐. 점주님은 처음 뵙죠? 인사하세요. 본사 리테일 본부의 본부장님이신 박성찬 본부장님이십니다. 본부장님, 강수겸 점주님이십니다.”
이승준이 양쪽을 번갈아 쳐다보며 서로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강수겸입니다. 들으셨다시피 여기 점주입니다.”
“아이고,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박성찬입니다. 이런 불경기에 크게 매출 신장이 되셨다고 해서 제가 한 수 배우러 왔습니다. 하하. 제가 잠깐만 있어도 정말 손님이 많이 오시네요.”
박성찬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저도 이렇게까지 좋아질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말이죠. 운이 좋았습니다.”
수겸 역시 대답을 하며 박성찬의 손을 맞잡았다.
“그런데 뒤에 계신 분들은?”
수겸이 이승준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최영지가 전화로 말한 인터뷰를 담당할 취재진 같았다.
“내 정신 좀 봐. 하하. 본부장님 요새 제가 이렇습니다. 이렇게 자꾸 깜빡 한다니까요. 점주님 저분들은 오늘 여기 지점 취재를 맡아주실 분들이십니다.”
“취재요?”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 수겸이 되물었다.
“네. 취재요. 다른 지점분들께도 점주님만의 노하우를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간단하게 인터뷰 조금 하다가 사진도 몇 장 찍으면 끝입니다. 간단하죠? 하하.”
이승준은 수겸의 본모습, 꼬라지를 부리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일부러 간단하다는 말을 강조했다.
“간단요? 본사면 이런 걸 약속도 안하고 그냥 냅다 처들어와도 된답니까? 안그래도 바쁜데 사람을 오라 가라 하면 어떡합니까?”
간단을 강조한 이승준의 전략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수겸이 성질을 부리자 박성찬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그 점은 저희도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사 사정이라는게 있어서 말이지요. 다시 한번 사과 드리겠습니다.”
박성찬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데 거기다 또 화를 낼 순 없는 노릇이라 수겸은 멋쩍은 듯 헛기침을 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빨리 끝내시죠.”
인터뷰는 이승준의 말대로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곤란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 칭찬이 밑바탕에 깔린 질문들이라 수겸이 대답하는데 딱히 망설일 필요가 없었던 질문들이었다.
대충 20분쯤 걸린 인터뷰가 끝이 나고, 다음은 사진 촬영이었다.
수겸 혼자 독사진 한 컷, 알바생도 한번 찍자며 최영지와 함께 또 한 컷.
편의점 정면에서, 내부에서. 오히려 인터뷰보다도 오래 걸린 것 같았다.
그렇게 갑작스런 인터뷰 일정을 마치고, 내내 촬영 과정을 보던 박성찬이 수겸에게 다시 한번 악수를 청했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본사에서는 격려 차원과 오늘 수고비 명목으로 일정 지원금이 나올 예정입니다. 프로모션도 팍팍 밀어드릴테니 최고 편의점으로 만들어주세요.”
“밀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오늘 고생하였습니다.”
수겸이 감사 인사를 했다.
“네. 그럼 이만. 다음에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이승준이 박성찬을 배웅하러 나가고 수겸은 편의점 안의 테이블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간이 조금 더 걸린 일정이 에너지를 다 써버린 기분이었다.
이윽고 다시 이승준이 들어와 수겸의 앞에 앉았다.
“점주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뭐?”
그새 온도가 달라졌다. 카메라도 없고 보는 눈도 없어졌으니 원래의 감정이 날 것 그대로 튀어 나왔다.
“에이. 얼굴 좀 푸세요. 오늘은 좋은 일로 왔으니까요. 어디 제가 괴롭히러 왔습니까?”
그럼에도 이승준은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역시 타고난 영업직원이었다.
수겸은 문득 자기 같은 사람도 다 받아주는 이승준은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심통이 난 얼굴을 풀고 말했다.
“근데 우리 매출이 좀 높아지긴 했는데, 얼마나 높다고 이렇게 촬영까지 왔어?”
“좀이 아니니까요. 지난 달에 서대문구 1등 됐어요. 이게 진짜 왠 일입니까. 하하.”
“1등? 헐. 진짜 대박이네.”
“만년 꼴찌였다가 무슨 수를 쓰신거에요. 마법이라도 하세요?”
이승준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마법은 무슨. 운이지. 근데 왜 이렇게 표정이 좋아?”
“제가 계약을 따내고 관리하는 지점이 1등이 됐으니까요. 게다가 스토리도 너무 좋구요. 점주님 덕에 저도 인센티브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오. 인센티브 축하. 근데 딱히 나한테 해준 건 없는거 같은데 말이지. 아까 본부장님? 그 분께 전화라도 넣어야 하나.”
수겸은 일부러 장난스레 말했다. 이승준이 한 짓은 밉지만,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라 좋은 일은 축하해줄 정도는 되었다.
“에이. 왜 그러십니까. 저도 신경 많이 썼습니다. 그동안 진짜 점수님께 죄송해서 오며가며 얼마나 챙겨드리려고 노력했는데요. 제가 여기 들렀다가 사간 음료수를 쌓아 올리면 못해도 3층 높이는 될 겁니다.”
이승준은 너스레를 떨었고, 수겸은 받아주었다.
어찌 됐든 기분 좋은 일이니까.
아무도 모르는 밑작업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건 1등이란다.
대뜸 연금술을 배운 뒤로 제일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