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05
제105화
27. 잘하면 살판, 못하면 죽을판 (1)
“으흠흠, 어쩐지 일이 잘 풀리는 날이네.”
동굴 벽에 기대앉은 박신주가 콧노래를 불렀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달큰한 향내를 풍기며 구워지는 마시멜로, 어쿠스틱풍의 노래를 재생하는 스피커까지. 그의 주변은 세계탑이 아니라 여느 평화로운 캠핑장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풍경이었다.
박신주의 앞에 포박당한 두 명의 헌터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당장 이거 풀래도!”
“여기만 나가면 바로 신고할 겁니다. 무고한 헌터를 이렇게 대하는…….”
“아, 말이 많네. 좀 기다려 봐요. 나 지금 우리 자기한테 답장 보내고 있으니까.”
윤가호가 들었다면 기겁했을 호칭을 입에 담은 박신주가 헌터워치를 조작해 메시지를 보냈다. 물론 그사이 다른 헌터들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으나.
“우읍!”
“특별히 주는 거니까 얌전히 그거나 먹고 계세요.”
박신주가 강제로 둘에게 마시멜로를 먹이며 잠시간의 평화가 찾아왔다. 포박당한 이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뜨거운 마시멜로를 씹어 삼켰다.
내내 아무 말 없이 있던 동굴 안의 또 다른 1인이 그를 보고 입을 열었다.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마라.”
“돈을 쓸어 모으시는 프리 헌터님이 쩨쩨하시네.”
“내 수익과 너의 무례함이 무슨 연관이 있지?”
“정말이지 농담을 모르는 양반이라니까. 자, 여기. 대신 이거 줄게.”
얼결에 초콜릿잼과 비스킷을 떠맡게 되었으나 어쩐지 윤수호는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이윽고 그는 노릇하게 구워진 마시멜로를 집어와 스모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생긴 거하고 다르게 노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불만 있나.”
“없는 건 아닌데…… 그거 하나 주면 없어질 것 같아. 그러니까 줘 봐.”
제 손보다 한참 작은 비스킷 봉지를 뜯던 윤수호가 곱지 않은 눈으로 박신주를 보았다. 하지만 이에 굴할 박신주가 아니었다.
박신주는 포기한 듯 잠시 얌전히 있더니 스모어가 완성되자마자 냉큼 그것을 낚아챘다. 와그작- 부러 소리를 내는 박신주를 보며 윤수호가 중얼거렸다.
“손버릇이 나쁘군.”
“쟤네들 네가 데려왔는데 간수는 내가 다하고 있잖아. 이 정도도 못 해 줘?”
가만히 생각하던 윤수호가 박신주의 발언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는지 그의 입에 또 하나의 스모어를 물려 주었다.
그때, 드디어 마시멜로로부터 해방된 헌터가 불만을 표했다.
“사람을 묶어 놓고 소꿉장난이 하고 싶습니까?”
“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을 땐 건드리지 맙시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면 그쪽도 하나 줄까?”
“됐습니다!”
“잠깐만.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당신 윤수호 맞지?”
묶여 있던 이들 중, 머리를 높게 묶은 여성이 윤수호를 알아봤는지 마구 소리쳤다.
“대답 못 하는 거 보니까 맞네! 하, 당장 안 풀어 주면 언론에 싹 뿌릴 줄 알아! 그쪽 소속도 없는데 횡포 부리는 S급이라고 소문나서 평판 망치면 곤란하지 않나?”
“마음대로 하…….”
“훠이. 여긴 말주변 없는 그쪽 대신 내가 할 테니 맡겨 두라고. 보수도 받았잖아?”
입술에 묻은 초콜릿잼을 엄지로 훑은 박신주가 씩 웃었다. 윤가호가 저를 부른 것은 내일 아침이다. 여유가 있으니 오늘 밤엔 좀 놀아 볼까?
웃음을 지운 박신주가 계속 바르작거리는 여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언플이라니. 여기 이 목석만 있었음 상황이 아주 볼만했겠습니다?”
“이게 어떻게 언플이야? 사실 고발하는 거지. 등급만 믿고 사람 핍박하는 S급이란 걸 다들 알아야 하지 않겠어?”
“자기 좋은 얘기만 쏙 빼서 여론 선동하는 게 언플이 아님 뭔데?”
잔잔하게 흐르던 통기타 소리가 돌연 뚝 그쳤다. 잠깐 고요가 흐르는 듯하더니 주인의 기분을 기민하게 알아챈 스피커가 스산한 배경음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면에 말이 짧다?”
지금 제 앞에 보이는 이들의 차림, 말투, 윤수호가 들려준 이야기,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 온갖 정보들은 박신주의 머릿속에서 정립이 끝난 지 오래였다.
“요새 카두세우스가 궁하단 이야긴 들었는데. 합의금 이야기는 안 꺼내요?”
“뭐, 뭐?”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제 길드명이 튀어나오자 여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와 등을 맞댄 채 묶여 있던 남자 역시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선한 이미지로 장사하는 카두세우스 길드원이 사기를 쳤다, 라. 언론에서 딱 좋아할 만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그, 급하니까 아무 이름이나 막 갖다 붙이기는!”
여자의 가짜 부정을 박신주는 시큰둥하게 무시했다.
“둘러대기엔 증거가 너무 많지 않나.”
가장 결정적인 것만 말하자면 여자의 부츠에 새겨진 날개 표식. 카두세우스의 징표였다.
거기다 남자가 착용한 저 귀걸이. 얼마 전,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것을 카두세우스의 길드원이 낙찰해 간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정 억울하면 등록증 보여 주던가.”
포박된 헌터들은 씩씩댔으나 선뜻 그러겠다 답하지 못했다. 카두세우스 길드원이란 게 확실히 증명되면 상황이 정말로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런 게…….
“저기 그리고 말은 바로 합시다. 저 곰이 이유 없이 당신들 잡아 온 거야? 아니잖아. npc 등쳐먹다가 잡혀 놓고 무고는 무슨.”
“윽, 그건!”
“괜한 사람 진흙탕에 끌어들이지 말고 본인들 잘못이나 되돌아보세요.”
머리카락을 배배 꼬던 박신주가 흘깃 윤수호 쪽을 보았다. 분명 시선을 느꼈을 텐데도 윤수호는 묵묵히 스모어와 마시멜로를 해치우기 바빴다.
‘오늘 낮만 해도 저거랑 마주칠 줄 몰랐는데.’
수상한 짓을 하던 헌터들을 본 이래로 박신주는 쭉 그들의 뒤를 밟았다. 헌터 무리는 종일 이산 저산에서 제 마커를 박아 두었던 것과 같은 표식이 있는 기둥을 찾아다녔다.
찾은 기둥의 색에 따라 하는 행동은 조금 달라졌다. 기둥이 평범한 나무색일 때는 그 위에 삼색의 가루를 뿌렸다. 그리고 검은색의 기둥을 발견했을 때는 투명한 구슬을 가져다 댔는데, 그러고 잠시간을 기다리면 구슬의 색이 검게 변했다.
‘저 가루가 기둥에 모종의 작용을 일으키고, 거기서 나온 부산물을 챙기는 건가.’
목적은 모르겠으나 성가시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퀘스트 보상이 좋나 싶었는데, 떠드는 소리를 듣자 하니 애초에 퀘스트도 아니란다. 여기 모인 헌터들은 타워즈에 올라온 고액 의뢰에 홀려서 찾아온 것이라고.
여태 미행을 눈치채지 못하는 걸 보니 다들 고위 헌터는 아닌 듯했다. 그런데 저들이 제시받았다는 금액은 신주 자신도 혹할 만한 큰 액수였다.
‘저걸로 더 큰돈을 수급할 수 있다는 거지.’
산맥을 휘젓던 헌터들이 마을에 내려온 것은 주머니에 담긴 가루가 모두 떨어진 뒤였다. 그들은 가루를 수급한다며 고래등 같은 기와집으로 향했다.
배후를 알아낼 기회인가, 싶어 들뜬 박신주는 숨죽인 채 그들을 따라갔다.
“이리 오너라!”
헌터들이 거들먹거리며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 대문이 벌컥 열렸다.
“누구지?”
그런데 거기서 윤수호가 튀어나올 줄이야!
박신주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당황한 헌터들은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켕기는 게 있는 인간의 전형이랄까. 그를 쫓아가야하나 고민하던 박신주를 윤수호가 불러 세웠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건 내가 할 소린데.”
이쪽이 더 핵심에 가까운 것 같지? 빠르게 판단한 박신주는 제가 쫓던 헌터들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윤수호에게 다가갔다.
“그놈들은 또 뭐야?”
박신주가 윤수호의 발치에 기절해 있는 두 명의 사람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딱 보니 npc는 아닌 것 같은데. 윤가호가 영물을 발견한 이래로 여정팀은 역병과 백아에 대해 수소문하고 있었다. 그와 관련된 이들인가?
“약장수.”
“엉?”
“역병도 낫게 한다는 만병통치약을 파는 놈들이다.”
윤수호가 이 만병통치약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복장 덕분이라고.
박신주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를 관군으로 착각한 npc 아이 하나가 매달린 것이 시작이었다.
“다른 관군들은 제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는다며 울먹이더군.”
역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아이의 가족은 큰돈을 들여 만병통치약을 구매했다. 약을 먹은 직후에는 잠시간 병증이 낫는 듯했다.
하지만 기뻐했던 것도 잠시. 얼마 뒤 아이의 아버지는 돌연 세상을 떴다. 약장수들을 찾아가 항의하려 했으나 그때 이미 그들은 마을을 뜬 뒤였다고 한다.
“그 애의 말이 그렇게 신경 쓰였어? 강을 건너 여기까지 올 정도로.”
“퀘스트와 관련한 사안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흐응, 그렇다고 쳐줄게.”
박신주도 짧게 제가 왜 이곳에 왔는지를 설명했다. 엄지로 턱을 쓸며 그의 설명을 듣던 윤수호가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졌다.
“야, 야! 어디 가?”
집 안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던 그는 곧 커다란 자루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이게 그 만병통치약의 원료이다.”
“……게임이 영 재밌게 돌아가는데.”
자루 안에는 세 가지 색의 가루가 뒤섞인 채 담겨 있었다. 박신주가 쫓던 헌터들이 기둥에 뿌리던 그 가루였다.
[동티(?)] [열람 자격 미달! 세부 정보 열람이 불가합니다.]아이템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없었기에 박신주와 윤수호는 이것을 이용하고 있던 두 헌터를 끌고 왔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아직 제대로 된 심문은 못 했지만…….
“그러게 제가 이런 찜찜한 일은 그만두자고 했잖습니까!”
“허, 퍼펙트핸즈랑 입찰 경쟁 붙어서 탈탈 털렸다고 징징댈 땐 언제고! 너도 돈 받고 좋아했잖아!”
“거기서 왜 경매 이야기가 나옵니까?”
이간질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내분을 일으킨 둘을 보며 박신주가 혀를 찼다. 초조하겠지만 저럼 안 되지.
전원 보조계 헌터들로만 이루어진 카두세우스이다. 빠른 속도로 새로운 계층이 공략될 때는 보조계의 수요가 높지만, 지금처럼 공략이 지연될 때는 그 반대였다.
그나마 ‘착한 길드’라는 이미지 덕에 밥그릇을 겨우 챙기고 있는 와중인데 사기꾼 스캔들이 터지면 그마저도 어렵게 될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 절박함, 좀 이용해야겠다.
“음, 헌터 여러분. 이제 저한테 좀 집중해 주시겠어요?”
박신주는 능란한 말솜씨로 두 헌터를 가지고 놀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두 헌터는 이미 자진해서 계약 아이템에 피를 떨어뜨리는 중이었다.
“이걸로 당신들은 우릴 만난 사실을 잊는 거야. 대신 우린 카두세우스의 부정을 제보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계약 조건에 따라 기절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박신주가 투덜거렸다.
“이 둘도 꼬리였다니. 도대체 꼬리가 몇 개인 거야?”
배후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 둘 역시 누군가에게 의뢰를 받아 약을 팔고, 그 수익을 분배받고 있을 뿐이었단다.
코코아를 홀짝이던 윤수호가 머리를 쥐어뜯는 박신주에게 무심하게 말했다.
“꼬리를 더듬다 보면 머리가 나오겠지.”
“호, 웬일로 말을 잘하네? 그래. 머리 없는 꼬리는 없는 법이지.”
“내일 아침까지 소한에 가야 하지 않나. 얼른 자라. 불침번은 내가 먼저 서지.”
고개를 끄덕인 박신주가 인벤토리에서 침낭을 꺼냈다. 모로 누운 채 모닥불 위로 튀어 오르는 금빛 불씨를 보자니 절로 가호의 금안이 떠올랐다.
“우리 자기는 지금쯤 코코낸내 하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