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31
제231화
54. 시리즈 (1)
“그 고양이의 마력이잖아? 이름이 나비, 는 아니겠지.”
박물관에서는 한차현을 과거로 이끌고, 천사 조각상의 퀘스트를 도운 줄리엣 루의 고양이.
그 녀석이 분명했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독특한 구석이 있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생명체라기엔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아이템도 아닌. 그런 희한한 마력이었다.
“왜 갑자기 여기 나타난 거지? 아니, 그게 아닐지도…….”
방금 던진 질문은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나타난 게 아니다. 내가 이제야 알아챈 것뿐이지.
눈에 띄는 개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고양이의 마력은 줄리엣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그와 비슷한, 하지만 더 강력한 기운이 이 하우스를 뒤덮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수수께끼도 하나 푼 것 같은데.”
숨을 멈추고, 전신의 감각에 집중하자 마력이 유독 짙게 느껴지는 곳을 알 수 있었다.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문짝이 보였다.
해랑이 먹어 치울 뻔했던 그림들이 있는 방이었다.
“어떤 수수께끼인지 저한테도 알려 주시겠어요?”
“아, 한차현 헌터.”
그가 함께 있다는 것을 순간 깜박했다. 혼잣말도 꽤 한 것 같은데. 저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괴팍해 보였을까. 뒤통수를 긁적이며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저희 만났던 고양이 말입니다. 아무래도 줄리엣 루의 마법 같습니다.”
“마법이요?”
“네, 사후에도 유지될 정도로 강력한 마법입니다. 도로시의 조각상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요.”
보통 이렇게 큰 규모의 마법은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산업 단지에서 만난 조각상도 그러했다. 하지만 탐정이며, 나비며 별칭만 많은 그 고양이는 그렇지 않았다.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이 되레 작고 사소한 마법을 닮았다.
‘그래서 나도 바로 알아채지 못했어.’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한차현이 잠시 골몰히 생각하더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벽히 일치하는 대답을 내어 놓았다.
“단일 작품이 아니라, 여러 점의 작품들이 상호작용한 결과 만들어진 마법이 아닐까요?”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고양이의 그림이 저 방에만 수십 점. 박물관을 포함하여 발트하임 다른 곳에도 몇 점이 더 있을 것이다. 어지간한 팔불출이 아닌 듯하니까.
줄리엣이 그린 천장화처럼 대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은 아니지만, 거장의 솜씨는 어디 가지 않는 법. 마법이 깃들었다 하여도 이상할 게 없었다. 각기 다른 작품들이 연결되었다는 점은 흥미로웠지만.
“같은 테마를 두고 만들어진 연작들이 하나의 마법으로 완성되다니. 이 계층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일 듯합니다.”
“적어도 제가 본 서적들에는 이런 사례가 없었어요. 줄리엣 루가 그만큼 특별한 화가였다는 거겠죠.”
“그만큼 애정을 담은 소재였단 뜻도 되겠고요.”
고갯짓으로 긍정한 한차현이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의미 모를 웃음에 미묘한 표정을 짓자, 그는 나쁜 의미가 아니라며 황급히 해명했다.
“가호 씨와 함께 있으면 뒷면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구나 싶어서요. 표현은 못 했지만,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별게 다 고맙네. 대수롭지 않게 넘길 뻔한 그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떠올랐다. 천산의 화구호에서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여기고 저기고 다 세계탑이 가짜라고 그러지만, 마냥 그렇게 보기도 힘들죠. 현실과 닮은 부분이 너무 많잖아요. ……저도 이런 곳에 올 때면 평소보다 더 몰입하곤 해요.’
나와 같은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한차현은 모두가 허구의 세계라 여기는 세계탑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었다. 경청하고, 몰입했다. 더군다나 탐구심까지 강하니,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파헤치는 히든 퀘스트 건이 그에게 얼마나 뜻깊은 일일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감사해 하실 것 없습니다. 한차현 헌터의 지분도 있는 일이잖아요.”
“없지야 않죠. 하지만 저희 모두가 알고 있어요. 누가 가장 이 임무에 마음을 쏟고 있는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마음을 쏟다니. 나조차도 이름을 붙이지 못한 언행을, 감정을 정확히 정의하는 말이었다. 최대 기여자라는 시스템의 사무적인 표현보다 훨씬 와 닿았다.
‘정말이지, 당해 낼 수 없는 사람이야.’
한차현은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불편한 듯, 편안한 분위기는 강제로 종료되었으니.
쨍그랑! 위층에서 집기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뒤이어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남자들의 음성이 들렸다. 최정록과 정수환이었다.
“얼른 가 봅시다.”
“네, 이리로.”
한차현의 스킬로 몸을 감추고 황급히 올라간 2층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탄탈리움을 정제하여 만들었다는 약물 때문일까. 최정록은 정수환이 제 앞에 있음에도 이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물건들을 집어 던지고 부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재떨이 파편에 안면을 얻어맞은 정수환이 고래고래 고함쳤다.
하지만 최정록은 거기에 굴하지 않았다. 그는 책상에 걸터앉은 채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곤 곧바로 제가 앉은 원목 책상에 불을 붙였다.
“하하, 미칠 수도 있지! 그게 뭐 어때서? 나고 당신이고 이제 다 망했는데. 우린 이제 모가지라고, 모가지!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죽지 뭐. 활활, 어때 예쁘지?”
“죽을 거면 너 혼자 죽어. 난 어떻게든 해 볼 테니까.”
“실패, 실패, 죄 실패에 통신까지 먹통이잖아요! 뭘 어떻게 해!”
불을 끄기 위해 허둥거리던 정수환이 팔을 탁 늘어뜨리고 욕설을 뱉었다. 정신이 나간 것 같은 후배를 설득하고자 했으나, 제게도 뾰족한 방도가 없었던 거다.
제 표현대로 활활 타오르는 책상에서 선배를 비웃던 최정록이 돌연 풀쩍 뛰어내렸다.
“그쪽이 생각하기에도 답이 없지? 그런데 난 있거든. 아주 기가 막힌 복수가 될 거야.”
그는 두서없이 지껄이며 정수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근력 수치가 최정록보다 더 높을 텐데도 정수환은 속절없이 그에게 끌어당겨져 눈높이를 맞추게 되었다.
나를 향한 것도 아닌데 핏발 선 눈동자에 괜히 소름이 돋았다.
“이 하우스를 통째로 불태우면 대단하신 새미기픈 분들도 꽤 골치 아파지겠지. 한밤중의 불놀이는 입막음도 못 할 테니까 말이야.”
“……미쳤군. 네가 들어오려고 하는 이 길드가 어떤 곳인지 알지 않나? 분명 후환이 있을 거다.”
어떻게든 길드에 발붙이려 이런저런 지저분한 일들을 도맡은 자신은 누구보다 잘 안다며 정수환이 절절하게 설토했다. 그가 든 예시에는 헌터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떠돌던 괴담 같은 미제 사건들이 섞여 있었다. 어느 것이고 일반인인 나를 두고 윤수호를 협박한 건 예사로 느껴질 만큼 잔혹한 일들뿐이었다.
“하우스도, 이 도시도 아무래도 좋아. 연쇄 살인? 찜찜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결국 별거 아니었어. 어차피 탑 안에서의 일이니까.”
“…….”
“하지만 최정록이 네 놈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는 나한테도 불똥이 튀겠지. 그거야말로 곤란한 일이야.”
정수환은 최정록을 말리기 위해 길드 상부를 두려워하는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이윽고 최정록이 뱉은 짧은 대사 한 마디에 되레 동요하고 말았으니.
“복수하고 싶지 않아?”
“뭐?”
“당신에게 그 꼴을 보게끔 지시한 그 인간들한테 복수하고 싶지 않냐고.”
방금까지 악을 지르며 물건을 던졌던 것은 모두 잊은 양, 그는 샐쭉 눈을 휘어 웃었다.
“나한테 아주 좋은 생각이 있는데.”
얼굴을 바짝 붙인 채 속살거리는 것이 꼭 선악과를 들이미는 뱀처럼 보였다. 힘주어 잡고 있던 멱살까지 놓은 최정록이 흔들리는 정수환에게 결정구를 던졌다.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그걸 써 보자는 거야. 재밌겠지, 분명?”
“너……. 진심이냐?”
“그럼 이만한 일을 쉽게 벌이려고.”
그거? 뭘 말하는 거지? 뭐가 됐든 심상치 않은 것임은 틀림없었다. 한차현과 눈빛을 주고받은 뒤, 다시금 귀를 쫑긋 세웠다.
‘일단은 좀 더 들어 보자.’
그새 꽤 설득된 정수환은 먼저 질문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그 역시도 새미기픈에 쌓인 게 많은 듯하니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헌터란 족속들이었다.
“방법은 그렇다 쳐. 그런데 추적은? 길드의 추적은 어떻게 피할 생각인데?”
“이것까지 설명해 줘야 해? 멍청하긴.”
“허, 멍청해? 최정록 너 아주…….”
“죽은 사람을 어떻게 추적해요. 아니,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도 그럴 여력이 없을걸. 도시 폭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
최정록이 자신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듯, 인상을 쓴 정수환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죽는단 말은 아니고요. 공식적으로, 그렇게 기록될 거라고요.”
즉, 죽은 척을 할 거란 말. 여기까진 알아듣겠다. 그런데…….
‘도시 폭파는 무슨 소리야?’
전혀 짚이는 바가 없었다. 한차현의 표정을 보니 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난데없이 폭파범이나 테러리스트가 등장할 리는 없고. 최정록의 불꽃 마법으로 도시 전체를 뒤덮는 것 역시 현실성이 없었다. 무언가 우리가 모르는 장치나 병기가 있다는 게 그나마 가능성 있는 가설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긴 몇 년 전까지 전쟁이 벌어졌던 계층이니까.’
아마도 데런에서 퀘스트를 받았을 때만 접할 수 있는 정보 같은데.
새미기픈과 최정록이 서로의 목을 조이는 건 좋지만, 당장 여기 있는 우리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각성자라고 폭발에서 안전한 건 아니니까.
저 인간들의 한심한 복수가 끝날 때까지 잠시 피신해 있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서둘러 퀘스트 창을 띄웠다.
[히든퀘스트, 지나간 마법의 시간(S)– 클리어 조건 : 발트하임에 남은 마법사를 보호하라]
아, 젠장. 당연한 소리지만 도시가 폭발하면 이곳의 시민들 역시 위험해진다. 마법사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보호’라는 단어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이것까지 모두 안배한 퀘스트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