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5
제25화
06. 홀로 남은 바다 (3)
– 안식을 방해하는 자여, 이것은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형벌이니.
푸른빛의 병장기들이 우리를 겨냥했다. 바다정령이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영창했다.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강대한 마력이 공동을 가득 채웠다.
저 정도 되는 존재가 시전하는 마법이다.
우리의 힘으로는 막을 방도가 없었다.
이렇게 될 줄이야. 지원 인력이 올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다. 뒤늦은 후회를 하며 이 참상의 시작점을 되짚었다.
목걸이, 그래 시작은 지난밤 아테라가 준 그 목걸이였다.
***
[메디아의 눈물(A): 메디아가 친애하는 아이에게 선물한 목걸이. (잔여횟수 : 1)
※ 퀘스트 아이템. 잔여 횟수가 모두 소진되면 파괴됩니다.]
창틀에 걸터앉아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차태양과 아테라는 잠자리에 든 지 오래였다. 돌아갈 곳이 없는 아테라는 당분간 우리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바다꽃에는 지원이 온 다음에나 갈 수 있을 것이다. 대신 내일은 이 목걸이를 사용해 바다정령을 소환하기로 했다.
“아마 이 ‘메디아’는 정령의 이름이겠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니 그를 만나면 해안 동굴과 인어에 대한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그래도 첫날부터 단서를 찾아서 다행이었다. 며칠 동안 헤매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일이 술술 풀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상황이 너무 호의적이라 수상하단 말이지.”
세계탑이 이럴 리가 없는데.
하루 만에 바다꽃을 발견한 것도 모자라 연관 npc를 찾다니.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마음을 놓아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다른 곳으로 간 사람들은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한차현과 이강토는 어딘가로 잠입한다던데……. 그런 것에 비하면 너무 쉽게 단서가 굴러 들어왔다. 어쩌면 그들이 뭔가를 알아내기 전에 이쪽에서 일이 해결될지도 모르겠다.
“뭐, 까 봐야 아는 거지만.”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자. 바다정령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내 마력을 빨아먹고 있는 알이 떠올랐다. 왼쪽 손등에 그려진 문양을 검지로 두드렸다.
[키메라 ‘해랑’의 알(B): 흑마법사가 노년에 완성한 인생 최고의 걸작. 마력을 먹고 자란다. (부화도 5.8%)
※ 거래 불가 아이템]
부화도가 5%를 돌파했을 때쯤, 손등에 작은 꽃봉오리 모양의 문양이 생겼다. 덕분에 인벤토리에서 알을 꺼내지 않아도 상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보다 꽃봉오리는 미세하게 벌어진 상태였다. 이 꽃이 만개하는 날 키메라가 부화하는 거겠지.
“뭐가 됐든 멀쩡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는데.”
별 볼 일 없는 C급의 마력을 먹고 자라는 판에 대단한 능력은 바라지도 않았다. 어디 한곳 기워지거나, 부패한 곳이 없기를 빌 뿐이었다.
“천천히 나오렴, 천천히.”
내 말에 대답이라도 하는 듯, 손등의 문양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
아테라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 이 목걸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플레이어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어딘가 수상쩍은 구석이 있는 쉘라의 npc들에게 바다정령을 보여선 좋을 게 없다는 것에는 나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밤중에도 쉴 새 없이 배가 오갈 정도로 분주한 항구도시에서 사람이 없는 바다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 제가 확실하게 사람이 없을 만한 장소를 압니다.”
해안 동굴을 떠올린 내가 일행들 데리고 절벽으로 갔다. 절벽 위는 오늘도 여전히 미친 듯이 바람이 불었다.
“아테라, 여기부터는 위험하니 저희끼리 가는 게…….”
“싫어요.”
아테라는 입을 꾹 다문 채 내 시선을 피했다. 그는 바다꽃과 연결된 동굴이 있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고집을 부렸다.
아테라의 신뢰가 보상으로 걸린 것을 보아, 아테라는 앞으로의 퀘스트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억지로 떼어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곤란하네.’
내 스킬은 누군가를 데리고 이동하기에 적합한 종류가 아니었다. 손이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망설이는 기색을 눈치챈 차태양이 제안했다.
“아테라는 제가 데려갈게요!”
“가능하겠습니까?”
차태양이 개구지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스킬이 있는 건가.
“그러엄! 우리 태양이는 못 하는 게 없다고!”
짐작 가는 구석이 있는지 도깨비가 깔깔대며 웃었다. 차태양이 아테라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테라, 너 높은 곳 무서워해?”
“아, 아니. 첨탑 위에서 오래 살아서 괜찮아.”
“다행이다!”
설마.
불안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만류할 틈도 없이 차태양이 환호를 지르며 절벽 위에서 뛰어내렸다.
“야호!”
“차태양 헌터!”
“꺄아아악! 아, 아빠……!”
아테라의 비명이 점점 멀어졌다. 아래쪽을 살폈지만 거세게 출렁이는 바닷물만이 보일 뿐이었다.
차태양은 A급 헌터이다. 내가 우려하는 일이 벌어질 확률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여 황급히 절벽을 내려갔다. 절반쯤 내려갔을 때 차태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마중 갈까요?”
“차태양 헌터! 괜찮으십니까?”
“물론이죠!”
“저는 알아서 내려가겠습니다. 그러니 거기서 얌전히 기다리세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무모한 것을 보니 차태양도 A급은 A급이구나.
“차태양 헌터, 무작정 행동하지 마시고 움직이기 전에 파티원들에게 말해 주셔야 합니다.”
“네…….”
“A급 헌터라도 물에 빠지면 익사할 위험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테라도 있지 않았습니까?”
절벽에서 떨어지는 와중에 동굴을 찾고, 그 안으로 순간이동을 하다니. 자칫 실수했다면 차태양과 도깨비는 둘째치고서라도 아테라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상위 헌터들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곤 한다.
이 정도로 어린 헌터와 팀을 짜는 것이 처음이라 늘 나도 모르게 차태양의 보호자처럼 굴었는데, 차태양이 나와는 다른 고위 헌터이라는 게 새삼 실감 났다.
“아테라, 괜찮으신가요?”
차태양에게 주의를 주고 벽에 기대 주저앉은 아테라에게 다가갔다.
많이 놀란 듯 아테라는 파들파들 몸을 떨고 있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아테라가 고개를 들었다.
“……!”
절벽을 뛰어내린 탓에 늘 치렁치렁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앞머리가 걷어져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테라는 화들짝 놀라 덤불 같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나는 똑똑히 보았다. 오색으로 빛나는 보석안을.
아테라는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린 것으로도 모자라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고는 내가 자신에게 해코지라도 할 것처럼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도깨비가 데굴데굴 그의 발치로 굴러갔다.
“어린 김 서방아, 갑자기 왜 그래? 그렇게 무서웠어?”
“아테라, 아테라! 나 때문에 그래? 많이 놀랐다면 미안. 높은 곳 안 무서워한대서…….”
차태양과 도깨비가 아테라의 주위를 맴돌았다.
성급히 캐묻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내 기척이 멀어진 것을 느낀 아테라가 조심스레 얼굴을 들었다.
“자, 슬슬 안으로 들어갈까요?”
차태양이 나와 아테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테라가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아테라가 차태양의 등에 바짝 붙어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그의 시선을 모른 체하며 앞장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차태양이 작은 도깨비불을 만들어 시야를 밝혔다.
“책에서 본 탐험가 같다.”
“김 서방아. 얼마나 더 가면 돼?”
“곧 도착합니다. 아, 저기 보이시죠?”
벽과 바닥을 샅샅이 뒤지며 간 어제와 달리, 목적지가 명확했기에 생각보다 빨리 호수에 도착했다.
“와…….”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호수는 다시 보아도 장관이었다.
잔뜩 들뜬 차태양이 아테라를 데리고 휙 호수 쪽으로 달려갔다. 호수를 보고 넋을 빼고 있던 아테라가 질질 끌려갔다. 그들의 뒤를 따라 신이 난 도깨비가 쩔그렁 굴러다니는 소리가 공동을 울렸다.
“정말 있었구나.”
함께 동굴 안을 둘러보자는 차태양의 제안을 거절한 아테라는 호숫가에 앉아 물속에 손을 담갔다. 호수를 바라보는 아테라의 두 눈이 거세게 일렁였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역시 저 아이는 무언가를 알고 있어.’
아테라는 자신이 바다꽃의 주민이 아니라 말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서 그리움이 묻어났다.
빨리 서브퀘스트를 완료해 그의 신뢰를 얻어야 하기에, 동굴 안을 돌아다니던 차태양을 불렀다. 인벤토리에서 목걸이를 꺼낸 뒤 심호흡했다.
“거친 풍랑을 넘어 당신의 아이가 왔습니다. 눈을 떠요, 메디나.”
아테라가 알려 준 말을 외우며 목걸이를 호수에 넣었다. 목걸이가 스르르 녹듯 사라지고, 동굴 안의 마석들이 점멸하기 시작했다.
고오오-
종류를 짐작할 수 없는 울음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파도가 치듯 호수가 출렁였다. 파문이 점점 커져 호수에서 넘친 물이 발을 적셨다.
그리고 감지된 어마어마한 마력.
무의식적으로 활을 그러쥐었다. 여태껏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감각이었다.
“기, 김 서방! 도대체 뭘 부른 거야!”
“차태양 헌터, 아테라를 보호하세요!”
등골이 오싹했다.
호수 한가운데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고, 물 아래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불길한 예감에 아테라와 차태양의 앞을 막아섰다.
엄청난 마력의 소유자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푸른색, 고래?’
– 파르안? 파르안이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두들겼다. 어찌나 소리가 큰지 관자놀이 부근이 지끈거렸다. 두통이 잦아들 때쯤 거대한 고래가 호수에서 튀어나왔다.
‘아니, 저걸 고래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물을 뭉쳐서 만든 듯 반투명한 푸른색의 고래는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형태를 바꾸었다. 물 위로 내민 상체는 엄청난 거구였지만 일단은 사람 같은 모양새였다.
– 파르안은 어디 있느냐!
파르안이 누구기에 이렇게 애타게 찾는 것인가. 그나마 무언가를 알고 있는 아테라는 정령의 기세에 눌려 꼼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이 메디아입니까?”
– 뭍사람이 감히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니다! 기어코 네놈들이 이곳에까지 쳐들어왔구나!
정령의 고함과 함께 물로 만든 병정들이 생성되었다. 어림잡아도 서른 명은 훌쩍 넘는 것 같았다. 적의 가득한 병정들이 대열 맞춰 우리에게 덤벼들 준비를 했다.
그리고 떠오른 퀘스트창.
[서브퀘스트, ‘바다정령의 분노(A)’가 시작됩니다.– 잔여 시간 : 00:20:00
– 클리어 조건 : 아테라 생존
– 권장인원 : 5명
※ 포기가 불가능한 퀘스트입니다.]
아테라의 생존을 조건으로 한 퀘스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