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271
제271화
62. 향수 (4)
“소리?”
“흐으, 왜 방에 없었, 흑, 어. 한참 찾았잖아!”
어찌나 엉엉 울어 대는지. 짧은 찰나에 뺨이 축축하게 젖었다. 방울 소리처럼 또랑또랑하던 발음도 울음에 먹혀 뭉그러졌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으려면 눈물부터 그치게 해야겠는데.’
낯선 장소에 있는 나를 탓했다가, 태양이의 이름을 연호하며 흐느꼈다가를 반복하는 소리의 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겨 주었다. 반대 손으로 책상 끝에 있는 티슈를 뽑았다.
“자, 소리. 흥 하세요.”
“흥!”
“착하네요. 한 번 더 할래요?”
“으응, 괜찮아.”
새로 뽑은 휴지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도깨비의 얼굴을 닦았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울먹였는지 눈가가 새빨갰다.
“김 서방-.”
저를 달래 주는 이가 생기니 되레 울컥했는지, 기껏 닦아 준 얼굴이 다시 눈물범벅이 되었다. 나는 언짢아하지 않고 손끝으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을 훔쳐 주었다. 그리고는 낮지만, 분명한 어조로 답했다.
“네, 소리. 저 여기 있어요.”
“우리 태양이 어떡해? 가족, 가족들은, 흑 또 어떡하고?”
사정을 모르니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작은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바라보자니 가슴께가 자르르 저려 왔다.
진정에 좋은 허브차라도 내어 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을 때 즈음 소리가 슥슥 제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파들파들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 웃었다.
“미안. 소리가 너무 알아듣기 힘들게 말했지?”
“괜찮습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 드릴 테니 서두르지 마세요.”
“안 돼.”
“……?”
“모두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걸.”
내 제안을 거부한 소리가 콧등을 찡그렸다. 울음을 그치기 위해 하는 행동인 듯했다. 그 모습이 차태양이 자주 하는 습관과 똑 닮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가족끼리는 닮는다더니.”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리와 나눠 마실 국화차 한 잔을 우려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아, 물론 해랑을 달래서 문양 속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 사고를 치면 수습할 길이 없어.’
티스푼에 덜어 준 차를 홀짝이던 도깨비가 뜬금없이 물었다.
“그런데 여긴 뭐 하는 곳이야?”
“제 작업실입니다.”
“히야, 김 서방 출세했네!”
“출세라. 하하,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그래도 밤중에는 쉬어야지! 너무 열심히 일하면 병 난다?”
가볍게 오가는 대화 덕분에 얼굴이 밝아진 것도 잠시. 이어지는 나의 말에 소리가 다시금 시무룩해졌다. 차태양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온 건 아니고요. 차, 음. 태양이한테 줄 선물을 준비하느라 잠시 들렀습니다.”
“……태양이가 들었다면 엄청 좋아했을 텐데.”
“선물 때문에요?”
“아니, 그거 말고. 태양이라고 불렀잖아, 방금.”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였으나, 오랜 세월을 살아온 도깨비는 단번에 내 변화를 짚어 냈다.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황갈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였다.
“직접 만나서도 꼭 그렇게 불러 줘.”
답하지 않았으나, 소리는 개의치 않았다. 오가는 시선 사이, 나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리라.
아주 잠시간 침묵이 흐르고, 드디어 도깨비가 본론을 꺼내었다.
“김 서방. 우리를, 도깨비들을 도와줘.”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응. 아주, 아주 무서운 일이 생겼어. 옛것들은 당해 낼 도리도 없는 무자비한 놈이 나타났어.”
“무자비한 놈이요?”
형체가 있는 적을 지칭하는 듯한 단어였다. 도깨비처럼 신비한 생명체가 또 있는 것일까? 해태며 주작, 기린 따위의 전설 속 동물들이 절로 떠올랐다.
소리는 내 되물음을 묵살하고 화제를 건너뛰었다. 답하기 싫다기보다는 그 역시도 알지 못하여 말해 주지 못한다는 기색이었다.
“전보를 듣고 갔을 때는 이미 늦었어.”
“태양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대였단 말입니까?”
“태생의 문제지. 태양이는 미래를 허락받았지만, 결국엔 과거에 뿌리를 둔 아이니까.”
알아들을 수 있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설명이었다. 의문을 표하는 내 모습이 웃겼는지, 소리가 배시시 웃었다.
“현세의 일은 현세의 이가 해결해야 하는 수밖에 없어. 결자해지란 말 알지?”
뜻을 아는 단어였으나, 나는 쉬이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일들이 엮여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으니까. 감히 관여해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윽고 뻗어진 작은 손이 나를 이끄니.
“어서 와, 김 서방. 옛것들의 보금자리에.”
누구를 어떻게 구원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기꺼이 소리의 손을 맞잡았다.
***
“내가 알려 주는 길은 마니산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길이야!”
소리가 함허동천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냐 물으며 통통, 제자리에서 뛰었다. 어젯밤 보았던 가라앉은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쾌활한 모습이었다.
운전 중이 아니더라도 과묵한 윤수호에게 답을 바라는 것은 아닐 거고. 원수처럼 여기는 이강토에게 호응을 바라는 건 더더욱 아니겠지. 그렇다면 나나 이 사람한테 하는 말이란 건데.
“인근의 절을 중수한 승려의 이름을 딴 바위가 있다죠?”
“맞아! 역시 김 서방은 영민하다니까!”
“과찬이십니다.”
능숙하게 소리의 말을 받아친 한차현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런 것까지 알고 있다니. 고고학 전공자치고도 박학다식했다.
“어젯밤에 연락받고 부랴부랴 찾아봤어요.”
“아, 어쩐지…….”
“학부 때 현지 조사를 온 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가호 씨 덕분에 몇 년 만에 다시 오게 되었네요.”
“휴일을 허비하게 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서운한 소리 말라며 한차현이 손사래를 쳤다. 밤늦은 시각 부탁을 받아 끌려온 사람답지 않은 태도였다.
지난밤, 소리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곧장 한차현에게 연락했다. 우리 셋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규모의 사건이 아니란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거절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차현은 흔쾌히 동행하겠다고 나섰다.
“별거 아닌 일로 절 부를 리 없다는 걸 알아요.”
“…….”
“후배님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하고요. 저희 소중한 파티원이잖아요.”
내 미안함을 덜고 싶은지, 일부러 길게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괜히 부정해 봤자 그를 번거롭게 하는 일만 될 것 같아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덕분에 한숨 놨다.’
최근 들어 나름대로 윤수호와 이강토를 다루는 법을 터득했지만, 한차현만큼 능숙하지는 못했다. 내겐 다정한 도깨비인 소리도 제멋대로 사고를 치곤 하니. 그의 합류는 전력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10분 뒤 도착이라는군.”
이강토가 제 간식을 훔쳐 먹든 말든 운전에만 집중하던 윤수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른 시각에 출발해서인지 예상보다 빨리 목적지가 가까워졌다.
“태양이랑 가족들은 꼭대기의 참성단에 있어!”
“꼬, 꼭대기? 뭐가 좋다고 그런 데 있는 거예요?”
“음습한 김 서방한테는 비밀이야!”
“지금 저, 저 무시하세요?”
소리와 이강토의 유치한 말싸움이 마무리되었을 무렵, 우리는 산 아래 위치한 주차장에 도착했다.
“평일인데도 차가 많네요?”
하차하자마자 한차현이 뱉은 말이었다. 그가 지적한 대로 윤수호의 자가용 외에도 주차장에 세워 둔 차가 제법 있었다. 아주 많은 것은 아니었으나, 평일 아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하긴 했다.
“저, 저희도 이 시간에 여기 있잖아요.”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대수롭지 않은 것 같다는 이강토의 의견과 소리의 재촉에 등이 떠밀린 우리는 이내 주차장을 벗어났다.
선선한 가을 날씨,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등산로를 걷자니 상황에 맞지 않게 평화롭단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는 별달리 할 일도 없으니 괜찮겠지.
대화나 하며 올라갈까 싶어 내내 궁금하던 것을 어깨 위의 도깨비에게 물었다.
“도깨비 분들이 지금 하필 마니산에서 머물고 계셨던 이유가 있습니까?”
“으음, 간단해. 여기만큼 기운이 좋은 산도 없으니까.”
“기운이 필요한 일이라도 있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그런 줄 알았지.”
도깨비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단서를 주지 않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정상에 있는 이에게 들으란다. 아마도 차태양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돌아가야 할 큰 바위도 풀쩍 뛰어넘는 각성자들뿐인 일행이다. 거기다 훌륭한 길잡이까지 있으니 해발 500m가 되지 않는 야트막한 산은 금방 정상을 보였다. 기껏 챙겨 온 생수며, 간식 따위가 무색하리만큼 빠른 도착이었다.
“이제 저기만 넘으면 돼!”
생각했던 것보다 이르게 도착한 것이 반가운지 소리의 음성이 높아졌다. 손끝으로 방울을 슬쩍 쓰다듬어 주고는 발을 뻗었다. 아니, 그러려 했다.
“잠시.”
“저, 저건 누구죠?”
윤수호와 이강토가 나와 한차현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들의 시선은 정상 부근의 단, 그러니까 차태양과 그의 가족들이 있다는 참성단에 꽂혀 있었다.
“헌터들이다. 숫자는…….”
“일곱.”
기감을 세우니 그제야 내게도 느껴졌다. 전투를 앞선 헌터들 특유의 날 선 기운이 피부를 찔러 왔다. 무의식적으로 활을 소환할 정도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나는 태양이고, 여섯은 낯설어. 다들 B급은 넘는 듯한데.”
좋지 않은 징조였다.
B급 이상의 고위 헌터가 여섯. 이는 즉 대형 길드가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수준 높은 조합의 파티란 말이다.
‘위험해.’
우리는 본능의 경고에 쫓기듯, 허겁지겁 정상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