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53
제53화
14. 폭풍우 치는 밤 (1)
“포션을 매개로 인챈트라니. 그런 게 가능합니까?”
[아이템 정보나 확인해 보렴.]칼리아가 코웃음 치며 명령했다.
각성 포션에 차태양의 피를 섞은 액체에 정보창이 뜬다고?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황록색 액체가 담긴 병을 쥐었다.
[불꽃의 고동(A): 뛰어난 장인이 진두지휘하여 만든 해주 아이템]
두 액체를 섞었을 뿐이건만 본 적도 없는 A급 아이템이 되다니. 놀란 기색을 알아차린 칼리아가 키득거렸다. 차태양에게 정보창을 공유했다.
[솜씨를 좀 부려 봤단다. 이거라면 가능하겠지?]“언니, 정신! 정신 차리세요.”
“……칼리아, 도대체 어떻게!”
[후후, 편법을 좀 썼단다.]차태양의 피를 가공할 때 손을 좀 썼다며 칼리아가 덧붙였다.
마도식을 알려 준 건 칼리아지만 구현은 내가 했다. 뭔가를 하는 것 같은 낌새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감사 인사는?]“감사합니다, 칼리아. 덕분에 길이 생겼어요.”
[별말을. 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한 일 인걸.]포션이 아니라 해주 아이템이라면 매개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칼리아의 말마따나 앞으로는 내 차례이다.
“특수효과를 뽑아내는 게 맘대로 될진 모르겠지만.”
인챈트의 요령을 깨달은 후에도 내가 특수효과를 붙이는데 성공한 것은 단 한 번. 최권영의 장비를 강화했을 때뿐이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말이다.
[시간 없다지 않았니? 어서 해 보렴.]“마음의 준비 좀 하고요.”
내가 실패할 거란 생각은 티끌만치도 하지 않는 칼리아가 나를 재촉했다.
여기서 실패하면 그대로 히든퀘스트가 끝난다. 성공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숨이 차올랐다. 관성처럼 체념하고 싶단 생각이 치밀었다.
‘지치셨습니까?’
‘그럴 리가요.’
이 타이밍에 왜 하우스에서의 대화가 떠오르는 걸까. 찬물이라도 끼얹어진 듯 정신이 차려졌다.
그래, 내가 줄곧 선망해 오던 일이다. 이 정도 담력도 없으면 헌터 관둬야 한다.
병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한결 풀어진 내 표정을 본 차태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인벤토리 내에 있는 아이템 중 어떤 것이 가장 적합할지 가늠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인벤토리에서 원반을 꺼내 내려놓았다.
[제피로스의 원반(C)]“이걸로 하겠습니다.”
[괜찮은 선택이구나.]봄바람을 불러오는 제피로스의 이름을 단 아이템.
기나긴 동면으로부터 바다사람들을 깨워야 하는 이 상황에는 이것만 한 게 없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칼리아.”
“인챈트!”
신경을 집중하고 두 아이템의 회로를 파악했다.
원반 쪽은 크게 복잡하지 않았다. 문제는 불꽃의 고동이었다. A급치고 지나치게 복잡했다. S급 아이템인 만파 못지않을 정도였다.
내 의문을 기민하게 알아챈 칼리아가 설명했다.
[저 아이의 피가 들어갔잖니. 그 어떤 아이템보다도 복잡한 것이 살아 있는 생물의 마나로드야. 이건 필요한 부분만 정제해 내서 그나마 간소화된 거란다.]“윽, 이게 간소화된 거라고요?”
[원래는 이-렇게 복잡하지!]허공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회로가 번쩍 나타났다. 시스템과 비견할 정도로 복잡하고, 아이템과는 다르게 종잡을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의 회로였다.
한 사람의 플레이어 안에 이렇게 많은 매듭이 있다니. 아이템 같은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노릇이라지만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이 모든 데이터를 수용하는 세계탑은 도대체…….
[구경 다 했지?]칼리아가 말하기 무섭게 회로가 종이 접히듯 착착 접혀 작아졌다.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원반과 약병에 신경을 기울였다.
[‘제피로스의 원반(C)’에 적용할 효과를 선택하세요.– 선천 : 역전의(B), 흔들리는(D)
– 후천 : 불씨(A), 심장(A), 그을음(C)]
등급만 봤을 때는 나쁘지 않았다.
A급 효과에 특수효과가 붙어 있기를 기도하며 상세 설명을 확인했다. 제발, 제발…….
“있어요?”
“……없습니다.”
몇 번을 위아래로 훑어 가며 확인해 봤지만 없었다.
확률이 낮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요즈음 계속 운이 좋아서 이번에도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다. 세계탑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그때 설명창의 한구석에 그려진 회로에 시선이 닿았다. 시스템에서 예측하는 회로였다. 보통 이것을 가이드 삼아 회로를 짰다.
“저게 원래 저랬었나?”
여태까지는 잘 몰랐는데 저 회로 뭔가 어설프지 않아?
칼리아가 만든 수준 높은 회로들을 봐서 그런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시스템에서 제시한 회로가 엉성하다니.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여긴 이렇게 하는 게…….”
홀린 듯 손을 뻗어 설명창에 그려진 회로를 수정했다. 칼리아가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으나 잘 들리지 않았다.
목적에 맞게 선을 뜯어고쳤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정석대로 그려지긴 했으나 참신함 넘치는 칼리아의 회로에 비하면 어설펐다. 마도공학 스킬 랭크가 무색하게 까막눈이었던 처음에 비해 나도 안목이 높아진 걸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획을 그었다.
그리고 동시에 처음과 비슷하지만 다른 팝업이 떠올랐다.
[‘제피로스의 원반(C)’에 적용할 효과를 선택하세요.– 선천 : 역전의(B), 흔들리는(D)
– 후천 : 봄(A), 심장(A), 그을음(C)]
내가 손을 댔던 A급 인챈트, 불씨가 봄으로 바뀌었다.
기대로 부푸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추가 설명을 확인했다.
[인챈트 ‘봄’(A) : 성공확률 37%– 마력, 민첩 수치가 대폭 증가합니다.
– 명중률 수치가 소폭 증가합니다.
– 체력, 근력 수치가 소폭 감소합니다.
– 낮은 확률로 특수 효과가 부여됩니다.]
됐다! 순식간에 밝아진 얼굴을 보고 도깨비가 신나 콩콩 뛰었다.
왜일까 스킬에 의존하지 말라던 스승님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칼리아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나를 칭찬했다.
하지만 아직 긴장을 풀긴 일렀다. 인챈트가 끝날 때까지는 방심해선 안 된다. 이 극악무도한 스킬이 잡아먹은 아이템이 몇 개던가.
“아, 제물!”
뒤늦게 제물을 떠올리고 인벤토리에서 C급 아이템을 꺼냈다.
‘이걸 잊어버렸다니. 큰일 날 뻔했네.’
이것으로 원반이 파괴될 확률은 없어졌다. 전 같았으면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C급 장비를 턱턱 쓰지 못했을 테지만 길드 좋다는 게 뭔가.
제물로 마음의 안정을 찾은 뒤, 원반에 손을 얹었다.
“인챈트 ‘역전의 봄’을 적용.”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천 효과도 선택했다. 특수효과가 붙지는 않겠지만, 해주 아이템과의 합이 좋은 식이었다. 상승효과를 기대해보자.
손끝에 마나를 얇게 뽑아내 마도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는 관에 담겨있던 액체의 특성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환상과 동결의 식을 파훼하는 식을 만드는 거다.
시간이 촉박했다. 손을 분주히 움직여 식을 완성했다.
[그만하면 됐네. 아, 거기 벌어진 곳만 좀 메우고.]칼리아에게 최종 확인을 받은 뒤 완성된 회로 위에 손을 얹었다.
챠르릉!
마력을 불어넣으려던 그때, 승강기 쪽에서 맑은 금속성이 들렸다. 바다사람을 경매에 올리기 위해 온 사람들 같았다.
“벌써 도착한 건가.”
차태양이 어깨를 눌러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나를 도로 앉혔다.
“저긴 제가 해결하고 올게요.”
“태양이한테 맡겨 두라고! 김 서방은 얼른 하던 거나 마저 해!”
딸랑!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도깨비가 도르륵 승강기 앞으로 굴러갔다. 차태양이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내가 저를 바라보는 걸 느꼈는지 차태양이 안심하라는 듯 휘휘 손을 저었다.
“알겠습니다. 부탁드리죠.”
“네!”
기대에 부응해야겠네. 어깨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것이 퍽 기꺼웠다. 웃음을 흘리며 회로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동시에 승강기의 문이 열렸다.
“뭐야!”
“실례하겠습니다!”
“야호, 태양이가 나가신다! 거기 못된 김 서방들 길을 비켜라!”
뒤에서 몸싸움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뒤를 돌 수 없었다.
찬란한 빛 대신 튀어나온 메시지 창 때문이다.
[인챈트 ‘역전의 봄’에 실패했습니다.] [실패 페널티 발생! ‘제피로스의 원반(C)’을 대신하여 ‘바람산의 귀물(C)’이 파괴됩니다.]곧이어 발생할 폭발에 대비해 팔로 얼굴을 가렸다.
실패라니.
성공할 확률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지만 이런 순간에……!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땅속으로 파고들어가던 나를 건져 올렸다.
[누구 맘대로!]바다사람 최고의, 아니 이 계층 최고의 장인, 세계를 빚는 연금술사 칼리아가 시스템에 불복할 것을 선언했다.
모노클에서 뜨끈한 열기가 올라왔다. 천천히 팔을 내렸다.
동시에 시스템을 구성하는 회로가 범람하듯 작은 방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회로 이곳저곳에서 스파크가 일고, 초 단위로 식의 구조가 변했다.
그에 응답하듯 수 개의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파괴와 실패가 적힌 자리가 채워졌다 비워지기를 반복했다.
[가호, 나만 믿으렴!]이곳에 칼리아는 없건만, 어쩐지 나를 지키고 선 칼리아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섭리에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연금술사의 본분이지!]노이즈 낀 메시지들의 전장에서 승리한 것은 칼리아였다.
칼리아의 승리를 알리는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인챈트에 성공했습니다!– 특수 아이템, ‘역전의 봄(A)]
빛을 발산하는 청보랏빛 원반을 집어 들었다.
[역전의 봄(A)“그리고 비로소 긴 기다림을 가르고 봄이 찾아왔으니.”
: 뛰어난 장인이 만든 해주 아이템.
: 모든 종류의 저주와 오염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 과도한 간섭으로 아이템의 원형을 잃었습니다. 소명을 다한 뒤 파괴됩니다.] [어때, 내 솜씨!]
“칼리아!”
[으음, 너무 무리했나 봐.]짧은 투정을 마지막으로 칼리아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모노클 역시 강제로 해제되었다.
화들짝 놀라 인벤토리를 확인하니 열네 번째 밤에 과도한 간섭으로 봉인되었다는 설명이 추가되었다.
[페널티 기간 : 149:59:50]다행히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칼리아.”
대상을 잃은 감사 인사를 읊조리며 뒤를 돌았다.
장정 셋을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한 차태양이 허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도깨비가 으스대듯 발치로 굴러와 쩔렁였다.
“김 서방, 하던 일은 잘 끝났어?”
“예, 덕분에요.”
차태양에게 원반을 건넸다.
급한 불은 껐다지만 서둘러야 한다. 너무 지체되었다간 이상을 느낀 선주 연합에서 또 사람을 보낼 것이다.
“저는 관에 걸린 술식을 풀겠습니다. 차태양 헌터는 관을 선반에서 꺼내 액체에 걸린 술식을 해제해 주세요.”
“넵!”
회로를 조작해 술식을 해제하면서도 곁눈질로 차태양 쪽을 살폈다. 칼리아가 그렇게까지 했으니 분명 성공하겠지만 직접 보지 않으면 불안이 가시지 않을 것 같았다.
차태양이 아까 술식을 풀어둔 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거침없이 원반을 쥔 손을 액체 안에 집어넣었다.
아이들이 지독한 꿈에서 얼른 깨어나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