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21
20화 레이더명가 막내아들 (4)
재현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이재상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그를 보았다.
들려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선배한테 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투자하는 거예요. 투자가 어디 쉽나요. 실패할 때도 있고 그런 거지.”
어째서인지 심장이 반복해 빠르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평생 살면서 지금과 같은 신뢰를 받아 본 적이 있던가?
지금까지 이재상은 레이더 명문 이가(家)에서 태어나 끊임없이 고통받아 왔다.
다른 형제보다 전투 재능이 부족하고 겁이 많았기 때문에.
또 자신을 낳아 주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갖은 이유로 그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일생을 살아왔다.
덕분에 타인에게 기대를 받는 것은 이재상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늘 무시당했고, 비교당하는 게 일상이었던 그에게 재현은 다른 말을 해 주었다.
실패해도 된다.
그 말이 이재상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들어 놓았다.
이재신과 이가(家)는 이제껏 자신에게 실패란 용납되지 않는 것이라 가르쳤다.
다른 사람들을 아래에 두어야 한다고. 항상 돋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민재현은 어떻게 했는가?
자신에게 투자하겠다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또 자신이 블랙 마켓에서 판매한 물약도 훌륭하다고 칭찬해 주었고.
“약. 만들어 주실 거죠?”
재현이 사근사근하게 물어왔다.
이재상은 재현이 자신에게 해 주었던 말을 되새기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남에게 기대를 받는 것이 이제까지 부담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느낌이 달랐다.
어쩐지 나쁘지 않은 두근거림.
곧 이재상의 얼굴이 처음으로 풀리며 결의에 찬 눈빛을 쏟아냈다.
“해해, 해 볼게…… 하, 한번 만들어 볼게, 비약.”
“고마워요. 선배. 저도 매일 와서 들릴 테니까 시킬 일 있으면 언제든 시키세요. 그러고 여기.”
재현은 이재상에게 자신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죽 찢어 내밀었다.
“이거 제 번호예요. 혹시 필요한 장비나 아이템이 더 있거나, 아까처럼 양아치 새끼들이 까불면 연락주세요.”
재현의 말에 이재상은 감동하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하하하, 하지만…… 그, 그랬다가 네가 지지지, 징계라도 받으면…….”
“괜찮아요. 어차피 그 양아치들도 형을 괴롭혀서 징계 사유는 충분하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걱정 마세요. 절 신고하면 자기들도 징계받을 각오를 해야 할 텐데…… 밀레스 아카데미가 들어오기 얼마나 어려운 곳인데 걔네가 그런 위협을 무릅쓸 리 없잖아요. 그리고.”
이재상은 재현의 영악한 면모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재현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덧붙였다.
“저한텐 믿을 만한 빽이 있거든요.”
* * *
한편, 그 시각.
연무장 벤치에 앉아서 쉬던 유성은은 코가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코끝을 타고 올라와 안쪽을 건드리는 치명적인 가려움에 결국.
“엣취!”
“대표님, 혹시 감기라도 걸리신 겁니까? 재채기를 다 하시고.”
박성재는 급히 안주머니의 손수건을 꺼내 내밀며 말했다.
유성은은 받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한 번 더 엣취, 하는 소리를 냈다.
그녀는 맹맹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그냥 재채기인 것 같아요.”
“하하. 누가 대표님 욕이라도 하는 모양……일 리가 없죠. 하하…….”
흠칫, 어느새 자신을 노려보는 유성은의 따가운 눈초리에 박성재는 빠르게 말을 바꿨다.
하지만 이미 늦었는지 유성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박성재의 팔뚝을 힘주어 꼬집었다. 힘을 뺐다고는 하지만 무려 S급 레이더의 꼬집기.
박성재는 아픔을 참으며 게슴츠레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유성은의 눈치를 살폈다.
“제가 욕먹을 짓을 되게 많이 했다는 것처럼 들리네요. 안 그래요?”
“아앗, 그게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유성은은 박성재를 뒤로한 채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마력을 끌어올렸다.
간만에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박성재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번엔 이틀은 가시겠군…….’
박성재는 식은땀을 흘리며 오늘 저녁 메뉴는 뭐로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고로 대부분의 여자는 먹을 것에 약한 법이니까.
* * *
이재상의 연구실에서 나온 재현은 포털을 타고 다시 서울에 도착했다.
그런 뒤 연화 길드에서 어쩐지 우물쭈물 하고 있는 박성재와 유성은을 만났다.
대련은 두 시간 정도로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몸은 거의 녹초가 된 상황.
하지만 재현의 입가에는 힘든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올라간 입꼬리는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재상은 어떻게든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좋은 출발이야. 포션 셔틀로 굴려 먹으면 딱 좋겠어.’
유성은에 이어 또 하나의 큰 도움이 될 만한 패를 손에 넣었다.
‘유성은이 현재를 책임져 줄 인맥이라면 이재상은 훗날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역시 내 언변 솜씨는 죽여준다니까.’
재현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이재상을 공략해 원하는 것을 얻어낸 것은 ‘칭찬’이 결정적이었다.
명문 가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나 천대받는 게 더 익숙한 이재상에게 칭찬이란 아주 귀한 것이었으니까.
재현은 그런 이재상의 빈틈을 노렸다.
“미리 블랙 마켓에서 이재상이 만든 포션을 사 두길 잘했단 말이야.”
일전에 나이트 셰이드와의 조우 직전에, 재현은 블랙 마켓에서 이재상이 제조한 하급 마력 회복 포션을 구매했다.
일반 오픈 마켓에서 구매하면 적어도 100만 원은 넘게 줘야 하는 포션이, 블랙 마켓에서는 절반 값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재상의 포션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데다 특히 더 저렴했다.
오늘 이재상에게 보여 준 것은 그때 사용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포션이었다.
물론 구입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이재상에겐 아버지인 이재신과 달리 레이더의 재능이 전혀 없었지. 각성은 했지만, 일반인보다 조금 나은 정도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들을 그렇게 내치다니…….’
이재신과 이가(家)의 사람들은 이재상이 레이더로서의 재능이 없자 냉정하게 내쳤다.
밀레스 아카데미에 입학시키는 것까진 도움을 주었지만, 그 외 지원은 일절 끊어버린 것이다.
혈육이었던 아버지와 누이, 형제들은 모두 등을 돌렸고 이재상은 돌아갈 곳은 없어졌다.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된 셈.
그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이재상은 자신의 재능을 찾았다.
연금술.
포션과 약재를 다루며 그는 전에 없던 강렬한 희열을 느꼈다.
연금술사는 비록 전위에서 마수를 상대하는 직업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생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직업이었다.
이재상은 공격하고 상처 입히는 것보다 상처 입은 이들을 치료하는 게 더 좋았다.
그래서 지금도 가문 몰래 연금술을 공부하는 중이었고.
‘역시 사람을 공략하는 데는 빈틈을 건드리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니까.’
덕분에 재현은 이재상이라는 새로운 인재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에 마음만 잘 맞는다면 돈을 벌어 연금술 상점이라도 차려 줄 요량이었다.
물론 수익은 5대5로 하는 조건으로.
‘돈을 싹 다 쓸어 담을 수 있겠구만.’
청사진을 그리며 앞으로 분주히 걸음을 내딛던 재현의 발걸음이 일순 멈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근의 마지막 코너에 걸린 골목.
그곳에서 재현은 뜻밖의 인물과 조우할 수 있었다.
검은 양복과 선글라스를 낀 네 장정의 모습.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재현을 둘러싸며 물었다.
“네가 민재현이냐?”
재현이 곧바로 대답하지 않자, 그들은 품에서 마도구를 꺼내기 시작했다.
명백히 적의를 드러낸 행동.
하지만 재현은 품에서 마도구를 꺼내는 이들을 보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보내 줄 것 같진 않고…… 안 그래도 피곤한데 귀찮게.’
재현을 포위하듯 둘러싼 네 사람은 그를 향해 단검을 뻗었다.
재현이 코웃음을 쳤다.
‘D급 무투계 장비인가…… 저런 거로 밀레스 아카데미 생도를 잡겠다고?’
물론 아직 예비이긴 하지만 재현은 이미 웬만한 생도보다 훨씬 강하다.
당장 오늘 오후만 하더라도 이재상을 도우며 한 살 많은 생도를 손쉽게 이겼고.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들은 덩치만 더 크고 성인이라는 것 외엔, 그들보다도 더 약했다.
각성자이긴 하지만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미미한 수준.
그러니 재현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게 당연한 것이다.
한숨을 한 차례 내 쉰 뒤, 재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소리쳤다.
“거, 길을 막으면 어쩝니까? 길 전세 낸 것도 아니고. 좋게 말할 때 비키시죠?”
“혀, 형님. 듣던 대로 한 성깔 하는 꼬맹이인 모양입니다.”
“그, 그러게나 말이다. 선재 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미친놈이구만!”
선재 형님?
그제야 재현은 어떤 이가 이들에게 자신을 공격하라고 사주했는지 깨달았다.
유선재.
유성은 대표의 동생이자, 얼마 전에 자신과 시비가 붙었던 놈.
그때 시끄럽게 굴어서 한 대 때려 준 게 전부인데 이런 사람들까지 고용하다니.
“유선재 그 새끼 진짜 찌질하게 구네. 그거 한 대 맞았다고 조폭을 보내다니. 애새끼도 아니고.”
“우리 의뢰인을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배짱 하나만큼은 좋은 꼬맹이군.”
귀찮은 듯 머리를 긁적이는 재현을 보며 선두에 선 남자가 소리쳤다.
“당장 조져 버려!”
쌔액!
단검이 공기를 가로지르며 재현의 어깨와 다리를 집요하게 노려 왔다.
하지만 재현은 눈을 굴리며 피식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참나. 이렇게 느려서야.’
재현은 네 명의 공격을 연달아 모두 피해낸 뒤 주먹과 발로 반격했다.
양아치 일행이 기겁하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크흡! 아직 애새끼인 주제에……!’
‘대체 어떻게 이런 속도로 공격을 하는 거지?’
급소를 노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타격.
“크헉!”
“컥!”
“컥!”
“케헥!”
쿵! 쿵! 쿵! 쿵!
벽에 처박힌 조폭들이 저마다 다른 곡소리를 뱉어내며 신음을 흘렸다.
재현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저들 또한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각성자라 할지언정, 밀레스 아카데미의 입학생과 비교될 급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밀레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평범한 각성자와 궤를 달리하니까.
적어도 일반인이 가진 마력의 수십 배 이상은 가지고 있는 게 정상인 집단.
그게 밀레스였다.
“조폭을 보낼 거였으면 현직 레이더 정도는 됐어야지.”
유선재의 간사한 얼굴이 구겨질 미래를 떠올리며 재현이 비릿하게 웃었다.
재현은 쓰러진 네 명 중 조금 전 자신의 공격을 지시한 이에게 걸어가며 물었다.
“야. 네가 대장이지? 한 가지만 묻자.”
“큽. 저, 저리 가! 우리가 네 말에 순순히 따를 것 같…… 컥!”
재현은 원하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그에게 발길질을 시작했다.
퍽! 퍽! 퍼걱!
연속으로 이어지는 무차별적인 공격.
약 10분. 어느새 남자의 몸은 걸레짝이 다 되어 너덜너덜해 졌다.
재현은 정확히 2분 정도 더 남자에게 발길질했다.
그러자, 남자 쪽에서 손바닥을 뻗으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그만! 다 말할게. 다 말할 테니까 제발 그만 때려!”
“말할게?”
“……말하겠습니다. 그만 때려 주십시오.”
사뭇 정중해진 어투에 재현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매가 약이지.’
어차피 무고한 사람을 공격한 것도 아니고 자신을 손봐 주려던 조폭이다.
굳이 상황을 봐주며 적당히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물론 여기서 적당히 두들겨 준 다음 경찰에 넘기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터.
하지만 재현은 좀 더 재미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바닥에 쪼그려 앉으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선재. 그놈한테 날 밟아 주고 받기로 한 돈이 얼마냐?”
“그, 그게…… 한 사람당 600만 원입니다.”
“생각보다 꽤 많은데?”
재현은 순수히 감탄했다.
고작 중딩 하나 때려잡겠다고 2,400만 원을 태운 유선재에게 경외감까지 들었다.
“넷이면 전부 2,400…… 뭐 나쁘진 않네.”
그리곤 발을 남자의 가슴에 턱 올리며 재현은 말을 이었다.
“너흰 오늘 작전에 성공한 거다. 유선재에게 그렇게 보고해. 그리고…….”
재현의 얼굴이 일순, 탐욕에 물들었다.
“2,400만 원. 한 푼도 남김없이 나한테 다 가져와. 그럼 살려는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