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368
368화. 각인술(刻印術)(3)
드워프의 왕.
다렌의 알현실은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애초에 드워프들의 왕국이라고는 해도, 스바르탈페임 중 극히 일부만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재현은 다렌을 보면서도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도 대적자 신분으로 저들을 도우러 온 것이니, 굳이 저자세를 취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 판단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나는 드워프의 왕 다렌이다. 그대가 반 에시르 세력이 인정한 대적자라 들었다.”
그는 재현의 태도에도 전혀 불경함을 느끼지 않고 그렇게 운을 뗐다.
어쩌면 흑발바닥이 인간의 예법은 싹 다 저런 식입니다―라고 해버린 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왕한테도 인사한답시고 달려들어야 하나?’
재현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대적자다. 뭐, 그놈들이 멋대로 그렇게 부르는 거지만.”
“그래서 내게 원하는 것은 각인술이라고?”
“그래. 너희 드워프들도 이미 알고 있다시피 오딘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너희의 힘이 필요하….”
“그건 허락해줄 수 없다.”
재현의 눈썹이 미묘하게 올라갔다.
아무래도 이 드워프는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단전 끝으로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어째서지?”
“이번 전쟁에서 이긴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다렌의 말에 재현의 숨이 대번에 갑갑해졌다. 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렌.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겁니까?”
“물론이다. 헬의 분신이여. 오랜만이군.”
“반가운 인사를 할 때는 아닌 것 같군요.”
헬라의 대답은 싸늘하기만 했다.
당연하지. 저런 식으로 다짜고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니.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기는 알고 하는 이야기인지 의심스러웠다.
“왜 내게 각인술을 해 줄 수 없다는 건지 말해라.”
재현은 그래서 마력을 개방하며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하다면 적당히 무력시위라도 해 줄 생각이 있었다.
과거 엘프들의 왕국에서 라스를 설득할 때도, 그런 방법을 썼었지.
때로는 남을 설득할 때 무력만큼 확실한 것도 없었다.
“아무리 그렇게 나온다 해도, 나는 그대의 제안을 들어줄 수…….”
“이유.”
재현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을 굴렀다. 지반이 진동하며 굉음이 쏟아졌다.
재현의 고압적인 태도에 다렌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지. 나는 오딘이 두렵다. 그리고… 너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
그 말에 헬라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다렌이 계속해 이었다.
“1만 년 전에도 너희는 말했다. 전쟁에서 확실히 승리할 테니, 장비 제작과 각인술의 힘을 빌려달라고. 그렇게 하면 반드시 아스가르드를 몰락시키겠다고 말이야.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지?”
“그래서 시도하기도 전에 주저앉겠다?”
따지자면 처음 스미르가 했던 이야기와 결이 비슷했다.
당시 그는 아버지인 흐룽그니르의 죽음을 눈앞에서 직접 목도했다. 그 충격으로 주저앉아버렸고,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재현은 거기서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때는 티끌만 한 희망에 불과했지만, 이제 스미르는 재현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듯했다.
자신을 증명하면 앞의 드워프 역시 재현에 대해 다시 생각할 테니까.
재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마력을 거두며 말했다.
“나는 그 고집쟁이 거인인 스미르의 인정도 받았다. 너도 한 번쯤은 믿어보는 게 어때? 손해 볼 장사는 아닌 것 같은데.”
“로키조차 하지 못한 일이다. 하물며 나약한 인간이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다렌은 현명했다. 흑발바닥과 달리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이름부터 정상이라는 게 그 증거였다.
재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무력으로 제압해야 하나? ……하지만 그 방법은 최악의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나도 결국 오딘과 똑같은 짓을 하게 되는 거니까.’
저들의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애초에 드워프는 약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1만 년 전에 반 에시르 세력을 지지해주었다.
하지만 그게 실패로 돌아갔다.
또한, 그 지옥 같은 전쟁은 그들에게 삶의 터전을 잃게 했다. 다크 엘프들의 공격으로부터 더 깊은 곳으로 숨게끔 만들었다.
고로, 저들로서는 당연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사실, 이런 지하에 처박혀 한참이나 있다 보면, 누구든 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재현은 다렌의 완고한 태도에 팔짱을 끼며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믿을 거지?”
“무엇을 말하는 건가?”
“어떻게 하면 날 믿고 드워프들의 힘을 빌려줄 거냐고 묻는 거다.”
“…그건 결코 인간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재현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스스로 한계를 짓기로 했으니까. 그래서 너희가 이런 구덩이 같은 좁아터진 곳에 처박혀 있는 거 아닌가?”
“감히…! 너희 때문에 피로 죽어간 우리 동포들을 욕되게 하는가…!!”
왕의 두 눈이 이글거리며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는 약했으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선대 왕들과 동족들을 향한 힐난을 듣고 참을 정도로 마음까지 나약한 건 아니었다.
재현은 계속해 이었다.
“알아뒀으면 좋겠는데. 나는 네가 말했듯 인간이다. 격을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 1만 년 전의 전쟁 따위 내 알 바 아니야.”
사실 그건 거짓이었다.
재현은 지금까지 무수한 이들의 죽음을 보았다. 1만 년 전, 스러져갔던 수많은 목숨들을.
안타까웠고, 때로는 스스로의 나약함을 절감하며 계속된 고통 속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당시 재현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지금의 자신은 과거의 전쟁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이는 재현의 평소 성정을 생각해 볼 때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이었다.
“첫 번째 전쟁 당시에 반 에시르 새끼들이 더럽게 약했던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나는 그냥 내 개인으로서 너에게 묻는 거다. 어떻게 하면 나를 믿을 건지.”
“…….”
다렌은 두 눈을 감고 잠시 침묵했다. 그의 긴 수염이 축 늘어진다.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눈앞의 인간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조금 전 자신이 만든 희대의 역작을 부수었던 자가 바로 저 대적자가 아닌가.
또한, 자신의 무기를 박살 낼 정도라면 적어도 해방 3단계를 아득히 넘어서야만 한다. 아마 대적자는 그 경지를 뛰어넘은 상태겠지.
그것도 인간의 몸으로, 채 1년이 되지 않아서 말이다.
조금은 믿어볼 만할지도 모른다. 몸에 두르고 있는 아티팩트만 해도 그랬다.
그것만 해도 척 보기에 그가 강하다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었으니까.
또한 아무리 드워프들이 땅굴에 처박혀 있다고 해도, 토르의 두 아들. 모디와 마그니가 죽었다는 것은 들어 알고 있었다.
그를 죽인 게 대적자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는 무엇을 할 수 있지?”
“당장 오딘은 못 죽이겠지만… 그래. 나머지는 네가 원하는 걸 뭐든 들어주지.”
재현은 자신 있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의 표정은 한 치의 거짓조차 없는 듯 거침이 없었다.
“좋다. 한 가지 내기를 하지.”
“내기?”
“드워프들의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준다면 나도 너희를 돕겠다. 다시 한번 믿겠다. 어떤가?”
“…드워프의 땅이라면….”
서이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헬라가 그녀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스바르탈페임… 그곳을 모두 되찾아 오라는 이야기에요. 너무 과한 요구군요.”
그녀가 입술을 짓씹었다.
현재 스바르탈페임의 가장 드높은 곳에 있는 자는 다름 아닌 다크 엘프들이었다. 과거 재현이 그 아홉 왕 중 하나를 처치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는 고작해야 9왕에 불과했다.
왕은 위로 갈수록 더욱 강해지며, 1왕은 거의 해방 3단계에 다다르는 수준이었다.
헬라는 한시가 급한 때에, 그런 적을 상대하라 말하는 다렌의 의도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재현은 태연했다.
“너희는 땅을 되찾고, 우리는 너희의 힘을 빌리고… 뭐 서로서로 괜찮은 계약 같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
“…나는 네가 간다면 언제든 힘이 돼 줄 거야.”
서이나가 가장 먼저 답했다. 다른 동료들 역시 고개를 끄덕여왔다.
김유정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뭐… 너 혼자 가는 것보다는 우리가 함께 가는 편이 좋겠지.”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주겠다. 다렌, 말을 바꾸진 않겠지?”
재현의 말에 다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들의 왕으로서, 또 선조들의 이름을 걸고 이 내기에 응할 것이다. 또한 네가 성공한다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네게 충성할 것을 맹세하지.”
“뭐, 충성까지는 필요 없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자리를 박찼다. 뒤돌아서는 그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아무 조건 없이 드워프들이 자신들의 부탁을 들어줄 리 없다 생각했으니까.
조금이라도 날로 먹을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하나, 그럼에도 재현은 귀찮긴 했지만,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과거 다크 엘프들이라면 상대해 본 적이 있기도 했고, 쓸 만한 칭호도 있었다. 또한, 동료들 역시 신격을 얻어 그 수준이 꽤 높아져 있었다.
그때 상대했던 9왕 정도의 적들은 이재상을 제외하면, 개개인이 상대해도 어렵지 않을 터였다.
“…잠깐 기다려라.”
그렇게 재현이 돌아선 순간. 다렌이 잠시 재현을 불러세웠다.
* * *
다렌은 눈앞의 대적자를 보며 마음속 깊은 곳 안에 감춰져 있던 한 과거를 떠올렸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자신의 가족과 선대에 관한 이야기였다.
드워프들의 선왕(先王).
쿠린이라 불리는 자가 있었다.
당연했지만 그는 용맹했고, 신의를 저버리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던 이였다. 그래서 반 에시르에 가담했다가 죽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동포와 함께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다렌은 어린 시절부터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절대 강하지 않은 약자의 편에 서지 말아라. 그것은 동족을 죽게 할 뿐이니.
네가 왕이 되고자 한다면, 동족의 안위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지 말아라.
다렌은 비겁하지만, 그 말이 옳다 여겼다.
선대는 허무리하리 만큼 간단히 적에게 제압당했고, 죽어버렸으니까.
자신들의 땅을 다크 엘프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일까?
눈앞에 있는 대적자는 믿고 싶어지는 자였다.
그는 자신을 믿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실은 가장 나약한 종족인 인간일진대.
다렌은 생각했다.
그에게 아무리 비범한 재능이 있었다 해도, 지금처럼 강해지는 데는 스스로의 노력과 지옥과 같은 단조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쇳물을 붓고 모양을 잡은 장비를 계속해 두드리는 것처럼, 자신을 계속해 두드리며 그 아픔을 참아냈을 것이다.
덕분에 지금처럼 어엿한 벼려진 검이 될 수 있었던 거겠지.
잠시 고민하던 다렌이 판단을 내렸다. 그를 한 번 시험해 보기로.
정말 자신의 말을 지킬 수 있는 자인지 확인하기로 말이다.
“…네가 내 의뢰를 받았으니, 나도 네게 선금을 주겠다.”
“선금?”
“그래. 네 무기 중 가장 자주 쓰는 것을 꺼내 내게 보여라. 내 각인술을 보여주지.”
재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런 식으로 무기의 각인을 얻게 될 줄은 몰랐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렌은 자신을 시험하고 싶은 것뿐이라는 것을.
허나, 피할 이유는 없었다. 어찌 됐든 재현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 아티팩트를 꺼내 앞에 다렌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는 동료들이 예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아티팩트였다.
그들이 당황한 신음을 터뜨렸다.
“…왜 하필 많은 것 중에서 그걸…?”
동료들의 말에 재현이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