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1
40화 신입생 사냥 (10)
―액티브 스킬 《절대 연산》을 발동합니다.
―정신 조작계 마법 《세뇌》를 파괴하시겠습니까?
청량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재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파츳……!
곧 안호연의 이마에 얹은 손으로부터 생명력을 머금은 짙은 마력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솨아아아아…….
마력은 빠르게 방사(紡絲)되어 그의 얼굴을 완전히 덮었다.
가느다랗게 뻗어간 마력의 실이 안호연의 머리를 감싸더니, 이내 그에게 걸린 《세뇌》의 연산식에 개입한다.
잠시 후.
콰직, 하며 유리를 밟는 듯한 소음과 함께 다시금 반투명한 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서브 퀘스트 《세뇌 마법에 걸린 생도를 구하라!》를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으로 블랭크 카드가 지급됩니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목소리가 전해 오는 메시지.
재현은 깊은숨을 토해내며 안호연의 몸이 꿈틀거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잠시 후.
마법의 잔해가 걷혀가기 시작했다.
백색으로 물들었던 풍경이 서서히 잦아들더니, 아공간의 무인 카메라가 제 기능을 되찾아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여기서 내가 가진 스킬을 다 공개하는 건 독이야.’
재현은 조금 전 《플래시 봄》을 발동해 구자인의 시야를 교란했다.
자신의 EX급 스킬인 《절대 연산》을 공개하고 싶은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진 패는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숨겨 둔다.
레이더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밀이 많은 편이 훨씬 유리했다.
‘특히 《절대 연산》은 전투에서 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스킬이다. 그런 걸 구자인에게 보여 줄 수는 없지.’
“으으…….”
머릿속을 정리하던 와중.
쓰러져 있던 안호연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놀라운 회복력이군. 쓰러진 지 30분도 안 됐는데, 벌써 일어날 줄이야.’
재현은 순수히 그의 신체 능력에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서이나와 안호연은 군계일학. 타고난 재능이 달라.’
괴물들만 모인다는 밀레스 아카데미에서도 두 사람은 단연 최고의 재능이었다.
타인의 동경을 한 몸에 받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천재.
재현은 정신을 차린 듯 몸을 일으키는 안호연을 향해 덤덤히 물었다.
“정신이 좀 드냐?”
“으…… 너, 너는?”
풀려 있던 초점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는다.
잠시 휘청거리던 안호연은 제 눈앞의 재현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여긴…… 악몽의 숲?”
“정확히는 그 근처. 참고로 말하자면 넌 갑자기 날 공격하다가, 된통 얻어맞고 쓰러져 있는 거고.”
“……뭐?! 내가 널 공격했다고?”
안호연은 깨질 듯한 두통을 견뎌내며, 조금 전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목소리.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어. 그러더니 몸이 뭔가에 씐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여서…….”
그의 말에 재현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별거 아냐. 정신 조작계 마법에 걸려서 그렇게 된 거지.”
“……내가 마법에 조종당해서 널 공격했다는 거야? 하지만…….”
안호연으로서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타인의 몸과 마음을 조종하는 변화계 마법의 랭크는 매우 높다.
최소 B급 이상. 웬만큼 쓸 만한 스킬은 대부분 A급을 넘어가는 게 정상인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인가?
C급 이하의 스킬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특수 설계된 아공간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재현이 언급한 상위 스킬을 사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기다.
‘애초에 생도들 중에서 그런 고위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리 없어.’
안호연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재현을 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
재현은 귀찮아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다른 존재가 이번 신입생 사냥에 개입한 거다. 생도들은 감히 어떻게 해 볼 수조차 없는 거물이 이 게임을 조작한 거지. 뭐, 목적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재현은 괜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끝에 그런 말을 덧붙였다.
안호연은 눈을 끔뻑이며 되물어왔다.
“……그가 어떤 존재인지. 어째서 신입생 사냥에 개입했는지. 넌 알아?”
“아니.”
재현은 곧바로 대답했다.
여기서 구자인 이사장이 일을 벌였다고 백날 말해 봐야 소용없다.
어차피 이어지는 이벤트를 연이어 겪다 보면 안호연 역시 그의 본성을 알게 될 것이다.
굳이 지금 겁을 줄 필요는 없겠지.
지금은 무엇보다 두 사람이 멀쩡하다는 것과 재현이 조금 전, 새로운 블랭크 카드를 손에 넣었다는 게 중요했다.
‘때마침 잘됐어. 이러면 또 하나의 상위 스킬을 베낄 수 있게 된다.’
재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한편, 안호연은 고개를 숙인 채 사색에 잠겼다.
그는 조금 전의 상황을 반추하며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정신을 잃은 직후.
그의 머릿속에는 민재현을 공격하라는 맹목적인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달콤하면서도, 정신을 갉아먹는 듯한 기이한 감각.
덕분에 안호연은 이지를 잃고 몸의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민재현을 발견하자마자 공격했고, 심지어는 규율을 어기고 A급 스킬을 남발하기까지 한 것이다.
하지만.
죽일 기세로 덤볐음에도, 결코 그는 재현을 이길 수 없었다.
‘……이게 지금의 내 한계인가.’
안호연이 다리에 힘을 실었다.
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미안해. 넌…….”
“됐어. 난 멀쩡하니까. 다친 곳도 없고. 오히려 네가 한 대 맞아서 좀 아플 거야.”
“아냐. 이 정도는 금방 회복할…… 컥!”
몸을 추스르던 안호연이 기침을 하며 무릎과 허리를 굽혔다.
재현은 머쓱한 얼굴로 콧등을 긁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너무 세게 때렸나?’
안간힘을 써 다시 몸을 곧추세운 안호연이 가볍게 목례를 해 왔다.
“고맙다. 자칫하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간지럽게. 됐어. 어쨌든 이 정도면 너도 괜찮겠지. 어차피 지금 아웃된다고 해도 점수는 충분히 벌어 뒀을 테니까.”
“에이. 점수는 네가 훨씬 더 높잖아. 100만 점을 넘기다니. 대단하던데?”
재현의 말에 안호연이 손사래 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애들은 잘하고 있으려나.’
재현은 두 사람이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스템 창을 불러왔다.
현재 집계된 그의 포인트는 130만.
‘그래도 두 사람이 잘해 주고 있는 모양이네. 빨리 나도 합류해야겠어.’
재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주머니에 손을 넣은 뒤 몸을 돌렸다.
“그럼 난 가 볼게. 남은 시간 동안 잘 해보자.”
건조한 말에 안호연이 다급하게 재현의 손목을 붙잡았다.
“자, 잠깐만! 이거 받아.”
그는 재현에게 자신이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건넸다.
재현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재현이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안호연이 자신에게 건넨 물건을 바라보았다.
그는 덤덤한 어투로 이었다.
“명찰이 없으면 게임에서 아웃돼.”
“상관없어. 어차피 네 말대로 점수도 이 정도면 꽤 많이 쌓았으니까. 그리고.”
아주 짧은 찰나, 안호연의 눈동자에 호승심이 어렸다.
“난 졌어. 룰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어. 졌으니까 이건 네 거야.”
“하…….”
재현은 의외의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분명 안호연은 성정이 유약한 데다, 겁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타입은 결코 아니었을 터인데.
안호연은 자신의 다짐을 공고히 할 요량인지, 목에 힘을 주며 이었다.
“이번엔 졌지만…… 다음엔 아냐. 그땐 내가 이길 거니까. 그러니까 주는 거야.”
“그게 생명의 은인한테 할 소린 아니긴 한데…… 뭐 잘해 보든가.”
안호연에게 의외로 오글거리는 구석이 있구나 싶었다.
재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안호연이 내민 명찰을 받아 들었다.
고작 1만 포인트의 가치밖에 없는 물건.
그러나.
그가 재현에게 명찰을 건네기 위해 했던 짧은 고민에는 그보다 더한 가치가 있을 터였다.
‘아마 안호연이 말하는 다음은 《밀레스 학원제》.’
거기서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다시 맞붙게 될 것이다.
재현은 생각했다.
과연 그때도 지금처럼 안호연에게 이길 수 있을까?
잠시 후. 들려오는 청량한 시스템 음이 이번 전투의 결과를 알렸다.
―플레이어 ‘안호연’이 아웃되었습니다.
―플레이어 ‘민재현’, ‘서이나’, ‘김유정’팀에게 1만 포인트가 가산되었습니다.
안호연의 몸이 반투명하게 물들더니, 이내 아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재현의 입가에 의미가 분명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손에는 조금 전 안호연에게 건네받은 명찰이 있었다.
고작 1만 포인트가 올랐을 뿐이다.
하지만 재현의 온몸은 드높은 고양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선망하던, 무투계의 별이라 불리던 재능. 안호연.
그런 이가 자신에게 명찰을 내밀고 패배를 인정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이제 시작이라…… 이건가?”
처음으로 자신이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우그, 해골 병사, 나이트 셰이드…… 다양한 적을 상대하고 승리해 왔지만, 그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다.
약해 빠졌던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분주히, 그리고 한 걸음씩.
재현은 안호연이 사라진 자리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약 두 시간.
재현은 다시 한번 재학생의 명찰을 빼앗기 위해 걸음을 뗐다.
* * *
―72시간 동안의 이벤트 ‘신입생 사냥’이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현실 세계로 전송됩니다.
―습득 포인트를 가산합니다.
―153만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역대 최고점을 경신했습니다.
지이이잉…….
전송 마법의 소음과 함께 아공간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한다. 쩍 벌어진 심연이 입을 다물고, 둘러진 마력이 느리게 흩어진다.
제한 시간이 모두 흐른 것이다.
재현은 안호연과의 결전 후 일행과 빠르게 재회했고, 더 많은 재학생의 명찰을 빼앗았다.
마지막 날인 덕분에 쉘터를 버리고 나온 신입생들을 사냥하기 위해 나선 재학생이 많았다.
덕분에 세 사람은 적지 않은 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하며 1위를 굳건히 할 수 있게 되었고.
‘신입생 사냥’에서 이들은 역대 최고점인 114만 점을 경신하는 데 성공했다.
153만.
이들이 최종적으로 얻게 된 포인트였다.
무투계 레이더 여섯으로도 결코 이뤄낼 수 없던 업적.
물론 이러한 결과는 재현의 치밀한 사전 준비와 세 사람의 호흡이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재현은 랭킹 가장 높은 곳에 걸린 자신의 이름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153만이라……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것 같네.”
“야. 그래도 역대 최고점 경신인데 좀 더 기뻐하면 어디가 덧나냐? 이나야. 안 그래?”
김유정이 입을 쭉 내밀며 말했다.
서이나는 검지와 엄지로 턱을 쓸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한 시간만 더 있었으면 160만까지도 충분히…….”
“얘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네.”
김유정이 진절머리가 났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고생해서 얻은 최고점인데, 조금은 더 기뻐하는 게 정상 아닌가?
‘승부욕이 높은 것도 정도가 있지.’
김유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문득 뭔가 떠올랐다는 듯 재현을 바라봤다.
그녀의 입에서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보다. 이 정도 포인트면 당분간은 엄청 호화롭게 지낼 수 있겠지?”
“뭐…… 일반적으로 습득 포인트에 10을 곱하면 그게 원화랑 비슷한 수준이니까. 거의 1,530만 원 정도 벌었다고 보면 될 것 같은데.”
“……그, 그게 그렇게 큰돈이었어?”
서이나는 충격을 받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왔다.
재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덧붙였다.
“나는 1위. 너희는 공동 2위니까, 아마 추가 포인트도 주어질 거야.”
“응? 추가 포인트 같은 것도 있었어?”
김유정이 자신도 몰랐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물어왔다.
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100만 포인트였던가?”
“배, 백만?!”
일반적으로 밀레스 학원에서 주최되는 이벤트의 3위까지는 100만 포인트를 추가로 획득하게 된다.
재현의 말을 들은 김유정과 서이나가 서로를 마주 보며 놀란 얼굴이 되었다.
“이, 이제 부자야!”
“……응!”
두 사람은 감격한 얼굴로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 모습에 재현은 기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진짜…… 얘들아? 창피하니까 둘 다 제발 그만 좀 해 줄래?”
그렇지 않아도 1위로 이벤트를 통과해 다른 생도들의 주목을 받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눈에 띄는 오버액션까지 하다니.
재현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슬그머니 두어 걸음 물러섰다.
마치 두 사람과 같은 일행이 아닌 것처럼.
그리고 그때.
세 사람에게로 다가오는 한 남자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재현은 발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더니, 가볍게 입술을 물었다.
‘올 게 왔군.’
일행의 앞에 익숙한 얼굴의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석기.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가볍게 묵례해 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김석기 교관입니다. 왜 첫날 픽업 때 뵀던.”
“앗! 네. 교관님.”
“……안녕하세요.”
그제야 부둥켜안고 있던 두 사람이 떨어졌다.
김석기 교관은 그들을 죽 훑어본 뒤,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세 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곤란하고…… 자리를 옮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이야기. 저희가 이번에 ‘신입생 사냥’에서 얻은 포인트와 연관이 있습니까?”
재현이 날카롭게 물어왔다.
김석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가시죠.”
재현이 앞장을 섰다.
김석기와 일행이 놀란 눈으로 그의 뒤를 쫓았다.
서이나가 재현의 곁에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물었다.
“……저기……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들어보고 가는 게…….”
“이사장실.”
재현은 일부러 목청을 높이며 말했다.
그의 말에 김석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재현을 바라보았다.
재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틀렸습니까?”
잠시 정적이 흐르고.
김석기 교관이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며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맞습니다. 민재현, 서이나, 김유정 생도. 구자인 이사장님의 호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