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19
419화 되살아난 기억
재현은 일전에 파피가 신화급 경지에 오르면서 얻었던 스킬. 《되살아난 기억》을 사용할 적절한 타이밍을 고민하고 있었다.
일시적이지만 자신의 모든 격과 지식을 되찾게 해 주는 스킬.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단 한 번 전장을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뜻.’
이는 최적의 타이밍에 발동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재현은 파피를 마주 보며 말했다.
[파피, 잘 들어. 딱 한 번. 우리 동료들이 정말 위험해질 때, 지금 네가 새로 얻은 스킬을 사용해. 그리고… 꼭 내 가족 같은 동료들을 구해 줘. 부탁할게.]재현은 진심으로 그에게 말했다. 파피는 아직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 역시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재현이 자신이 사랑하는 무언가를 잃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는 것.
이는 파피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유정이 만드는 특제(?) 파이를 먹지 못하게 된다면? 그런 상황이 온다면 자신은 눈물을 훔쳐야 할 것이다.
그저 그뿐인가?
자신이 다가가기만 해도 권소율이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안호연이 두려움에 덜덜 떠는 얼굴도 못 본다.
이재상의 흥미진진한 표정도, 서이나의 따뜻한 시선도 이제는 아예 못 보는 것이다.
파피는 당시 주인의 의도를 모두 알 수 없었지만, 그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언젠가 주인의 동료들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자신의 격을 방출해 스킬을 발동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방아쇠처럼 그의 정신적, 육체적 제한을 해제하는 단 한 번의 기회이자 장치였다.
그리고 지금, 파프니르는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파프니르 2세》가 전용 스킬 《되살아난 기억》을 발동합니다.
―일시적으로 드래곤의 모든 기억이 해금됩니다.
미드가르드의 지천이 드래곤의 포효로 가득 차며, 전장의 모든 병사들과 재현의 동료들의 움직임이 일순 멎었다.
격을 지닌 지엄한 존재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힘을 지닌 종.
드래곤.
파프니르가 이곳에 아주 잠시지만 자신의 기억을 안고 현현했다.
“대체 이게 무슨…!”
프레이야를 상대하던 적군의 발키리들이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들은 위로부터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척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격에 의해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
재현의 동료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파피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편 붉은 드래곤이 하늘을 뒤덮는다. 재앙이 도래해 세계의 종언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포효가 지천으로 깔린다.
“…파피?”
서이나가 전투를 멈춘 채 넋이 나간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기서 오딘을 막지 않으면 모든 이들의 노력이 무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죽음과 전쟁의 비극을 막고자 한 주인의 노력 또한 한낱 치기 어린 꿈으로 남게 될 테지… 나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감히 너희가 내 주인의 앞을 가로막고자 한다면.]
파프니르가 노성을 터뜨리며 이를 갈았다.
[나 파프니르가 용족의 명예를 걸고 너희를 이곳에서 참회하게 하리라.]전쟁의 승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파프니르는 그렇게 말한 뒤, 날개를 쫙 뻗어 그로부터 막대한 격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마력이 수천의 투명한 실의 형태를 이루며 거미줄처럼 번져간다. 이 안에서 더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듯.
그는 충격적인 마력을 퍼뜨리며 암전돼 있던 세계를 다시 밝게 물들였다.
모든 것을 태울 듯한 새하얗고 맹렬한 불길이 세계를 뒤덮는다.
모습을 지켜보던 오딘의 발키리 부대가 경악한다. 프레이야는 그 찰나도 놓치지 않고 눈앞에 있던 발키리 대장 몇의 목을 베어냈다.
그야말로 경이로운 반응속도였다.
화르륵!
이어 거대한 백염이 적들의 생명을 서서히 흡수하며 타오른다. 이 불길에 휩싸인 이상 죽어도 헬헤임으로 향할 수 없을 것이다.
생명, 그리고 영혼 자체를 태워버리는 백염.
그저 아무것도 남지 않는 소멸을 끌어내는 게, 바로 이 새하얗고 찬연한 불꽃인 것이다.
“용용아…? 너 기억을 다 되찾은 거야…?”
김유정의 목소리가 공허히 전장에 울려 퍼진다.
파프니르 2세. 아니, 기억을 되찾은 파프니르가 싱긋 웃었다.
[작은 주인이군. 내게 항상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줘서 정말 고마웠네. 항상 이렇게 말로 인사를 전하고 싶었어.]김유정은 물론, 다른 동료들 역시 과거 신들의 보물창고 급습 이후 재현에게 이미 들은 적 있었다. 파피가 새로운 스킬을 얻게 되었으며, 이는 자신의 기억을 되찾는 거라고.
또한 파피는 과거 대단한 드래곤, 파프니르였다는 것까지.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기에 그들 역시, 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친했던 김유정은 파프니르의 변화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우리가 같이 있었던 기억도 다 잊어버리게 되는 거야?”
[그건 아니다. 그저… 그대가 알고 있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뿐이지. 우선 이 지옥 같은 전장에서 살아남아야겠지만.]김유정은 놀라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가 한 말의 의문점을 즉시 파악했다. 파피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한다.
모든 이들의 등줄기가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직감했다.
새로운 위험이 닥쳐오고 있다. 이 전장에.
[왔군. 오딘의 흑마법… 그것의 결정체가.]쿠구구구구…!
지축이 울리는 굉음과 균열을 일으키며 깨어지는 마력의 보호막.
수많은 마법계 레이더들로 구축된 식이 사그라들며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적 진영에서 몰려온 재앙.
그 정체는 놀랍게도 익숙한, 이미 처리했다고 생각했던 자였다.
“감히… 감히 이 토르를 죽음까지 몰고 가다니……! 더러운 거인 놈 주제에…!!”
“토르…! 어째서…! 너는 죽었을 텐데!”
안호연이 소리치며 즉시 청화 백검을 발동해 자신의 검에 푸른 불꽃을 둘렀다. 그가 가장 잘 다루는 스킬이었다.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자의 스킬로 눈앞의 초월적 격을 지닌 적의 재등장에 즉시 대비했다.
적은 아스가르드의 뇌신 토르.
그런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전원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김유정은 각종 보조 스킬과 소울 링크를 발동했고, 권소율 역시 주변에 덫과 갖은 도구들을 이용해 녀석이 쉽게 거리를 좁힐 수 없도록 함정을 팠다.
이재상의 포션은 이미 전 레이더들에게 나누어져 그들의 싸움을 보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 의문은 걷히지 않은 상태였다.
도대체 토르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파프니르가 의아해하는 동료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흑마법.
언젠가 재현과 반 에시르 멤버들에게 전해 들었던 게 기억이 났다. 인지의 영역을 초월해 있는 금기를 범하는 마법.
그것이 바로 흑마법이라고.
[눈앞의 토르는 오딘의 흑마법으로 부활한 상태다. 그것도 조금 전보다 더 강해진 채 말이지.]“어떻게 그럴 수가…!”
권소율이 이를 악물었다. 다른 이들 역시 기겁했다.
아무리 오딘이 마법에 능통하다고 해도, 망자를 되살리는 것은 논외의 경지였다.
그것은 명백히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나 버린 일이지 않은가?
차후 어떤 페널티를 입게 될지 모르는 일.
세계의 모든 지식을 파헤쳤던 오딘이 이를 모를 리 없을 터인데…….
도대체 오딘은 몇이나 이런 망자를 되살릴 수 있는 거지?
그때, 헬라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파프니르가 침착히 이었다.
[아무리 오딘이라 해도, 하나 이상은 불가하다. 나 역시 마법에 능통한 드래곤이기에 흑마법에 대해 잘 알지.토르… 저 녀석 하나가 한계야.]
물론, 설령 그렇다 해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부활한 토르를 혼자 처치할 수 있는 자는 없으니까.
헬이 입술을 짓씹었다.
‘스미르는… 이미 죽었어. 생체 반응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까. 그나마 우리가 유리했던 이유는 프레이야의 참전, 그리고 갖은 종족 연합의 힘 덕분이었다.
그런데… 토르가 전장에 합류하게 된다면 다시 이야기는 달라져.’
“지금부터는 2차전을 시작하자꾸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토르가 아군 진영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새로 부활해 체력까지 모두 회복된 그에게 전과 같은 페널티는 사라진 뒤였다.
과거 흐룽그니르가 그의 이마에 박아 넣었던 숫돌 조각이, 지금의 그에게는 아예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 5단계.
오딘과 로키에 다다르는 정점에 선 신이, 서서히 격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재현의 동료들을 비롯한 아군 병사들이 서서히 공포를 느끼더니, 이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다.
“준비하자.”
하지만 모두가 공포에 질린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은 자는 있었다.
권소율.
그녀는 재현이 없을 때 실질적으로 나인의 리더가 되는 인물이었다. 그리 강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되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았다.
제 동료들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독려하고, 그들에게 힘을 주는 것. 죽을 만큼 두려워도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
‘할 수 있어.’
권소율이 이를 악물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죽도록 두려웠고 숨이 멎을 듯했다.
적은 강했고, 그에 비해 자신은 너무나 초라했다.
허나 나아간다.
재현은 이미 그렇게 해오지 않았나.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곁에 있어온 나라면.
권소율은 그렇게 굳게 믿었다.
터벅. 터벅.
그렇게, 몇 걸음이나 뗐을까.
고작해야 몇 미터나 이동한 그녀의 뒤에 어느새 동료들이 따라 섰다. 이어 그들은 그녀의 곁을 나란히 걸었다.
그들은 생각했다.
얼마 전, 자신들이 한계까지 노력했기에 다다른 경지는 신격해방 3단계가량이다. 반면 적은 무려 해방 5단계. 자신들의 경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믿었다.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돌파구가 있을 거라고.
언젠가 재현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도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스미르의 죽음을 헛되게 해선 안 돼.”
김유정의 말이었다. 서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이겨야 해. 재현이를 위해서라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두 번째 페이즈로, 그 전쟁의 장이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 * *
재현은 긴 복도를 걷고 있다.
언젠가 오딘과 후긴이 대화를 나누며 걸었던 복도.
아스가르드의 한복판에 서로의 방을 잇고, 또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권력이라는 것은 때로 사람들을 끔찍이도 의심하게 만든다. 서로를 증오하게 하며, 필요할 때가 아니면 언제든 죽이게끔 유도한다.
재현은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거라 여겼지만, 적어도 자신은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재현은 수많은 힘의 격차에 의한 지독을 경험했고, 그 사이에서 겨우겨우 하루를 버텨냈다. 한데 권력에 도취해 모든 것을 망친다?
그건 그가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힘을 사용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그것을 구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전혀 의심치 않았다.
‘그나저나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어느새 기나긴 직사각형의 복도의 끝이 보인다. 재현의 발걸음이 멎는 장소. 그 끝에는 거대한 문 하나가 있었다.
특수한 마법을 겹겹이 두르고 있어 쉽게 들어가기 어려워 보이는 문. 하지만 재현에게는 문제가 아니었다.
절대 연산을 이용한다면 해결될 일이었으니까.
재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뒤, 마침내 문을 열기 위해 손을 얹었다.
이 앞에는 오딘의 옥좌가 있을 것이다.
세계 모든 것을 내려다본다는 흘리드스캴프와 어둠으로 가득 찬 너른 공간이 튀어나오겠지. 로키의 설명대로라면 틀림없었다.
“할 수 있다.”
스스로 최면을 건 뒤, 문을 쥔 손에 힘을 주어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기다려라. 대적자.”
어느새 배후를 잡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재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무방비한 척 등을 보인 이유는 간단했다.
적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에 거슬리기 때문이었다.
재현이 어느새 자신의 뒤를 잡은 남자의 뒤를 잡아 니드호그의 송곳니를 겨누었다. 그야말로 신속의 움직임이었다.
그의 입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후긴. 어째서 네가 여기 있지? 날 방해하기 위해서인가?”
재현의 검이 그의 그림자 속을 파고들었을 때였다.
“아니.”
후긴은 전혀 다른 답을 내놓은 것은.
재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내게 다른 용건이 있는 건가?”
재현은 기억하고 있었다. 헤임달을 후긴이 직접 죽였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오딘을 배신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재현이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이었다.
“너는 오딘을 배신했나?”
“배신이라….”
후긴이 드물게 말을 길게 늘였다.
“정확히는 아니다. 처음부터 나와 오딘의 목표는 달랐으니.”
“목표가 달랐다?”
“기억을 보여주겠다.”
후긴이 그렇게 말하며, 순간 마력을 퍼뜨려 재현을 집어삼켰다. 재현은 즉시 저항하려다가, 누군가의 첫 번째 기억의 재생과 함께 온몸이 싸늘히 굳는 것을 느꼈다.
저항할 수 없는 게 아니었다.
그저… 그가 본 기억이 터무니없는 것이기에.
그는 선 채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건 어느 까마귀의… 나의 기억이다.”
후긴이 그렇게 말했다. 재현의 두 눈에 과거의 한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과거.
아주 먼 태초의 시기에, 이그드라실에 거꾸로 매달린 오딘을 지켜보던 한 까마귀가 있었다.
아직 이름조차 없던 미물.
세계의 모든 지식을 손에 넣고자 하는 악신에 동화된 존재.
후긴.
그곳에는 후긴이 있었다.
재현이 가장 증오하던 자의 기억이, 그로부터 서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