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37
외전 4. 서이나(2)
재현과의 약속 몇 시간 전.
서이나는 옷을 고르며 데이트 일정을 가볍게 되짚고 있었다.
우선 가볍게 점심을 먹은 뒤, 카페에 들러 이야기를 하고.
재현이 자신의 마음을 정리했는지 확인한 뒤에, 노래방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그녀가 짜 둔 계획이었다.
“…재현이가 이 옷을 좋아하려나?”
서이나는 거울 앞에 선 채, 흰 블라우스와 H라인의 검은 스커트를 입었다.
소매는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약간 걷고, 유성은이 최근 선물로 준 흰 시계를 찼다.
머리는 생머리 그대로였는데, 며칠 전부터 열심히 관리한 결과.
윤기가 좌르르 흘러 자신이 봐도 예뻤다.
이목구비야, 워낙 뚜렷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화장을 짙게 하진 않았다.
피부 톤만 가볍게 보정하고, 볼 터치에 입술 정도만.
예전에 김유정이 알려준 화장법이었다.
서이나는 들뜬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다가, 겉옷으로 입을 블레이저를 잠시 내려놓은 뒤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유정이는 정말 괜찮은 걸까?”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기분이었다.
그녀 역시 재현을 좋아한다.
이 사실을 아는 그녀로서는 지금 순간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김유정은 자신의 소중한 친구였으니까.
그녀 역시 그렇게 생각해주었고, 함께 전장에서 싸워온 동료니까.
그런 그녀였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두 사람이었다.
때문에 지금껏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많은 것을 양보해왔다.
서이나도, 김유정도.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 김유정의 입에서 재현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녀는 결국 이를 거절하지 못했다.
못내 가장 먼저 재현과 자신이 함께 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뻤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생길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하기에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유정이는 그것도 이미 알고 이해해 준 거겠지.”
서이나는 김유정의 배려를 거절하지 못하고 만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후회하진 않았다.
왜냐면, 그녀는 그만큼이나 재현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서이나와 재현이 도착한 곳은 밀레스 아카데미 부지 내의 노래방이었다.
과거 한 차례 재앙이 휩쓸고 지나갔던 바로 그곳.
재현의 끔찍한 노래 실력이 탄로 났던 장소였다.
재현이 질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왜 하필 여기로…….”
“……싫어?”
서이나가 외투를 벗고 반쯤 접어 내려둔 뒤 재현을 보며 묻는다.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머리칼과 헤이즐넛 색의 두 눈이 청아하게 빛난다.
수려하다, 예쁘다. 같은 수식어로는 차마 다 급하고 사납지 못할 미색을 머금은 외모.
가장 아름다울 시기에 만개한 미소가 재현의 걸음을 저도 모르게 멈칫하게 만든다.
재현은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한 뒤,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과거 재현은 수치스러운(?) 노래 실력을 보여줬던 적이 있지 않은가.
가수와 작곡가에게 미안해해야 할 정도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왔으니, 동료들 사이에서도 그의 노래 실력만큼은 어떻게 커버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모두들 귀를 막을 뻔한 것을, 겨우 의리로 참아냈더랬지.
‘젠장, PTSD가…….’
사실, 고백하자면 재현은 진심으로 자신의 노래 솜씨가 중간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 딱히 들려줄 일이 없었으니 그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재현이 제 노래 실력을 깨닫게 된 것은 용기를 낸 안호연의 말 덕분이었다.
지나치게 솔직한 그가 재현에게 두어 대 맞는 것을 각오하고 진실을 알려준 것이다.
-재현아, 너 노래는 진짜……. 다른 건 다 해도 돼.
정치를 해도, 뭘 해도 되는데 제발 노래만큼은 어디 가서 하지 마.
-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요리도 안 돼! 그건 진짜…… 다른 사람들. 아니, 신까지 죽여버릴 거라고!
권소율이 그렇게 덧대었고,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김유정마저 한마디 거들었다.
-네 노래 듣고도 좋다고 하는 여자가 있으면 걔를 잡아야 돼. 그거 레알 찐 사랑이거든. 콩깍지 벗겨지기 전에 잡아야지!
덕분에 재현은 자신의 노래 실력이 얼마나 처참한지 알 수 있었다.
서이나는 재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이크를 꼭 쥐며 곡을 예약하는 중이다.
이제 몇 번 와 봤다고 꽤 익숙한 모습이었다.
과거엔 이런 곳에 함께 와 본 적 없어 어색해하던 서이나였는데.
‘……그러고 보면 이나도 많이 바뀌었네.’
재현은 새삼스레 지난날을 잠시 회상하며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차마 나가자고 이야기할 수 없어 입을 꾹 다문 것은 당연했다.
“……있잖아. 나는 원래 노래하는 걸 꽤 좋아했어.”
불시에 서이나가 문득 재현에게 건네오며 시작된 이야기.
재현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서이나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처음 재현에게 제 마음을 전했을 때.
김유정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정도를 제외하면, 그녀는 거의 동요하지 않았다.
천성이 그런 성격인 탓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작된 이야기는 아마 조금 다를 것 같다.
재현은 저도 모르게 직감했다.
서이나가 자신에게 꺼낼 이야기.
그것은 아마 그가 걱정하고 부분을 관통하는 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전에 아직 가족들이 살아계실 때, 모두들 내 노래를 좋아해 주셨거든. 물론 가족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고모와 함께 살고 난 이후부터 내가 노래를 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랬구나.”
재현은 그보다 적합한 말을 할 수 없어, 다만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가족을 잃은 고통은 회귀 전, 재현도 겪어보았지만…….
그건 지옥 그 자체였다.
‘아프다는 말로는 채 표현할 수 없었지. 그건.’
제 어머니의 싸늘한 주검을 마주했던 과거.
재현은 경악할 정도로 분노했고, 슬퍼했다.
하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소리친다고 해서, 자신에게 무엇 하나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미 늦어버렸다는 자각.
매일 꿈이었으면 하는 일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멎는 듯한 뜨거운 감정이 밀려왔다.
마치 거대한 해일이 이는 것처럼.
서이나도 같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심지어 그녀에게는 이를 되돌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은 노른 세 자매의 선택을 받았기에 이를 바로잡을 기회라도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그럴 순간이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애석한 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주어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재현은 그 사실에 못내,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감정을 느꼈을 거라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경험은 있다.
너무나 가깝게, 쉽게 그 일은 갑작스럽게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다만… 서이나는 그게 지나치게 빨랐으며, 최악의 형태로 나타났으니 더욱 안타까웠고.
‘이나…… 많이 힘들겠지. 가족을 잃고 외로운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재현은 서이나의 현재가 불운하다 느꼈다.
기껏 전쟁을 모두 종식시킨 뒤지만,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
가족의 품에 안겨 쉴 수 없으니, 그녀는 더더욱 괴로울 것이다.
지칠 때 쉬며 기댈 어깨가 없으니.
가족과 친구는 또다시 다르지 않은가.
아무리 동료들이 곁에 있다 해도, 그녀의 외로움은 쉬이 가시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홀로 살고 있는 그녀인 만큼 돌아가 홀로 침대에 누우면.
그 불 꺼진 천장과 벽지를 바라볼 때면, 그 외로움이라는 것은 사무치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법이다.
“……그런데 말이야.”
서이나가 상념에 잠겨 있던 재현을 깨우며 말했다.
재현이 고개를 들었다.
마이크를 쥔 손이 어느새 약간 떨린다.
그제야, 재현은 깨달을 수 있었다.
서이나는 전혀 울먹이지도, 슬퍼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저 자신을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며, 따뜻하게 웃어줄 뿐.
“…지금은 노래하는 게 다시 즐거워졌어. 왜인 줄 알아?”
투명하게 빛나는 피부.
위에 걸친 흰 블라우스와 검은 H라인 스커트가 눈에 띈다.
소매를 약간 걷어 올린, 작은 시계를 찬 모습이었는데.
재현은 사실 이렇게 서이나가 본격적으로 자신에게 어필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친구들의 장난이 아닐까.
자신을 좋아한다 말하는 그 이야기도, 애써 무시해왔던 감정마저도.
모든 것이 착각이 아닐까 생각해온 것이다.
잠깐의 치기 어린 감정일 뿐이라고.
사춘기 소녀의 쉬이 동요해버리고 마는 감정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틀렸다.
서이나는 틈을 주지 않고 이었다.
“바로 너 때문이야. 내가 다시 노래하는 게 즐거워진 건.”
재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서이나의 말.
그것은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통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자신이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나야.”
재현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
서이나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 뒤 마이크를 잠시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어 그녀가 서서히 재현의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느려진 듯,
그녀가 다가오는 순간이 재현의 뇌리에 느리게 각인되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뛴다는 것을 느낀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재현의 짚고 있던 두 손이 약간 떨려왔다.
그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금 뒷걸음질 친다.
하나, 서이나는 이번만큼은 다가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너도 알겠지만, 너 인기 많아.”
“그…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재현은 피식 웃으며 얼버무리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서이나는 오늘만큼은 넘어가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제 손으로 재현의 얼굴을 붙잡은 뒤 느리게.
하지만 확실하게 그에게 근접했다.
어느덧 두 사람의 숨결이 가까워져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즈음.
서이나가 다시금 이어왔다.
“……이건 비겁해서 안 하려고 했는데.”
서이나가 손을 뒤로 뻗어 노래방 기계를 터치했다.
어느새 흘러나오는 노래.
하지만 누구의 노랫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적막 속, 오직 흐르는 것은 달달한 로맨스.
고백을 위한 곡의 아름다운 선율뿐이었다.
“오늘은 좀 비겁해도 되는 날이잖아. 그치?”
이어진 서이나의 행동에 재현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맹렬히 뛰던 심장이 완전히 멈춘 듯, 이제껏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생경한 감각을 준다.
재현은 그대로 돌처럼 굳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서이나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 위에 그대로 포개어 졌기 때문이었다.
옅게 풍겨오는 풋사과 향이 재현의 애프터셰이브의 향과 섞이며, 묘한 감각을 내주었다.
신경이 마비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느덧 미칠 듯 두근거리던 심장이 조금씩 잦아들며, 재현은 멀어지기 시작한 서이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무릎 위에 앉아오며 키스했던 그녀가 멀어진다.
그럼에 따라, 되레 선명히 그녀의 이목구비가 두 눈에 담긴다.
놀란 재현을 바라보는 와중에도, 서이나는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건 유정이한텐 비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