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a Mobile From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49
55화.
예상대로였다.
강당에서 틀어주던 자료는 모두 무사했다.
제어실이 망가진다고 자료가 모두 불에 타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구나 저장장치가 CD였으니 제어실이 망가진 것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주크박스랑 비슷하네. 이걸로 여러 장 중에 골라서 틀어주는 건가?”
경훈이 CD기가 수십 장 들어있는 기계 앞에 서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우리 쪽 거하고 호환되는 거겠지?”
-같은 규격입니다. 기존 시디롬에 넣으면 됩니다.
“다행이네.”
콰직.
경훈이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을 부수고 CD들을 꺼냈다.
[헌터 무기술(검술편 기초) 1], [헌터 무기술(검술편 기초) 2],………
[마나 연공법 1], [마나 연공법 2],………
[헌터 체술 기본 1], [헌터 체술 기본 2],수십 장의 CD가 모두 훈련법들이었다.
-모두 헌터 기본 교육용 자료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괴물들과 싸우면서 체계화된 교육법이겠지. 맨땅에 헤딩 중인 지금 상황에서 제일 필요한 물건들이야.”
만족한 표정으로 CD를 챙긴 그는 반대편 비상구에 다가갔다.
경훈이 비상구 안을 들여다보고 혀를 찼다.
“전부 함정이네.”
비상구는 바닥이 수십 미터 아래에 보였다.
당연하게도 아래쪽 바닥은 쇠창살이 삐죽하게 나 있었고, 원래 바닥이었을 철판들이 쇠창살에 구멍 뚫린 채로 흔들거리고 있었다.
벽 곳곳에는 반쯤 드러난 총구와 화염방사기 구멍이 보였다.
지금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까 생각 없이 비상구로 들어왔으면 무척 위험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벼운 암벽타기에 불과했다.
경훈이 수직 통로가 되어버린 층계 안으로 몸을 날렸다.
턱. 턱.
벽에 돌출된 총구와 구멍, 곳곳에 난 흠은 훌륭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마치 파쿠르를 하듯이 벽을 밟으며 위로 올라간 그는 다음 층 문안으로 쉽게 들어설 수 있었다.
다음 층은 넓은 매트리스가 깔린 체육관이었다. 아쉽게도 체육관에는 남아있는 물건이 없었다.
“대련장 같은 건가?”
텅 빈 실내를 보고 입맛을 다시던 경훈이 구석에 있는 문을 보고 눈을 빛냈다.
[무기고]
묵직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문은 그가 가장 찾기를 원하던 곳이었다.
후다닥.
누가 훔쳐갈세라 번개같이 문 앞으로 달려간 그는 단검으로 잠긴 자물쇠를 내리쳤다.
서걱.
자물쇠는 쉽게 잘려나갔다. 경훈은 급하게 문을 열었고, 기쁜 얼굴이 되었다.
무기고 안에는 칼과 창, 방패와 석궁까지 다양한 무기가 들어있었다.
모두 문양이 새겨진 물건들이었다.
-아쉽게도 총기는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으니 따로 관리했을 게 분명합니다.
눈앞의 물건들도 각성자 손에 들어가면 총 이상의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겠지만, 어차피 각성자는 그 육체 자체가 무기였다.
-거기다 기본형 장비입니다. 마나석 세팅도 되지 않은 평범한 강화형일 뿐입니다.
그 정도도 경훈에게는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마나석 세팅이 되어 있으면 뭔가 달라지나?”
-강도 강화 이외에 추가 능력이 사용 가능해집니다. 이것부터 제대로 된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훈이 가지고 있는 권총도 그런 아이템이었다. 총안에 든 마나석으로 총알에도 마나를 남기는 아이템.
당연하게도 이곳에 있는 무기들은 마나석이 박혀 있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경훈은 기쁜 표정으로 무기들을 배낭에 넣었다.
이제껏 검 하나 단검 하나 들고 싸우던 그였다. 무기 종류별로 몇 세트씩 배낭에 담으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순식간에 무기고 안은 텅 비었다. 경훈은 배낭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담으면 오토바이는 가지고 돌아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만…….
이브의 말에 경훈은 움찔했지만, 그는 한숨을 쉬고는 건물 밖에 숨겨둔 오토바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어렸을 때 생각이나 타보았지만, 오토바이는 예상보다 훨씬 시끄러웠다. 역시 추억은 추억 속에 놓아두어야 했다.
“그럼, 다음 층으로 가볼까?”
경훈은 다시 수직 통로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윗 층은 제어실과 이어지는 크지 않은 강당이 있었다. 제어실이 무너져 내린 덕분에 벽 한쪽은 퀭하니 뚫려 있었다.
벽이 뚫린 것 말고는 평범한 작은 강당이었다.
하지만, 강당 정면 벽에 휘갈긴 글들이 적혀 있었다.
[늦은 각성자는 서울 공항으로 오도록. 대령 한경수]
맨 위에 글은 정자로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글 위로 두 줄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젠장! 서울 공항으로 가지 마라. 대전이 새로운 후퇴 집결지다.]
그리고, 그 아래에 급하게 쓴 것으로 보이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랫글을 쓴 사람이 윗글을 무시하라고 줄을 그은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걸까요?
이브의 말에 경훈이 어깨를 으쓱였다.
“모르지. 이미 오래전 일이라.”
각성자 훈련소도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경훈은 어느 정도 기대를 버렸다.
너무 시간이 지나버렸다. 지금 그는 그저 과거의 역사를 되짚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아봐야겠지. 어차피 대전으로 가려면 서울 공항을 거쳐야 할 테니까. 왜 가지 말라고 했는지 확인해 볼 수는 있겠지.”
무슨 일이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울 공항에 부대가 집결했을 가능성이 컸다.
“쓸만한 총이나 좀 있으면 좋겠는데….”
주위를 더 둘러보았지만, 이곳에는 더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경훈은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곳은 몬스터가 침입하지 않은 거대한 안전시설이었다.
“잘하면 여기를 내 창고로 쓸 수도 있겠어.”
-제어실을 다 부숴서 정상대로 가동하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건 천천히 하면 되지.”
경훈은 통로에 설치된 중기관총을 뜯어내며 이브의 말에 대답했다.
아쉽게도 이 총과 총알은 각성자 용이 아니었다. 하기야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으면 그 고생을 할 이유가 없었다.
경훈은 뜯어낸 기관총을 어찌어찌 배낭에 쑤셔 넣고 차원 문을 열었다.
아슬아슬하게 차원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훈은 마지막으로 돔을 돌아보고는 차원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별빛이 가득한 무중력 공간이 그를 반겼다.
하지만, 저 별빛 중에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그는 앞에 그어진 선을 따라 나아갔다. 원래 세상의 차원 문들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자취방, 공장, 각성자 협회, 휴전선, 홍콩…….
늘어난 차원 문들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경훈은 공장을 향해 이동하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취방 옆에서 흐리게 빛나는 차원문이 보였다.
처음부터 있었던 차원 문이었다. 다른 문과 달리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던 문.
여태 외면을 하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경훈은 묵직한 배낭을 확인한 뒤에 결정을 내렸다. 지금이 저 문을 확인하기에 알맞을 때였다.
문이 다가왔다.
경훈은 알 수 없는 문으로 뛰어들었다.
“어라?”
한껏 긴장했던 경훈이 눈을 껌벅였다.
부웅.
“비키지 못해! 길 한복판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지나가던 트럭 운전사가 경훈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경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채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차원 문을 열고 나온 곳은 평범한 지방 국도 한 가운데였다.
경훈은 길가에 서서 휴대폰 네비게이션을 확인했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이라고?”
그러고 보니 국도치고는 무척 꾸불거렸고, 지대도 높았다.
-저와 만나기 전에 이곳에서 출발하신 적이 있으셨던 겁니까?
“아니. 전에 말한 알 수 없는 문을 확인해 본건데……. 이상한 곳으로 왔네.
-아, 그 차원 문이 전에 말한 그곳이었군요.
경훈과 달리 이브는 차원 문을 구별할 수 없었다.
“한껏 긴장했는데, 이건 더 알 수 없게 된 느낌이야.”
경훈은 한가로운 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별다를 게 없었다.
굽은 대관령 옛길과 고지대의 너른 목초지만 보일 뿐이었다.
“뭐, 새로운 차원 문이 하나 더 생긴 거로 위안을 둬야 하려나
어깨를 으쓱이는 경훈에게 이브가 다른 고민을 안겨주었다.
-그보다 돌아갈 방법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설마…. 인터넷 콜택시가 여기까지는 안 와?”
다행히 택시가 오긴 했다. 몇 시간이 지나 밤에 도착하긴 했지만.
택시 운전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길가에 앉은 경훈을 바라보았다.
“젊은 사람이 한번 도전을 했으면 뿌리를 뽑아야지. 중간에 포기하면 어떻게 해.”
택시 기사는 경훈을 도보 여행을 떠난 젊은이로 보았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서울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한 경훈은 후다닥 샤워를 끝내고 창고에서 낡은 노트북을 꺼내왔다.
“역시 안 버리길 잘했어.”
-그냥 시디 드라이브를 하나 사면 될 것 같습니다만….
이브의 말을 무시하고 노트북에 코드를 꽂았다. 전원을 켜니, 시디롬에 불이 깜빡였다.
경훈은 배낭에서 CD들을 꺼냈다.
“자. 뭐부터 볼까.”
경훈은 뷔페 집에서 음식을 고르는 사람의 심정으로 CD들을 보았다.
★ ★ ★
다음 날새벽.
밤새 돌려진 노트북은 결국 탈이 나버렸다. 경훈은 아쉬운 표정으로 망가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슬슬 그만 보실 때도 된 것 같습니다. 각성자라고 해도 규칙적인 생활은 필요합니다.
이브의 말에 경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지. 실제로 확인해 봐야 해.”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경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혼자 해보는 것보다 다른 사람하고 같이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따로 동영상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서로 조언도 가능하고 대련을 할 수도 있으니 그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같이 할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 각성자 협회 사람들은 함부로 만나가기 어려웠다.
“운동 부족인 각성자가 한 명 있잖아. 안성맞춤이야.”
경훈은 위층에 전화를 걸었다. 이브가 작게 흉을 보았다.
-이 새벽에 전화하는 것은 민폐입니다.
몇 번 전화벨이 울리고, 상대편이 전화를 받았다.
-웨이…….
졸음이 섞인 중국어가 들려왔다.
“접니다. 경훈.”
-쉔마? 아니, 무슨 일이에요? 꼭두새벽에.
경훈의 말에 진샤웨이는 바로 한국어로 대답했다. 그녀는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한국어를 술술 말했다.
“나랑 아침 운동을 합시다.”
하지만, 그녀의 한국어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한참 동안 전화기가 조용했다.
-데이트 신청인가요? 예약자가 꽤 많은데요.
잠시 뒤, 전화기에서 한숨 섞인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운동도 예약해야 합니까? 좀 격렬한 운동이 될지 모르니 고려해 주세요.”
“어머. 그건 재미있는 말이네요.”
경훈의 말에 그녀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뭔가 오해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훗, 나갈게요.”
그녀의 웃음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 ★ ★
잠시 뒤 그녀의 웃음은 비명으로 변했다.
“아아악! 아퍼요!”
56화. < 나만의 전쟁(1)〉
“나 안 해요!”
진샤웨이의 목소리가 약수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부리나케 산 아래로 도망치는 중이었다.
"쯧쯧, 처음부터 무리하게 운동시키니까 여자가 도망가는 거야."
멀리서 힐끔거리던 아저씨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경훈이 작아지는 진샤웨이를 보며 턱을 긁적였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주인님과 그녀는 등급이 다릅니다. 주인님이 쉽게 해냈다고 그녀에게 바로 해보게 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그건 그런데…. 나중에 다른 각성자들도 배우게 하려면 확인을 해봐야 하잖아.”
어쨌거나 진샤웨이가 질겁을 하고 도망을 갔으니 이미 배는 떠난 뒤였다.
경훈과 진샤웨이는 아침 운동으로 오랜만에 북한산 약수터로 왔다.
전과 달리 산 아래까지는 차로 왔지만, 약수터로 올라올 때까지는 진샤웨이도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경훈과 함께 마나를 움직이는 훈련을 시작하자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동영상에서 본 내용대로 쉽게 마나를 이동하고 모으는 경훈과 달리, 그녀는 마나를 움직이는 데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이브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벌써 마나를 느낀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 마나를 자유 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온몸이 꼬이는 답답함과 고통에 결국 진샤웨는 도망쳤다.
진샤웨이가 떠나자 약수터는 그와 중년 남자 한 명만 남게 되었다.
돌연변이가 나온 뒤로 등산이나 산행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다. 북적이던 약수터도 이제는 사람이 거의 찾지 않게 되었다.
재미있다는 듯이 경훈을 바라보던 중년 남자가 다시 운동에 정신을 쏟았다.
모두가 위험하다고 해도 전과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가 시선을 떼자, 경훈은 자신의 주먹을 들여다보았다.
눈으로 보기에는 전하고 다르지 않았다. 빛이 나는 것도 아니었고, 주먹이 더 커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먹에는 몸에 흐르고 있던 마나가 담겨 있었다.
그동안 그는 마나를 특성에 쓰거나, 문양이 새겨진 아이템에 흐르게 했을 뿐이었다.
다른 사용법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니, 그 정도가 그가 활용할 수 있는 한계였다.
하지만, 동영상에는 다른 사용법이 들어있었다.
마나를 움직여서 육체 한곳에 모아 육체를 더 강화하는 법.
그는 주먹 쥔 손을 앞으로 내질렀다.
펑!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약수터를 울렸다.
“뭐, 뭐야? 어디서 대포라도 쏜 거야?"
운동하던 남자가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주먹질은 강화된 육체를 이용해서 빠르게 내지른 것이 아니었다. 손에 담긴 마나로 공기를 후려쳤을 뿐이었다.
"무협지에 나온 기공이라는 게 이런 걸까?”
남자는 알지 못했지만, 경훈은 공기를 울리는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가상의 기를 이용한 소설 말입니까? 개념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어차피 둘 다 몸속의 힘을 이용해서 전투력을 증가시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럼 나중에는 심검이나 이기어검술 같은 것도 되려나….”
-무리입니다. 그런 것은 가상의 기술일 뿐입니다.
하지만, 경훈이 쓰고 있는 마나도, 각성자들의 특성도 얼마 전까지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보였던 가상의 기술들이었다.
하지만, 경훈은 말대꾸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훈련하고 싶었다.
경훈은 철봉에 기대어 놓은 배낭을 메고, 숲으로 뛰어들었다.
"어, 그쪽은 등산로가 아니야! 요즘 같을 때 그리 가는 것은 위험해!”
뒤쪽에서 아저씨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경훈은 이미 숲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평온하다면 평온하고, 혼란스럽다면 혼란스러운 시간이 지나갔다.
진샤웨이는 그날 훈련 뒤로는 절대 훈련 비슷한 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 포션이란 것 분석도 그렇고, 주얼리 바를 세우려면 할 게 많아요. 필요한 것 있으면 전화 해요.”
대신 그녀는 새로운 직장을 위해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리고, 숨어 있던 각성자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와 각성자 등록을 하기 시작했다.
EV는 각성자 등록을 막지 않았다.
전자 발찌 같은 인권을 위협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주의하라는 조언을 했지만, 전처럼 강한 어조를 내세우지는 않았다.
"어차피, EV가 각성자 전원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판은 벌여놓았으니 다들 알아서 움직여야지.”
-어차피 커뮤니티와 초기 유통망은 장악했습니다. 큰 흐름은 계속 주도 할 수 있습니다.
이브의 말에 경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깊은 생각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브의 능력을 듣고 같이 만들다 보니 일이 커진 것 뿐이었다.
"뭐, 일이 편해지면 좋은 거겠지.”
옆 좌석에 앉아있는 나이든 신사분이 계속 혼잣말하는 경훈을 힐끔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경훈은 신사분에게 사과하고 앞 좌석에 붙은 TV를 켰다.
경훈은 지금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귀찮기는 하지만 최대한 많은 나라를 다녀야 합니다. 얼마 뒤에는 항공편을 이용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 전에 최대한 차원 문 좌표를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지금 이브가 말한 것이 이번 여행의 한가지 이유였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저쪽 세상의 기록에 따르면 오래지 않아 하늘을 나는 괴물들이 등장할 것이다.
높은 상공을 떠다니는 괴물들 때문에 비행산업은 오래지 않아 문을 닫게 될 것이었다.
미리 EV를 통해 세상에 알려도 되긴 하지만, 경훈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도 EV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다.
예언가나 회귀자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 모든 일을 일으킨 미치광이 과학자나 초능력자로 보는 사람도 상당했다.
어차피 닥칠 일. 괜한 의심을 살 이유가 없었다.
경훈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TV 화면에 집중했다.
[지리산에 벌어진 총격전이 미궁에 빠진 가운데, 각성자 협회에 가입하는 각성자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눈치를 보던 기업들도 본격적으로 각성자 유치에 나서고 있고, 백산 그룹같이 각성자 협회에 지원하겠다고 나선 기업들도 있습…….]뉴스를 들으며 경훈은 좌석에 깊게 기댔다. 주의의 시선 때문에 비즈니스석에 타게 되었지만, 아직은 이 정도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비행기는 터키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
미국 MRAP(무장 장갑 차량) 세 대가 황야를 달려가고 있었다.
차 안은 조용했다. 군인들은 굳은 얼굴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부대를 지휘하는 더글러스 대위는 뒷좌석에 앉은 손님이 탐탁지 않았다.
CIA에서 나온 자였는데, 깐깐한 표정이나 말하는 거나 영 재수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번 작전이 마음에 안 들었다.
정부군에 포위된 반란군 지역에 가서 사람 하나를 빼 오라니.
더구나 정부군은 러시아에 지원을 받고 있었고, 반란군도 미국과 연결되어 있지를 않았다.
완전 벽에 머리를 들이박는 꼴이었다.
"지원은 가능합니까? 이 인원으로는 구출은 무리입니다.”
중위의 말에 요원이 입을 열었다.
"목표를 찾으면 공중 지원이 있을 겁니다. 작전이 시작되었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중해에 항모가 대기 중입니다. 여러분은 목표를 찾아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차에 있는 모두가 요원을 바라보았다.
"갓뎀. 항모라니. 뭔 작전이 이리 거창해!”
네이비실 대원으로 여러 작전에 참여해본 그들이었지만, 항모를 동원한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더구나 이렇게 급하게 치루는 작전이라니.
"미리 작전을 말해주던가. 난 윗놈들이 우리를 죽이려는 줄 알았다니까."
다른 병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분위기가 조금 가벼워졌다.
하지만, 대위의 표정은 아직도 딱딱했다.
"항모까지 동원하는데 이런 식으로 작전을 진행하다니 이해가 안 됩니다.”
"보안 때문이었습니다. 웬만한 보안으로는 지키기 어려울 정도의 상대입니다.”
요원의 말에 모두 고개를 가웃거렸다. 미국의 CIA 요원이 보안으로 겁을 먹다니.
"설마, 러시아하고 레이스 중인 겁니까?”
"러시아도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대는 EV입니다. EV보다 빨리 각성자를 빼내야 합니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인터넷에서만 유명한 이름이 여기서 나올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떤 각성자길래…항모까지.”
대위의 말에 요원이 입을 열었다.
"그 각성자는…."
멀리 지평선에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앞 광야에는 정부군이 길게 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경훈이 높은 구릉에 서서 망원경으로 지평선에 흐릿하게 보이는 도시를 보고 있었다.
그는 비행기로 터키에 도착한 뒤에 차로 국경까지 이동한 후, 밤에 군인들 몰래 국경을 넘었다.
3m의 장벽과 열 감지 카메라가 국경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경훈을 막기는 무리였다.
그 뒤로 경훈은 시리아의 황야를 달려나갔다.
그전에도 인간 이상의 속도와 지구력이었지만, 마나를 활용하는 법을 습득한 지금은 더욱 빨라졌다.
뒤로 휘날리는 먼지를 보면 마치 오토바이 한 대가 황야를 질주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밤새 달린 경훈은 아침에 목적지인 이블리드 시가 보이는 언덕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훈은 도시를 보며 며칠 전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본 글을 떠올렸다.
시작은 진샤웨이가 올린 글과 비슷했다.
┗ 안네: 우리도 누가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무도 도와 주지 못하겠죠?
┗ ┗ 원 게시판이 하소연으로 덮이겠어.
┗ ┗┗ 어쨋거나 말은 들어봐야죠. 도움을 줄수 있으면 돕고요.
┗ 저는 XXX에 있는 각성자에요. 아직 어른은 되지 않았고, 우리 가족이 가지고 있는 타블렛 하고 위성 전화로 글을 올리고 있어요.
┗ ┗ 어딘데 위성 전화로 전화를 해? 남극이나 산속이야?
┗ 안네: 아뇨. 도시에요. 폭격에 부서지고 정부군이 포위하고 있어 통신이 안돼요. 밧데리도 먹을 것하고 바꿔서 겨우 보내는 거에요. 어른들이 전화를 쓰고난 뒤에 제가 우겨서 잠깐 쓰고 있는 중이에요
┗┗ 어, 거짓말이 아니라면 대충 위치를 알 것 같은데…..
┗┗ 설마 XXX냐. 젠장, 필터링 죽이네. 아무튼 거기라면 정말 도울 방법이 없겠다.
┗┗ 어떻게 해. 미안해. 이건 EV라도 힘들 것 같아…나도 돕고 싶지만 무리야.
┗┗ 젠장, 이런때에 전쟁이라니.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 안네: 저도 그 대장장이님처럼 능력으로 만든 물건을 다른 분께 드리고 싶었는데…. 각성자가 저혼자 있으니 이런 특성은 쓸모가 없어요.
┗ ┗ 어, 설마. 너. 그 특성.…
*EV입니다. 안네님과 대화를 진행하겠습니다.
┗ 어, 갑자기 관리자가
┗ ……..
경훈이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위치가 들켰겠지?”
-죄송합니다. 차단이 늦었습니다.
"뭐, 괜히 훈련한다고 전화 안되는 곳에 들락거린 내탓이지.”
이브가 미리 준비한 시스템이 차단을 하긴 했지만,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최대한 빨리 달려오긴 했는데. 우리 말고도 온 사람이 있으려나.”
-정보를 최대한 모아 보고 있습니다. 러시아쪽에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되긴 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뭐, 가보면 알겠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한참 전투중인 지역입니다. 솔직한 의견으로는 이번 일은 무시했으면
"걱정마. 이쪽은 내 전문분야야.”
경훈이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57화. < 나만의 전쟁 (2)〉
이블리드 시는 과거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았다.
도시는 파괴되었고, 도시 외각의 건물은 무너진채로 적을 막는 바리케이트가 되었다. 바리케이트 뒤에서 반란군들은 지친 얼굴로 정부군 진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얼마 뒤에는 밀고 들어올 것 같지?”
"글쎄다….”
시의 서쪽 건물 옥상에서 두 반란군 젊은이가 정부군 진지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차라리, 후딱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사명인데 마지막까지 버텨봐야지.”
동료의 말에 모하마드가 뒤를 돌아보았다.
파괴된 도시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우리야 그래도 식사는 하고 있지만,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다르잖아. 그들은 지금 지옥에 있는 것 같을거야."
모하마드의 말에 동료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쩌겠어. 수시로 폭탄이 떨어지고 치안도 예전에 절딴 났는데, 지금 병력으로는 도시를 방어하기도 부족해. 따로 병력을 보내서 관리하기는 무리야.”
"누가 뭐래? 그냥 그렇다고.”
모하마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둘은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모하마드는 다시 난간 밖을 바라보았고, 동료는 짧게 기도를 올렸다.
동료가 기도를 마치는 순간이었다. 모하마드가 굳은 얼굴로 난간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저게 뭐지?”
"뭐가?”
"아, 잘못 봤나? 움직이는 물체를 본 것 같았는데…”
모하마드가 건물 밖을 내려다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잘못 봤나봐."
"넌 믿음은 부족해도 눈은 좋았잖아. 네가 잘못 볼 리가 없을 텐데."
오히려 동료가 더 심각해 보였다. 하지만, 그도 건물 벽을 타고 도시 안으로 침입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두 사람이 발견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빠르고 은밀했다.
도시 안으로 들어온 경훈은 근처 무너진 건물 안으로 들어가 숨을 몰아쉬었다.
"이런 몸을 가지고도 낮에 숨어들어오는 건 쉽지 않네."
-그래도 정말 대단하십니다. 분명 들킬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구름이 껴있긴 했지만, 대낮에 정부군의 포위망을 지나, 반란군의 감시를 피해 도시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경훈은 입고 있는 망토를 벗어 배낭에 집어 넣었다.
위장용 사막색 망토였다. 그리고 쓰고 있던 고글과 마스크도 모두 배낭에 집어 넣었다.
마스크를 벗은 경훈의 얼굴은 수염으로 뒤덮여 있었다.
물론, 터키에서 만든 변장이었다. 수염과 몇가지 분장 덕분에 그의 인상은 전과 달라져 있었다. 멀리서 보면 시리아 남자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는 옷을 확인했다. 밤길을 달린 덕분에 검은 색 잠바와 바지는 영망이 되어 있었다.
"이정도면 들키지 않겠지.”
경훈은 머리를 헝클어뜨린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시 안은 무정부 상태라고 했으니, 누가와서 신분증 검사를 할리도 없었다.
-하지만, 낮에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요?
이브의 말에 경훈이 피식 웃었다.
"누가 위험한데?”
경훈이 네비게이션 앱을 확인하면서 무너진 거리를 걸었다.
윙.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겠지만, 작은 모기 소리가 경훈의 귀에 들려왔다.
"확실히 저쪽 세상의 도시하고는 느낌이 조금 다르네."
도시를 둘러보면서 경훈이 입을 열었다.
저쪽 세상의 도시와 이 도시는 둘다 파괴되어 있었지만, 파괴 정도가 달랐다.
저쪽 세상의 도시는 어느정도 형태가 남은 건물이 많아, 오래된 버려진 도시 느낌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도시는 멀쩡한 건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게 진짜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지.”
착잡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경훈의 눈에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동시에 그의 가슴에서 먼지가 튀어올랐다.
탕!
뒤이어 들려온 총 소리. 저격병이었다.
경훈이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총소리가 사라지자 거리는 조용해졌다.
사람들도 나와보지 않았고, 도시 외각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반란군도 신경쓰지 않았다. 도시 안에서 들리는 총소리란 그들에게는 일상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쓰러진 경훈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랜만에 손님이네. 벌건 대낮에 이 거리를 지나가다니. 다른 지역 놈인가?”
"이 도시 어디에 살던 낮에 돌아다니는 놈이 있으려고. 거기다 혼자라니. 뭔가 한수가 있는 놈이었으려나.”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야. 총맞아서 뒤져버렸는데."
다섯 명의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다가왔다. 두 명은 개조된 소총을 들고 있었고, 나머지는 칼과 석궁을 들고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이 거리 안쪽의 높은 건물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제일 앞에 다가오던 남자가 경훈의 옷을 보더니 눈을 빛냈다.
"어라, 옷이 멀쩡한데? 먼지만 묻었을 뿐이야.”
"설마, 밖에서 들어온 놈일까?”
일행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말 밖에서 들어온 사람이라면 쓸만한 물건을 들고 있을 지도 몰랐다.
소총을 든 두 명이 다가오지 않고 멈춰섰고, 칼을 든 남자가 경훈을 향해 다가왔다.
"어디서 총하나 구하던가해야지. 위험한 일을 계속하게 되네.”
"궁시렁거리지말고 일해.”
"알았어.”
남자는 칼로 경훈의 몸을 푹 찔렀다. 하지만,
턱.
칼은 옷만 뚫고 들어갔을 뿐이었다.
콰직.
다음 순간, 칼을 내지른 남자의 목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방금전까지 바닥에 누워있던 경훈이 서 있었다.
"안 죽었잖아! 쏴!”
놀라, 총을 든 남자가 소리쳤지만, 그보다 경훈이 훨씬 빨랐다.
‘마나를 발에 모으고 바닥을 박찬다.’
퉁.
바닥을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경훈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발에 모였던 마나를 손바닥으로 돌린 뒤에 적의 중심을 후려친다.’
펑!
"크악!”
거대한 풍선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 하나가 뒤로 튕겨나갔다. 그는 십미터 넘게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다시 한번.’
놀란 남자들이 그쪽으로 총구를 돌렸지만, 그들은 벽에 처박히는 동료만 보게 되었을 뿐이었다.
동시에 옆에서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콰직.
경훈이 다른 남자의 머리를 무릎으로 내려찍는 소리였다.
이상한 방향으로 머리가 꺽인 남자를 놔두고 경훈이 계속 움직였다.
타타탕!
소총을 가진 남자들이 놀라 총을 갈겨댔지만, 그것도 몇발 쏘지못했다. 방아쇠를 겨우 당긴 순간, 그들도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쓰러지는 순간 경훈은 마지막 남은 남자의 목을 잡고 섰다. 남자는 들고 있던 석궁을 떨군지도 모르고 덜덜 떨고 있었다.
"물어볼게 있는데.”
경훈의 말은 바로 이브가 통역을 해주었다.
"네, 네. 말씀 하십세요!”
겁에 질린 그가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 이 거리에 힘쌘 여자애하고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이 있지?”
"네,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그가 환한 얼굴로 대답을 하는 순간이었다.
기분 나쁜 느낌이 경훈을 스쳐지나갔다. 경훈이 슬쩍 고개를 뒤로 빼는 순간,
퍽!
목을 붙잡고 있는 남자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경훈의 머리 앞으로 총알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저격입니다. 좀전의 사격과 지금 사격 소리로 위치 확인했습니다.
"나도 위치는 알아.”
편하게 사람을 찾으려고 연극까지 했는데,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물어볼 사람이 하나 더 있으니까.”
경훈이 거리 끝에 있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자는 저격총의 스코프로도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이 달리는 속도가 아니었다.
"젠장.”
저격수 야민은 스코프에서 눈을 떼고 급하게 짐을 챙겼다.
"설마, 그 계집애 같은 인간이 또 있었다니. 듣던 것하고 전혀 다르잖아!”
파괴된 도시 안에서도 어느정도 기득권층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그였다. 그는 밖의 소식도 그럭저럭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전혀 달랐다.
총을 맞아도 멀쩡하고, 총을 피하고, 차만큼 빨리 달리는 돌연변이 인간이라니.
들었던 이야기와도, 그 힘 좋은 여자애하고도 전혀 달랐다.
"젠장. 도망칠수 있을까?”
그는 마지막으로 총을 메고 건물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계단으로 내려가다가는 죽기 딱 좋았다.
그는 옥상 난간에 걸쳐있는 로프를 잡고 난간 너머를 내려다 보았다.
로프가 7층 옥상부터 지상까지 쭉 이어져 출렁거리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미친 짓이었지만, 지금이 비상용으로 만들어놓은 로프를 사용할 때였다.
위잉.
머리 위에서 모기의 날개짓 같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그는 로프를 타고 계속 아래로 내려 갔다.
착.
다행히 무사히 내려왔다. 온몸에 땀이 가득했지만, 그는 느끼지 못했다.
아직 멈출때가 아니었다. 그는 도망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실례합니다.”
그의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건물로 달려오던 자였다.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정중한 경훈의 말에도 그는 얼굴이 검게 죽어갔다.
웅.
그의 뒤로 이브가 조종하던 드론이 내려왔다.
얼마 뒤, 경훈은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 단지에 도착해 있었다.
조금 전, 저격하던 남자에게서 들은 소녀의 집 앞이었다.
저격총을 쏘던 남자는 경훈에게 쉽게 위치를 말해 주었지만, 경훈은 자신을 저격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가 보고 있는 집은 지금은 집이라고 부르기 힘들어 보였다.
원래는 4층은 되었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2층만 남은 부서진 집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도 살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곳 저곳 보강을 한 흔적이 보였다.
담벼락에는 부서진 병들이 박혀 있었고, 무너진 벽 사이사이에는 흙으로 회칠 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은 나무 판자와 철판으로 여러번 덧댄 흔적이 보였다.
경훈은 건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집안 사람 모두에게 들렸을 정도로 묵직한 소리였다.
문을 두드린 후에도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경훈은 계속 기다렸다.
집 안에서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난뒤, 문 앞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철컹.
눈 높이로 덧댄 작은 철판이 옆으로 밀렸다. 그리고, 그 틈으로 눈동자 두 개가 보였다.
"누구지? 거래하려고 온 사람인가?”
경훈은 고개를 저었다.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집에는 총도 있고, 무시무시한 힘을 쓰는 사람도 있어. 볼일이 없으면 돌아가. 우리는 누구를 도울 생각도 없으니 도와달라는 말도 소용없어 !"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철판이 닫히려했다. 하지만, 철판은 움직이지 않았다.
경훈이 손가락을 넣어 철판을 고정시킨 것이다.
"성격이 급하군요. 도와 달라고 온게 아니라.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 온겁니다. 안네라는 소녀가 있습니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고 왔습니다.”
이브의 번역과 함께 집안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의 외침과 실랑이.
끼이이익.
잠시 뒤에 문이 조금씩 열렸다.
"들어오시오.”
문 뒤에서 총을 든 늙은 남자가 경훈을 겨누며 입을 열었다.
경훈은 두 손을 들고 문 안으로 들어 갔다.
복도에는 부엌칼로 만든 창을 든 남자 하나와 어려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단순한 선이 새겨진 쇠 막대기가 들려있었다.
"안네?”
경훈이 막대기를 든 여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설마, EV에서 온건가요?”
경훈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안네였다.
하지만, 그녀를 본 경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58화. < 나만의 전쟁 (3)〉
“EV에게 제 능력을 제공할수 있어요. 대신 가족과 함께 이곳을 빠져나가게 해주세요."
경훈의 앞에 앉아 있는 소녀는 똑부러지게 말을 했다.
긴장을 한 듯 눈이 흔들리고, 쇠막대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말은 한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경훈은 그녀의 말을 들은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곳은 집의 거실이었다.
과거에는 벽난로를 배경으로 책을 읽고 가족끼리 즐거운 대화를 나누던 곳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구도 보이지 않았고, 지금은 바닥도 벽도 시멘트가 그냥 드러나 있는 흉한 몰골이었다.
-불쏘시개로 쓰기 위해 전부 뜯어낸 것 같습니다. 나름 잘 버티고 있는 집이 이정도라면 다른 집들은 어떨는지…
당연히 더 힘들게 분명했지만, 경훈은 그쪽으로는 아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와줄수도 없는데 괜히 힘만 들뿐이었다.
다른 식구들은 벽에 기대어 서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부모라고 소개한 나이든 부부와 오빠라고 소개한 남자. 그리고 안네 아니 엘카니.
"제 이름은 엘카니에요. 다시 물어볼께요. 우리 가족 전부가 이 나라를 빠져나가게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EV와 채팅을 할때는 이런 이야기가 없었는데요. 생각이 바뀐 건지, 아니면 일부로 안한 건지 알수가 없네요. 이브의 말대로 채팅에서는 자신을 도와 달라는 말 밖에는 없었다. 가족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지혜롭다면 지혜롭고 영악하다면 영악한 방법이었지만, 속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훈은 표정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채팅때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는 가족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가족 전체가 빠져나가려면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조금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우선 도움이 될만한 물건들을 가져왔으니 이것부터 받으시죠.”
경훈은 배낭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라이터 묶음과 항생제, 알콜을 비롯한 의료물품들. 밀가루 포대와 담배 한보루, 소총 한자루와 탄창 묶음. 그리고, 술.
배낭에 들어가기엔 많아 보이는 물건이 쏟아지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맙소사. 이게 다 뭐야….”
아주머니가 달려들어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노인과 남자의 표정도 전하고 달라졌다.
"이쪽 상황을 정말 잘 아시네요."
안네, 아니 엘카니가 신기한 표정으로 경훈이 가져온 물건을 바라보았다.
“EV가 알려주었습니다. 전 EV의 지원 요청으로 온 것 뿐입니다.”
-저 물건들을 고른 것은 주인님이십니다. 그리고, 왜 삼분의 일도 안꺼냈나요? 배낭을 알아차릴까봐 그러신 겁니까?
경훈은 이브의 질문을 들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본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사이트에 본인 아이디로 들어가봐주시기 바랍니다.”
묵직해 보이는 휴대폰 화면에 EV 홈페이지의 로고가 떠 있었다.
그녀는 경훈의 말에 주저 하지 않고 화면을 눌렀다.
바로 화면이 바뀌었고, 그녀의 아이디가 한쪽에 떠올랐다.
다르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는 감사 인사를 하고 휴대폰을 품에 넣었다.
"어차피 지금은 빠져 나갈수 없으니 상황을 확인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움직이더라도 해가 진 뒤에 움직여야 하니까요.”
경훈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에게 인사를 한 뒤에 거실 밖을 나갔다.
복도 옆으로 나있는 문들은 이미 장작으로 변해 방들이 훵하니 보였다.
다만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 문만 멀쩡하게 닫혀 있었다.
경훈이 힐끗 지하 계단을 본 뒤에 집을 나섰다.
쿵. 철컥.
그가 나가자 문이 닫히고 자물쇠가 채워졌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외부인을 배웅한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총을 들고 있었지만, 시비도 걸기 어려워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지하실 문을 확인한뒤, 거실로 돌아왔다.
거실에는 경훈이 남겨놓은 물건을 풀어헤치고 있는 가족이 있었다.
"와, 정말 필요한 것만 가져왔어. 담배하고 술이라니…"
"넌 손도 대지마. 장작 며칠 분하고 바꿀수 있는 물건이니까.”
아내와 아들은 물건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딸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생각에 잠긴 그녀의 모습은 묘하게 어른스러웠다.
"왜 그래? 잘된 것 아니니?”
노인의 말에 딸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잘 모르겠어요. 어차피 참가자 중 한명일 뿐이지만, 계속 참가할지는 알수가 없네요.”
"그 남자는 좀 무섭더라. 평범한 남자는 아니야.”
"어차피 반환점을 지나쳤어요.”
그녀는 손에든 피묻은 쇠 막대기를 바라보았다.
"이놈의 전쟁이 뭐라고. 너같은 착한 애까지 싸우게 만들고….”
어머니의 말에 딸은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착할 리가 없죠.”
"너 혼자 그 남자를 따라 갔으면 그만이잖아. 가족을 위해서 그런건데. 우리 딸처럼 착한 아이가 어디 있다고.”
"글쎄요.”
어머니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전부터 이곳에서 혼자 도망칠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을 버리고 살도록 배우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할거야? 그 남자가 저녁에 와서 다 데리고 나갈수 있다고 하면?”
오빠의 말에 그녀는 대답했다.
"시간을 끌어야지. 일부로 다른 사람들이 알도록 이곳 위치를 흘렸는데. 더구나 EV라는 곳을 믿기는 힘들어. 지금같은 상황이면 다른 나라도 욕심을 낼거야.”
"너무 기대가 큰 것 아냐?”
오빠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각성자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일반인에게는 설명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때, 물건을 정리하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 애는 어떻게 할거야. 계속 숨길수는 없잖아.”
가족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엘카니가 복도를 바라보았다.
“계속 숨길거에요. 이곳에 두고 갈거에요."
"하지만, 그래서는 네 정체를 들킬텐데.”
"아뇨. 만들어 놓은게 있으니 들키지 않을 거에요. 그리고 도착한 다음에는 들켜도 상관없어요. 어쩔거에요. 어차피 각성자는 아직 희귀한 존재에요. 러시아 같으면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나라는 괜찮을 거에요.”
"뭔가, 스케일이 너무 커서 믿기가 힘드네. 실제로 사람이 왔으니 안 믿을 수도 없고…”
오빠의 말에 엄마가 한마디했다.
"천재라고 이름 높았던 애야. 지금이라고 다를 리가 있냐. 애 때문에 우리가족이 이렇게라도 살아남은 거니까 딴소리하지 마렴.”
굳은 표정으로 복도를 바라보던 그녀는 결국 표정을 허물고 말았다.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내가 착할 리가 없잖아…..”
그 시각.
경훈은 엘카니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폐허 벽에 기대어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어폰에서는 엘카니 가족의 대화가 흘러나왔다. 선물로 준 탄창 속에 숨겨진 도청기가 그들의 대화를 전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전 특성을 확인할 때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특성은 뭐였지?”
본인 확인을 위해 휴대폰 화면에 암호를 입력하라던 것은 눈속임이었다.
그녀에게 건네 준 것은 등록자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마나 휴대폰이었다.
그녀가 휴대폰에 손가락을 대는 순간, 이브는 그녀의 특성을 확인했다.
-육체 강화 계열이었습니다. 신체 일부의 힘을 일정 시간 강화하는 특성입니다.
"모두 힘이 쎈 소녀를 알고 있었지…”
저격수도 강도도 모두 힘이 쎈 소녀를 알고 있었다.
"그것부터 좀 이상했지, 더구나 보조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 싸우기 힘들다는 애가 피묻은 쇠 막대기를 들고 나타났어.”
각성자가 되어서 막대기에 묻은 핏자국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어려보이기는 했지만, 보이는 것처럼 어린 여자는 아니었어.”
전쟁터에서 사람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는 경훈이 잘 알았다.
먹을 게 부족하고 스트레스로 인해 나이가 왜곡되게 보이곤 했지만, 경훈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상대 나이를 알 수 있었다.
"뭐,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틀리지는 않은 것 같네.”
경훈은 조금 심란해 보였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각성자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온거야. 그것에 충실할 생각이야.”
-그 지하실 안에 각성자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일 가능성이 높아. 그들도 집에 있는 것처럼 말했으니.”
문제는 구출 방법이었다.
"가족을 밀어버리고 구해내는 것도 좀 애매하고…”
지하실에 있는 각성자와 가족의 관계를 모르니 함부로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다. 괜히 잘못했다가는 오해만 살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 말대로 다른 곳에서 움직이고 있을까?”
-아직, 그런…… 아, 러시아쪽 통신망에서 하나 올라왔습니다. 미국 쪽 항모가 시리아로 접근 중이랍니다.
-아마도 내일 대공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부군 병사들 중 일부가 전투가 벌어질 것 같은 뉘앙스로 글을 올렸
습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경훈이 몸을 일으켰다.
"집안 상황을 알아보려고 나왔는데, 밖의 상황을 확인해야 되겠어.”
그는 배낭을 매고, 총과 검을 꺼내 들었다.
"미국놈들이 왔는지, 그리고 정부군에 있는 러시아놈들이 언제 움직일지 알면…,뭔가 방법이 나오겠지.”
일이 복잡해져버렸다. 경훈은 수 틀리면 그냥 철수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경훈이 도시 동쪽으로 몸을 날렸다. 미군이 오고 있다면 그 쪽이었다.
촛불이 흔들거리는 지하실.
밖에서는 은은하게 포성이 일고 있었다. 오랜만에 야간 포격이었다.
해가 넘어가 밤이 되었지만, 창이 없는 지하실은 낮과 다르지 않았다.
소년 한 명이 낡은 책상 앞에 앉아서 조각을 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선들이 그어진 쇠막대기와 단도, 톱들이 놓여 있었다. 소년이 만들고 있는 것은 한 가족의 조각상이었다.
늙은 부부와 젊은 아들과 딸.
이집에 있는 가족과 무척이나 닮은 조각이었다.
잠시 뒤, 소년은 책상 위에 조각상을 올려 놓았다.
가족의 조각상 앞에는 그가 미리 만들어 놓은 자신의 조각상이 있었다.
그렇게 한곳에 모아놓으니 마치 모두가 한가족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조각상을 보는 소년의 눈은 어두웠다.
그는 고개를 들어 거실쪽 방향을 보았다.
작게 가족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각성자였다. 가족은 몰랐지만, 그도 거실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잠시 거실을 바라보던 그는 자신의 조각상을 들어올렸다. 그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무결 사이에 선들이 나타났다. 아름다운 선이 조각상을 빛냈지만 그 빛을 나무로 만든 조각상이 버티지 못했다.
불이 불었다. 조각상이 불꽃이 되어 사라졌다. 소년은 손위에서 불타는 조각상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책상 위에는 남은 가족의 조각상만 남았다.
똑.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낮에 왔던 사람이 다시 온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음성이 들려왔다.
"안네라는 분 있습니까? 미국에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