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07)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07화
엘로이즈 아린 (4)
“엘드릭 나뭇가지랑 슬라임 조각 좀 주세요.”
사내를 피해 걸어온 아린은 18층 구석 잡화 상점에 들렀다.
마법에 필요한 재료들을 파는 곳으로, 돈이 생길 때마다 이용하던 상점이었다.
마법은 서적만 읽는다고 늘지 않는다.
그곳에 나와 있는 내용을 직접 실험해 보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는다.
특히나 제대로 된 스승이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아린은 신중하게 재료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재료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으니까.
“으음, 여기. 그리핀 발톱이랑 자수정 가루도요.”
그녀가 고른 재료는 총 네 개.
“계산해 주세요.”
새하얀 손으로 계산대에 재료를 올리자, 점원이 싱긋 웃었다.
“다 해서 은화 여섯 개입니다.”
“은화 여섯 개…….”
아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머리가 먹먹해졌다.
재료.
그것도 기초적인 재료만 사는 데 가진 돈의 60%를 사용했다.
사실 마음 같았으면 더 사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진짜 오래 굶어야 한다.
탑을 지우기 위해서는 굶을 수 없었다.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살아야 하니까.
절실함, 필사적.
현재의 그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들.
“네, 계산할게요.”
금화 1개를 내밀고, 은화 4개를 받아든 아린이 터벅터벅 걸음을 지속했다.
‘솔직히 지친다.’
조금 전 구매한 이 가벼운 재료들이 무겁게 느껴졌다.
마음이 무거워서일까?
근육이 없어서일까?
그러던 순간, 누군가가 떠올랐다.
조금 전 만났던 사내.
자신을 신임 교수라 소개했던 자.
그자의 이야기라도 들어볼 걸 그랬나?
혹시 모르지 않는가.
지금껏 내려왔던 동아줄이 전부 썩었어도.
그 하나만큼은 튼튼한 것일 수도.
짜악!
아린이 정신 차리라는 듯 자신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정신 차리자.’
어찌 그렇게 당해도 또 모르는가.
마탑에 입탑한 후.
아니, 이 빌어먹을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부터.
그녀는 사람에게 질렸다.
인간을 믿지 않았다.
‘식량이나 사러 가자.’
아마.
은화 네 개 정도면…….
건조시킨 딱딱한 빵만 먹는다는 가정하에.
그래도 한 달 치 버틸 만한 음식은 살 수 있을 터였다.
* * *
스슷!
아린이 나간 잡화점.
그림자 속에서 신형이 드러났다.
“끌끌, 대화로 안 되니까 이제 미행하는 게냐?”
노인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내가 마주 보며 웃었다.
“원래 길냥이는요.”
저벅, 저벅.
동시에 잡화점 내부로 들어서며 말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무서워해요. 다가가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신뢰를 다져야 하죠.”
이번 던전이 왜 측정 불가급 난이도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뼈다귀5’의 진정한 각성을 이뤄내세요.] [TIP / 아린을 도와, 마탑을 무사히 졸업시키는 것은 어떨까요?]마탑을 졸업.
그 말은 적어도 아린의 능력을 S 클래스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말인데.
그게 얼마나 걸릴까?
‘차라리 잘됐지.’
어차피 이번 기회에 주술에 마법을 섞어 또 하나의 극(極)을 달성하려 했다.
시간이야 많으면 좋았다.
“그래서, 그 신뢰를 쌓는 게 이런 잡화점에 들르는 거냐?”
“예.”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계산대에 드미르가 만들어준 아공간 가방을 내려놓았다.
“저기요~ 계신가요.”
내가 부르자 물건을 정리하던 점원이 쏜살같이 뛰어왔다.
“옙! 아, 교수님이시군요? 어떤 재료가 필요하십니까?”
“여기 있는 거 다요.”
“……예?”
점원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여기 있는 거 다 사면 얼마예요?”
“……여기 있는 걸 다요? 어어, 세어봐야 알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미 Flex에 절여버린 몸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다 사거나, 아니면 안 사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구멍가게식의 잡화점이라 매물이 그렇게 많아 보이진 않았다.
“으음, 꽤나 많은 금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금화야, 뭐.
작은 방에 한 더미 쌓아둘 정도로 모아뒀다.
불법 도박 자금이긴 하지만…….
“그래서, 팔 거예요? 말 거예요?”
“아! 금방 세어보겠습니다!”
화들짝 정신 차린 점원의 눈빛이 변했다.
그러더니, 정신없이 재고 조사를 시작했다.
그래그래.
열심히 해야지.
귀한 손님을 잡으려면.
“얼마나 걸려요?”
“으음……. 1시간! 1시간만 기다려 주세요! 아예 오늘 영업 종료하고 끝내놓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그때 뵙죠.”
덜컹!
문을 열고 나간 내가 다시 찾은 것은 바로 [포션 상점].
“허허, 설마 네 녀석?”
노인이 실실 웃었다.
“저번에 그 공항이란 곳에서 샀던 걸…… 여기다 다 되팔 생각이더냐? 돈 벌려고?”
“예, 당연하죠. 아까 못 보셨어요?”
내가 이를 갈며 말했다.
“아까면…… 그 행사 말이냐?”
“예.”
멀찍이서 봤었던 엘로이즈 가문의 행사.
그곳에서 봤던 주눅 든 아린의 모습.
“감히 우리 뼈오한테 고작 금화 1개 쥐여줘 놓고 생색은 오지게 내는 그 영감탱이 보셨죠?”
“……보았지.”
“절대 못 넘어가죠. 우리 애가 돈이 없다는데.”
마법 재료 상점에서 한 움큼밖에 못 가져갔던 아이.
그 남은 은화로 끼니를 해결하며 서고에서 서적을 읽는 아이.
‘이미 지나간 생이겠지만.’
이 기억에서만큼은.
다르게 해주마.
네 ‘한’을 풀어주마, 뼈오.
나는 상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공항에서 상인들에게 샀던 포션들을 바닥에 탈탈 털어놓았다.
오늘 땡잡았다고 생각해도 좋다.
이거 나름.
Made in Earth.
「세계 랭킹 게시판」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만들어진 포션들이라고.
“흐읍? 이, 이게 다 뭔가요?”
내 행태를 본 주인이 경악했다.
“여기 사는 거 말고, 파는 것도 되죠?”
“그래도 됩니다만…… 그래도 마탑 내 상점이라 고품격만 취급…… 허엇, 이것은?”
“왜요?”
“꽤나 효과 좋은 상급 회복 포션 아닌가요? 호오, 일부 능력을 과하게 증폭시키는 류도 있네요! 허어, 이 정도면 개당 금화 3개 정도는 되겠는데요? 이 정도면 제작자가 일평생 포션 제조에만 몰입했을 정도로 정교하고 깔끔하게 만들어진 제품들이에요.”
“금화 3개라…….”
내가 중얼거리자, 주인이 질세라 답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마탑에 입점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교수님들께 사기 치다간 진짜 골로 간다고요. 아, 물론! 금화 5개짜리도. 10개짜리 최상급 포션도 간혹가다 보이네요!”
정직하게 부르겠다는 말.
“뭐, 좋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정도 포션은 공항 한 번 가면 다시 얻을 수 있다.
길드 내 돈은 지금도 쌓이고 있을 테니까.
“원하는 만큼 팔 테니, 돈 가져오세요.”
“옙! 깔끔한 거래 좋습니다!”
* * *
가방에 마법 재료가 한가득 찼다.
포션으로 바꿔먹은 금화가 있어서인지.
잡화점 하나를 털었는데도 금화가 한 더미였다.
“끌끌, 아주 마탑에서도 제대로 쇼핑하는구나.”
“아직 하나 더 남았어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제 서고에 들어갈 작업을 해야지요.”
아린은 이제 곧 서고에 박힐 거다.
본인이 구매한 끼니가 다 떨어질 때까지 박혀서 안 나오겠지.
서고의 지박령이니까.
“거길?”
“예, 엘로이즈 가문의 패. 그것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거잖아요.”
행사에서 봤다.
가문의 자제들에게 나눠주는 패를.
“그걸 어떡하려고. 아, 설마……. 그래서 그렇게 악착같이 금화를 벌었던 게냐? 그들에게 사려고?”
“……아뇨, 그럴 리가요.”
사긴 뭘 사.
훔쳐야지.
특히 그놈.
– 뭘 아는 체하고 그래?
– 설마 아직도 쟤를 우리랑 같은 피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 괜히 같이 있다 재수 옴 붙을라.
– 뭐긴 뭐야. 재능이 사라지는 재주지. 크크큭.
감히 우리 뼈오를 두고.
대놓고 꼽을 준 싹수없는 놈.
그림자 속에서 지켜보다가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걸 꾹- 참았었다.
‘그놈.’
이름도 외웠다.
엘로이즈 페일.
Pale(창백한, 핼쑥한).
이름답게 창백하고 음침하게 생긴 놈.
‘저는 그놈 걸 뺏을 겁니다.’
* * *
엘로이즈 페일이 즐거운 표정으로 번화가를 거닐었다.
그의 곁에는 같은 학우로 보이는 친구들이 있었다.
“여, 다들 모였냐?”
홀쭉한 얼굴의 그가 중얼거렸다.
축제에서 이미 술을 거하게 마시고 온 페일은 얼굴이 붉게 올라 있었다.
“오늘 돈도 받았는데, 재밌게 놀아야지?”
그는 1년에 한 번.
자신을 잘 따라준 학우이자 수하들에게 술을 사곤 했다.
“와아아, 이번에도 한턱내시는 겁니까?”
“페일 님! 최고시다!”
“어디로 모실까요. 제가 알아둔 술집이 있는데 기가 멕힙니다, 그냥!”
엘로이즈 가문이라고 전부 품위 있는 건 아니었다.
절반이 엘리트라면, 또 그 절반은 그저 평범했다.
그리고.
페일은 후자에 속했다.
그도 자신이 후자에 속한다는 걸 알았다.
S 클래스에 있는 형님, 누님들은 그야말로 고귀한 귀족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러한 삶도 나쁘진 않아.’
자신의 배후에는 가문이 있다.
그것도 마탑에서 일 순위로 쳐주는 명가(名家), 엘로이즈.
마탑을 졸업할 정도의 실력만 갖춰주면.
앞으로의 일생은 탄탄대로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학우들도 자신을 따르는 것이겠지.
“어디든 가자! 비싸고 고급진 데로 가자고! 너희들의 그릇을 보겠어!”
“우와아아! 페일 님! 역시! 통이 크십니다!”
“과연 그릇이 남다르십니다. 저희 그릇이 강이라면, 페일 님은 바다입니다! 널따란 바다.”
기분 좋은 아부를 들으며.
골목길을 지나갈 찰나.
“……?”
그의 앞에 웬 건장한 사내가 등장했다.
웬 은여우 가면을 쓴 사내가.
“뭐야? 안 비켜?”
페일이 눈살을 찌푸렸다.
감히, 엘로이즈 가문인 자신의 길을 막아?
“저 실눈 여우 새끼. 뭐야?”
“마탑 안에서 웬 가면을 쓰고 있지?”
“너, 어디 가문의 귀족이냐?”
지금까지 왁자지껄 떠들던 수하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깔았다.
페일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으니까.
스윽, 스윽!
각자 품속에서 지팡이를 꺼내며 나서는 학우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은여우 가면이 목소리를 냈다.
“지금 먼저 시비 거는 거지?”
?
학우들의 얼굴에서 물음표가 떠올랐다.
“뭔 개소리냐? 길은 네가 먼저 막아 놓고!”
“원래 시비라는 게, 느끼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결정되는 거거든.”
화르륵!
은여우 사내의 손에서 불길과 함께 몽둥이가 나타났다.
시뻘건 몽둥이였다.
“나는 왠지. 오늘 너희가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은 기분이네.”
“……그게 무슨 소리야?”
“정신병자인가?”
학우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이, 눈깔이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네가 시비 거는 사람이 누군 줄 알아?”
“누군데.”
사내가 살짝 틀어진 가면을 고쳐 잡았다.
우우웅!
그의 몸에서 끔찍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꿀꺽.
학우들과 페일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왠지.
학생 수준에서 상대할 수 없는 느낌의 기운.
“설마 엘로이즈를 믿고 까불대는 건 아니겠지?”
툭, 툭!
규칙에 맞추어 땅에 박히는 몽둥이 소리가.
페일의 가슴에 서늘하게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