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29)
암영단 (1)
스켈레톤(Skeleton).
이른바 해골바가지.
정확히는 전신에 뼈밖에 안 남은 언데드를 칭하는 말.
그렇기에 시각을 담당하는 망각도 없고, 청각을 담당하는 달팽이관도 없다.
그뿐이랴?
소리를 내주는 성대 또한 없다.
“주군…….”
하지만, 뼈이.
아니, 태양이는 분명 목소리를 냈다.
“주, 주군……!”
태양이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스켈레톤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정말로…… 정말로 앞이 보입니다!”
거기다가 앞까지 볼 수 있다니.
‘하긴.’
그렇게 따지면.
신경 근육도 없는 뼈다귀가 걸어 다니고 싸우는 게 말이나 될까?
사실, 이 빌어먹을 ‘헌터’라는 직업 자체가 말도 안 되는 판타지긴 하다.
“음.”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신기해하는 태양이를 뿌듯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태어나자마자 시야를 잃었던 아이.
인류에게 버림받아, 한 세계의 인류를 지워버렸던 아이.
“좋으냐?”
내가 물었다.
“네……. 좋습니다. 황홀합니다. 아아, 흙이 이렇게 생긴 거였다니. 돌 틈에서 자란 잡초가 이런 생김새였다니…….”
태양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쓸었다.
천천히 흙을 어루만지며, 감각을 즐겼다.
어찌 보면 고귀해 보이는 장면.
‘저게 어떤 기분일까?’
확실한 건.
감히 난 상상도 할 수 없는 감정일 테지.
‘어쨌든.’
내 소환수가 말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호소식이다.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 더 정밀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니.
“진짜 신기하네요.”
옆에서 기소율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켈레톤이 말을 하다니……. 다른 네크로맨서들이 보면 혀를 내두를 만큼 진귀한 광경이에요.”
“스켈레톤이라뇨.”
나는 눈에 힘을 주었다.
“네?”
기소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태양이라고 해주세요. 제 새낍니다.”
“그, 그렇군요.”
그녀가 [뭐지, 이 새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름 존중은 해주는 것 같았다.
별말 안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보면.
하지만,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나는 녀석들을 하나의 소모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가족으로 여긴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도 많이 들었거든.
“그나저나 암제님.”
“네?”
“계속 여기 계시는 것, 괜찮으신 거 맞죠?”
솔직히 놀랍긴 했다.
진짜 딱 여섯 시간 만에 돌아와서.
다시 호위 임무를 수행하다니.
내가 부탁한 거지만, 부담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때는 암영단이 바로 시비 걸 줄 알았는데.
역시나 기소율이 무서운 걸까?
쥐새끼처럼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내 훈련 과정을 지켜보는 거라 괜찮다고 말하지만.’
크게 유의미해 보이는 것 같진 않았다.
어떤 기술이든 극(極)에 달하면, 하나로 통한다나?
기소율은 매 훈련마다 뼈다귀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지켜봤다.
그 안에서 노인의 향을 느끼려 하는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기소율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때가 되면 알아서 떠날 테니.”
“헐, 그건 좀 서운한데요?”
나도 나름 그녀가 편해졌나 보다.
랭커한테 이런 소리를 씨불이는 것 보면.
“흐음, 동훈 씨가 내걸었던 조건. 성장할 때까지만 보호해 주는 거 아니었나요?”
“그렇긴 하죠.”
그러고 보니.
성장에 대한 구체적인 등급을 명시하진 않았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딱 A급까지예요.”
“네?”
“A급 정도면, 제 몸 지키는 것 정도야 알아서 할 수 있겠죠. 각종 대형 길드에 들어가는 것도 쉬울 테니. 뭐, 지금 정도 성장 속도면 머지않아서겠네요.”
“네에?”
그럴 리가.
[헌터 : 주동훈] [이명 : X] [고유 능력 : 저주받은 네크로맨서] [등급 : D]나 아직도 D급인데.
더군다나 이명도 없는데.
머지않아 A급이라고?
“솔직히 아직도 믿을 수 없어요. 처음 짐꾼으로 만났을 때가 D급 다섯 정도 수준이었는데…… 벌써 저 스켈레…….”
‘스켈레톤’이라 말하려던 기소율이 재빨리 말을 정정했다.
“아니, 태양이만 봐도 거의 B급 수준인데요. 동훈 씨도 나날이 늘고 있는 것 같구요.”
“그렇군요.”
인정한다.
솔직히 내가 봐도 사기적인 속도긴 했다.
근데.
그녀가 모르는 게 있다.
“태양아.”
태양창.
이 녀석이 사실 한 세계를 호령했던 절대자라는 것.
고대 사막 제국에 적수가 없던 최상위 포식자라는 것.
본래 힘을 되찾는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걸?
“태양아?”
“네, 주군. 부르셨나이까.”
내 부름에 넋 놓고 흙을 만지던 태양이가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든든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주군은 제게 새로운 삶을 주신 존재. 충성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래그래. 그것보다.”
녀석의 순수한 외침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너 훈련 지도는 따로 안 해도 되겠지?”
[이름 : 태양창] [기력 : 100/100] [고유 능력 : 각성한 스켈레톤] [클래스 : 스피어맨] [등급 : D] [힘 : 35] [민첩 : 35] [체력 : 32] [마력 : 26] [기술 : 33] [보유 스킬]-‘하급 찌르기’(Lv.9)
-‘태양연격’(太陽連擊)(Lv.1)
-‘몰아치는 사막’(Lv.1)
-‘영혼의 불꽃’(Soulflare)(Lv.1)
녀석의 등급 역시 아직 D.
진정한 각성이란 게, 스켈레톤의 몸뚱어리에 태양창의 영혼이 덧씌워진 것뿐.
등급의 상승을 의미하는 것 같진 않았다.
즉, 등급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훈련을 더 해야 한다는 말.
“주군이시여, 그렇습니다. 창술은 저 혼자 갈고닦아도 충분합니다.”
그렇겠지.
노인도 인정했던 창술이니까.
“비록 아직 적응이 안 된 빈약한 몸뚱이지만, 노력하여 금방 본연의 힘을 찾아 주군을 돕겠나이다.”
“그래, 그럼 넌 알아서 훈련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녀석이 구석으로 가 뼈창을 휘둘렀다.
이미 노인과의 훈련은 오전에 마친 상태.
‘그나저나 도대체 내 등급은 언제 상승하는 거야?’
분명, D급에서 C급으로 올릴 방법은 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고?
‘뿌리가 말해주니까.’
내가 얻은 매개체, ‘종족 갈등의 뿌리’는 ‘효과3’에서 말했다.
[효과3 : 해당 아이템은 헌터 등급 C 이상부터 활성화 가능합니다.]C급부터 달성하고 오라고.
매개체란 ‘S급’ 퀘스트까지 깰 수 있게 해주는 귀속 아이템.
내게 ‘귀속’된 아이템에 저런 조건이 있다는 건.
한계가 D급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는 것.
‘좋아, 다음 목표는 C급이다.’
가슴속에서 의욕이 불타올랐다.
* * *
끼익!
가벼운 훈련을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방은 나름 깔끔했다.
왜냐.
어제부로.
기소율을 안으로 들였으니까.
내가 아무리 양심 없기로서니, 내 몸 지켜준다는 호위무사를 ‘약속’이라는 핑계로 옥상에 노숙시키고 싶진 않았다.
‘암, 한국인의 정이란 게 있지.’
그래도 혹시 그녀가 오해할까.
유치하지만, 칸막이도 쳐 놨다.
“아시죠? 여기 선은 절대 안 넘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처음에는 이럴 필요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던 기소율이지만.
내가 완강하게 말하자, 별수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제처럼 저기에 침낭 펴시고 주무시면 됩니다.”
나는 매트리스 반대편, 책상이 놓인 좁은 공간을 가리켰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나뿐인 매트리스는 내 거다.
편안한 수면만큼은 양보할 수 없거든.
“굳이, 이런 걸.”
기소율이 별난 사람 보는 표정으로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걸이라뇨. 확실히 해야죠.”
미안하지만, 난 아직 이 헌터 사회에서 약자에 속한다고.
당신을 노숙으로 푸대접했다는 사실이.
당신 오빠인 기파랑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랭커가 되기도 전에 이 바닥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다.
은유적 표현이 아닌, 진짜 바닥에 생매장.
“아뇨, 이 칸막이 말이에요.”
기소율이 스티로폼 박스로 세워 놓은 줄을 가리켰다.
“예?”
“어차피 제가 원하면 이런 칸막이 없어도 그쪽의 목이 떨어지는 건 한순간일 텐데요. 의미가 없다는 말이었어요.”
“……?”
아니, 이 여자.
뇌가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사고가 그렇게 흘러가지?
평소 누군가를 어떻게 죽일까 고민만 하는 사람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맞구나.
암살자니까.
“여기 컵라면이나 받으시죠. 입맛에 맞으실진 모르겠지만.”
나는 값싼 컵라면에 데운 물을 부어 건넸다.
그녀 역시 말없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2분 정도가 흘렀을까?
쾅! 쾅! 쾅!
“저, 저기요!”
누군가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문을 두들긴 것은 그때였다.
어린 여성의 목소리였다.
뭐지?
나 찾아올 사람 없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기소율의 얼굴을 쳐다봤다.
“…….”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도 모른다는 뜻.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거로 보아, 암영단 패거리도 아닌 것 같았다.
고등급 헌터였으면, 이미 그녀가 알아챘을 테니까.
“후.”
라면 불 텐데.
한숨을 내쉰 난 문을 열었다.
덜컹!
“누구세요?”
문 앞에는 의문의 여성이 있었다.
앳된 얼굴에 학생인 듯 입고 있는 교복.
‘주민인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아, 그전에.’
난 신속히 뒤를 바라봤다.
기소율은 랭커.
그것도 꽤 수려한 미모로 세간에 폭풍 관심을 받고 있는 ‘연예인’, 그 이상의 존재.
‘제길, 기소율이랑 같이 있는 거 들켜봐야 좋을 게 하나 없는데.’
혹여 소문이라도 퍼지면 큰일이었다.
[특보! 암제, 기소율. 은밀한 단칸방 스캔들! 야밤에 남자와?] [기소율 열애설로 전 세계 주목! 상대 누굴까?]이런 기사라도 떠봐라.
‘와.’
상상만 해도 소름이었다.
기파랑에게 죽기 전에, 기소율한테 죽을 수도?
“…….”
다행히도.
기소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 자그마한 원룸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다니.
과연 암살의 왕다웠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주동훈 오빠. 맞으세요?”
“응? 날 아니?”
내가 당황하여 물었다.
쟤가 날 어찌 알아?
“주동훈 오빠! 맞죠? 진짜 맞죠? 크, 큰일 났어요!”
“큰일?”
“제발 우리 오빠 좀 구해주세요. 제발요. 흑흑.”
시종일관 다급했던 여고생이 급기야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치, 참았던 눈물이 폭발하기라도 한 듯.
“……?”
난 잠깐 뒤로 물러섰다.
뒤에선 기척을 감추고 있던 기소율의 미묘한 살기가 살짝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는 거 같은데.
이 여자가, 사람을 뭐로 보고.
“오빠를 구해달라고?”
나는 일단 급한 대로 우는 여고생을 달랬다.
“얘야. 일단 상황부터 좀 알아듣게 설명해 줄래? 설명해야 너희 오빠라는 사람을 구하든지 말든지 하지.”
“아아.”
그제야.
정신 차린 여고생이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흐흑, 집에 이런 게 놓여 있었어요.”
“이게 뭔데?”
나는 그것을 냉큼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자세히 살폈다.
“이건……?”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익숙한 얼굴.
용병 길드 ‘해결사’의 의뢰팀장 김준서가 온몸이 묶인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위에는.
글씨가 삐뚤빼뚤 적혀 있었다.
[안녕?] [네 오빠 김준서를 살리고 싶니?] [그럼 주동훈을 ‘한강 위 선유도’로 오늘 저녁 여덟 시까지 보내라.] [협회에 신고하면 네 오빠는 죽는다.] [주동훈 외 다른 헌터가 와도 네 오빠는 죽는다.] [주동훈 주소 : ■■■구 ■■■동 421번지.]“…….”
이 새끼들이?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암영단.’
녀석들이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