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0)
암영단 (2)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네요.”
스슷!
상황을 지켜보던 기소율이 허공에 등장한 것은 그때였다.
“헉?”
김준서의 여동생, 김혜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둘밖에 없던 좁은 단칸방에.
갑자기 사람이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하겠지.
“누, 누구?”
잠깐 당황하더니.
이내 동공이 더욱 확장됐다.
“아, 암제! 기소율?”
기소율의 외형을 단번에 알아본 탓이다.
“지, 진짜예요? 암제가 어떻게 여기에?”
“괜찮으시겠습니까?”
나 역시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유명인이 이런 누추한 곳에 모습을 드러내도 괜찮겠냐는 의미.
“그게 무슨 대수일까요. 사람이 납치당했다는데.”
기소율의 눈빛은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는 짓거리가 딱 암영단이네요. 제가 동훈 씨 옆에 붙어 있으니, 이런 저급한 납치극을 펼치는 거겠죠.”
“동감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영단의 의도가 훤히 보였다.
나에게 볼일이 있는데도.
기소율의 영역 근처라 오지 못하니, 저런 수작을 부리는 거겠지.
“게다가.”
그녀는 추가로 본인의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줬다.
“딱 방금 타이밍에 도착한 문자예요.”
[기파랑 : 동생아.] [기파랑 : 방금 던전에서 2군이 습격당한 거 같다.] [기파랑 : 역겨운 개 냄새가 진동하는 것 보니, 헬하운드……. 그놈 같은데. 하, 퇴근하려니까 짜증 나게 구네.] [기파랑 : 일단 내 손으로 최대한 처리해 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기파랑 : 그냥 알고 있으라고. 시간 되면 도와주면 더 좋고.]명궁(命弓)에게서 온 문자.
내용에서 말하는 헬하운드는.
랭킹 92위.
닉 자칸(Nick Jakan).
암영단의 주인으로 알려진 랭커다.
“절묘하죠. 아무래도 암영단 놈들이 파랑까지 건드린 거 같네요.”
“……헐.”
이건 좀 의외였다.
고작 나 하나 때문에 명문인 파랑을 직접 건들 정도라고?
‘이게 바로 만술 노인의 힘인가?’
내가 얻은 기연의 가치를 다시 한번 돌이켜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
어느덧 방에 정적이 흘렀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돌았다.
김혜린은 자신의 오빠를 납치한 자가 생각보다 거물임에 놀란 듯 몸이 굳어 있었고.
기소율은 분노한 듯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걱정되는 거겠지.’
그녀가 아무리 길드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파랑의 일족임을 부정할 순 없다.
게다가 오빠인 기파랑은 그녀의 친족.
신경이 안 쓰이면 그게 사람일까?
‘그런데도…….’
나는 입을 앙다문 그녀를 쳐다봤다.
‘여기 이 자리를 지키는 건.’
약속.
나를 지켜내겠다는 그 약속 때문일 거다.
그녀는 말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니까.
“별수 없네요.”
먼저.
내가 입을 열었다.
“우선 암제님은 파랑 쪽으로 붙으세요.”
“……?”
기소율의 어깨가 움찔했다.
표정을 보니, 내 생각이 적중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그녀는 예상대로 거절했다.
표정 또한 단호했다.
“오빠의 랭킹은 58위예요. 고작 암영단 따위에 당할 만큼 약한 사람이 아니에요. 거기에 파랑 멤버들도 있고요. 그에 비해 동훈 씨는 혼자죠. 제가 가는 순간 어떤 화를 당할지도 몰라요.”
“뭐, 그건 인정합니다만.”
난 김혜린의 얼굴을 쳐다봤다.
불안한 듯 떨고 있는 눈동자.
“일단 납치된 사람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어요? 일단은 저 혼자 오라잖아요.”
“함정일 거예요.”
“압니다. 100%겠죠.”
하지만.
함정인 걸 알아도 움직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기소율이 지켜주고 있다면, 나야 비교적 안전은 하겠지만.
그게 오히려 암영단이 ‘파랑’을 이길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파랑의 진정한 힘은 ‘기파랑’과 ‘기소율’이 합쳤을 때 나온다고들 하니까.
‘어차피 헬하운드는 기파랑 쪽으로 붙었어.’
그럼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말인데.
솔직히 두려운 감정이 들지 않았다.
만술 노인.
그리고 태양창.
둘의 시련을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그냥 해볼 만할 것 같다는 느낌.
물론, 상대하기 쉽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마음가짐이 그렇다는 것뿐.
“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암제님이 저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네요.”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다.
“어떤 말이죠?”
“삶이란 인연에서 시작해 인연으로 끝나는 여정이라 했어요.”
“…….”
“의뢰팀장 김준서는 분명 저와 연이 닿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저라는 존재 때문에 해를 당하고 있어요. 저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정의감. 아니면 의무감. 뭐, 그런 건가요?”
“아뇨.”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비겁한 헌터가 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내 꿈은 랭커.
그것도 모든 헌터들의 ‘우상’이 될 만한 랭커다.
그런 랭커가 위기에 물러선다?
두려움에 도망친다?
시비를 지나친다?
천만에.
“받은 만큼 되돌려 줘야지요.”
내가 세운 단순한 기준.
나는 그 기준을 어기기 싫었다.
암영단은 분명 날 공격했고.
그 공격에 맞서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 한다.
“……과연.”
기소율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말문이 막혔다가 열렸다가.
입술이 움찔거리는 게, 내면의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좋아요.”
그리고 이내.
기소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결정했다는 듯, 결연한 눈빛이었다.
“그럼 저는 먼저 파랑으로 가서 빠르게 상황 정리 후 합류할게요.”
“좋은 선택이에요.”
“대신.”
그녀가 말했다.
“저번에 말했었죠? 많은 인연들을 소개해 줄 의향도 있다고.”
“예?”
“그게 조금 더 빨라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스슷.
그 말과 동시에.
연기처럼 사라지는 기소율이었다.
‘뭐지?’
의문이 드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혜린이라고 했나?”
“네?”
“내가 가야 하는 곳, 선유도랬지?”
“마, 맞아요! 여덟 시까지요! 얼마 안 남았어요! 여기서 가면 어림잡아도 30분 이상 걸릴 텐데.”
우선, 움직여 보자.
* * *
“드디어, 때가 되었군.”
한강 한가운데 둥 떠 있는 재활용 생태공원, 선유도.
그곳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던 암살자, 고재영이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우웁! 우우웁!”
그리고 그의 앞에는.
‘해결사’의 의뢰팀장 김준서가 포박당한 채 떨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무려 한 달을 참았지.”
암영단의 주인, 자칸 님의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말이다.
고재영은 후회스러웠다.
“주동훈이라 했나?”
그에게 괜한 여유를 부리다가.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치게 됐던 자신의 과거가 치욕스러웠다.
“운 좋은 놈. 이번에는 꼭 잡아주마.”
이번엔 달랐다.
준비 자체가 빡셌다.
자칸께서 직접 나셨을뿐더러.
암영단 자체에서 고용한 상위 랭커도 있었다.
‘랭커 둘이 파랑을 쳤으니, 기소율도 별수 없겠지.’
또한 이곳, 선유도에 포진되어 있는 A급 헌터만 셋에.
B급 헌터는 열이나 있었다.
그뿐이랴?
혹여 도망갈 것을 대비해, 주동훈 집 10㎞ 반경으로 추적 특화 헌터까지 붙여뒀다.
“…….”
고재영은 섬뜩한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07:55 PM]“곧이겠군.”
추적 헌터의 보고에 따르면.
주동훈이 선유도 방향으로 출발했다 했으니.
이제 곧 조우할 터.
“다들 준비해.”
무전 치는 고재영의 목소리가 유난히 음산했다.
* * *
“흐음.”
입맛을 쩝 다셨다.
김혜린은 협회 건물에 맡기고 오는 길.
선유도 다리 앞에서.
나는 남아 있는 모든 기력을 짜내, 다섯 구의 뼈다귀를 소환한 상태였다.
삐걱! 삐그덕!
주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걸까?
녀석들이 굳은 표정으로 무기를 휘두르며 정비했다.
‘어르신도 부르고 싶었지만.’
아직 쿨타임이 돌려면 멀었다.
남은 기력도 없었고.
“태양아.”
나는 그중 태양이를 불렀다.
사실, 지금까지 뼈일이가 대장이었다면.
이제는 태양이가 대장이다.
이유?
간단하다.
더 세고, 말도 잘하니까.
“주군, 부르셨나이까.”
“그래, 여기 포진되어 있는 놈들…… 느껴지냐?”
“그렇습니다.”
후웅!
태양이가 뼈 창을 한번 떨쳤다.
어둑한 밤인데도, 태양이 번쩍이는 것만 같았다.
“어떠냐?”
“약합니다. 본래 힘이었다면 한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처리 가능할 정도입니다.”
“에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그때고. 난 지금 말하는 거지.”
“지금은…… 살짝 무리가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주군께서 명하시면 처리해 보겠습니다.”
“그 정도야?”
난 놀랐다.
태양이라 해봐야 표면적으로는 아직 D급일 텐데.
압도적인 힘 차이를 극복해 낼 정도로 저들이 허접이란 건가?
‘어쨌든.’
이제 부딪혀야 한다.
저 멀리서.
“우웁! 우우우웁!”
힘들어하는 김준서의 목소리가 들렸으니까.
후, 하여간.
예전부터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형이란 말이지.
저벅, 저벅.
나는 우선 눈앞에 보이는 무리에게 거리낌 없이 걸어 나갔다.
살짝 대책 없는 느낌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김준서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게다가 생각하는 바가 있기도 하고.
“왔나?”
눈앞에 두건 쓴 상대, 고재영이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역시 너라면 올 줄 알았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내가 그렇게 정의감 불타는 놈으로 보였나?
“어이, 어이. 진짜 왔냐구. 깡 하나는 대단한 친구인데?”
“후우, 저게 자칸 님이 말씀하셨던 주동훈이란 놈이야?”
“스켈레톤을 보니, 하급 네크로맨서로군.”
“그나저나 저놈이 가진 기연이 그 정도로 매력적이란 말이지? 자칸께서 파랑을 직접 칠 만큼?”
그의 동료로 보이는 A급 헌터들 역시 한마디씩 던져왔다.
‘과연.’
아직은 한참 무리인가?
싶을 정도로 턱- 숨이 막혀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재영이 입을 열었다.
“크큭, 내가 왜 널 이곳에 불렀는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아뇨, 그냥…… 쪽지에 오라고 쓰여 있던데요? 오면 저 사람, 살려준다며요.”
내가 짐짓 순진한 척 뱉었다.
“흠, 알면서 모르는 척하려는 건가?”
고재영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의 품속 단검에서 흉포한 살기 역시 뿜어져 나왔다.
“이거 서운해지려 하는데?”
“…….”
“벌써 잊은 거냐? 약속했잖나. 그때 네 뒤통수 친 놈들이랑 한판 붙게 해주는 대신 기연이 뭔지 말해주겠다고. 설마…… 기소율, 그년 믿고 설치는 거냐?”
그가 단검을 들어, 김준서에 목에 가져다 댔다.
“우, 웁웁웁! 우우웁!”
마치, [주, 주동훈! 살려줘!]라고 외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번엔 역으로 내가 제안하지.”
주륵!
김준서의 목에서 살짝 피가 흘렀다.
“네가 얻은 기연이 뭔지……. 상세하게 말한 후, 나한테 넘겨라. 안 그럼 이놈은 죽어.”
녀석의 점잖은 협박.
동시에.
내 주변으로 수많은 헌터들이 둘러쌌다.
직접 눈앞에서 무기를 꺼내는 자들도 있었고.
저 멀리서 저격하듯 기세를 드러내는 자들도 있었다.
‘후, 떨리네.’
그에 비하면 난 D급 뼈다귀 다섯 구뿐.
‘근데 어쩌나.’
내 기연은 누굴 줄 수 있는 게 아닌데.
“좋아요.”
일단, 이 상황부터 벗어나 볼까?
나는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