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1)
암영단 (3)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뱉자.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고재영이 김준서의 목에 겨눴던 단검을 잠깐 거뒀다.
그러고는 묻어 있는 피를 할짝 핥는 게.
참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어디 일본 만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 아닌가?
“큭큭,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다면 말이야.”
와.
얘 원래 이런 스타일이었나?
정신연령이 중2에서 멈춘 것도 아닐 텐데.
하지만, 지금은 저 비위에 맞춰줘야 한다.
내가 아무리 최근 급성장했다지만, 현실적으로.
A급 셋에, B급 열을 이길 방법은 전무(全無)하다.
“아무렴요. 여기 있는 헌터분들 중 한 분만 나서도 저따위는 상대도 안 될 텐데요. 그저 살아 갈 기회를 주신다는 것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흥, 저번처럼 말은 잘하는구나.”
고재영이 콧방귀를 뀌었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기연은 간단합니다.”
“그래, 말해봐라.”
“저를 가르치는 스승이 한 분 계십니다.”
“스승? 그때 강재호, 그놈이 말했던 노인 말인가? 기소율도 상대하기 어려워했다던?”
“네, 그렇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암제님이 수십 번 도전해도 무참히 박살 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노인이죠.”
“허어.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들어도 놀랍군. 정말 그런 존재가 있다니.”
고재영이 한탄했다.
같은 암살자로서.
자신과 급 자체가 다른 기소율이 박살 났다는 사실이 아직까지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근처에 있는 암영단 헌터들도 술렁였다.
“랭킹 380위를 압도할 만한 스승이라고? 확실히 대단한 기연이긴 한데?”
“그렇지. 저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야.”
“아무렴, 자칸께서 괜히 움직이시겠냐?”
“근데 스승은 어딨어? 저놈한테만 보이는 건가? 그럼 아무짝에도 쓸모없잖아?”
역시.
누군가가 의문을 표했다.
“아, 그거 말인데요.”
내가 말했다.
“스승님은 유령이라 당장은 여러분께 보이지 않겠지만, 특수한 방법을 통해 보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공유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요.”
나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
거짓말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아는가?
90%의 진실에 10%의 거짓을 섞으면 된다.
대다수 사람들은 90% 진실에 혹해, 10%의 거짓을 놓치게 된다.
바로 지금처럼.
“그게 정말이냐?”
“네 스승을 우리에게도 보여줄 수 있다고? 가르쳐 주기도 하고?”
헌터들이 술렁이자, 내가 씩 웃었다.
“물론이죠. 암제님도 그래서 제 곁에 붙어 있었던걸요.”
“……!”
고재영이 눈을 부릅떴다.
“역시, 그 계집. 꿍꿍이가 있었군.”
“왜 애송이 옆에 보물단지 숨긴 것처럼 붙어 있나 했더니만!”
“혼자서 교육이라도 받고 있었던 거야?”
누군가는 아직도 의구심을 품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단, 교육 과정이 좀 괴로울 순 있습니다. 저희 스승님이 좀 괴팍하고 스파르타식이라. 솔직히 전 여러분들이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아요.”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다.
아직도 아침에 받았던 마사지 때문에 온 근육이 욱신거릴 정도였다.
“그래서.”
고재영이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전수해 줄 수 있느냐?”
그리고.
분명 그의 눈에는 ‘탐욕’이라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그게 내가 노린 바였다.
녀석은 이전부터 내 ‘기연’에 집착했다.
기연에 대해 듣고 얻어내고 싶어 했다.
‘한데, 지금은 눈치 보일 수밖에 없었겠지.’
암영단의 수장이라는 자칸이 직접 참여했으니까!
전리품의 우선 권한이 상관인 자칸에게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내 기연을 모두에게 전수해 줄 수 있다고 구라쳤다.
굳이 자칸에게 먼저 가지 않아도, 녀석이 먼저 탐할 수 있게.
근데.
왜, 굳이 이런 거짓말을 치냐고?
“물론이죠. 지금 당장 전수 가능합니다. 다만 주문을 외고 준비하는 데 대략 30분 정도 소요될 것 같아요.”
시간을 끌 수 있거든.
사실, 전말은 이랬다.
기소율이 떠나고 난 이후.
지잉!
진동 소리와 함께, 몇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기소율 : 동훈 씨.] [기소율 : 혼자서 절대 무리하게 싸우려 하지 마세요.] [기소율 : 그때 소개해 주겠다 했던 인연들. 좀 이른 감이 있지만, 제 부탁이면 분명 가줄 거거든요?] [기소율 : 딱 30분. 30분 정도만 버텨보세요.]그렇다.
나는 시간을 끌며.
기소율의 지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혹여 오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어.’
여기 온 것은 내 선택.
비록 지는 한이 있더라도 피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태양이도 있으니까.’
녀석이 말했지.
명령만 내려주시면 최선을 다해 처리해 보겠다고.
내 부하지만 녀석은 한때 모든 인간을 도륙했던 절대자.
분명, 저들에게 쉬운 상대는 아닐 터.
“그럼, 암살자님부터 전수 받으실까요?”
자, 공은 던져졌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탐욕의 공.
캐치할지, 말지.
선택은 네 몫이다.
* * *
시간이 흘렀고.
“으음.”
고재영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렸다.
‘뭐라 뭐라 중얼거리고 있긴 한데. 느낌이 이상하단 말이지.’
기연을 준다던 놈이.
30분이 넘도록 주문만 외고 있었다.
잘 안돼서 시간을 좀 더 달라고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무언가 불안했다.
다른 헌터들도 지루한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그랬어.’
상황은 달랐지만, 구조만 놓고 보면 똑같았다.
저놈은 영리하게 시간을 끌었고, 결국 기소율의 등장으로 자신은 도망쳐야만 했다.
그런 일이 또 벌어지지 않을 보장이라도 있나?
‘저 여유로운 표정도 그렇고.’
주동훈이란 자.
확실히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고작 E급 헌터가.
어찌 자신과 같은 고등급 헌터 무리를 앞에 두고 기죽지 않을 수 있을까?
‘역시, 믿는 게 있는 거 같은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고재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봐.”
“네?”
주문을 외던 주동훈이 또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쳐든다.
행동이 굉장히 불순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자꾸 이렇게 방해하시면 집중이 깨질 수도 있거든요?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
“…….”
“혹시.”
녀석이 한술 더 뜬다.
“쫄리시는 건가요? 에이, 쫄리면 관두셔도 상관없습니다.”
빠직!
고재영의 이마에 혈관이 돋았다.
‘저게 진짜 돌았나.’
자신이 가진 ‘기연’의 가치를 알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 같은데.
그럼 어쩔 수 없지.
휘리릭!
고재영이 손아귀에 있는 단검을 유려하게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김준서의 목에 가져다 댔다.
“웁웁! 우우웁!”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역시, 놈에게서 반응이 온다.
고재영은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넌 분명 30분이라 했다. 네가 먼저 약속을 어겼으니, 이놈의 목숨 정도는 가져가도 되겠지?”
동시에, 주변 헌터들을 바라봤다.
본인의 행동에 동의하냐고 묻는 제스처였다.
“크흐흐, 그게 맞지.”
“맞아, 어차피 저놈만 살아 있으면 되는 거잖아?”
“동의한다. 일단 죽여. 그러고 보니 우리답지 않게 너무 착하게 대하고 있었어.”
암영단 헌터들이 음흉하게 웃으며 동의했다.
“후우, 날 원망하지 마라.”
고재영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네가 자초한 거다.”
그리고 스윽! 그으려 할 찰나.
퍼어어억!
갑자기 손아귀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뭐지? 어디서 날아온 거지?’
욱신거리는 손을 부여잡고 뒤로 스텝을 밟는 순간.
번쩍!
자신의 얼굴 바로 앞에 기다란 창이 날아와 박히려 했다.
‘어?’
뭐지?
이렇게 빠르고 정확한 공격은?
분명 그 힘은 약하지만, 연계가 너무도 빠르고 정밀해 잘못하다간 크게 다칠 것 같았다.
“…….”
결국, 이를 악문 고재영은 김준서를 포기하고 완전히 물러섰다.
그리고 김준서를 받아낸 것은.
약해 빠진 뼈 창을 들고 있는 한 마리의 스켈레톤.
고재영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고작 스켈레톤이 이런 공격을?”
창술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다.
마치 중국 출신, 랭킹 10위의 헌터, 창왕(槍王)이 현신하기라도 한 듯.
녀석의 기세가 위풍당당했다.
그리고.
“하.”
여유로웠던 주동훈의 표정이 일변한 것은 그때였다.
“조금 더 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목소리.
고재영은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자신이 속았다는 걸 이제야 눈치챈 것이다.
“저, 저 천둥벌거숭이가 주제를 모르고 나대는구나!”
고재영은 씹어내듯 뱉었다.
“감히 날 우롱해? 고작 조금 신기한 스켈레톤 하나로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웃기는 소리였다.
비록 잠깐 놀라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자신은 A급.
4살짜리가 아무리 복싱을 잘해도 20대 성인을 상대할 수 없는 것처럼.
저 스켈레톤과 자신은 근본적인 힘 차이가 있었다.
“인질은 죽이고, 저놈은 붙잡아라! 우릴 속인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한다!”
헌터들에게 외쳤다.
“가자!”
“죽여 버려!”
“아니, 죽이지 말고 제압하라잖아!”
헌터들이 앞다투어 주동훈에게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진을 짜고 있는 스켈레톤 다섯 구에게 스킬을 난사했다.
하나하나가 B급 이상의 막지 못할 공격들이었다.
“…….”
하지만.
그 공격들을 바라보는 주동훈의 눈빛은 싸늘하면서도 차가웠다.
“태양아.”
“네, 주군.”
“힘든 싸움이겠지만, 부탁한다.”
휘리릭!
태양이의 창이 화려하게 춤을 췄다.
어둑한 밤하늘에 태양 빛이 번쩍였다.
스킬.
태양연격(太陽連擊)!
뜨거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태양이의 공격에 헌터들이 일순간 당황했다.
‘뭐야?’
‘섬뜩한 기술이군.’
‘잠깐 피해야겠어.’
한 명 한 명, 불길한 감각에 뒤로 빠졌다.
‘나 하나쯤은 빠져도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모두가 피해버린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고작 E급 헌터의 기술 하나에.
상위 헌터들 전부가 뒷걸음친 우스운 꼴이 됐다.
황당한 고재영이 역정 냈다.
“멍청한 놈들! 딱 봐도 기술만 화려하니 별거 없는데 뭣들 하고 있냐!”
암영단이 아무리 범죄자 집단이라 해도 그렇지.
어떻게 다들 저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헌터들의 한심한 꼴을 구경하던 고재영이 결국 본인이 나섰다.
‘저놈은 내가 잡는다.’
스슥!
그림자 속으로 신중하게 은신했다.
어둑한 밤에는 암살자의 스탯이 더욱 효능을 발휘한다.
‘나는 랭커가 될 암살자.’
어떻게든.
기소율이 저 남자에게 붙어 있는 이유를 파헤칠 테다.
우웅!
고재영은 단검에 살의를 없앴다.
암살의 묘미는 상대가 왜 죽었는지도 모르게 하는 것.
‘우선, 저 창 든 스켈레톤의 목부터 딴다.’
스슷!
고재영의 단검이 태양창의 뒷목으로 유려하게 파고들 찰나였다.
쿠궁!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아니, 선유도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으읍?”
모골이 송연한 느낌에, 고재영은 저도 모르게 공격을 멈췄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자세를 낮췄다.
“크윽!”
“뭐, 뭐야?”
“무슨 기운이……?”
주동훈을 치려던 다른 헌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거력(巨力).
정체 모를 기운이 공간 자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기운이 흘러나오는 곳을 향했다.
“…….”
그리고 그곳엔.
상체 근육이 자글자글한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것을 보니,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것 같았다.
유성처럼.
“아이고, 많이 늦었나?”
굉장히 여유로워 보이는 말투의 남자.
고재영의 이마엔 식은땀이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저 남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장대웅이 왜 여기에…….”
광전사(狂戰士) 장대웅.
랭커이자 무려 세계 랭킹 20위.
세상에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