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43)
숲과 바위 (4)
지금까지 내가 봤던 도면 중 가장 높은 등급은 기껏해야 C급이었다.
드워프들에게 선물했던, 단단한 강철 망치.
그래도 중급 Lv.2짜리 대장장이인 뼈육이가 만들기엔 살짝 과분한 감이 있는 무기였다.
“여기! 이걸 받게! 복제본이고 원본은 따로 있으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이것도 받아주게! 어차피 집에 있어 봐야 쓸 데도 없어!”
그런데 오늘.
나는 수많은 도면을 얻게 될 것 같다.
그것도 전부 B급 이상으로.
‘맙소사…….’
도면의 종류는 다양했다.
각종 신비한 도구들과 무기.
심지어 엘프가 쓰는 활의 도면도 있었다.
‘이게 팔면 다 얼마야?’
물론 내 희귀한 도면이자, 밑천을 어디다 팔 정도로 생각이 짧진 않았지만.
과연.
이 도면들의 가치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
“잠시만요. 천천히 주세요. 하나하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는 정신없이 도면들을 챙겼다.
“마음에 드는 것부터 하나씩 꼭 만들어 드릴게요. 아, 여기 두세요. 감사합니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밑에서.
떨어지는 황금 덩어리들을 보따리에 쑤셔 담는 느낌이었다.
드워프들은 단순하면서도 화끈했다.
고작 무기 하나 만들어줬을 뿐인데, 이렇게 값비싼 걸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니.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 저기! 토니르 아니야?”
“토니르?”
몇몇 드워프가 뒤를 보며 수군대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토니르가 여긴 웬일이래?”
“오오, 토니르도 도면을 가져다주려는가?”
나 역시 시선을 돌렸다.
왜, 토니르가 누군데?
“크으, 토니르라면 명망 높은 대장장이 가문 아닌가! 과거 수준 높은 땅의 전사들은 전부 토니르 가문의 무기를 사용했다지?”
“암, 토니르 가문의 무기는 유명하지. 비록 몇 개 남진 않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빛을 발한다고.”
“캬, 그럼 저것만 만들 수 있다면?”
“빌어먹을 엘프들을 이 세상에서 치워 버리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
웅성거리는 드워프들의 눈에 희망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저 작은 드워프의 가문이 그만큼 유명한가 보다.
토니르는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자네.”
그는 손에 쥔 도면 하나를 내밀었다.
그냥 종이 쪼가리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드워프들이 가져온 도면보다 굉장히 빛나 보이는 건 착각일까?
“혹시 이걸 만들 수준이 되시는가?”
“…….”
꼴깍!
나는 침을 삼키며 도면을 받았다.
[아이템 : 타이탄의 천둥 망치] [등급 : A] [종류 : 도면] [설명 : ‘타이탄의 천둥 망치’를 제조하기 위한 설계도입니다.] [효과1 : ‘타이탄의 천둥 망치’ 제작 가능.] [효과2 : ‘철괴’ 100개, ‘은괴’ 20개, ‘미스릴괴’ 2개, ‘나무 조각’ 30개 필요.] [효과3 : 제작 난이도가 복잡한 만큼, 뛰어난 성능을 자랑합니다.]‘……이건 무슨.’
나는 경악했다.
A급 도면이라니.
지구에서도 A급 도면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값비싼 A급 아이템을 양산할 수 있다는 거니까.
‘S급은 말도 안 되고.’
S급은 무기 자체가 유일한 느낌이라.
지금까지 도면이 존재한다는 소식 자체를 듣지 못했다.
‘게다가…… 재료도 너무 많이 드는데?’
저 재료가 전부라 생각하면 안 된다.
실패하면 날아가는 재료들까지 생각하면 무수히 많은 재료가 필요할 거다.
‘그리고 미스릴괴?’
아직 뼈육이의 제련 실력으로는 미스릴괴를 뽑아낼 수 없다.
아니, 그전에 뼈육이의 ‘중급 아이템 제작’(Lv2)으로 저 A급 무기를 만들 수 있을까?
삐걱!
뼈육이가 망치를 들고 다가왔다.
녀석의 눈 부위에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제작 욕구가 느껴졌다.
[도면, ‘타이탄의 천둥 망치’를 살핍니다.] [주의! 주의! 주의!] [스킬 레벨에 비해 고난이도의 도면입니다.]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아…….”
나는 멍하니 메시지를 올려봤다.
과연, A급 도면은 아직 나에게 과분한 경지일까?
딱! 딱! 딱!
하지만, 뼈육이가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마치 할 수 있다는 듯, 자신 있게 망치를 치켜세웠다.
“저걸 도전해 보고 싶다고?”
끄덕, 끄덕.
당당하게 수긍한다.
쩝, 나는 입맛을 다셨다.
‘하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건.
좋게 말하면 성공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게다가 저것만 성공한다면, 뼈육이 스킬의 숙련도가 엄청나게 오를 수도 있을 텐데.
“문제는 미스릴인데…….”
“그건 걱정하지 말게.”
턱을 잡고 고민하던 내 앞으로 토니르가 다가왔다.
“가문에서 관리하고 있는 여분의 미스릴이 있어. 자네가 도전해 준다고만 하면 아낌없이 지원하겠네.”
“정말입니까?”
“그래, 우린 그 무기가 그만큼 간절하네.”
“…….”
허어.
재료까지 갖춰졌다?
그럼 나야 손해 볼 거 없잖아?
“그럼 그렇게 하시죠.”
나 역시 깔끔하게 수긍했다.
* * *
“허허, 자네. 천둥 망치에 도전한다지?”
“열심히 만들어주게.”
“자네가 우리 바위 일족의 희망이야.”
내 도전 소식이 타이탄에 널리 퍼졌다.
드워프들은 당분간 찾아오는 것을 멈추고 멀찍이 떨어져서 응원했다.
그들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
까앙! 까앙!
뼈육이가 힘 있게 뼈 망치를 내려찍었다.
[완성도 30%]까앙! 까앙!
[완성도 35%] [제작에 실패합니다.] [투입된 재료가 소멸합니다.]“제길.”
만드는 과정은 예상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에 자신 있어 하던 뼈육이도 고개를 갸웃했다.
몸이 생각처럼 안 따라준다는 거겠지.
그래도 뼈육이는 최선을 다했다.
수준 높은 무기를 만든다는 것.
그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망치질에 조그마한 머뭇거림만 있어도.
[균열이 발생합니다.] [제작에 실패합니다.] [투입된 재료가 소멸합니다.]만들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뼈육아.”
나는 그런 뼈육이 곁을 지켰다.
모든 것을 녀석에게 위임하지 않고, 나 역시 함께 견디려 노력했다.
“포기하지 마라. 살아보니 그렇더라.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어.”
그래.
지금까지의 블랙스미스에 노력이 있었던가?
그냥 스킬을 사용하면 뚝딱 만들어졌던 게 과연 노력일까?
시스템상 숙련도가 아닌 진짜 숙련.
수백 수천 번의 반복으로 몸에 밴 것처럼 기술을 체득(體得)하는 것.
뼈육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일지도 모른다.
까앙! 까앙!
청아한 쇳소리가 광산을 울렸다.
나 역시 그 옆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태청심법(太靑心法).
마음을 다스리고, 기를 느끼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까앙! 까앙!
그것에 맞춰 뼈육이의 망치질도 느려졌다.
나와 교감하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내려쳐야 하지?’
‘어떻게 해야 균형을 흐트러트리지 않으면서 같은 힘을 전달할 수 있지?’
뼈육이의 고민이 머릿속에 흘러들어 왔다.
그 과정에서.
녀석의 클래스 ‘블랙스미스’로부터의 자존심이 느껴졌다.
깡! 깡! 까앙!
그 순간.
녀석의 망치가 더욱 유려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둥……. 설계자는 이 무기에 벼락과 같은 스피드를 담고 싶었구나.’
‘우렁찬 뇌성을 통해, 적을 공포에 빠지게 하고 싶었구나.’
벼락은 공포의 상징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의 철퇴는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예측이 불가하다.
더하여 굉장히 빠르고 강렬하다.
까앙! 까앙!
뼈육이의 망치에 내가 떠올린 심상이 담기기 시작했다.
태청심법의 기가 벼락과 같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어?”
“세상에!”
“이, 이 봐들. 저기 봐! 망치에 뇌전이 흐르고 있어!”
멀찍이서 떨어져 있던 드워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광경에 놀란 것이다.
“나! 나 들은 적 있어! 조상들께서도 망치질할 때 저런 현상이 나타났었다고!”
“맞아! 망치질에 혼을 담으면 저렇게 된다나?”
“혼?”
“그래, 혼! 우린 혼을 담을 줄 아는 대장장이를 명장이라 불렀지!”
드워프들이 하나둘 모여서 뼈육이의 망치질을 감상했다.
바위 일족의 잃어버린 유산.
그들의 표정에는 분명 감격이 서려 있었다.
“…….”
나 역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뼈육이.’
녀석의 정체가 뭘까.
도대체 뭐길래…….
고작 중급 아이템 제작 스킬로 저런 ‘혼’을 담아낼 수 있는 걸까?
게다가 본인의 진짜 생각이 아닌, 망자의 몸에 남아 있는 영혼의 잔흔(孱痕)으로만 말이다.
[완성도 2%]까앙! 까아앙!
‘허어.’
나는 속으로 한탄했다.
분명 지금의 망치질이 여태껏 휘둘렀던 망치질보다 훨씬 더 빡세고 힘들었다.
하지만, 완성도는 지금과 달리 제대로 늘어나지 않았다.
얼마나 대단한 무기가 탄생하려고 저러는 걸까?
까앙! 깡!
1시간이 흐르고, 2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하루가 흘렀다.
[완성도 21%]“…….”
24시간 동안 채운 완성도는 고작 21%.
그래도 한가지 위안인 건.
더 이상 실패 메시지가 뜨지 않는다는 것.
깡! 깡!
뼈육이는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고.
나 역시 끊임없이 태청심법을 운용했다.
도중에, 본능적으로 노인도 불렀으나.
집중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지셨다.
깡! 까앙!
이미 타이탄에는 소문이 한가득 퍼졌다.
“진짜 대장장이다…….”
“저자는 찐이다!”
“아아, 여기까지 느껴지는 장인의 열정이 본인의 마음속 깊은 곳을 찌르는구나!”
이제는 무아지경이었다.
드워프들의 감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블랙스미스도 ‘기’로 통하는구나.
폭풍처럼 요동치는 뼈육이의 망치질에.
내 기운을 담았다.
그러자 녀석의 망치질이 더욱 유려해졌다.
춤을 췄다.
역시, 만술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노인과 달리, 내 만술 속에는 분명 대장장이의 혼이 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 * *
“흐음.”
주동훈의 뒤를 한 유령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주름으로 자글자글하고 하얀 소복을 입고 있는 자.
이 세계의 절대자, 만술의 달인.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잘되었군.’
‘저 망치질을 보면서 오히려 ‘기’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어.’
‘태청심법이 벌써 수준급으로 올라서고 있다니.’
흡족하였다.
처음엔 잡기에 눈을 돌리는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허허, 내가 태청공재만성대법을 너무 우습게 봤구나.’
본인이 만들었음에도.
한 번도 써보지 못했던 술법.
쓰레기와 같은 둔재를 하늘이 점지한 천재로 만들 수 있는 비법!
과연, 그 능력은 대단했다.
주동훈.
그는 분명.
생전 처음 해보는 블랙스미스를 아무런 스승도 없이 혼자 배우고 있었다.
어떤 행동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
자신만의 술(術)을 창작하는 것.
그게 바로 천재의 길 아니겠는가!
까앙! 까앙!
분명히 망치질은 뼈육이가 하고 있다.
눈앞에 드워프들도 뼈육이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노인은 알았다.
망치질은 뼈육이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뼈육이의 정교한 망치질에, 주동훈의 심상이 더해지고 있었다.
점점 완성되어 가는 망치의 모습을 보자니.
왕년에 썼던 자신의 무기 못지않은 힘이 느껴졌다.
‘대단한 놈, 징그러운 놈.’
그래.
이번엔 솔직히 감탄했다.
항상 뺀질거려도, 이번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야 내 제자답구나.’
노인은 당분간 훈련을 미루기로 했다.
현재의 주동훈은.
누군가가 강제로 지식을 주입하는 것보다.
본인이 스스로 얻는 지식이 더 중요한 시기였다.
“…….”
제자의 모습을 만족스럽게 지켜보던 노인은.
1시간이 지나자, 스슥! 하고 사라졌다.
처음으로 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