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543)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543화
적응하는 랭커들
“후우, 쌀쌀하네!”
무릉도원의 위도와 경도를 알 순 없지만, 지구보다는 평균 기온이 낮은 편이다.
그 때문에.
새벽에 나오면 일반인과 차원이 다른 기력을 가지고 있는 랭커들도 한기에 팔을 쓸어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신입이라면 더더욱.
“오늘도 체력 훈련인가?”
“체력 훈련이랑 기력 훈련이겠지 뭐.”
“사실 그것만으로 빡세긴 해. 근육통이란 걸 느껴본 것도 오랜만이라니까?”
이번에 뽑힌 82명의 신입은 천마신교의 주관으로 합동 훈련을 받고 있었다.
여기서 기초 체력과 어느 정도 틀이 잡히면, 각 별천지 산하 기구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본 랭커들의 훈련에 참여할 수 있다나?
“그래도 자존심 상하긴 해.”
“우리가 아무리 랭커 끄트머리라고 해도 그렇지, 체력 단련이 뭐냐, 체력 단련이.”
그들은 각자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지급 받은 쇠 주머니를 꺼내어 내려놓았다.
혹여나 누가 들을까 말조심은 하고 있었지만, 그들 대다수는 일종의 불만이 있었다.
‘……랭커 되면 좋을 줄 알았는데, 이런 지겨운 훈련만 반복해야 한다니.’
‘천계와 마계를 오가며 전쟁하던 랭커들은 어디 가고, 맨날 이런 노가다냐.’
‘그래도 나 정도면 랭킹 900위 초반대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면 800위 후반대도?’
이번에 편입한 랭커들은 고유 능력이 사라졌을 때도 본인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했던 자들이다.
던전을 쉬지 않았고, 잠까지 아껴가며 본인을 단련했다.
그랬기에, 기회가 왔을 때 세계 1,000위 안에 들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슴 한편에 자신감이 차고 넘쳐흘렀다.
제대로만 가르쳐주면, 순식간에 랭커 상위권까지 올라설 수 있겠다는 포부도 겸비했다.
올 마스터 배지민이라는 여자애는 랭킹에 편입된 지 몇 년도 안 돼서 벌써 세계 랭킹 6위에 안착했다지?
‘그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간부 놈들!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빨리 날 데려가 집중 교육 시키란 말이야!’
기연만 있으면!
그것을 받쳐주는 노력과 끈기만 있으면!
앞서가 있는 랭커들을 다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배지민도, 주동훈도.
초고속 성장의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인물들이니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들 앞으로 한 여성이 걸어왔다.
세계 랭킹 910위, 쾌검(快劍) 고윤진.
천풍검(天風劍) 고영후와 함께 고 남매 중 하나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스윽.
그녀는 고개를 슬쩍 돌려, 눈으로 출석 체크했다.
“82명, 다 왔네.”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 역시 준비한 쇳덩이들을 하나둘 착용하기 시작했다.
“준비해라. 오늘도 체력 단련부터 시작하겠다.”
“……후.”
“또……. 또.”
“지겨운 달리기.”
몇몇 랭커들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며 쇠 주머니를 착용했다.
항상 고난도 던전에 들어가 실전 경험으로 실력을 키워왔던 헌터들에게 별천지의 훈련 방식은 생소해도 너무 생소했다.
이렇게 한다고 기력이 올라?
스킬의 숙련도가 올라?
아니면 실전 경험이 상승해?
납득이 안 가는 거다.
“큼.”
눈살을 찌푸린 고윤진이 살짝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신입들.”
“…….”
“본 교관이 신입들의 불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신입들의 체력이 벌레와도 같은 수준인데, 어찌 체력 단련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겠나.”
“뭐, 뭐요?”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버, 벌레……?”
몇몇 인원이 따져왔다.
조금 전 불만을 늘어놓던 자들이었다.
실력 없이 자신감으로만 똘똘 뭉쳐진 자들.
“교관님도 해봐야 랭킹 910위면서 말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보아하니, 저번 달리기도 우리랑 비슷비슷하게 뛰는 것 같던데!”
쿠웅!
그들 중 호전적인 자들이 쇳덩이를 내려놓고 따지기 시작했다.
고윤진은 그런 그들을 보며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제기랄.
지금쯤 본교 훈련 준비를 해야 할 차례인데 왜 이런 일을 맡아서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천마신교에서 그녀의 위치는 막내기에.
원래 무관일수록 예의를 중히 여기지 않던가.
꼬우면 강해지면 된다.
강해지면.
“흠, 본 교관이 신입들과 비슷하게 뛰고 있다고?”
짜증 난 고윤진의 목소리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래.
저 몇몇 놈들이 문제다.
대다수 랭커들은 집단에 순응하려고 노력하며, 불만 없이 잘 따르고 있는데 몇몇 미꾸라지들이 물을 흐리는 거다.
쿠웅!
고윤진이 입었던 쇳덩이를 다시 내려놓았다.
“거기 신입.”
그녀가 가장 저돌적으로 따졌던 인원 하나를 지목했다.
움찔.
근육질 남성이 살짝 뒷걸음질 쳤다.
고윤진의 작은 체형에서 나오는 기세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와서, 이 쇳덩이를 입어봐라. 그걸 입고 어제처럼 뛸 수 있다면 ‘진짜’ 랭커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게 해주겠다.”
고윤진은 [진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의미는 단순했다.
여기 있는 신입들은 [가짜]라는 말.
“이익!”
근육질 남성이 성큼성큼 다가와 쇳덩이를 들어 올렸다.
이까짓 게 뭐라고!
하며 힘을 주어 들어 올렸…….
아니, 들어 올리려 했다.
“응?”
근육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는데도, 쇳덩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뭐지?
왜 안 움직이지?
이럴 리가 없는데?
근육 랭커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뭐야, 장난치지 마.”
“왜 안 들어? 연기하는 거야?”
함께 따지던 랭커들도 슬금슬금 다가와 쇳덩이를 함께 들자, 그제야 들린다.
‘들리긴 하는데…….’
딱 거기까지다.
이걸 입고 뛴다고?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입는 순간 바닥에 찰떡같이 달라붙어 허우적댈 게 분명했다.
그 정도로 무거웠다.
‘미친.’
그제서야 82명의 랭커들은 고윤진과 자신들의 격차를 직접적으로 실감했다.
‘그럼 여태 저런 걸 입고 뛴 거야? 우리랑 같은 속도로?’
‘그건 진짜 괴물 아닌가?’
‘고작 910위가 이 정도였다고?’
“후.”
고윤진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알까?
별천지의 길드 마스터, 주동훈의 수하라 불리는 스켈레톤들이 주기적으로 산하 집단을 돌며 가르침을 준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가르침에는 항상…….
매와 구타가 있다는 것을.
“본 교관의 잘못이 크다. 신입이니만큼 쉽게 쉽게 가려고만 했는데, 그래서는 안 됐다. 교관의 생각이 짧았어.”
“……예?”
“그, 그게 무슨?”
고윤진이 훈련장 바닥에 널브러진 목검 하나를 줍는 걸 보고, 무언가 섬뜩함을 캐치한 랭커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차피 본 훈련에 참여하게 되면, 자주 겪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신입들을 생각해도 너무 생각해 줬던 거지.”
“아, 아닙니다! 일단, 진정하시죠. 교관님!”
“저 새끼들이 문제예요. 저는 불만 없었어요!”
“그나저나 그 목검은 왜 자꾸 쓰다듬으시는……?”
퉁, 투웅!
목검을 손바닥으로 튕기던 고윤진의 미소가 깊어졌다.
“다 알고 있다. 고작 랭킹 910위가 세 봐야 얼마나 세겠냐는 의문이 없을 리 없겠지. 이해한다. 내가 그 자리에 똑같이 있어도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
“아뇨.”
“이제 압니다.”
“야, 뭐 해! 빨리 사과드려!”
모두들 이제야 물이 엎질러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것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사과는 되었다.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거지. 오히려 좋다. 본 교관 역시 이제부터 봐주지 않고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겠다.”
고윤진이 단호하게 선언했다.
“모두 덤벼라. 신입들이 본 교관의 옷깃 하나라도 스칠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훈련 종료를 약속하지.”
“예……?”
“다 같이 덤비라고요? 82명이?”
랭커들이 혼란스러워하자, 고윤진의 표정에 독기가 어렸다.
“가만히 있을 거면 먼저 가겠다.”
파앗!
그녀가 비호처럼 튀어 나갔고.
퍼버버버벅!
박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끄, 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훈련장에 울려 퍼지는 고통스러운 비명.
평소와 같은 무릉도원 훈련장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
그리고 그 훈련 모습을.
“크, 맞지. 이거지. 역시 폭력만큼 확실한 교육법이 없다니까요.”
주동훈이 팔짱 낀 채,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 서 있는 하세라.
스릉!
그녀가 칼을 뽑아, 의사를 표현했다.
– 네가 준 영단은 잘 쓰고 있어. 고맙다.
“그래 보이네요.”
주동훈은 이미 신(神)의 경지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무릉도원 내 랭커들이 어떤 훈련을 하는지 눈에 훤히 보인다.
각 팀장은 적당히 준비된 랭커들에게 정수를 아주 극 소분하여 투입했고 모두들 그것을 다스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잘 적응하면?
조금 더 떼어주는 식이다.
‘내가 강해지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지구 역시 우주의 문명국가로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아야 한다.
스켈레톤 대군, 천계, 마계에 이어.
지구의 랭커들도 언젠가 자신을 위해 싸우는 날이 올 테니.
인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주동훈 역시 처음은 인간이었으며, 배지민 같은 돌연변이도 나오는 게 바로 인류다.
육체적 한계를 노력으로 극복하는 종족.
“신입들 추하구나! 고작 이런 실력으로 불만을 털어놓았단 말이야?”
퍼버버벅!
천마신교 막내의 실력 행사를.
주동훈이 한동안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무럭무럭 강해져라!
***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리고 역시나.
눈에 띄게 발전한 랭커들은 다름 아닌 별천지 소속이었다.
각 팀장들에게 정수를 준 만큼, 주동훈은 어르신에게도 일정량의 정수를 주었다.
별천지의 멤버들을 좀 보살펴 달라는 의미였다.
그 결과.
올 마스터(All Master) 배지민이 마침내 성운급에 도달했다.
그것도 그냥 성운이 아니다.
기초가 튼튼한 만술(萬術)의 특성상, 초 거대성운으로 변했고.
이는 정수를 빼둔 주동훈을 능가하는 성과였다.
“……진짜 천재도 저런 천재가 없네.”
“현타 오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장대웅과 플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런 둘도 이미 성운급 경지에 올라섰다.
이제 더는 그들에겐 피를 깎고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견디며.
무지막지한 기운을 그릇에 담아내기만 하면 된다.
사실, 그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릇이 탄탄하면 탄탄할수록 더 많은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고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장대웅과 플로아는 날마다 피를 토해가며 기운을 흡수하고 뱉어냈다.
인간은 단련의 동물.
도전하면 도전할수록 몸 안에 축적되어 있던 불순물이 빠지고 담아내는 기운 역시 정순해졌다.
기운의 크기는 똑같다.
다만, 이전에 가지고 있던 기운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전이 대해라면, 지금은 고작 한 줌이다.
그것만으로도 과거와 같은 힘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순수해진 것이다.
[별천지의 성골들, 강해지다!] [올마스터, 배지민! 과거 주동훈의 위치까지 올라서!]별천지 측은 랭커들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정리해 세계인들에게 주기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들이 안심할수록 세계 경제는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어차피 함께 살아야 할 우리의 행성.
정보 몇 조각으로 지킬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리그가 한 달 정도 남았을 당시.
삑! 삐비빅! 삑!
띠리리!
주동훈의 집 현관문이 열렸다.
“길마님!”
누군가의 외침에 소파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던 주동훈이 일어섰다.
그의 방에 번호를 누르고 들어올 수 있는 인물은 유일하게 김진아뿐이었다.
“오늘은 좀 빨리 오셨네요?”
김진아와 주동훈은 거의 이웃이나 마찬가지기에, 업무가 끝난 밤이 되면 꼭 저렇게 편한 복장을 한 채 들어오곤 했다.
용건은 항상 똑같다.
하루 있었던 굵직한 일을 묶어 보고하는 것.
“네. 기운 좀 만들고 있었습니다.”
우우웅!
주동훈의 옆에는 어둠(Dark)의 정수 여러 개가 쌓여 있었다.
“오늘도 보고하러 오셨나요?”
“아뇨, 이번엔 보고 말고 제안 하나 하려고요.”
“제안요?”
주동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말해보세요.”
김진아가 자연스럽게 거대 소파 맞은편에 앉아, 등을 기대고 양발을 쪼그려 올렸다.
그러고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길마님.”
“예?”
“차라리 이번에 드러누우시는 건 어때요?”
“그게 무슨 소리죠?”
“아예 드러눕고, 초월자 입장에서 경기 보러 가자는 소리죠.”
“……예?”
주동훈이 미간을 모았다.
무슨 생각일지, 어디 한번 들어나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