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71)
침입자 (3)
“크허억.”
섀도우 워커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갈비뼈는 금이 간 듯 욱신거렸고, 내부 장기가 크게 흔들렸는지 온몸이 꼬일 듯 아팠다.
‘어떻게…… 암제가 여길……?’
그는 자신을 타격한 존재가 누군지 단숨에 알아봤다.
어찌 모르겠는가.
자신과 비슷한 암살자형 랭커의 끝판왕인데.
“……기소율?”
그래서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절대 누군가와의 갈등에 참여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굉장히 시크하고, 오직 자신의 성장밖에 생각하지 않는 존재.
모든 암살자들의 워너비.
‘그런 암제가 고작 B급 헌터가 운영하는 공방에 나타났다고?’
섀도우 워커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믿을 수 없었다.
‘최근 무슨 이슈라도 있었나?’
오성 그룹의 용병이 된 후.
방탕하게 놀기에만 바빴던 그였어서, 최근 소식에는 무지했다.
“실망스럽네요, 섀도우 워커. 나름 괜찮은 헌터라 생각했는데, 뒤에서 이런 더러운 짓이나 하고 있을 줄이야.”
저벅, 저벅.
단검을 길게 늘어뜨린 그녀가 섀도우 워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절대 빈틈이 없어 보이는 걸음걸이.
“큭.”
고통을 참아낸 섀도우 워커 역시 다시 칼을 잡고 일어섰다.
일어서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검이 단숨에 심장을 뚫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가 입을 열었다.
“기소율, 그대가 여긴…… 어떻게……?”
“어떻게라뇨? 드미르 공방 소속인 제가 이곳에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요?”
“뭐라?”
황당했다.
언제부터 기소율이 드미르 공방이었단 말인가.
“언제부터? 그대는 원래 파랑 소속이 아니었나?”
혼란스러웠다.
300위대 랭커면 세상 어느 집단을 가도 두 팔 벌려 환영할 텐데.
어떻게 이런 돈도 안 나오는 소규모 공방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
퉤.
섀도우 워커가 가래침을 뱉어냈다.
침에서 시뻘건 피가 섞여 나왔다.
‘신종오, 그 망할 애송이 자식.’
역시.
300억을 그냥 제시한 게 아니었다.
후회가 물밀 듯 밀려 들어왔다.
암제가 있는 줄 알았다면, 300억은커녕 1,000억을 줘도 안 왔을 거다.
돈보다는 목숨이 소중하니까.
스윽.
기소율은 굳이 자신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세를 살짝 숙이고, 묵빛의 단검을 들어 올릴 뿐.
“자, 잠깐!”
섀도우 워커가 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기소율이 답했다.
“뭐죠?”
“내가 실례가 많았다. 서로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말로 풀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오해라…….”
기소율이 픽 웃었다.
“당신은 오해로 야밤에 누군가에게 칼을 들이미나요?”
“그, 그건 신종오 그 새끼가……!”
“변명하지 마세요. 당신은 분명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고, 그것만으로도 죽을 이유는 충분하니까요.”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고오오…….
그 주변으로는 끔찍한 살기(殺氣)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건…….’
꿀꺽.
섀도우 워커가 침을 삼켰다.
왜인지는 몰라도.
분명 눈앞의 암제는 분노하고 있었다.
마치 용의 역린(逆鱗)을 건들기라도 한 것처럼,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어 보였다.
‘별수 없나?’
이제는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강하다지만 자신 또한 랭커 아니던가!
스슷!
자세를 낮춘 섀도우 워커가 주변 그림자 속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동시에 기소율의 측면과 후방에서 어두운 기운이 일제히 솟아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완벽한 기습!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속도였다.
“…….”
하지만 기소율은 움직임이 없었다.
당황하지도,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았다.
스윽.
그저 단검을 쥔 오른팔을 두어 번 떨쳐냈을 뿐.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움직임이었다.
스걱! 서걱!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이는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커, 커헉!”
기소율의 급소를 노리던 더미(dummy)는 이미 아스러져 사라졌고.
본체인 섀도우 워커는 어깨를 부여잡은 채 피를 뚝뚝 흘렸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몸을 비틀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베인 건 어깨가 아니라 목젖이었을 거다.
부르르.
그의 몸이 세차게 떨렸다.
‘이, 이건 그냥 상대가 안 되잖아.’
단 한 번의 부딪침으로.
그는 기소율의 수준을 완전히 파악했다.
그녀는 랭킹 379위.
자신은 랭킹 720위.
고작 341위 차이라 생각했건만, 고작이 아니었다.
‘어둠에 숨지도 않은 암살자가 이 정도 힘이라고?’
격의 차이가 느껴졌다.
달걀로 바위를 내려치는 격.
순간.
스슷!
기소율의 신형이 사라졌다.
“흐읍?”
화들짝 놀란 섀도우 워커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어디지? 오른쪽? 왼쪽? 뒤? 아니면 위?’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그녀의 신형은 보이지 않…….
푸욱!
고막에서 두부 잘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그때였다.
동시에 자신의 왼쪽 가슴에 무언가 묵직한 통증도 느껴졌다.
“……어? 뭐, 뭐야.”
당황한 섀도우 워커가 자신의 심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도대체 언제……?”
단검 하나가 박혀 있었다.
어디에도 없었던 기소율의 싸늘한 눈빛과 함께.
그야말로 귀신같은 움직임이었다.
꾸우욱!
동시에 엄청난 통증이 몰려 들어왔다.
“끄아아아악!”
재빨리 검을 휘둘러, 그녀를 쳐내려 했지만.
푸확! 푸욱!
단검을 뽑아내, 뒤로 슬쩍 피해낸 그녀가 다시 한번 심장을 찔렀다.
검이 뽑히고 다시 꽂히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초.
그녀가 중얼거렸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려던 행동을 그대로 돌려받은 것뿐이니까.”
“끄, 끄으윽.”
이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목에는 피가래가 끓었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묵빛 단검에 담긴 모종의 힘이 심장을 뚫다 못해 터뜨린 것 같았다.
털썩.
입가에 피를 주르륵 흘리던 그는 곧 움직임을 멈췄다.
한 랭커의 최후.
전 세계의 랭킹 변동이 다시 한번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 * *
섀도우 워커가 죽었다.
그 막강하던 랭커의 숨이 멎었다.
그것도 단 세 방에.
“주군…….”
태양이가 조용히 읊조렸다.
“죄송합니다. 고작 저런 놈 하나 처리 못 해서 주군을 위험에 빠뜨리다니…….”
“저도 훈련을 더 빡세게 해야겠어요. 몸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는 게 아니어서.”
엘드린 역시 맞장구쳤다.
그런 그들의 목소리에는 분명, 미안함이 있었다.
“…….”
뼈다귀들 잘못이 아니다.
내가 B급이니까.
아직 랭커가 아니니까, 이들의 성장에도 한계가 있는 거다.
그들도 답답하겠지.
본래의 실력이라면, 기소율보다도 더 위에 있는 존재들이니까.
‘오히려 잘했어.’
고작 B급의 힘으로 랭커를 상대로 버틸 수 있었던 게 그들 덕분이었다.
미약한 힘으로도 강자를 상대할 수 있는 노하우와 노련미 덕이었다.
“동훈 씨.”
일회용 손수건으로 단검을 소중하게 닦아낸 기소율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뭐랄까…….
방금 전투를 끝내서인지, 평소보다 굉장히 흥분한 느낌이었다.
검을 쥔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만 봐도.
“……괜찮으세요?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암제님. 덕분에 저는 괜찮아요.”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진심 어린 감사였다.
이번에도 그녀에게 목숨을 빚졌다.
‘단검이 아깝지 않구나.’
나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은인에게는 더욱더 대접하라.]내가 설정한 신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으니까.
혹여 나중에 블랙스미스 스킬이 극에 달했을 때, 더 좋은 무기로 바꿔줘야지.
드미르 공방의 VIP는 영원한 VIP로 남아야 한다.
그게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법.
“그나저나 아까 전에 그건 무슨 소리예요? 파랑을 나왔다고요?”
흠칫!
내가 묻자 그녀가 몸을 살짝 떤다.
음?
왜 저러지?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드미르 공방 소속이란 말도 들은 것 같았다.
“음, 그게……. 사실 말이죠.”
무언가 머뭇거리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3층에서 김진아가 내려왔다.
놀란 마음을 추슬렀는지, 여유로운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였다.
“암제님.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아뇨, 그냥…… 뭐. 근데 누구……?”
멋쩍게 뺨을 긁던 기소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참고로 그녀와 김진아는 초면이다.
“아하하, 김진아라고 합니다. 이번에 부공방주 직책을 맡게 됐어요.”
“김진아……? 아!?”
기소율의 눈동자가 커졌다.
“혹시 헌터 은행의 김진아?”
“저를 아시나요?”
“오빠에게 들어본 적 있어요. 길드에 꼭 영입하고 싶은 인재라고……. 근데 어떻게 여기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하여튼, 파랑에서 저를 그렇게 봐주셨다니, 굉장한 영광입니다.”
김진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마치 자신의 가치를 잘 안다는 듯.
당연하다는 자신감이 돋보였다.
이내, 기소율이 다시 나를 바라봤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사실, 제가 S급 무기를 발표한 이후,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었어요. 정리할 게 있어서 조금 늦긴 했다만.”
“그렇군요.”
“동훈 씨.”
“넵.”
“동훈 씨는 우리 서울 오성(五星)의 추천을 받은 헌터예요. 저는 그런 동훈 씨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요.”
“…….”
“솔직히 동훈 씨는 아직 약해요. 사람이 약하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저 그 속에 숨겨진 잠재력을 성장시키기 위해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는 말이에요. 세상은 험난하니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드미르 공방에 합류하고 싶다.
그렇기에, 파랑을 나오기까지 했다.
굉장히 감사한 말이었다.
‘하지만.’
노인이 말했었다.
-나한테 도전했었던 계집. 도대체 언제까지 곁에 끼고 있을 테냐?
-네놈은 지금 분수에 맞지 않게 강한 존재가 곁을 지켜주고 있어.
누군가의 등 뒤에 숨어 있기만 해서는 강해질 수 없다고.
비록 험난한 야생의 세계일지라도, 직접 맞서 싸워야 한다고.
“……세상에, 공방주님?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해요?”
내가 고민하고 있자, 김진아가 뭐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환호성을 내질러야죠! 암제님이 들어온다는데! 암제님이 누군지 몰라요? 세계 랭킹 379위라고요! 379위!”
“그건 그렇지만.”
“세상에나 마상에나.”
김진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방실 웃으며, 기소율을 올려다봤다.
“히히, 암제님!”
“예, 예?”
기소율이 살짝 당황했다.
“암제님께서 드미르에 오신다고 하면 저희야 언제든 환영이죠! 이리 오세요! 채용 문제는 저, 부공방주와 상담하면 된답니다!”
“……그런 건가요?”
“물론이죠! 공방주님이 원래 쓸데없는 생각이 많으셔서! 자, 자. 3층. 상담실로 오세요! 커피는 뭐가 좋으세요? 달달한 라떼? 아니면 얼죽아?”
으음.
내가 움찔거리자, 김진아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바라본다.
가만히 있으라고.
굴러오는 복을 받아먹기 싫으면, 적어도 발로 차지는 말라고.
‘하긴…….’
상관없겠지.
노인은 내가 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소리일 뿐.
현실적으로 기소율의 존재는 필요하다.
방금과 같은 불가항력의 상황에서도 그렇고.
집단의 성장에도 크나큰 도움이 될 게 자명했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그녀를 받아들이길 원했다.
그러한 감정을 받아들이자.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긴, 내가 언제 어르신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나는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기소율은 아직 묵묵부답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김진아의 말보단,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싶다는 거겠지.
좋다.
“암제님.”
“예.”
내 장점 중 하나는 결정이 빠르다는 것.
“고마워요, 와주셔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드미르 공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