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85)
태양 vs 달 (2)
“이런 게 수준 높은 실력자들의 결투로군요?”
[진짜 뭐가 뭔지 하나도 안 보여요!]라고 김진아가 말하려던 순간.슈우웅!
수풀에서 벼락처럼 튀어나온 화살이 다시 한번 태양이의 미간을 노렸다.
잠깐이나마 시선을 놓칠 만큼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비겁하게 싸우는구나.”
타앙!
그마저도 태양이는 쉽게 쳐냈다.
“백날 해보거라. 이런 기습 따위로 내 몸에 흠집 하나 낼 수 있는지.”
단순한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담담한 어투.
진짜 그렇게 믿고 있는 자의 말투였다.
“왜 그런 줄 아는가?”
휘리릭!
태양이의 창이 허공에 화려하게 돈 후, 왼쪽 아래로 늘어뜨려졌다.
“나는 매 순간이, 매 삶이 암살의 연속이었다.”
한때, 모든 인간들을 적으로 두었던 괴물이었던 자.
“앞을 볼 수조차 없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수많은 암기와 함정들, 계략들…….”
“…….”
“그것들을 모조리 찾아내고 쳐내고 파훼했던 나에게 이런 기습쯤은 그저 일상일 뿐이다.”
타앗!
태양이가 수풀을 향해, 땅을 박찼다.
“흐음.”
엘드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러고는 달려오는 태양이를 부드럽게 응시했다.
“우리 숲의 일족이 다사다난했던 것만큼…… 태양창, 그대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러니, 붙어보는 거다. 누가 더 힘들었는지. 누가 더 노력했는지.”
“좋아요. 마다하지 않을게요.”
슈웅! 툭! 투두둑!
엘드린이 당긴 시위에서 녹색 화살들이 사방을 향해 쏘아졌다.
“제 주문의식을 곁들인 맹독 화살을 준비해 봤답니다.”
프스으으…….
각종 나무에 꽂힌 화살 뒷부분에서 맹독이 분출됐다.
마치 CS탄을 떠올리게 하는 가스.
혹시 모를, 대기 오염에 걱정하던 내가 곧 눈썹을 치켜떴다.
‘오, 나무는 멀쩡하잖아?’
아아.
그 주문의식이란 게.
마치 [이 독은 태양창에게만 통한다] 같은 느낌의 기본 주문인 건가?
‘역시 엘드린.’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한다.
“자, 태양창. 어디 한번 다가와 보시겠어요? 과연, 몸에 흠집 하나 없이 제게 닿을 수 있을지…….”
“귀엽군. 겨우 독 따위에 당할 거였으면, 대련하자고 신청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수풀 앞에서 멈춘 태양이가 창을 휘둘렀다.
사막의 모래폭풍.
‘몰아치는 사막’(Lv.6).
후오오오!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일시적으로 생겨난 모래폭풍이 수풀 전체를 감싸며 독을 날려 버렸다.
“아니죠, 아니죠. 그러니까 빈틈이 생기는 거죠.”
슈슝!
창을 휘두르던 겨드랑이 사이로 화살이 쏘아졌다.
본래 살아 있는 존재였다면, 위험한 급소 취급을 받았을 곳.
“허어?”
태양이는 스킬을 사용하던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화살을 피해냈다.
방금 전까진 여유로웠다면, 지금은 살짝 다급함이 보이는 모습이었다.
콰아앙!
스쳐 지나간 화살이 태양창의 뒷 지면에 박혀 폭발음을 만들어냈다.
“인정하마, 방금 기습은 쓸 만했다.”
태양이가 중얼거렸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녀석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몸에 흠집 하나 없이 상대하긴 힘들 것 같군. 그래, 오히려 좋아!”
고대 사막에는 존재하지 않던 자신의 적수.
사실, 녀석에게도 과거에는 호적수라는 존재가 있었을 거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강한 자들도 즐비했겠지.
하지만.
녀석은 사막 제국을 통치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 혹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들의 심장을 뚫어냈다.
동시에 사라진 적.
그 후, 자연스럽게 찾아온 무기력함.
어쩌면.
태생부터 전사인 그는 본능적으로 더 강한 존재를 찾고 있는 것, 아니었을까?
신체 능력의 증폭.
‘영혼의 불꽃’(Soulflare)(Lv.6).
우우웅!
태양이의 영혼이 불타올랐다.
잠깐의 시간 동안 신체 능력을 수배 끌어올려 주는 녀석의 기술.
“…….”
그 웅장한 과정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팝콘을 씹던 김진아 역시, 오독거리는 걸 멈췄다.
“찾는다.”
스윽.
태양이의 시선이 정확히 엘드린의 위치로 꽂혔다.
“다가간다.”
타앗!
그 후, 땅을 박차 허공을 날랐다.
“찌른다.”
후웅!
창을 던지듯 내질렀다.
그 일련의 과정이 마치 하나의 동작처럼 물 흐르듯 이어졌다.
잠깐의 신체 증폭으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와 파괴력을 내는 스킬.
“흐읏?”
엘드린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결국, 태양이의 창끝이, 엘드린의 어깨에 닿았고.
퍼걱!
뼈에 살짝 금이 갔다.
“……!”
그 모습을 보던 내가 주먹을 꽉 쥐었다.
엘드린이었기에 저 정도로 끝난 거지, 저 위에 서 있는 게 나였다면?
아마 반강제적으로 심장을 내어주지 않았을까?
“백리안(百里眼)으로 다가오시는 길을 예측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방금은 위험했어요.”
투욱!
엘드린이 옆 나뭇가지로 피신하며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도망만 다닐 셈이냐? 주군을 하루 종일 기다리게 할 셈인가?”
“설마요. 그 우둔한 고개를 들어보세요. 그때도 그런 말이 나오나.”
“뭐라?”
굵은 나뭇가지 위에서 태양이가 고개를 하늘로 젖혔다.
그리고 그 위에는.
달빛을 품은 월광(月光)의 화살이 융단 폭격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궁극기(窮極技).
월광낙하(月光落下)(Lv.6)!
미친?
나는 경악했다.
저건 도대체 또 언제 쏜 거야?
설마 태양이의 공격이 올 줄 알고, 미리 하늘을 향해 발사하기라도 한 거야?
“그래, 좋구나! 진즉 그렇게 시원하게 나왔어야지.”
태양이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창을 들어, 맞불을 놓았다.
“그거 아는가?”
“뭔데요?”
“달빛은 결코 태양 빛보다 밝을 수 없다는 것. 엘드린, 안타깝지만 그대는 나와 상성에서 진다.”
후우웅!
태양이의 창에서 빛이 폭사했다.
너무나도 빠르기에 눈까지 멀 정도의 연격술!
궁극기(窮極技).
태양연격(太陽連擊)(Lv.6)!
파바바밧!
태양이의 창이 마치 플래시 터지듯, 정신없이 움직였다.
떨어지는 달빛을 모두 쳐내고 가격하며, 종래에는 엘드린의 육체에까지 닿았다.
“글쎄요. 그건 부딪혀 봐야 아는 거겠죠?”
엘드린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허공을 나르며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였다.
화살에 ‘기’(氣)를 응축시켜 쏘아냈다.
콰가가강!
공터에 나무가 부서지고 바위가 으깨졌다.
땅이 파이고 흙먼지가 무수히 피어올랐다.
마치 뒷산 전체를 뒤집어 놓기라도 하듯 엄청난 공방전!
“…….”
그런 둘의 싸움에서 난 보았다.
저들의 생생한 과거의 육체를.
하얀 뼈다귀 위에 오버랩된 태양창과 엘드린의 신형(身形).
그들에겐 근육이 있었고, 혈관이 있었고, 폐가 있었다.
후욱, 후욱.
그래서 그들은 분명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엄청난 혈투를 벌이고 난 후, 거칠게 숨을 고르는 타이밍이었다.
“……미쳤다.”
김진아가 턱이 빠질 것처럼 입을 벌렸다.
그래, 나 역시 동감한다.
무슨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본 것 같거든.
그냥 이대로 찍어서 내보내도 칸 영화제 대상 수상감이지 않을까?
그만큼 생생하면서도 멋있는 전투였다.
‘승기는.’
나는 심판으로서, 묵묵히 계산했다.
‘태양이에게 조금 더 있나?’
사실, 그렇다.
엘드린은 전투보다는 원거리 지원, 그리고 주문의식을 통한 유틸성이 강한 소환수였고.
태양이는 전투, 그 자체.
그야말로 싸움만 하고 살아온 싸움광이었다.
‘게다가.’
엘드린은 어깨뼈를 다쳤다.
활을 쓰는 아처에게 어깨는 생명.
분명 승기는 태양이 쪽으로 기울었다.
그걸 태양이도 알았고, 엘드린도 알았다.
하지만.
“…….”
태양창은 묵묵히 창을 늘어뜨렸다.
“…….”
엘드린 역시 꿋꿋하게 화살을 뽑아 시위에 걸었다.
내가 내걸었던 조건은 상대를 소멸시킬 때까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건.
주인인 나의 행보만 봐도 충분히 깨달았을 것.
“가마, 엘드린.”
태양이가 달려들었다.
“언제든지요.”
엘드린이 뒤로 몸을 날리며, 활을 쏘았다.
두 번째 격전(激戰)이었다.
* * *
주말.
어느 등산로에 두 남자가 걷고 있었다.
등산이 취미인 듯, 깔끔한 산악 복장을 갖춘 이들은 다름 아닌 기자들이었다.
“어이, 한 기자. 오늘은 북한산이나 조지자니까 웬 동네 뒷산이야?”
“이봐. 김 기자. 동네 뒷산 무시해?”
“무시는 무슨……! 괜히 오늘은 힘드니까 쉬운 코스 가려는 거 아닌가? 왜, 어젯밤에 마누라가 못살게 굴기라도 했어? 흐흐.”
“허어, 김 기자……. 뭔가 단단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 씨 성을 가진 기자가 김 기자를 바라봤다.
“원래 산이란 게 그냥 높다고 다 힘든 게 아니야.”
“그럼?”
“북한산은 코스가 잘 나 있잖아. 그에 비해 여기는 산악 코스가 없다고. 대한민국에 얼마 없는 생생한 자연 그대로의 산이란 말씀! 비록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처럼 위대한 여정을 떠나진 못할지언정, 개척하는 재미를 소소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니겠나?”
“……근데 고도가 낮잖아?”
“어허!”
한 기자가 눈을 부릅떴다.
“자네는 기자 정신이 그렇게 없나?”
“엥? 여기서 또 무슨 기자 정신을 찾냐.”
김 기자가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원래 사건이란 게 이런 으슥하고 은밀한 곳에서 생겨나는 법이라고.”
“…….”
그건 일부분 동감한다만.
오늘은 휴일 아니던가.
아무리 요새 특종 잡기가 힘들다 해도.
쉴 때는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도대체 이런 곳은 어떻게 알아서는…….”
김 기자가 휴대용 구르카를 휘두르며 전진했다.
사람의 발을 타지 않은 길은 이렇게 나뭇가지를 쳐내며 전진해야 한다.
옻 독에 옮거나 가시에 찔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김 기자. 우리 좋은 날, 좋은 공기 마시면서 불평불만 늘어놓지 말고, 즐기자고. 즐겨.”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산을 오르던 그때였다.
쿠르르릉!
“뭐, 뭐여?”
땅이 뒤흔들렸다.
“지, 지진이여?”
기자 둘이 바닥에 무릎을 댄 채, 중심을 잡았다.
그때, 한 기자의 눈이 빛났다.
“지진이 아냐!”
“그, 그럼?”
“이건 특종이야! 자네는 냄새 안 나나? 기막힌 특종의 냄새?”
“냄새?”
냄새는 무슨 냄새란 말인가.
땅이 흔들려 토할 것만 같은데.
“잠깐 기다려 보게!”
철컥! 처억!
한 기자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조립했다.
고성능 휴대용 카메라였다.
“……?”
김 기자가 입을 벌렸다.
“자네, 등산하는데 저걸 들고 온다고?”
“어허, 기자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거 모르나?”
“대, 대단하군……. 근데.”
김 기자가 저 멀리 파동의 근원지를 바라봤다.
번쩍! 콰가가강!
아직도 무언가가 번쩍이고 있다.
“지금 저길 가겠다고? 일단 신고부터 해야 하는 거…….”
“어허! 신고는 무슨?”
버럭!
한 기자가 소리쳤다.
“지금 특종 뺏길 일 있나?”
“……미친.”
“따라오려면 따라오고, 도망치려면 도망치게. 난 저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찍어야겠으니.”
“…….”
이 시대에 참된 기자가 있다면.
바로 한 기자 아닐까?
“이, 이봐. 같이 가! 같이 가자고!”
김 기자는 결국, 그를 따라나섰다.
이미 숲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