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87)
출사표 (1)
광전사(狂戰士).
대한민국에서 그 이명 석 자를 듣고 지리지 않는 자가 있을까?
└ ㄷㄷ.
└ 지금 무슨 상황임?
└ 방금 한 기자가 ‘광전사’라 말한 거 들은 것 같은데?
└ ㄹㅇ?
└ 광전사, 점마가 여기엔 또 왜 나타나??
└ 드미르 한정판 2호가 광전사한테 떨어졌다며. 그거 때문에 친분 생긴 거 아닐까?
└ 맞어, 저번에 오성 그룹 변호도 하지 않음? 그냥 건물 자체를 때려 부숴버렸잖아;;
카메라는 전방을 가리키고 있어, 한 기자의 상황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은 서로 갑론을박을 펼치며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한 기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과, 광전사 님이 여길 어떻게?”
적지 않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인사들을 만나왔던 그였지만.
상대는 세계 랭킹 20위의 거물.
지금껏 만나왔던 자들과 ‘급’이 달랐다.
게다가 광전사가 누구던가.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기업이든 랭커든 다 부숴버리는 희대의 싸이코 아니던가.
“하하하.”
근육맨이 웃었다.
“왜, 내가 못 있을 곳에 있기라도 한 건가?”
“그, 그건 아니지만.”
“뭐, 저 전투 장면을 찍는다고 제삼자인 내가 뭐라 할 건 아니지만 말이야…….”
“예, 예.”
“동생한테 허락은 받고 찍고 있냐는 말이지. 초상권이라는 것도 있잖아?”
뼈가 있는 말.
사실, 한 기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 그게…….”
당황한 한 기자가 말을 더듬고 있을 때였다.
투욱!
하늘에서 여리한 여성의 신형이 떨어져 내렸다.
“후우, 광전사. 역시 빠르시군요. 나름 달린다고 해서 달린 건데……. 벌써.”
랭킹 509위, 흑검대(黑劍袋) 대장.
이선아.
허리춤에 달린 세련된 묵빛의 검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또한.
“후아, 다들 또 모였네? 오랜만이야.”
랭킹 828위, 백돈(白豚) 유상돈 역시 술배를 출렁이며 나타났다.
“으음, 전 사실, 아까부터 와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스윽.
마치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공간에서 그야말로 ‘나타나는’ 랭킹 379위의 랭커.
암제(暗帝) 기소율까지.
“엥? 기소율, 너 여깄었냐?”
유상돈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암제……. 연락 안 받아서 바쁜가 했더니, 여기 있었군요.”
“허허허, 아주 껌딱지가 따로 없구만.”
랭커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사실, 이들이 이곳 숲까지 주동훈을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던전 메이커’에 관해 토론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 연락 과정에 기소율은 없었다.
그 말은…….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다는 말.
“그렇게 쳐다보지들 마세요. 훈련 장면 지켜보는 건 동훈 씨랑도 약속했던 제 권리니까…….”
기소율이 랭커들의 눈을 살짝 피했다.
“…….”
한 기자는 눈을 질끈 감았다.
‘미친, 이게 다 뭐야.’
광전사에 흑검, 백돈, 그리고 암제까지?
심장이 뛰…… 아니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미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터져 없어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그래서. 지금 무슨 상황임?
└ 답답하네.
└ 알 권리 외치던 한 기자 어디 갔나?
└ 그래, 광전사가 대수냐! 빨리 알려줘라!
시청자들이 답답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미 화면에는 난장판이 된 공터밖에 보이지 않았고.
모든 음성이 화면 뒷부분에서 나오고 있었으니까.
투욱!
그때였다.
옆에 엎드려 있던 김 기자가 움찔하면서, 카메라의 지지대를 건드렸다.
‘어어?’
김 기자가 기겁했다.
지릴 것 같은 오줌을 참은 채, 그냥 숨죽이고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투룩, 툭! 툭! 투욱!
중심을 잃은 카메라가 능선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
모든 랭커들의 시선이 카메라로 돌아갔다.
카메라의 위치가 절묘하게 랭커들을 비추더니.
투욱!
마침내 멈춰 선 카메라가 그들 전부를 깔끔하게 비췄다.
마치 방송의 신이 돕기라도 하듯, 기가 막히게 뒤집힌 것이다.
└ ???
└ 뭐야? 이 광경은?
└ ㄷㄷㄷ 진짜 광전사잖아?
└ ?? 흑검이랑 암제도 있는데?? 백돈도?
└ 뭐야, 저거 서울 오성 아님?
└ 저기 어딘데. 비밀 아지트라도 되는 거?
└ 이햐, 주작이 아니라, 진짜였다니…….
└ ㄷㄷ 오늘 진짜 특종인데?
한바탕 난리가 난 시청자들.
“…….”
그리고 그런 카메라를 말없이 응시하는 랭커들.
“허어? 잠깐만 저거.”
이내 백돈이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영상이 아니라 방송은 아니겠지?”
파각!
그 순간, 카메라가 부서졌다.
유상돈이 다가가 발로 밟아버린 탓.
“방송?”
장대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은 저렇게 작은 카메라로 방송도 가능한가?”
“와, 광전사. 나이에 비해 완전 개 틀딱이었구나……. 대박, 세상이 변한 지가 언젠데 무슨 영감탱이 같은 소릴…….”
“흠, 일단 저도 그냥 동영상 촬영인 줄 알고 별생각 안 했는데, 방송이면 좀 문제가 되겠는데요?”
이선아 역시 나섰다.
동시에, 한없이 싸늘한 눈으로 한 기자를 응시했다.
“간덩이가 부어도 제대로 부으셨군요. 헌터의 훈련 장면을 허락도 없이 생방송으로 노출하고 계셨다니.”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말이야, 기자들을 괜히 기레기라 하는 게 아니라니까?”
유상돈도 맞장구쳤다.
움찔, 한 기자가 몸을 떨었다.
거의 한 개 국가급 전력이라 불리는 랭커 넷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란…….
“…….”
엄청난 기운이 쏠렸다.
싸늘한 눈빛, 감정 없는 눈빛, 살기 담긴 눈빛.
‘아아.’
한 기자는 오금이 저렸다.
마치, 지옥 염라대왕 앞에 서 있으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여러분들, 괜찮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한 기자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갔다.
누구지?
아아, 그 사람이구나.
그 엄청난 스켈레톤들의 주인.
주동훈, 바로 그였다.
“사실, 누가 온 줄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모를 리가 없지요. 대놓고 시끄러웠는데. 그냥 태양이랑 엘드린이 너무 진심으로 싸워서 내버려 뒀습니다.”
“…….”
한 기자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래, 지금 이 상황을 무사히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방송 송출의 주인, 주동훈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아니, 그가 용서해 주는 것.
이미, 라이브 방송을 꺼졌고, 시청자들은 다 튕겨 있었다.
각종 게시판에서는 이 일을 두고 왈가왈부 떠들고 있겠지.
이미 SNS를 통해서도, 이곳저곳 퍼져나갔을 거다.
“죄, 죄송합니다. 드미르 공방주님!”
한 기자는 재빨리 고개를 직각으로 숙였다.
“그러려 했던 건 아닌데, 등산 중에 갑자기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려서……. 특종 본능이 발동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아아, 괜찮다니까요. 기자님?”
주동훈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안심하라는 듯, 한 기자의 어깨를 토닥였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얼른 내려가십시오. 저 같아도 무서울 것 같으니까.”
“저, 정말요?”
“네, 네. 오히려 잘하셨습니다. 아 참, 전투 장면은 예쁘게 뽑혔죠?”
“……?”
어안이 벙벙한 한 기자.
일단, 용서해 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한데.
“허가 없이 촬영한 건 잘못하신 거지만, 대신 웬만하면 앞으로 기사도 좀 좋게좋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시겠죠?”
“무, 물론입니다!”
한 기자가 저도 모르게 외쳤다.
어떤 상황인지는 솔직히 아직 머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주동훈.
저자가 생각보다 착하다는 것.
솔직히 그도 안다.
왜 모를까.
랭커들이나 고등급 헌터들이 얼마나 자신의 전력 노출을 꺼리는데.
‘앞으로 저분 기사는 무조건 좋게만 써야겠다…….’
나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속으로 주동훈을 판단했다.
S급 무기를 만들고.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스켈레톤을 부리는 ‘네크로맨서’이며.
랭커들과도 친분이 있는 자.
심지어 그 랭커들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으니…….
‘무조건 사려야지.’
원래 저런 사람은 건드리는 거 아니다.
건들다가 제 명에 못 죽는다.
“그,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한 기자는 김 기자와 함께 재빨리 하산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 * *
한적한 공터.
“흠, 동생. 정말 괜찮은 거야?”
기자 둘을 내려보낸 후, 장대웅이 돌연 나에게 물었다.
“훈련 장면이 다 퍼졌는데? 클립인가 뭔가 하는 것까지 땄다는 것 같던데……. 전국에 동생의 전력이 노출되는 거라고.”
“네, 뭐. 괜찮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한 번쯤은 밝히려 했었거든요.”
“그런가?”
속된 말로 실력 행사였다.
[나 이 정도는 되니까 앞으로 건들지 마라] 하는 세상을 향한 선전포고.사실 이 세계가 그렇다.
약해 보이면, 오히려 날파리들이 더 꼬인다.
만만하게 보니까.
당장 오성 공방의 신종오인가 하는 놈도 그러지 않았던가.
“요컨대 광전사 님과 같은 느낌인 거죠. 광전사 님도 사람들한테 미친놈 같은 모습 몇 번 보여주니까 아무도 안 건들잖아요. 미친개는 건드리지 않는 거라면서.”
“…….”
장대웅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거 설마 욕하는 건 아니지?”
“에이, 설마요. 좋지 않은 거였으면, 제가 따라 했겠습니까?”
내가 웃자, 장대웅도 곧 껄껄거렸다.
“크하하, 그렇지? 역시 동생이야. 동생 말이 맞아. 사실 대다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거든. 내가 요즘 들어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니까?”
“광전사, 앞에서는 누구든 약해지지 않을까요?”
이선아가 픽 웃으며 끼어들었다.
“어쨌든, 아까 말했다시피, 어제부로 킹께서는 A급 헌터에 올랐어요. 정말 약속대로 던전 메이커 도전 조건을 충족한 거죠.”
“킹?”
장대웅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선아가 답했다.
“몰랐어요? 이명, 스켈레톤 킹으로 바뀐 지 언젠데.”
“허어. 킹이라……? 역시 내 동생다운 이명이로군.”
나는 삐질 땀을 흘렸다.
세상에.
[‘킹’께서]라니…….아무리 들어도 어색한 이명.
역시, 평생 적응 안 되는 이명이 될 것 같은 삘이다.
하여튼.
이들이 굳이 내가 있는 이곳까지 모인 이유는 뻔할 뻔 자.
“던전 메이커가…… 3일 후쯤이었나요?”
“맞아. 3일 후.”
유상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는 했겠지?”
“물론이죠.”
나는 과거 그들이 했었던 제안을 떠올렸다.
– 세계 랭킹 5위. 던전 메이커, 델라일라(Delilah)는 반기에 한 번씩 시련 던전을 열어요.
시련 던전의 참여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최소 A급 이상의 헌터일 것.
둘째, 랭커 다섯의 추천서를 가져올 것.
그리고 그 다섯의 추천서를 위해 모인 이들이 바로 서울 오성(五星).
– 던전의 내용은 우리도 몰라요. 매번 바뀐다 들었거든요.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던전에서 주어진 시련을 모두 통과하면, 적어도 랭킹 세 자릿수 안엔 안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 3년 전, 지금은 서울 오성이라 불리는 우리도 시련을 통과하고 랭커에 입성했어요. 세 자리 등수로요. 물론, 지금은 세월이 흘러 각자 순위가 올랐지만.
델라일라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른다.
그저, 랭커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준다기에 승낙했을 뿐.
“……정말.”
나는 물었다.
“정말 이번에 다녀오면 랭커에 오를 수 있는 건가요? 무조건?”
내 평생의 꿈이.
곧 눈 앞에 펼쳐진다.
“네, 무조건.”
기소율이 앞으로 나섰다.
“다만, 백돈이 말한 것처럼 정말 각오해야 할 거예요.”
“…….”
“뭐, 흑검이 이번 던전 다녀오고 나서 무조건 랭커에 진입하실 거라 확신하는 것 같지만…….”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델라일라는 괴짜예요. 그녀의 시련 중에는 강약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것도 있으니…….”
“어허, 거기까지!”
유상돈이 버럭 소리쳤다.
“까먹었나? 우리가 겪었던 시련에 대한 정보를 유출하면…….”
“맞아요, 페널티를 받죠.”
기소율이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인 후, 뒤로 물러섰다.
“…….”
뭔데?
델라일라가 도대체 뭔데?
그냥 랭커 아니야?
어떻게 저런 조건들을 걸 수 있는 거지?
내가 궁금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동생.”
장대웅이 씩 웃었다.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재미있는 이야기요?”
“응, 동생이 모르는…… 아니, 일반 사람들은 평생 가도 모를 랭커에 대한 이야기 말이야. 그것도 상위급 랭커들 이야기.”
“…….”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해주면 나야 좋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