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88)
출사표 (2)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흥미를 끄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세계에서 누가 가장 강할까.’
바로 최강자를 묻는 질문이다.
백악기 시대의 육식 공룡 ‘티라노’부터.
바닷속 고대 상어 ‘메갈로돈’.
근대에서는 ‘이소룡’이나 ‘최배달’.
근현대의 ‘예멜리야넨코 효도르’나 ‘프란시스 은가누’까지.
많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갑론을박을 펼치던 주제의 객체들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헌터라는 직종이 등장한 이후.
그 흥미로운 질문에, 더 이상 갑론을박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스템’이라는 절대적인 존재가 종결을 내려버렸으니까.
「세계 랭킹 게시판」
미국 동부 지역에 존재하는 정체불명의 거대 보드판.
이곳에 등재될 수 있는 헌터는 오직 1,000명뿐.
매월 초 자동으로 갱신되는 이 보드판 덕에, 대중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10명을 추려낼 수 있었다.
[랭킹 1위, ???]먼저, 랭킹 1위.
랭킹 1위는 보다시피 물음표다.
그 누구도 모르고, 게시판조차 이름을 표시하지 않는 자.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혹여 존재는 하는지.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어찌 됐건 그 상징은 무시할 수 없다.
[랭킹 2위, 마왕(摩王) 잭 스미스]그다음은 랭킹 2위 마왕.
미국 출신 헌터로.
미국이 세계 제1위의 헌터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사람 덕이라 할 수 있다.
자세한 건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문에는 악마를 다루고 지옥을 제집처럼 드나든다는 소리가…….
[랭킹 3위, 천마(天魔) 하세라]다음은 랭킹 3위다.
너무나도 유명한 대한민국의 자랑.
사실상 존재조차 모르는 랭킹 1위를 제외하면, 마왕 다음으로 세계 이인자이기도 하다.
세계 국가들이 대한민국을 세계 2위의 헌터 강국으로 칭하는 데 이견이 없는 것도 오로지 그녀 덕.
칼잡이다.
[랭킹 4위, 옥스포드의 현자(Oxford’s Sage) 소피아 실버스톤]영국의 초일류 명문 대학 옥스포드는 국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 거대한 탑을 설치했다.
마법 관련 고유능력을 갖춘 헌터들끼리 모여 시너지를 이뤄내고 함께 성장하자는 취지의 탑.
그야말로 현실판 마탑이었다.
그곳의 마탑주가 바로 랭킹 4위.
현자로 알려진 소피아다.
[랭킹 5위, 던전 메이커(Dungeon Maker) 델라일라]별칭 신기루.
미국의 신비로운 헌터로.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던전을 만들 수 있다는 것뿐.
‘뭐.’
이제 곧 볼 사람이기도 하니, 그때 판단해도 되지 않을까?
사실, 제일 궁금하기도 한 사람이다.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 하나하나에 금제를 가하고, 시스템 창을 띄울 수 있을까?
나는 예전에 받았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띠링!] [던전 메이커의 정보를 들었습니다.] [주의! 주의! 주의!] [랭커가 아닌 자에게 정보를 발설할 경우, 차후 ‘던전 메이커’의 콘텐츠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단, 추천 후보는 예외입니다.] [또한, 추천 후보가 발설할 경우, 해당 페널티는 추천자에게 돌아갑니다!] [Tip/‘추천 등록’을 외쳐, 추천 후보를 설정해 보세요.]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사람.
그게 바로 델라일라다.
나머지는 다음과 같다.
자힐을 하면서 싸우는 성기사.
아무리 때려도 죽지 않는다고 해서, ‘좀비’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 여자다.
[랭킹 7위, 세계수의 은총(Grace of Yggdrasil) 니나 크리스틴]사대 정령을 부린다고 알려진 정령사.
그녀 역시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국적도, 나이도 모른다.
그저 게시판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에, 입에 오르내릴 뿐.
[랭킹 8위, 령제(靈帝) 이치카와 타케루]영혼을 다루고, 빙의를 주 스킬로 사용한다는 령제.
일본의 자랑이다.
[랭킹 9위, 로이더(Roider) 로니 윌리엄스]약쟁이.
가끔 치료나 버프용 약도 만들어 판다는데…….
나왔다 하면 올 매진이다.
또한 천상의 쾌락을 가져다주는 마약도 만들어 유통한다는 소문도 있는데, 이는 확실치 않은 정보다.
[랭킹 10위, 창왕(槍王) 진자의(陈子毅)]마지막으로, 중국의 창술가.
중국 발음으로는 ‘천 즈이’라고 하는데, 역시 한국식 발음이 편하다.
‘모두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머릿속에 외우고 있는 이름들.
성인이 된 후, 헌터 딱지를 단 이래로 영원히 마음속에 새겨 둔 나의 우상들이었다.
“…….”
국가를 대표하고.
누군가의 꿈이며.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자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내가 바라보는 목표.
꼴깍!
나는 눈앞의 장대웅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 응, 동생이 모르는…… 아니, 일반 사람들은 평생 가도 모를 랭커에 대한 이야기 말이야.
랭킹 20위의 눈으로 본, 랭커들의 이야기.
마치 어렸을 적, 공룡들을 보고 설렜던 마음처럼.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 * *
“동생은 말이야.”
장대웅이 목을 가다듬었다.
“랭킹 20위인 내가 랭킹 19위랑 맞붙으면, 누가 이길 것 같나?”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질문일까.
당연히 랭킹 19위가 이길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래서 매긴 게, 랭킹 시스템일 테니까.
“아니, 아니. 질문이 잘못됐네. 그게 아니라, 내가 랭킹 19위와 맞짱 떠서 이길 승산이 있을 것 같나?”
“흐음.”
그건 또 다른 문제다.
고작 랭킹 하나 차이로, 승패가 완벽히 갈린다 생각해 봐라.
세상이 참 재미없을 것 같지 않은가?
잠깐 고민하던 나는 광전사 쪽으로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운이 좋거나, 그날 컨디션에 따라 광전사 님이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붙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하하, 역시 우리 동생. 그렇지? 맞아, 상남자라면 바로 그런 답변을 해야지!”
장대웅이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이 사람.
칭찬에 굉장히 약한 것 같다.
“하지만. 틀렸어, 동생.”
“예?”
“나는 합공하거나 꼼수를 쓰지 않는 한, 혼자서는 절대 랭킹 19위를 이길 수 없다.”
“……?”
제법 의외였다.
저 근육질 상남자의 입에서 ‘절대’라는 단어가 나오다니.
“두 자릿수 랭킹부터 그 격차가 거의 하늘과 땅처럼 벌어지거든.”
장대웅이 씩 웃더니, 다시 한번 나를 불렀다.
“동생.”
“네?”
“지난 3년간, 랭킹 10위권 내에 랭커의 순위가 변동된 적이 있나?”
“……흐음, 없었죠?”
헌터가 되던 순간부터, 세계 랭킹 게시판은 항상 눈팅 해왔다.
굳이 내가 눈팅 하지 않아도, 각종 사이트나 기사에서 주기적으로 다루는 주제였기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 없지. 고랭커들끼리 서로 죽자고 싸우지 않는 이상, 랭킹이 바뀔 일은 없을 거야.”
“……그만큼 서로의 수준 격차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는 건가요?”
“맞아.”
내 물음에 장대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현재의 내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하세라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하하.”
천마(天魔) 하세라.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서 이선아가 끼어들었다.
“킹, 재미있는 거, 하나 말씀드릴까요?”
그녀가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음, 뭔데요?”
“1년 전, 광전사가 길드 본부로 찾아와서 막무가내로 교주님 나오라고. 한판 뜨자고. 한바탕 난리를 피웠었거든요?”
“어허, 흑검. 이 사람이? 그 얘기를 왜 지금…….”
광전사가 기겁하며 이선아를 바라봤다.
왜.
놀랄 것도 없구만.
그냥 미친놈이 미친 행동을 하는 것뿐 아니던가.
“그때 교주님이 칼도 쓰지 않고 손가락 하나로만…….”
“하하하하, 거참.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나? 아하하!”
장대웅이 이선아의 말을 끊고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선아가 전달하는 말의 의미가 내게 정확하게 전달되었으니.
“으음.”
이선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고는 나를 바라봤다.
“그 정도라는 겁니다. 고랭커 간의 실력 차이가.”
“미쳤네요.”
저 무지막지한 광전사를.
고작 한 손가락으로 상대했다고?
그것도 검사(劍士)가?
“아마 광전사가 우려하는 게, 우리 모두가 우려하는 거랑 같을 거예요.”
“우려하는 거라면……?”
“우리가 판단한 킹은 두려움이 없어요. 또한, 용감하죠.”
“…….”
“좋게 말하면 그렇지만, 나쁘게 말하면…… 가끔은 무모하실 때도 없지 않아 있죠.”
인정한다.
어쩌다 공터에서 오크를 만난 이후로.
나는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노인을 만나고, 태양창을 얻고, 거대마룡을 잡고.
최근엔 리치의 시련까지.
전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어쨌든.
외줄 다리를 타듯, 위태롭게 나아가고 있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랭킹 5위, 델라일라는 정말 급이 다른 존재예요. 우리가 각오하라 말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이구요.”
“…….”
꼴깍.
나는 다시 한번 침을 삼켰다.
이런 랭커들이 ‘급’이 다르다고 할 만큼이라니.
천외천(天外天)이란 표현이 이런 데 쓰여야 할까?
어딘가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었다.
“속된 말로 깝치지 말라는 뜻이로군요.”
“오호, 다행이네요.”
“뭐가요?”
“킹이 이해력이 상당한 헌터라서요.”
“예?”
“하지만, 저는 킹을 굉장히 높게 평가해요. 기억하시죠?”
“어떤……?”
“당신의 잠재력은…… 어쩌면 교주님,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고 했던 거요.”
아아.
맞다, 그랬었지.
나는 문득 그게 얼마나 대단한 칭찬인 건지 깨달았다.
“여기 받으세요.”
이선아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델라일라가 보낸 초대장입니다. 시기는 3일 후, 이번 장소는 인도 구자라트주의 신비 섬 ‘모라’네요.”
“모라…….”
“항공편이랑 교통편은 백돈이 준비했어요.”
“아암, 편하게 가라고 전용기로 준비해 뒀다.”
백돈이 검지와 중지를 모아 이마를 찍은 후, 가볍게 하늘로 튕겼다.
뭐지? 새로운 인사법인가?
“……그렇습니까?”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던전 메이커’의 순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제야 진짜 실감이 났다.
피가 끓었고,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저들이…….’
진짜 날 돕는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른다.
백돈은 나중에 값을 돈독히 치른다 했고.
명궁은 그냥 추천권이 있어서 주는 것 같지만.
나머지는 정말 순수한 호의에서 나를 돕는 것 같은 느낌.
‘고맙지.’
나는 그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은 살아 돌아와야 한다.
시련을 견뎌내, 랭킹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저들과 같은 ‘급’으로 올라서야 진정한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다.
“…….”
주먹을 꽉 쥔 내가 그들을 쳐다봤다.
장대웅, 이선아, 유상돈, 기소율.
총 네 쌍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저는…….”
내 입술이 벌어졌다.
“무조건 해낼 겁니다.”
랭커들의 시선이 더욱 짙어졌다.
나는 그들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여러분께 약속할게요. 흑검 님이 말했던 우선은 살아 돌아오는 거? 그건 당연한 겁니다. 랭커가 되는 거? 그것 역시 제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
“방심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자만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보고 있는 목표는 고작 랭커가 아니에요.”
사실, 랭커가 내 꿈인 건 맞았다.
1,000위 안에 이름을 올리는 것.
그것만 목표로 살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목표가 바로 눈앞에 있다.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그렇다면.’
꿈을 좀 더 크게 가져도 되지 않겠는가?
“저는 랭킹 1위가 되고 싶습니다.”
나는 강해질 거다.
적어도 여기 있는 네 명의 랭커보다 더 강해질 거다.
“여러분들이 믿어주신 만큼, 더욱 강해져서.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 오늘 이 자리에서 절 추천한 것을 자랑삼아 떠들 수 있게끔 해드리겠습니다.”
이는 저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또한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시련에 도전하기 전, 속으로 내뱉는 나의 출사표!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사 표시.
“제대로 된 감사 인사는…… 살아 돌아와서 하겠습니다.”
나는 네 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