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89)
억울한 도전자
인도 서부에 위치한 주, 구자라트.
아름다운 자연환경 덕에, ‘서인도의 보석’(Jewel of Western India)이라 불리는 이곳의 경치는 굉장히 이색적이었다.
“태양아, 저기 봐라.”
20년이 넘는 시간을 살면서 한 번도 가볼 생각이 없었던 나라.
나는 이곳에 오기 위해, 무려 열 시간을 날아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파도가 철썩이고 모래알이 금은보화처럼 빛나는 해변 위에 서 있는 중.
태양이가 감탄했다.
“참, 아름다운 바다입니다. 시원하게 확 트이는 느낌이 주군의 나라에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로군요.”
새로운 지역의 절경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항상 태양이를 소환한다.
녀석에게 시각을 선물하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
그게 고대 사막에서 녀석을 테이밍할 때 약속했었던 거니까.
“엉. 여길 인도양이 부속하고 있는 바다, 아라비아해라 부르더라. 나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마음속 깊이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백돈에게 안내받았던 위치로 이동해, 배편을 구했다.
최종적으로 내가 가야 할 목적지는 바로 신비 섬 ‘모라’.
뱃삯을 지불하고 바다를 뚫고 나가며, 나는 랭커들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동생, 꼭 살아 돌아오길 바랄게. 자세한 건 설명 못 해주지만, 거기서 살아 돌아오면 정보 교류의 금기는 풀리니까. 그때 술이나 푸면서 밤새도록 얘기해 보자고.
진심으로 랭커가 되길 원하는 장대웅부터.
– 설마 까먹진 않았겠지? 랭커 되면 그 값 똑똑히 받아낼 거라고. 흐음, 어디 보자. 이제 보니 얼굴이 좀 반반한 게……. 우리 백돈 전속 모델로 좀 뛰게 하면 되려나? 어때, 딜?
이미 내가 랭커가 될 거란 걸 반쯤 확신하는 유상돈.
물론, 드미르 공방주인 내가 경쟁 공방인 백돈에서 모델 활동을 할 일은 없겠지만…….
– 킹, 델라일라의 시련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주변 모든 것들을 활용하려 해보세요. 항상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자세한 시련은 말 못 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 지속해서 강조했던 이선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 이곳은 잘 지키고 있을게요. 꼭 살아 돌아오시길.
가볍게 묵례하는 기소율까지.
“…….”
도대체 어떤 곳일까?
어떤 곳이길래 A급 헌터 이상이 가서 생존하기만 해도 ‘무조건’ 랭커가 되는 걸까?
‘랭커라니…….’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된다.
랭커라 하면.
S급 헌터들 사이에서도 최상위권에 위치한 이들이지 않던가!
이제 갓 A급에 올라선 내가 바로 랭커로 올라설 수 있다고?
‘도대체 안에서 뭔 짓을 하길래.’
문득, 긴장감이 몰려왔다.
그 엄청난 랭커들이 금기라 말하며, 숨기고 있는 시련의 정체가 뭘까.
설마, 만술 어르신처럼 불러다 놓고 두들겨 팬 다음, 견디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차라리 그런 거면, 이해가 갈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해서 강해졌으니까.’
내가 바로 산증인이다.
E급에서 A급으로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반년 정도.
그렇기에 난 말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이 바닥은.
운만 있으면.
그리고 그 운을 잡아낼 만한 끈기만 있다면.
충분히 하루아침에 강해질 수 있는 기회가 즐비한 바닥이다.
‘그리고.’
지금 찾아온 ‘던전 메이커’ 또한 하나의 ‘운’이라 할 수 있었다.
‘해내야지.’
혹여, 그 시련의 끝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골방에서 지내며 E급으로 전전하던 삶보다는 훨씬 값지지 않을까?
첨범, 첨벙!
얼마 시간이 흐르자, 나는 신비 섬 ‘모라’의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름 인지도 있는 섬인지, 제법 도심을 구축하고 있는 섬.
다만, 극지방인지 토종 인도인들밖에 보이진 않았다.
간혹가다 외국 헌터들도 보였는데.
‘저들도 참가자들이구나…….
다들 A급 혹은 S급 명패를 달고 있는 것 보아하니.
나와 같은 델라일라의 손님들 같았다.
‘어디로 가면 되지?”
투욱!
설레는 마음으로 배에 내려, 섬 바닥에 첫발을 디딜 때였다.
흠칫.
무언가 기이한 감각이 온몸을 잠식했다.
마치 온 신경과 세포가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
[띠링!] [‘던전 메이커’의 ‘눈’이 당신을 탐색합니다!]“던전 메이커?”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눈? 나를 본다고? 뭐지?
[당신의 신원을 확인합니다.] [추천인 판독 중…….] [당신의 추천인은…….]…….
[랭킹 20위, 광전사(狂戰士) 장대웅] [랭킹 58위, 명궁(名弓) 기파랑] [랭킹 379위, 암제(暗帝) 기소율] [랭킹 509위, 흑검(黑劍) 이선아] [랭킹 828위, 백돈(白豚) 유상돈]…….
[적합!] [당신은 랭커 다섯의 추천을 받은 추천 후보입니다.]“이게…….”
눈앞에 뜨는 메시지.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당신은 ‘델라일라의 시련’에 초대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까지 빛기둥 앞으로 도달하세요.] [남은 시간 – 01:15:30] [선착순 – 50명]파앗!
메시지와 동시에.
저 멀리 지평선에서 하늘을 향해 빛의 광선이 쏘아 올려졌다.
‘저기로 가라는 건가?’
델라일라가 약속했던 시간은 국제 시간으로 오후 3시.
유상돈이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뒀기에, 남은 시간은 충분했다.
‘문제는.’
[선착순 – 50명]선착순이 있다는 것.
‘뭐야.’
그럼, 잘하면 시련에 도전조차 못 할 수도 있다는 소리?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음미하던 주변 풍경 따위, 더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첫날 선착순에 못 들어서 떨어졌어요, 흑흑] 하면 추천했던 랭커들이 날 어떤 눈으로 쳐다볼까?달리자.
이건 달려야 한다.
빛기둥의 거리를 대충 가늠해 보니, 굳이 교통편을 찾을 필욘 없었다.
오히려 뛰어서 가는 게 더 나을 정도의 거리.
타앗!
나는 힘차게 땅을 박찼다.
긴장감을 애써 떨치며, 힘차게 달렸다.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도심을 따라 쭉 달리자 곧 수풀림이 나타났고.
커다란 오솔길이 누가 봐도 빛기둥을 향해 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 10분 정도 더 달렸을 때.
“여긴가?”
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거의 학교 운동장 크기만 한 공터.
그곳에는 먼저 와 있는 헌터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대기하고 있었다.
저들도 나처럼 랭커 다섯의 추천을 받은 이들이겠지?
몇몇 시선들이 나에게 향하는 게 느껴졌지만, 그뿐.
따로 말 걸거나 하지는 않았다.
[띠링!] [합격입니다!] [36번째로 도착하셨습니다.]‘와, 36번째라니…….’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시간 개념이 철저하다고?
1시간이나 일찍 왔는데도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다.
백돈은 이런 걸 알았을까?
나는 일단, 근처 구석에 적당한 자리로 이동해, 털썩 주저앉았다.
짧은 거리였지만, 긴장해서 그런지 호흡이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후우.”
조심스레 심호흡하며 주변을 살폈다.
대다수 헌터들은 다들 초조한 기색으로 바닥을 긁거나 속삭이고 있었고.
내 근처 가까이에 있는.
남자 둘에 여자 하나가 그룹을 이룬 채, 두런두런 떠들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원래 알던 사이들은 아닌 것 같고.
일찍 와서 미리 안면을 튼 듯했다.
“점점 사람들이 채워지는구먼?”
“참, 까다로운 조건인데도 많이들 모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랭커 다섯 추천인데, 벌써 36번째라니. 계산하면 벌써 랭커 180명의 추천권이 모인 셈이잖아?”
“선착순이 50이랬어요. 그럼 적어도 추천한 랭커가 250명 이상이라는 소린데.”
“햐, 델라일라인가……. 참, 대단하네. 그만큼 랭커들에게 영향력 있다는 거잖아?”
“세계 랭킹 5위라잖아요. 소문 들어보면, 10위급 이상은 거의 신에 버금간다더니만…….”
신기한 점은.
분명 외국어로 떠들고 있지마는 내 머릿속에 정확히 의사 전달이 된다는 것.
아무래도, 빛기둥 속 필드의 효과인 것 같았다.
“참, 웃기지 않아요?”
그들 중 후드 쓴 여성이 입을 열었다.
“랭커 되는 방법의 조건이 랭커 다섯의 추천을 얻으라니. 무슨 랭커 카르텔도 아니고…….”
“그것도 그렇지.”
“맞아, 우린 운이 좋았다지만, 어디 인맥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어?”
남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다들 동감하고 있는 주제인 듯했다.
나 역시 어느 정도 동감은 했다.
어찌 보면, 이곳에 오는 게 랭커 되는 것보다 더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아무런 정보도 없는 일반 헌터가 한 랭커 마음에 쏙 든 이후에 랭커 다섯의 추천권을 얻어낼 확률이라?
차라리 로또를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나저나, 저기요.”
떠들던 후드 여성이 나를 바라본 것은 그때였다.
“그쪽도 듣고만 있지 말고 이리 오시죠? 이것도 인연인데, 인사나 해요.”
“아.”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강당 벽에 등을 댄 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후드 여성.
후드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이 금발인 거 보니, 서양 쪽인 것 같았다.
‘저 여자구나.’
굉장한 오지랖.
저 셋이 뭉쳐서 대화를 나눈 것도, 저 여자가 주도했으리라.
“보아하니, 동양에서 온 것 같은데…… 일본은 아닌 것 같고…… 중국? 아니면 한국?”
“한국이요.”
내가 웃으며 답했다.
일단은 잘 지내서 나쁠 게 없다.
서울 오성(五星)도 이곳에서 알게 된 동기라 했었고.
또 델라일라가 어떤 시련을 내릴지 모르는 거니까.
“와, 한국? 거기 하세라 있는 곳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렇죠?”
“반가워요. 전 우크라이나 출신, 올레나라고 해요. 그리고 여기 둘은… 각자 말씀하시죠?”
“미국의 제임스다.”
“난 브라질의 카푸, 반갑다.”
“전 주동훈입니다.”
“오우, 훈!”
제임스가 서양 특유의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맞받아줬다.
그렇게 우리 넷은 남은 시간을 제법 심심치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역시 떠들어야 시간이 흐르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일까?
[띠링!] [50번째로 도착하셨습니다.]곧, 누군가의 도착을 마지막으로.
델라일라의 첫 번째 시련 아닌 시련.
선착순 미션이 마감되었다.
‘소름 돋는 건.’
아직도 약속한 3시가 되려면, 20분 정도가 남았다는 것.
‘여긴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곳이구나.’
약속을 지켜 도착한 사람도 돌려보내는 곳.
그곳이 바로 던전 메이커의 시련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헥, 헥……! 뭐야! 마감이라고?”
51번째 도착한 사람.
“엥? 그딴 게 어딨어! 이런 건 미리미리 알려줬어야지! 사람 오지에다 불러놓고 갑자기 선착순! 이러는 게 도대체 어느 나라 법이냐?”
그리고.
52번째 도착한 사람.
그리고 또.
53번째, 54번째…….
계속해서 참여자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아아, 세상에.
나는 감탄했다.
랭커들이 이렇게 많았고, 다 이런 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구나.
진짜.
비랭커가 모르는 세계가 있었구나.
문득,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소율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들었고.
“나와, 델라일라인가 뭔지 하는 썅년!”
콰아앙!
누군가가 주먹으로 바닥을 뭉개버리며 외친 것은 그때였다.
51번째 도착한…….
세상에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