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90)
시련의 시작
“안 나와? 나오라고, 새끼들아!”
51번째 참가자의 억울한 외침이 공터를 울렸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날아온 줄 알아? 앙? 니들 시간만 시간이고, 내 시간은 시간이 아니냐?”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델라일라에게 윽박지르는 남자.
그 남자의 용감함에 다른 참가자들도 호응했다.
“맞아, 여기는 기본적인 도의도 없는 건가? 우리가 지각하기라도 했으면 인정하겠는데, 그런 것도 아니잖아?”
“설명이라도 제대로 하든가. 사람 불러다 놓고 이게 뭐 하는 짓거린지.”
“랭커면 단가?”
선착순에 밀린 자들의 불만들.
솔직히 나는 인정했다.
충분히 불만 품을 만했다.
나라도 저 자리에 있었으면 열 받아서 따졌을 것 같으니까.
‘물론.’
이미 선착순에 들었기에, 저들을 위해 나설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따지고 보면, 미래 경쟁자들이니까.
‘쯧, 그러기에 일찍 왔어야지.’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1시간 여유롭게 운송편을 마련해 준 백돈에게 감사를 표했다.
“옳소!”
“나와라! 나와서 얼굴 보고 얘기해 봐라!”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돌아가지!”
그렇게 탈락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거세지려 할 찰나였다.
스슷!
허공에서 누군가가 등장했다.
검은 정장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를 깔끔하게 빼입은 건장한 사내.
허리춤에는 예사롭지 않은 칼이 묶여 있었고, 낮게 가라앉은 눈은 시뻘겠다.
술렁술렁.
그자의 등장과 동시에, 주변이 술렁거렸다.
“저, 저자는?”
“적안? 적안이다!”
“그럼 설마 적안의 마검사, 뤼카?”
“마검사가 여기에?”
아.
나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적안의 마검사(魔劍士)?
내가 모를 리 없지.
세계적인 인사 아니던가.
프랑스 출신이자, 세계 랭킹 25위의 랭커.
전형적인 서양 미남형 얼굴로, 팬층이 굉장히 두꺼운 헌터다.
“시끄럽다.”
뤼카가 탈락자 무리를 싸늘하게 바라본 것은 그때였다.
“결과에 승복하고 돌아가라.”
와우.
나는 감탄했다.
고순위 랭커에게는 ‘멋있게 발성하기’나 ‘분위기 있게 말하기’ 같은 스킬이라도 있는 걸까?
굉장히 묵직하면서도 힘이 실려 있었다.
비랭커인 탈락자들이 쪼는 것도 당연한 일.
몇몇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돌아섰다.
‘암.’
그래야지.
마검사 뤼카가 꺼지라는데 꺼지지 않고 별수 있겠는가?
말싸움하거나 개기다 죽으면 본인 손해일 텐데.
하지만.
그 유의 51번째 도착한 참가자는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 마검사 뤼카? 랭커면 다냐?”
“……소란 피우지 말고, 꺼져라.”
“납득시키는 게 아니라, 무작정 꺼지라고? 내가 누구 추천으로 여기 왔는지 알아? 앙?
아아.
결국, 등장한 마법의 문장.
[내가 누군 줄 알아?]가 등장했다.자신의 지위나 뒷배경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자 할 때 주로 사용되는 것.
하지만, 그딴 게 랭커인 뤼카에게 먹힐 리 없었다.
“네가 누군지는 관심 없다.”
그는 미동조차 없었다.
“경고는 마지막이다. 죽기 싫으면 등을 돌려라. 그리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
고저 없는 목소리로 살벌하게 경고하는 그.
뤼카가 검 손잡이에 손을 슬쩍 올렸다.
51번째 참가자가 흠칫 떨었다.
“하.”
그러고는 헛웃음을 냈다.
“이거 완전 깡패 집단이 따로 없네. 델라일라? 미국 출신이랬나? 강대국이면 다야? 하여간 꿍꿍이 있는 것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정보도 발설하지 못하게 시스템으로 걸어두질 않나…… 이딴 카레 냄새나는 곳으로 초대하지 않나.”
“…….”
스릉!
결국, 마검사의 허리에서 칼이 뽑혔다.
문답무용(問答無用).
그냥 말없이 썰어버리려는 속셈일까?
“씨발, 간다. 간다고! 더러워서 간다!”
51번째 참가자는 결국 굴복했다.
그래.
아무리 할 말 다 하는 그라도.
힘 앞에는 어쩔 수 없는 거다.
원래 세상이 그렇거든.
강자존(强者存).
센 놈이 곧 법인 세상.
내가 랭커가 되려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도 멍청하진 않네.’
그래도 참가 자격 조건이 되려면, 꽤 날고 기는 헌터였을 텐데.
어느 정도 지능은 장착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돌아서서 허탈하게 걸어가는 탈락자를 바라보며, 뤼카가 이번엔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시련의 내용에 대해 불만을 품을 수 있다.”
“…….”
나를 포함한 50명의 참가자들의 시선이 전부 뤼카를 향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련은 델라일라께서 만든 것. 본인이 추천받았다는 이유로, 그분께서 제공해 준 시련을 권리인 양 착각하면 안 되는 거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호의가 지속되면 둘리지.
뭐, 그냥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살짝 있었지만.
‘그것보다.’
나는 그냥 넋 놓고 뤼카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고랭커의 아우라.
간지.
지금 난 한낱 탈락자보다 그것에 더 관심이 갔다.
철컥!
뤼카가 꺼냈던 검을 다시 회수했다.
“너희에게도 경고한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이곳 필드는 치외법권. 누군가를 죽여도, 죽임당해도 아무런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곳이다.”
“…….”
쥐 죽은 듯 고요해지는 분위기.
누군가의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옆에서 떠들던 올레나, 제임스, 카푸도 조용했다.
침을 꼴깍 삼키며 집중할 뿐.
마치 훈련소에 갓 입소한 신병이라도 된 듯한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그러니, 혹여 목숨이 아깝거나. 그 정도 각오가 되지 않는 자는 당장에라도 꺼져라. 그런 자들은 랭커 될 자격이 없으니.”
“…….”
뤼카는 분위기로 경고했다.
지금이라도 원하면 나가라고.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갈 리 없지.
당장 A급 던전에만 가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던전을 가는 헌터들이 밥 먹듯이 거는 게 목숨이다.
‘그런 건 얼마든 걸어줄 수 있어.’
랭커만 될 수 있다면.
모든 헌터들이 랭커의 가치를 안다.
세상 모두가 우러러보고.
그 어떤 국가에 가도 VIP 대접을 받으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
‘그렇기에.’
자리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50명 전원이 묵시적으로 동의한 거다.
“좋군.”
뤼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먼저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이번 시련의 선임 심사위원을 맡은 뤼카라 한다. 이명은 마검사. 세계 랭킹 25위지.”
얼굴만 봐도 아는 그의 정보.
그것보다 더 궁금한 건.
‘심사위원?’
‘던전 메이커’ 델라일라의 시련, 이거…….
생각보다 더 체계적으로 운영하는데?
“델라일라께서 제공하는 시련에는 총 여섯의 테마가 있다. 그 테마에 맞추어 통과하면 끝. 너희는 무조건적인 랭커를 보장받는다.”
“…….”
이선아와 같이, 뤼카도 랭커를 장담한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말하라.”
“그 테마가 무엇입니까?”
“알려줄 수 없다.”
“……?”
“자세한 걸 알고 싶으면 통과해라.”
뤼카가 단호하게 말했다.
“통과하고 랭커가 되면, 델라일라께서 왜 반기마다 시련을 여는지도 알 수 있을 거다.”
“또 질문 있습니다.”
뤼카가 나름 친절하게 대답해 줘서일까?
또 누군가가 용기를 냈다.
“말하라.”
“저는 델라일라 님 모습 보고 싶어서 여기에 참가했는데요, 델라일라께서는 어디 계시는 겁니까?”
“보고 싶나?”
“예!”
질문자가 씩씩하게 답했다.
뤼카가 씩 웃었다.
“그럼 통과해라.”
기승전 통과.
히야.
실력 없는 사람은 알 권리도 없다는 건가?
“…….”
황당한 표정의 질문자가 뒤로 빠졌다.
뤼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곳 내부에서는 어떤 방법이든, 어떤 스킬이든 사용해도 좋다. 또한…… 서로를 죽여도 좋고, 연합해서 팀을 구성해도 좋다.”
“…….”
서로를 죽여도 좋다고?
아, 그래서 아까 치외법권이니 뭐니 했던 건가?
묘한 긴장감에 목구멍이 바싹 말랐다.
“우리는 헌터의 인성을 평가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주어진 시련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통과하면 된다. 알겠나?”
“저, 질문……!”
누군가가 또다시 손을 들 때였다.
뤼카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부터 설명은 없다. 모든 것은 각 참가자들과 함께 직접 알아가도록.”
그 순간.
허공에 메시지가 떴다.
여느 던전에 참가할 때와 비슷한 메시지.
[띠링!] [스테이지 : 델라일라의 시련] [델라일라가 던전을 생성합니다.] [던전이 극도로 축소됩니다.] [던전 내부의 시간이 느리게 흐릅니다.] [델라일라가 준비한 테마를 해결하며, ‘시련 포인트’를 쌓으세요.] [‘시련 포인트’는 향후 클리어와 보상에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현재 시련 포인트 : 0]‘시련 포인트?’
거기다가.
던전이 극도로 축소된다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
정신없이 메시지를 읽는 와중에.
“그럼.”
뤼카가 입을 열었다.
“무운을 빌지.”
파앗!
동시에 시야가 점철됐다.
* * *
[던전에 입장합니다.]“…….”
대단했다.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정말 일개 헌터가 맞단 말인가?
던전을 만들고 시스템창을 띄우다니.
사실, 세상에 생겨나는 던전들 모두 델라일라가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어쨌든.
다시 들어온 이 공간은 굉장히 낯설었다.
필드는 열대 우림.
각종 나무들과 풀숲, 바위들이 사방에 즐비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나뿐만 아니라 시련에 참여한 50명의 헌터들이 전부 존재했다.
“이게…… 도대체 뭘까요? 심사위원이 있다더니, 그냥 이렇게 던전에 전부 빠뜨린다고요?”
“던전 임무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 그냥 시련 포인트를 쌓으라고만…….”
“시련 포인트 그게 뭘까요?”
헌터들이 술렁거렸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머리를 맞대는 자들도 있었고.
혼자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자들도 있었다.
“저기, 훈?”
그때,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우크라이나 출신, 올레나라는 여자였다.
“아까 대기할 때 그래도 말 나눴는데, 우리 팀이라도 할까요?”
“어이, 훈. 여기 있었군.”
“아무래도 우리 뭉쳐야 할 것 같은데.”
제임스와 카푸도 붙었다.
다들 누군가와 팀을 꾸릴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눈치였다.
‘그럴 만도 하지.’
마검사가 말했다.
서로 죽여도 상관없다고.
앞으로 어떤 시련이 등장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 있게 되면, 혹여 있을 살인자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나 역시 혼자보다는 팀인 게 더 낫지.’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같이하죠.”
이것이 저들을 믿는다는 건 아니다.
그저 서로 윈-윈 하는 관계.
서로의 이득을 위해 이용할 뿐.
‘물론.’
그러다 마음이 맞으면 동료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서울 오성(五星)도 이곳에서 만나 동기가 됐다 하지 않던가.
“근데요.”
올레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열었다.
“여기서 이제 뭐 하라는 걸까요? 이 주변은 그냥 숲인데.”
“그러게. 근처에 딱히 위협적인 몬스터가 있다거나 하지도 않아. 시련 포인트인가? 이걸 쌓는 법부터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제임스가 대꾸할 때였다.
[띠링!] [규칙이 설정됩니다.] [상대를 죽이세요.] [상대를 죽이면 총 100의 시련 포인트를 얻습니다.] [또한, 사망한 상대방이 가지고 있던 절반의 시련 포인트를 회수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던전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