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91)
첫 번째 테마 (1)
“미친?”
“이게 뭐야.”
“상대를 죽이라고? 뭐, 이딴 던전이……?”
당연히 주변은 난리가 났다.
내가 충격받은 만큼, 다른 헌터들이 느끼는 점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모두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으니까.
‘무슨, 오징어 게임도 아니고.’
느닷없이 나타난 예고 없는 데스 매치 선언이라니.
그 규칙은 단순했다.
– 누군가를 죽여라.
– 죽이면 시련 포인트를 제공한다.
모두가 술렁거렸고, 몇몇 헌터가 하늘을 향해 외쳤다.
“씨발, 이딴 게 무슨 랭커를 만들어주는 시련이야? 우리가 무슨 투기견도 아니고!”
“델라일란지 뭔지…… 이 개 같은……! 결국, 목적은 약자를 상대로 한 유흥이었던 거냐?”
“…….”
나는 조용히 외곽으로 물러났다.
이럴 땐 저렇게 성질부터 부리는 게 아니다.
멀찍이 물러나서 주변을 파악하고 상황을 지켜보는 게 최선이다.
마검사, 뤼카는 분명 경고했다.
목숨이 아까운 자는 지금 당장에라도 꺼지라고.
친히 기회도 줬었다.
그때는 가만히 있어 놓고, 이제 와서 델라일라를 욕하거나 불만을 품는다?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다.
“음.”
나는 뒤로 빠져서 천천히 상황을 지켜봤다.
그러자 총 3가지의 부류가 눈에 보였다.
첫째, 무작정 화내거나, 공격성을 보이는 자.
사실상, 가장 위험하지 않은 부류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단순한 것만큼 쉬운 상대가 없으니까.
둘째, 눈빛에 살기를 담은 자.
즉, 먹이를 노리고 있는 자들이다.
혼자 멀찍이 떨어져, 약해 보이는 이들이나, 혼자인 사람들을 조용히 탐색하는 자들.
사실 이들이 제일 무섭다.
‘정말…….’
랭커가 되기 위해서, 사람마저 쉽게 죽일 수 있다는 건가?
마지막으로 셋째.
팀을 꾸리는 자다.
이런 데스 매치에서는 혼자보다 함께일 때의 생존율이 훨씬 올라가니까.
그리고 나 역시, 세 번째 부류였다.
내 눈앞에 있는 세 명의 헌터들처럼 말이다.
올레나, 제임스, 카푸.
셋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내 앞으로 붙었다.
이윽고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허허, 훈. 우린 안 싸우는 거지?”
“…….”
옆에 있던 올레나와 카푸도 날 바라봤다.
묘한 정적.
뭐야, 왜 다들 나한테 물어봐?
누가 보면 내가 리더라도 되는 줄 알겠네.
“으음.”
올레나 역시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싸워야 할 상대가 저렇게 많은데, 안면을 나눈 우리끼리 굳이 싸울 필요 있겠어요?”
그녀 역시 제임스에게 동조했다.
“……네, 그렇죠. 뭐.”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말이 맞다.
지금 싸움판에 껴봐야 나에게 득 될 게 없다.
내가 아무리 평범한 A급이 아니라지만, 이곳에 있는 전부 각국에서 한 끗발 날리는 자들이다.
무려 다섯의 랭커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비범한 자들.
그런 자들과 괜히 시비 붙으면 어떻게 될까?
둘 중 하나다.
죽거나, 아니면 전력이 노출되거나.
둘 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죽으면 진짜 다 끝인 거고.
전력이 노출되면, 두 번째 부류…… 정확히는 잠재적 살인마들의 표적이 될 확률이 높아질 터.
“저 역시 여러분들과 같은 생각입니다. 일단 같이 뭉치는 게 낫겠네요.”
각자 실력이 어떤지를 떠나서.
일단 먼저 다가왔으니, 재지 말고 받아보자.
판단은 추후 해보는 거다.
그렇게 저들의 동맹 제안을 승낙할 찰나였다.
콰앙!
중앙에서 귀청이 떨어질 듯한 폭음이 울렸다.
쾅! 콰앙!
나무가 뽑히고 진흙이 허공에 흩날렸다.
“뭐, 뭐야.”
카푸가 미간을 찌푸렸다.
시커먼 얼굴 피부에 진흙이 튀었기 때문.
“쯧.”
내가 혀를 찼다.
“벌써 시작된 것 같네요.”
첫 번째 부류, 공격성을 드러내는 이가 누군가를 공격한 모양이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헌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 개새끼가? 감히 날 쳐?”
“그래, 뒈져라! 아까부터 야려 본 죄다! 조만간 나 기습하려던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냐?”
“뭔 개소리야!”
“시끄럽고 그냥 곱게 뒈져라!”
누군가가 누군가를 기습하고, 기습받은 누군가는 또 오해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그야말로 난장판의 시작.
“우리 일단.”
나는 지팡이를 들고, 백팩을 여미었다.
“이곳을 벗어날까요?”
* * *
우리는 중앙에서 자리를 떴다.
딱 봐도 광활해 보이는 열대 우림 필드인데.
처음부터 중앙에서 쇼부 볼 필요가 있겠는가?
뭐가 됐든.
상황에 끌려다닐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오솔길을 따라 걷던 중.
“흠, 저기, 훈.”
중앙에서 약 3㎞ 정도 떨어진 거리의 한 능선에서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도망만 쳐서 되는 걸까? 시련 포인트가 엄청 중요한 거일 수도 있잖아. 괜히 이러다 탈락하기라도 하면…….”
그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불안할 수도 있겠지.
나 역시 불안하다.
나름 목숨까지 걸 각오로 임했는데, 혹여 탈락하기라도 할까 봐.
‘하지만.’
세계 랭킹 5위라는 델라일라가.
굳이 랭커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학살할 이유가 있을까?
게다가 서울 오성(五星)도 결국은 사이좋게 통과해서 나오지 않았던가.
좀 더 생각해야 한다.
“제 생각은 달라요, 제임스.”
그때, 올레나가 나섰다.
“시련 포인트가 욕심난다고 지금 무모하게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요. 아까 못 보셨어요? 늑대의 눈으로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는 승냥이들이 수십이었는데. 거길 무작정 들어가자구요?”
마치 불평하는 그를 질책하는 듯한 말투.
제임스가 발끈했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도망만 가라고? 난 시련을 겪기 위해 지원했어. 이렇게 도망만 치려고 먼 길을 달려온 게 아니라고.”
“어휴, 도망이 아니라 전략이죠. 말 이해 못 해요? 지금 겁난다고 도망가는 게 아니잖아요.”
올레나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들겼다.
둘의 대화에 우리는 어느덧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
하늘을 바라보니 노랗게 노을이 지는 중.
곧 해가 진다.
이곳은 가로등 하나 없는 산속.
빛이 없는 숲속은 아마 생각보다 더 끔찍할 거다.
어쨌든.
둘의 다툼은 지속되었다.
한 5분 정도 지났는데도 아직도 티격태격 말이 오갔다.
“전략이라는 확신이 있어? 미안하지만, 올레나. 네 말이 논리를 가지려면, 이렇게 이동해서 앞으로 뭘 할 건지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해.”
“대책이요?”
올레나가 눈을 부릅떴다.
“솔직히 대책이 어디 있어요? 그쪽은 대책이 있었나요?”
“그럼 대책도 없이 도망만 치고 있다는 건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아까 그 난장판에 뛰어드는 것만큼 멍청한 대책은 없을 것 같네요.”
“…….”
나와 카푸는 눈을 깜빡이며,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특히, 카푸는 종종 날 바라보며 [What the……]라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게다가.”
올레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결국 여기까지 따라온 건 본인의 선택 아니에요? 넷이 팀을 이루기로 했고, 훈 님이 벗어나자고 했을 때 불만 있었으면 그 난장판 속에 뛰어들었어야죠. 왜 이제 와서 불만 말하면서 팀 분위기를 해치는 거죠?”
“아까부터 왜 이리 감정적으로 말하지? 난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이야, 올레나.”
계속되는 둘의 의견 다툼.
이거,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둘 다 그 정도만 하시죠.”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들은 일단 내 말을 따르고 있다.
내가 세 보여서일까?
아니면, 경험이 많아 보여서일까?
지금도, 내가 말하니.
둘 다 입을 꾹 다물고 날 쳐다본다.
“일단, 두 분 말마따나 대책은 없지만, 추측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요.”
“추측?”
제임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 델라일라는 첫 번째 규칙을 설정했죠. 사람을 죽여라.”
“……그랬지?”
“근데 그건 말 그대로 규칙일 뿐, 꼭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
“시간 제한이나, 인원 제한이 없으니까.”
“……?”
제임스뿐만 아니라, 올레나와 카푸의 시선도 나에게 쏠렸다.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일부러 미소 지었다.
자.
이제부터 말할 테니까, 잘 들어라.
랭커들도 힘들어하는 초고난도 던전을 무려 세 개나 해결한 베테랑의 말씀이니까.
“제한……?”
“예, 제한이요.”
능선 위.
이제는 폭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적한 숲속에 내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사람을 죽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시련이었으면, 그 시간제한이나 목표 인원수를 제시해 줬어야 해요. 요컨대, 언제까지 생존하라든가. 아니면 최후의 몇인 안에 들라든가.”
“……그냥 불친절했던 거라면?”
“물론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심사위원인 마검사가 말했어요.”
– 델라일라께서 제공하는 시련에는 총 여섯의 테마가 있다. 그 테마에 맞추어 통과하면 끝.
“총 여섯의 테마가 있다고.”
“…….”
“보아하니, 이제 첫 번째 테마인 것 같은데, 50명밖에 없는 헌터를 다 죽이겠어요?”
내가 봤을 땐, 아니올시다다.
“우리 대한민국에 유행하는 말이 있죠. 항상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라고.”
100% 확신은 아니지만.
내가 또 던전 감 하나는 끝내주거든?
아마 이번에도 맞을걸?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랭커를 만들어준다는 거창한 시련이 고작 서로 죽여라! 일 리는 없지. 일리 있어.”
“예, 바로 그겁니다.”
“그럼 그 테마가 뭔데?”
“그거야 저도 모르지만. 일단, 이 광활한 열대 우림에 우릴 떨궈놨어요. 게다가 곧 해도 지죠. 그 말은…… 생존하라는 거 아닐까요?”
“……생존?”
“사실, 아까 제가 가져온 백팩을 열어봤거든요.”
나는 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렸다.
[아이템 : 드미르의 보급형 백팩] [등급 : S] [종류 : 가방]드미르가 가볍게 만들어준 내 소중한 보물.
나는 이곳에 시련에서 버틸 비상식량을 가득 채워왔다.
하지만.
파직!
내가 손을 넣자, 전류가 튀겼다.
[띠링!] [해당 던전에서는 아공간을 활용할 수 없습니다.]“보세요. 아공간이 막혔습니다.”
“뭣?!”
내 행동에 제임스가 당황했다.
카푸와 올레나 또한 눈이 휘둥그레지며, 각자의 가방을 뒤졌다.
파직! 파즈즉!
그들 역시 마찬가지로 들고 온 물품을 꺼내지 못했다.
“저, 정말이야.”
올레나가 혀를 찼다.
“테마가 진짜 생존인가 보네요? 아예 먹을 걸 막아버리다니.”
“이런 빌어먹을?”
당황하는 헌터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통 고난도 던전을 다니는 헌터들은 그에 대비한 식량들을 항상 충분히 챙겨왔기 때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선은 이곳 열대 우림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그와 동시에 다른 헌터들과의 배틀 그라운드를 진행하는 것. 특히 상대 헌터 중 어둠에 특화된 놈이라도 있으면 골치 아파지겠죠?”
“이런 뻑킹…….”
결국, 제임스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을 쓱 둘러봤다.
“지금 다 큰 어른들끼리 쫑알쫑알 싸울 때가 아니라는 겁니다.”
“……훈.”
“대책을 찾는 것도 좋고, 서로 의견을 말하는 것도 좋은데요. 일단 저와 함께하시려면 의미 없는 다툼은 하지 않으셔야 할 겁니다.”
나지막한 나의 말투.
꿀꺽.
헌터들이 침을 삼켰다.
“알겠다……. 명심하지.”
“저도 죄송해요.”
의외로 둘은 순순히 사과했다.
나는 씩 웃었다.
다들 A급 이상 헌터들일 텐데.
아직 서로를 너무 모른다.
이제 당분간 함께하기로 했으면, 서로의 고유능력 정도는 대강 알아야 할 터.
후웅!
나는 들고 있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후두두둑!
그러자 등장하는 나의 사랑스러운 뼈다귀들.
허공에서 하얀 뼈들이 조립되었다.
“주군.”
듬직한 태양이와.
“호오, 진한 숲의 냄새가 나는군요.”
하이 엘프, 엘드린.
그리고.
쿠웅!
방패를 땅에 박는 뼈사와 지팡이를 치켜세우는 뼈오와 뼈칠이.
마지막으로.
검을 휘두르는 첫째, 뼈일이까지.
드미르는 공방에 내버려 두고 온 상태라, 굳이 부르지 않았다.
“일단, 제 고유능력은…….”
나는 스켈레톤과 함께 그들을 바라봤다.
“좀 특이한 네크로맨서입니다. 우리 서로 생존하기 전에, 능력부터 오픈하고 시작할까요?”
자, 천천히 헤쳐나가 보자.
분명 이번에도 난 해낼 수 있을 거다.
지금껏 그래왔으니까.
나는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