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mmoned a max level demon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336
제335화
335화
흑철의 마왕을, 정확히는 검은 시조와의 융합체를 깔끔하게 양단했다.
“축하해 시안! 마왕도 겸사겸사 죽였구나!”
“안 죽였어! 에밀리 너 알면서 말하는 거지?”
애초에 마왕 정도면 고작 두 쪽 난다고 죽지는 않는다.
노리는 건 검은 시조만을 죽이는 것.
“잘랐으니 이제 불순물을 걸러 내야지?”
내가 휘두른 혈마력의 날붙이에 검고 불쾌한 무언가가 휘감겨 있었다.
흡사 자석에 철가루가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검은 시조의 기운.
놈의 혼이 섞인 에너지.
“남의 몸뚱이를 그렇게 무단 점거를 하면 쓰냐? ……후딱 기어 나와!”
일갈과 함께 온 힘을 다해 휘두르자, 부질없이 끌려 나온다.
진마빙현제.
아이러니하게도 놈이 한때 구상했다가 쓸모없다고 여기고 내팽개친 이론이 놈을 패배로 몰아넣은 것이다.
‘남은 건 이 쓰레기를 말끔히 처리하는 것뿐.’
어렵지 않다.
확실히 소멸하도록 처형해 주마.
“…….”
“시안?”
“별거 아니야. 놈을 제압해서인지 쓸데없는 것까지 흘러들어 오는군. 귀찮게.”
“아아……. 그런 거구나.”
내가 잠시 멈칫하자, 의아해하던 에밀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는 끄덕였다.
놈의 본질 그 자체를 제압해 둔 셈이다.
그 탓인지 쓸데없는 정보까지 일부 읽어 버린 것.
“그자의 기억이니?”
“대단한 건 아니야. ……어떤 젊은 흑마법사가 실력의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다가 그걸 이용하려던 개자식과 접촉한 기억뿐.”
흥미 없다.
눈여겨볼 가치도 없다.
놈이 어떤 계기로 이렇게 변모했는지, 무슨 욕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내가 알 필요는 없었다.
“쓰레기는 버릴 뿐. ……뭐, 그렇게 간단히 당해 줄 리는 없나.”
쿠구구구궁.
지면 아래가 흔들린다.
“발악 따위를 하나…….”
뭐, 그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왕을 잃었다.
거기다 검은 시조 본인도 다른 육체로 갈아탈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을 터.
그런 놈이 손댈 만한 수단이라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남은 건 그것뿐이니…….”
지진과 함께 주변에 붉은 물의 기둥이 마구잡이로 치솟기 시작한다.
“붉은 물…….”
“역시 저걸 다루네.”
“……당연하겠지. 제어 못 하는 걸 뿌리진 않았을 테고.”
최종적으로는 저것으로 마계를 잠식한 뒤에 뭘 어쩔 셈이었을까.
“……아무래도 좋아. 마침 기회니 처리하자.”
밑천까지 드러났으니 싹 박멸할 뿐.
곧 있으면 마왕도 의식을 되찾을 것이고, 저 물질에 관해서는 대충 대처 방안도 생각해 뒀다.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붉은 물 여기저기서 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사이, 자신을 일부 잘라 내서 저 붉은 물에 깃들어 놓은 건가.
“저거 빙의가 가능한 물질이었나?”
“본의는 아니다만 수단을 가릴 수는 없지. 다소 성급하더라도…….”
놈은 초조한 듯 중얼거리며 붉은 물을 제어하여 그것을 통해 일을 벌이려 하였다.
“안 되지. ……거기까지는 허락하지 않겠어.”
목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붉은 물의 유동이 뚝! 정지했다.
마치 제어권을 빼앗긴 것처럼.
어딘가에서 들리는 짜증 나는 목소리와 함께 상황이 돌변한 것이다.
“……나타날 거 같지 않더니, 역시 저게 중요했나?”
내가 혀를 차며 녀석을 찾는다.
“오오오오오! 설마! 벌써 맞이하러 온 것인가!”
“어떠려나. 수고는 했지만, 네 독단은 용납할 수 없었을 뿐이야.”
신경이 쓰이는 것은 들리는 목소리가 지금까지 내가 접한 녀석과 느낌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놈은 혼만 남은 존재이기에 그 의사 소통방법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염화를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목소리는 뚜렷하게 청각으로 인식된다.
“……너, 케니실린 샤렐로스냐?”
“이렇게 대면하는 건 처음이지? ……본래는 저쪽에서 보여 줄 생각이었지만, 상관없으려나.”
붉은 물의 제어권을 강탈한 존재.
케니실린 샤렐로스.
내가 지금까지 본 안개 속에 묶여 있는 혼이 아닌, 엄연히 실체가 있는 인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지닌 여성.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해야겠지? ……이렇게 실체로 보는 건 처음이니까.”
“시끄러!”
대답 대신 흑염탄을 가볍게 날리자, 케니실린은 손가락을 까딱인다.
붉은 물의 일부가 뻗어 나와 흑염탄을 막아 낸다.
“응? 지금의 나를 보고 놀라진 않네.”
“언제까지고 그 꼴로 돌아다닐 거라고는 생각 안 했어. ……어떤 식으로든 부활하는 게 정석이잖아.”
“하긴.”
간단히 인정하였다.
지금의 케니실린은 살아 있는 육체를 다시 손에 넣었다고.
아마 지상에서 하는 짓의 일환이겠지.
“역시 지금쯤 지상은…….”
“……알고 있잖아? 막 전략을 개시한 뒤야.”
“…….”
“직접 마계까지 건너올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걸 망치면 곤란하거든.”
케니실린은 붉은 물을 향해 눈짓한다.
“체피네올. 네게 허무의 물을 마음대로 쓰라고 한 적은 없을 텐데.”
“유감이었다. ……케니실린, 하지만!”
“됐어. 더는 들을 필요도 없으니까.”
“……뭣?”
검은 시조만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한 소리를 낸다.
케니실린이 손짓하자, 그의 사념이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소멸된 건가.
《검은 시조 체피네올 인더닐이 토벌되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79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딴 것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케니실린을 노려보며 묻는다.
“네 추종자를 그리 간단히 버리냐? 보통?”
“상관없어. 그는 저런 육신이 되면서 인격이 망가졌으니까. ……생전에는 좀 더 침착한 자였는데. 가엾기도 하지.”
실망이라는 듯 차갑게 웃으며, 케니실린이 손을 뻗는다.
붉은 물이 한차례 꿈틀거리더니 그녀의 손바닥 위로 급격히 빨려 들어간다.
모이고 모여 마계를 잠식하고 있던 물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응축되어 손바닥 정도 크기의 구슬 형태로 뭉쳐진다.
“역시 예상보다 부족하네. 그래도 한 방울도 건지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나.”
케니실린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고, 구슬은 녀석의 손바닥 안으로 스며들어 간다.
“시안, 네가 여기 온 시점에서 제대로 건지지 못할 거라고 예상은 했으니까.”
“허무의 물이라고 한 거 같은데. 그걸로 뭘 하려고?”
“뻔하잖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첫 단계. 진짜 종언의 흉성을 손에 넣기 위한 발판.”
단순히 수상쩍은 물질을 체내에 넣은 것만이 아니었다.
특히 그 사실을 체감한 것은 악마.
“……저건 정말 인간이니?”
에밀리가 드물게 긴장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어떻게 보여? 짐작은 가지만, 참고 삼아 묻고 싶은데.”
“인간이었지만, 인간이 아니게 되었어.”
“……알기 어려운데.”
“이렇게 보렴.”
언어로는 설명하기 성가시다는 듯 에밀리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이미지를 사념으로 전달한다.
“아, 이렇게 보이냐? 젠장, 안 보는 게 나을 뻔했어.”
징그러운 것을 본 듯 내 입꼬리가 씰룩였다.
단순히 눈으로 보면 그저 인간 여성에 지나지 않는 모습.
하지만 악마처럼 그 기운과 혼으로 그녀를 인식하자.
도무지 인간의 형상으로는 볼 수 없는 괴이쩍은 존재였다.
혐오스러우면서도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너무한걸. 마치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반응하다니.”
“괴물 맞잖아?”
“하지만 부족해. 더욱 괴물이 되지 않으면 내 꿈을 이루지 못해.”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갈구하듯 팔을 떨면서 마치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시늉한다.
제정신이 아니군.
“네가 인간을 때려치운 건 좋다만, 혼자 기어 나온 건 여기서 맞아 죽어도 불만은 없다는 뜻이겠지?”
호전적으로 도발하며 나는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역시 여기서 싸울까?
호위 없이 그녀 혼자다.
힘을 얻었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스펙일까? 최종 보스 정도? 역시 그 이상인가?
‘8서클은 도달하지 못했지만, 여긴 악마들도 다수 있어. 흑철의 마왕도 곧 깨어날 거고.’
녀석들에게 정보를 주고 선동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무모하더라도 일단 싸워 보는 게 나을지 모른다.
그리 판단하려던 때였다.
“역시 싸우려고 하나? ……그럼 보여 주는 게 좋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 예상한다는 듯 케니실린은 푸념하듯 읊조린다.
“뭘 보여 줘?”
“지금 시점에서 너와 나의 힘의 차이를.”
케니실린은 그 붉은 물을 거두면서 얻은 힘의 일부를 드러내 보인다.
“왜 내가 안전한 상태를 버리고 죽음의 위험이 있는 육체를 다시 얻었는지를.”
손을 뻗어 검붉은 구체를 생성하여 그것을 가볍게 던진다.
내 쪽이 아니라 저 멀리 있는 산맥을 향해.
스으으으으윽.
파괴음이 아니라 마치 무언가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휘몰아친다.
“…….”
감상 따윈 말하지 않는다.
녀석이 던진 구체는 그 산맥을 통째로 빨아들여 소멸시킨다.
그것만 알면 되었다.
숨쉬듯 산을 지울 힘을 얻었다는 거지?
“이해했겠지, 시안? 네 지식대로라면 레벨? 능력치? 그 모든 게 나와 큰 차이가 난다는 걸.”
“그것 참 좋겠군. ……근데 왜 그걸 나한테 직접 던지지 않냐? 괜한 허세는 집어치워.”
직접 그 힘으로 나를 공격하지 않은 시점에서 그 밑천이 보인다.
저 녀석은 나와 싸우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그래도 불안하지?”
만일의 하나 패배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내 지적에 케니실린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 사실을 인정했다.
“덤비려고 해도 상관은 없어. ……도망갈 거니까.”
힘을 보인 것은 주의를 끌기 위한 것.
녀석의 뒤에 게이트가 열린다.
인간계로 향하는 통로.
역시 독단적으로 그 수단을 갖고 있었나.
“……짜증 나는 자식.”
“결판은 나중에 지어 줄게. ……네가 나를 찾아올 정도로 어리석다면.”
내가 찾아올 거라고 확신하면서 케니실린은 그저 귀찮은 일을 미루듯 나와의 싸움은 나중으로 한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네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마계를 단념할게. ……원래 내 목적도 여기가 아니었고.”
“그렇게 튀게 두겠냐!”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정말로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면 당장 여길 깡그리 멸망시키는 게 편하지 않겠나.
뭔가 꿍꿍이나 약점이 있겠지.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녀석을 없애고자 했다.
“뭐,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만큼 어수룩하진 않겠지. ……그러니 한 가지 가르쳐 줄게, 시안.”
“……뭘?”
“당장 심핵에 가 보는 게 좋을 걸?”
마치 폭탄이라도 숨겨 둔 듯 녀석은 악의를 담아 말한다.
“악마들을 버리려는 거면 상관없겠지만.”
쫓으려던 내가 멈춘다.
내가 그 악의를 무시하고 그냥 넘기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겠지.
“마계에서 승리한 걸 축하해. 시안 알케우스. ……하지만 인간계에서는 불가능할 거야.”
“……헛소리.”
오만함으로 가득 찬 선언.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은 완전히 마계에서 이탈하여 자취를 감춘다.
“저건 쫓지 않은 게 현명했어, 시안.”
“알아. ……애초에 그깟 도발에 넘어갈 마음도 없었어.”
알고 있다.
게이트 너머에 기척이 다수 있다는 걸.
넘어간 순간? 웃음도 나오지 않는군.
“본진에 쳐들어가긴 이르다는 건가.”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지금의 내 레벨과 능력으로는 무모한 짓이 되었을 테니.
함정인 줄 뻔히 알면서 달려들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저 짜증 나는 놈은 일단 무시하자. 마계에서 용건을 끝마치는 게 우선이고.”
용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마계에 온 것은 단순히 악인의 훼방을 놓기 위해서도, 이곳을 구해 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힘을 얻어야지.”
흑마법사로서 그리고 내 계약 악마의 도달점을 위해서도.
그 힘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리고 최고점에 도달하기 위해.
방해되는 것을 쫓아냈으니 이제 그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니 어서 서두르자.”
“그럼 뭣부터?”
“……정리할 것도 좀 있지만.”
흑철의 마왕은 아직 각성하지 않았지만, 곧 깨어나겠지.
얻어야 할 정보도.
해야 할 연구도 아직 산더미처럼 많다.
그럼 뭐부터?
“흑철의 마왕의 회복을 확인하면 거기부터 가자. ……본래는 좀 더 천천히 방문하려 했지만.”
“갈 곳? 으음~ 역시 거기려나?”
“조금 전 그 자식이 한 소리도 신경 쓰이고. ……아마 거짓말이겠지만.”
허세 같아 보이긴 해도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마계의 심핵.”
“신경 쓰이니?”
“그게 아니어도 가려고 했어. ……거기서 얻어야 할 게 있기도 하고.”
나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에밀리를 훑어보며 말했다.
아직은 가르쳐 주기 이르지만.
뭐, 대강은 눈치채고 있겠지.
“심핵에 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