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summoned a max level demon by myself RAW novel - Chapter 84
제84화
84화
“이런, 놀라지 않는 것이냐.”
“남을 놀라게 하는 것이 취미이시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놀란 반응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황제 폐하.”
예를 갖추는 척 몸을 숙이려 했지만, 황녀 아니, 그녀의 눈동자 속에 깃든 황제가 내 행동을 저지했다.
“그대로도 상관없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시퍼런 것들이 조아리는 꼴은 재미가 없지.”
단순히 놀리기 위해서 행차한 건 아니리라.
(혼을 덮어씌우다니……. 인간의 재주라고는 믿기 힘드네.)
에밀리의 감각에는 황녀의 몸에 어떤 이변이 일어난 것인지 고스란히 보이는 것 같았다.
혼을 덮어씌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대로군.
황제의 본체……. 요컨대 황제 본인은 여전히 황궁에 떡하니 있다.
지금 황녀의 몸을 차지한 것은 그의 정신의 일부를 잘라 내 보낸 것.
“그렇게 편리한 재주는 아니네. 애송이를 돌보는 악마여.”
(……어머?)
지금 황제는 나 외에는 감지할 수 없을 터인 에밀리의 목소리를 마치 옆에서 생생하게 듣고 있는 것처럼 대꾸한 것이다.
“놀랄 것 없다. 조금만 재주를 익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충분히 보이는 법.”
호쾌하게 웃으며 말하는 황제.
“무엇보다 소년 역시 놀라지는 않은 모양이군.”
“익히 폐하의 소문은 들었습니다. 폐하의 눈과 귀는 제국의 모든 곳을 빠짐없이 보고 듣고 계신다고.”
“으흠, 그건 그냥 찬양하는 헛소리이지 않느냐.”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은지 황제는 시원스레 자신이 보인 비술에 관해 말한다.
보아하니 뭔가 칭찬하면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대는 성격인 것은 확실하군.
“그렇게 편리한 비술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렇게 짐이 옥좌에 앉은 채 내다볼 수 있는 건 짐의 피를 품고 있는 자들뿐.”
혈통 빙의.
제국을 지배하는 황제의 고유 스킬.
“요컨대…… 황실의 일원들의 눈과 귀를 빌리신다는 뜻이군요.”
“이해가 빠르군. 기대되는 애송이라는 말은 사실인가. 영특한 놈은 싫지 않지.”
황제의 능력은 게임에서도 묘사된 적이 있기에 파악하고 있었을 뿐.
제국의 황족들이 제국 전체에 퍼져 각각의 분야에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황실의 일원으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리라.
보고 듣기 위해.
황제의 저 관음증이나 다름없는 능력을 위해 퍼져 있는 것일 뿐.
“하지만 네게 이렇게 말을 전하기 위해 보일 생각 따위는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조금 전 입에 담은 소망 때문이겠지요.”
“그래, 무심코 짐이 이 아이의 입을 통해 웃었던 것만큼이나 생각도 못 한 것을 바랐구나. ……맹약의 묘소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들었지?”
“아카데미의 문헌을 비롯하여 폐하의 지원 덕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실제로도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그 비경에 관한 자료는 존재한다.
찾는 놈이 없어서 그렇지.
“그런 곳에 관심을 가지는 애송이가 있을 줄은 몰랐군.”
“알게 되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만.”
“……정말로 알고서도 말이냐?”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기에 이것을 바라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반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질러 본 것도 있습니다만.”
“하핫! 짐의 변덕에 기대한 것이냐! 솔직하게도 말하는군.”
그는 가식과 아첨에는 질린 몸이다. 뭣보다 바라는 것을 솔직하게 토로하는 것이 그나마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대화 방법.
“하지만 짐은 우선은 네 바람을 말리고 싶군.”
“…….”
“당연히 그 이유는 알고 있으렷다.”
알고말고.
“허가를 내주는 것은 간단하다. 짐의 눈짓 한 번이면 되니까. 하지만 모처럼의 짐의 호의가 허탕을 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묘소에 방문하여 어떤 이벤트를 수행하면 특정 보상을 얻어 낼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
지금까지 들어간 모든 인간들이 받지 못했다.
그 무의미한 수고와 희생을 막기 위해 황제는 엄명으로 그곳의 출입을 금지한 것이다.
“짐의 안목으로 허가를 내릴 상대의 능력을 확신하기 전까지는 출입을 금지시키라는 명을 내렸지.”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 짐에게 네 바람만으로 그 명령을 깨라고 하는 것이냐? ……아니면.”
황제가…… 아니, 황녀의 몸을 빌린 그가 고개를 내밀며 나를 가늠하듯 씩 웃는다.
“네가 그 기량을 가진 자인가?”
분명 저 몸의 주인인 황녀는 다른 누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자가 누군지 아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나는 느낌이군.
그래, 속지 마라. 지금 저 안에 있는 건 황제다.
제국에서 가장 늙은 꼰대.
“흐음, 모르겠군. 도저히 모르겠구나.”
고개를 당기고는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이 아이의 눈으로만 봐서는 네 진가를 모르겠군.”
“허락해 주시기 어렵다면 다른 것을 말하겠습니다만.”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도 내키지 않는군. 무엇보다 짐이 고민하는 것은 네놈의 격이 부족해 보여서가 아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 아니다.
“짐조차도 네 진의를 이해하기 힘들구나. 기이하게도 네놈 같은 애송이는 본 적이 없어.”
“……영광입니다만.”
“이걸 칭찬으로 듣는 게냐?”
어이없어하는 황제.
그러나 태연한 척 굴면서도 나는 조금은 식겁할 수밖에 없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부류의 인간.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나 외에 지금의 나와 같은 입장의 인물이 존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 조건을 달자꾸나.”
“조건…… 말입니까?”
“네 기량이 과연 짐이 직접 그곳의 봉인을 풀라는 말을 꺼낼 만큼인지 확인해 보면 되겠지.”
짓궂게 웃는다.
진정으로 나를 평가할 근거를 원해서가 아니다.
변덕.
요컨대 심심하기 때문.
하지만 나쁜 흐름은 아닐 것이다.
그의 성격은 잘 알고 있다.
저 변덕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는 조금 전 내 부탁을 끝끝내 거절했을 테니까.
“무엇으로 증명하면 되는 것입니까?”
“아카데미의 학생이 아니더냐. 당연히 그 학생의 의무로 증명해라! ……라고 하고 싶지만, 중간 평가까지는 시일이 걸리겠지?”
변덕스럽고 고약한 성격의 폭군.
그렇기에 그는 결코 만만한 시련 따위는 주지 않는다.
《서브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그래, 그게 좋겠군!”
고약한 웃음. 황녀의 미모에 걸맞지 않은 오만하고도 악의적인 낌새.
그리고 내 눈앞에서 그 심술궂은 심보를 증명하듯 나타나는 알림.
“짐이 무대를 만들어 주마. 그곳에서 네 가치를 증명해 보이거라. 애송아.”
《황제가 내건 조건을 클리어하십시오.》
《해당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맹약의 묘소’의 시련권의 개방이 조기에 완료됩니다.》
무엇을 시킬지는 몰라도 결코 만만찮은 것이겠지.
그러나 나는 동요하지도 말을 번복하지도 않는다.
바라던 것이니.
적어도 간단히 달성할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무엇이든 보여 드리지요.”
“하핫. 그래, 어디 증명해 보이거라.”
‘무대’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알기 쉽게끔 다시 통보해 주겠다고 황제는 덧붙였다.
“그럼, 좋은 결과를 기대하마. 어린 인재여.”
황제는 마지막으로 그리 말한 뒤 전조도 없이 ‘동조’를 끊어 버렸다.
황녀의 몸이 비틀거리다가 이내 다시 제정신을 찾는다.
“허…… 헛?! ……지금 그건.”
설명해 줄 필요도 없으리라.
황제의 능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황족들.
나는 설명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는다. 눈짓도 하지 않았고.
그것으로도 황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았으리라.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다.
“마…… 말도 안 돼. 어째서……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
내가 아니라 조금 전까지 그녀의 몸을 장악하고 있던 존재에 대해서.
단순히 황제가 몸을 빌렸다는 이유치고는 지나치게 동요하고 있군.
그러나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했다.
“시안, 지금 본 것에 대해서는…….”
“폐하께도 엄히 주의를 받았습니다. 결코, 누구에게도 누설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누설할 만큼 멍청하지도 않다. 믿을 놈도 없고.
어차피 말하지 않아도 제국 내에서 일정한 지위를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알고 있다.
그렇기에 황족을 더더욱 경계하는 것이니.
“다행히 별일은 없었던 것이군요. 그래요……. 다행히도.”
“폐하께서는 직접 제 소망을 듣고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더 이상 물을 것도 없겠지요. ……아니, 안 들을래요.”
마치 관여하기 싫다는 뜻.
황녀는 서둘러 납득하고는 나를 돌려보냈다.
나를 꺼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아직은 황족들의 본심에 대해 관여해서는 안 된다.
그것보다는 당장 황제가 말한 무대라는 게 영 신경이 쓰이는군.
‘분명 만만찮은 것일 테니.’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내 예상이 적중했음을 확신했다.
* * *
“공용 마법 클래스 쪽 애들이 시끄러워.”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를 눈치챈 듯 셀리디아는 우연히 지나친 마법 실습장을 힐끗거리며 중얼거렸다.
“아……. 저거 말이군.”
셀리디아가 느낀 위화감이 뭔지는 알고 있다.
기분 탓은 아니리라.
평소보다 공용 마법 클래스를 포함해 마법을 수련하는 학생들의 분위기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
별것 아닌 모의 전투에도 필요 이상으로 의욕을 보인다던가.
진지하게 새로운 마법식의 체득에 열을 올린다던가.
“새로운 수업이라도 시작해?”
“못 들었어?”
“……?”
소문 정도는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쪽에는 관심이 없나.
“대회가 열린다는 모양이더라.”
“대회?”
“마법 관련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경연이 열리는 건 알고 있지?”
아카데미뿐 아니라 제국 전체를 통틀어 마법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가지 경연을 펼치도록 지원하는 풍조가 있다.
단순히 이론이나 새로운 마법식을 심사하는 조용한 경연부터, 대놓고 화려하게 마법 실력을 어필하기 위한 경연까지.
이번에는 화려한 쪽.
“마법 전투술을 겨루는 대회를 열려는 모양이더라.”
“전투? 대련이라도 해?”
“검투 시합 같은 거지. 뭐, 우리도 실습으로 자주 하잖아.”
다만 모의 전투가 어디까지나 자기 역량을 체크하고 상대와의 실력을 비교하기 위해서라면, 이번에 열릴 경연은 순수하게 자기 과시를 위해서다.
대중에게 실력을 어필하여 자신의 기술과 마력을 알리기 위해서다.
요컨대 그런 자랑이 목적인 대회. 아, 상금도 있겠군.
“대회…… 구나.”
“흥미 있어? 덧붙이자면, 이번 대회는 제국 황실의 요청으로 열리는 거라서 마법만 쓸 줄 알면 출전할 수 있을걸.”
셀리디아의 기본 능력은 정령술이나 연습한다면 약간의 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실전에도 통할 정도의 역량을 터득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관심 없어.”
셀리디아는 진심으로 의욕이 생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딱히 결투에 열의를 느끼는 타입은 아니다.
향상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나 그녀는 딱히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수련하는 타입.
“그전에 남의 구경거리가 되는 건 별로야.”
“하긴, 그렇게 말하는 녀석들도 적지는 않지.”
“시안은?”
마법 전투 대회다.
당연히 내게도 절호의 기회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과 달리 딱히 들떠 있지 않은 나를 두고 셀리디아는 내가 나가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는 것 같았다.
“나? 나가는데.”
“……진짜?”
의외라는 듯 되묻는다.
셀리디아는 내가 이런 종류의 이벤트를 성가시게 여기는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실 틀리지는 않지.
상금? 요즘엔 그다지 지갑 사정이 궁하지도 않으니까.
“뭐~ 조금 끌릴 만한 게 있걸랑.”
자세한 이유는 말해 줄 수 없지만.
이번 대회에 대해 듣자마자 바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서브 퀘스트》
《마투제에서 우승하십시오.》
지난번 황제가 말했던 ‘무대.’
그게 바로 이 망할 대회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