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ought it was a half-way ring RAW novel - Chapter 139
139. 뜻밖의 선물(2)
***
“이렇게나 많은 놈들이 우리 애들 사이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왕귀상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한영중과 천미령의 활약으로 찾아낸 살수의 숫자에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 찾아냈다고 볼 순 없어, 주인.”
“수고했어.”
“주군, 미령이 녀석의 얘기처럼 저희가 놓친 살수도 있을 겁니다.”
“괜찮아. 숫자가 얼마 되지 않을 테니, 조직적으로 움직이지는 못할 테니까.”
초무성이 두 사람에게 각각 대답해 주고는 야산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음습한 계속 기운이 신경 쓰이게 한다.
“총표파자 어르신, 이번 기회에 놈들을 치우지 못하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상태로 사도맹을 공략해야 할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초무성이 의견을 구했다.
하지만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네의 뜻에 따르겠네. 놈들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뒤통수가 근질근질해서 사도맹의 앞마당에 쳐들어가지도 못할 테니까.”
왕귀상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도맹이 살문을 이용해 피로를 누적시키려 했다는 건 장기전을 염두에 두었을 확률이 높다.
그 흉계를 박살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발이 빠른 고수들을 위주로 공격 인원을 구성해야 합니다. 말을 타면 좋겠으나, 저희가 타고 온 말들이 지쳐 있으니 경공을 발휘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합니다.”
“이것 참… 어쩔 수 없군. 녹림십오걸과 각 산채의 채주와 부채주 중에서 인원을 추리도록 하겠네.”
으득!
왕귀상이 살기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어둠 속의 야산을 노려보았다.
왕귀상의 무공은 극단적으로 공격에 치우쳐졌다.
순간적으로 간격을 줄이는 것이라면 몰라도, 경공 자체는 그다지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강한 육체를 지니고 있기는 했으나, 나이를 속일 수 없는 법.
‘애들보다 느리면 체면이 서질 않겠지.’
명색이 녹림 최고수인 왕귀상이다.
굳이 젊은 친구들과 함께 달렸다가 망신당할 필요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무림맹 소속 무인들에게 얘기해서 인원을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네.”
“별말씀을….”
초무성이 포권지례를 올리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녹림을 위해서도 무림맹을 위해서도, 살문의 살수들은 반드시 제거해야만 한다.
***
녹림의 무인들이 야영지로 삼은 곳으로부터 사 리쯤 떨어진 야산.
복면을 써서 눈만 내놓은 살문의 살수들이 대기 중이었다.
검은색 야행복을 입은 살수의 숫자는 대략 이백오십.
이만한 숫자의 살수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광경을 본다면, 어지간한 고수라고 할지라도 간담이 서늘할 터였다.
[여전히 소식이 없나, 일호?]복면의 이마 부근에 ‘대(大)’라는 글자를 새긴 살수가 전음을 보냈다.
검은 복면에 검은색 수실로 새겼기에 유심히 살피지 않는다면 보이지도 않을 글자였다.
하지만 살문의 살수치고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문주를 상징하는 글자였으므로.
살문의 문주인 위거윤은 기척을 죽인 채로 곁에서 대기 중인 살수와 눈을 맞췄다.
[지금껏 정기적인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부문주께서 당하신 듯합니다.] [함께 갔던 녀석들도 전멸한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겁니다. 어쩌면 도주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예가 아닌 까닭에 만성독을 먹이지 않은 녀석들도 상당했으니 말입니다.]일호가 회의적인 음성으로 전음을 보냈다.
[그럴 수도 있겠군. 빌어먹을… 무림맹이 작정을 한 것인가? 백오십이나 되는 살수를 처리할 정도의 실력자를 보내다니….]위거윤이 착잡한 감정이 묻어나는 눈으로 일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문의 살수들은 대부분이 고아 혹은 납치를 통해서 인원을 보충한다.
그렇다 보니 충성심을 기대하기보다는 강제하는 방법으로 전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방법이 만성독을 먹이는 것이었다.
정기적으로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발작해 죽음을 맞이하는 종류의 극독.
효율적인 관리 방법이었으나,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지속적으로 해독제를 먹여야 하기에 유지비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만성독을 먹일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굳이 중독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특수 상황이다.
사도맹의 맹주인 장진혁이 전력으로 녹림과 무림맹의 무인들의 진격 속도를 늦추라 지시하였으니까.
‘거능이가 죽었다 이거지? 빌어먹을 무림맹 놈들! 반드시 복수해 주겠어.’
위거윤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위거윤에게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친혈육이 있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후계자 자리를 일찌감치 차지할 수 있었다.
동생과 힘을 합쳐 전대 문주를 처치하고서 살문주가 되었을 때는 얼마나 뿌듯했던가!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뜨끈해지고 복수심이 가슴 저 밑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일호가 말끝을 흐렸다.
[알겠다.]위거윤이 입맛을 다셨다.
녹림에 잠입시킨 부하들이 행동을 개시했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약속했던 시간이 지났는데도 소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일이 잘못되어도 아주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의미다.
‘일단은 기다린다. 한 놈이라도 소식을 전해오든지 하겠지.’
결론을 내린 위거윤이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녹림도가 만든 야영지를 노려보았다.
“……!”
안력을 돋워 야영지를 살피던 그가 눈을 크게 떴다.
‘뭘 하려는 거지?’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야영지 앞에 대략 오륙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나와 대열을 갖추고 섰다.
무슨 뻘짓인가 싶었다.
벌써 자시(子時) 초(밤 11시)다.
녹림에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니, 우선은 경계심부터 생겨났다.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나 싶어서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어차피 당장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미친….”
다음에 이어진 상황에 위거윤은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달려온다!
무작정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살수들이 숨은 야산을 목표로.
마치,
‘우리가 숨은 곳을 감지했다고?’
믿기지 않지만 그렇게밖에는 현재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놈들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 있는 놈들일 가능성이 크다. 정면으로 싸울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방식을 최대한 활용해 놈들을 섬멸한다. 산개해!]위거윤이 전음으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
살문의 살수들이 가슴에 손을 대고서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는 연기처럼 한꺼번에 사라졌다.
‘어리석은 놈들… 얼마나 실력에 자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숲에서 살수들과 마주치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위거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부하들을 지켜보면서 한쪽 입술을 말아 올렸다.
오히려 잘 되었다.
숲은 살법의 위력을 최고조로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응?”
몸을 숨기려던 위거윤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놈들의 이동 속도가 너무 빠르다.
‘전원이 최소 절정 이상의 고수라는 건가? 그래, 차라리 잘 되었군. 놈들을 절반만 처리해도 이번 전쟁은 사도맹의 승리가 되겠어.’
위거윤이 눈을 번뜩였다.
‘욕심 부릴 필요는 없지. 적당히 처리하고 빠지는 거야. 그러고 나서 사도맹주에게 약속했던 돈과 비급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거지.’
위거윤이 눈을 빛냈다.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동생이 죽은 마당에 살문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번 일만 끝내고 녀석과 함께 조용히 사라질 생각이었는데….’
쓰게 입맛을 다신 그의 몸이 연기가 흩어지듯 주변에 녹아들었다.
살문 최고의 은신술이 펼쳐진 것이다.
***
“절대 앞으로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합니다!”
초무성이 경공을 발휘하면서 소리쳤다.
굳이 기척을 숨길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전방의 야산에서 음습한 기운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놈들은 도주하기보다 싸우기를 택한 것이 분명했다.
“정지!”
야산에 도착한 초무성이 손을 들었다.
“한 호위, 미령!”
나직하게 이름을 부르자, 한영중과 천미령이 암기를 던져대기 시작했다.
초무성 또한 비환살(飛幻殺)의 암기 투척술 중에서 소음투살(消音投殺)의 수법으로 단검을 던지기 시작했다.
녹림에게서 거둬들인 단검들이었다.
한영중의 손에서 발출되는 단검이 숲속에 소리도 없이 날아갔다.
일 갑자의 내공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비환살(飛幻殺)의 수법은 암살자들을 상대로 끔찍한 위력을 발휘했다.
숱하게 먹어댄 영약의 힘이었다.
“지독한 놈들!”
초무성은 혀를 내둘렀다.
숲에 숨은 살수들이 죽는 순간까지도 신음조차 내지 않는다.
“들어갑니다!”
단검을 전부 소진한 초무성이 명혼도를 뽑아 들고서 야산에 발을 들였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단검을 이용한 공격에 적어도 수십 명의 살수들이 목숨을 잃거나 혹은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되었을 거로 예상되었다.
“삼인 일조로 움직입니다!”
초무성이 명령을 내렸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명령이었다.
무림맹 소속의 무인은 무력이 뛰어난 전대주와 부전대주들만 추렸다.
물론 칠 전대는 전원 투입되었다.
가장 무력이 부족하다는 하무백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전대주급 실력이니까.
나머지 사십 명은 녹림에서 차출된 고수들이었다.
“주인, 놈들의 숫자가 이백이 넘어.”
천미령이 주변을 살피고서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얘기했다.
그녀는 자신과 동질감이 느껴지는 기운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서 말하는 거였다.
“처리해!”
“알았어, 주인!”
천미령의 몸이 주변의 그림자에 녹아들었다.
“우리도 갑시다.”
초무성이 한 걸음 크게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몸이 엿가락처럼 쭈욱 늘어났다.
뒤이어 순백의 빛이 부챗살처럼 펼쳐졌다.
스캉!
바위가 썰리면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바위 밑의 땅바닥이 솟구쳐 오르면서 시커멓게 처리한 칼날이 초무성의 다리를 노렸다.
당황한 기색도 없이, 초무성은 살수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퍼억!
복면이 으깨지고, 다리를 치려던 두 팔이 흐느적거렸다.
“으아악!”
“이 새끼들!”
“땅바닥! 나무! 바위!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조심해!”
조용히 시작되는가 싶었던 살수와의 전투가 대번에 시끄러워졌다.
녹림과 무림맹 소속 무인들이 살수의 공격에 당황한 까닭이었다.
소란은 순식간에 번졌고, 살수들은 더욱 숨을 죽이며 암습을 가해 왔다.
그러나 초무성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천천히 걸어가던 그는 주먹을 쥐고서 지나쳐가던 나무를 손등으로 후려쳤다.
쩌억!
나무와 동화되었던 살수가 모습을 드러내며 스르륵 주저앉았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복면이 흐물거리고 있었다.
가볍게 휘두른 것 같은 주먹에 머리가 통째로 뭉개진 것이다.
뒤이어 한 걸음 내디디며 명혼도로 전방을 크게 그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핏물이 터져 나오고, 그가 강하게 내디딘 발아래의 땅에서 붉은 핏물이 배어 나왔다.
‘최대한 잔인하게 간다.’
초무성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방심 따윈 하지 않는다.
살수는 일격필살(一擊必殺)을 위주로 하는 지독한 놈들이다.
약간의 틈이라도 보이는 순간, 집요하게 달려들 것이 분명하다.
강기를 사용해 좌우의 나무를 단숨에 베었다.
“큽!”
억지로 비명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명혼도를 사선으로 그어 올렸다.
씨웃!
초무성이 베어 넘긴 나무에서 뛰어내린 두 명의 살수가 그대로 썰려 나갔다.
서거억!
두 명의 살수를 처리한 초무성이 바닥에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조금 전 비명을 삼키던 살수의 머리를 반으로 쪼갰다.
‘영악한 새끼들.’
초무성이 쓰러지는 살수를 내려다보면서 차갑게 웃었다.
한 놈이 일부러 신음을 흘려 주의를 분산시키는 사이, 나무 위에 숨었던 두 놈이 진짜 암습을 한다.
동료의 목숨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과감성에 초무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기술만 놓고 보면 미령이와 큰 차이는 없어.’
초무성은 조금 더 긴장했다.
살수들의 은신술이 생각보다 대단하다.
숙련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천미령이나 한영중의 살법과 큰 차이가 없다.
제대로 된 살법을 수련한 살수라는 의미다.
“차앗!”
“뒈져라!”
“그따위 공격에 당할 것 같나!”
사방에서 녹림과 무림맹 무인의 기합성과 욕설이 들려왔으나, 철저히 무시하고 살수의 기척을 잡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좌측에 셋, 우측에 넷!’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작은 공터에 발을 들인 초무성의 눈동자가 흔들리듯 움직였다.
쓰러지듯 앞으로 이동하면서 진각을 밟는 동시에 명혼도를 예(乂) 자 형태로 빠르게 그었다.
씨싯!
바위가 쩍 갈라지고, 안에 숨었던 살수의 머리가 사선으로 갈렸다.
한 걸음 더 발을 내뻗고는 곧장 상체를 숙이며 빗질하듯 명혼도를 그었다.
나무의 그림자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왔다.
“……!”
“……!”
예
두 쌍의 다리가 칼날에 썰리고, 몸이 채 무너지기도 전에 목이 동시에 잘렸다.
초무성이 곧장 뒷발을 끌면서 명혼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는 몸을 반 회전시켰다.
위웅!
벌 떼가 날아드는 소리가 나면서 명혼도에 강기가 맺혔다.
사선으로 공간이 베어진다 싶은 순간, 소리 없이 몸을 날려 온 네 명의 살수가 무기와 함께 썰리며 피와 내장을 쏟아냈다.
푸욱!
“!”
초무성이 눈을 크게 떴다.
“하, 한 놈이 더 있었… 어?”
칼날이 헤집고 나간 어깨를 확인한 초무성이, 공격에 성공하기 무섭게 거리를 벌리는 살수를 노려보았다.
“흐흐흐… 화경의 고수를 내 손으로 잡았다, 이거지?”
복면의 이마 부근에 ‘대(大)’ 자를 검은 수실로 새긴 살수가 재미있다는 음성으로 나직하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