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and the ancient language was Korean RAW novel - Chapter 79
@79. 당근이 문제인가
“기다릴게요. 여유가 생기시면 말씀 주세요.”
“죄송합니다, 아가씨. 도련님을 뵙기는 힘들 듯합니다.”
집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표정에서는 타협점을 찾기가 힘들어 보였다. 나는 다른 루트를 뚫기로 했다.
“아…. 그럼 정원을 산책할게요. 이아페 공자님을 뵙는 게 아니라. 그건 되죠?”
집사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정원에서 이아페를 기다렸다. 계속 있다 보면 한 번은 창밖을 내다보겠지. 그리고 내가 온 걸 알면, 잠깐의 시간은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하지만 정원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도 이아페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잠시 테이블에 앉아서 차를 한잔 드시어요.”
“감사합니다. 무슨 차예요?”
“계속 산책하셨는데 발은 괜찮으신지요? 편한 신발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네, 제 사이즈는….”
“혹시 무료하진 않으신지요? 말동무가 되어 드릴까요?”
“아녜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하게 친절한 사용인들만 몇 명이고 내 주변을 서성였을 뿐.
불쑥 찾아온 손님에게까지 이렇게 친절하다니. 카일라인가가 얼마나 사용인 교육을 철저하게 하는지만 깨달았다.
“오늘 마침 좋은 식재료가 들어 왔는데 저녁을 준비해 드릴까요?”
“공자님이랑 같이 먹을 수 있을까요? 혼자 밥 못 먹을 텐데.”
분명 연구단에 출근한 첫날에 이아페는 혼밥을 못한다고 했지.
그런데 사용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어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도련님께서는 오늘 식사를 거르신다고 하셔서요. 같이 식사는 어려우실 듯합니다.”
밥도 못 먹고 일을 한단 말야? 나는 심각하게 말했다.
“그럼 집무실에서라도 챙겨 먹으라고 해요.”
“네, 그럴게요. 아가씨께서는 식당으로 가시겠어요?”
“아니에요. 이제 가 볼게요. 즐거운 산책이었어요.”
나는 사용인에게 감사하다 전하고 뒤돌아서서 마차에 올랐다. 이아페도 없는데 혼자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 게 영 어색하게 느껴졌다.
씁쓸함이 온몸을 감쌌지만, 휘휘 고개를 저었다.
‘남부에 가기 전에 처리할 일이 많았겠지. 이아페가 연구단의 일 말고도 이렇게 바쁜 것도 모르고…. 일을 줄여 줄 수 없을지 생각해 보자.’
원래는 내일도 찾아올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이아페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그래, 남부에 가면서 이야기하면 되지!
결심하는 동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밥 준다는데 그건 먹고 올 걸 그랬나….”
* * *
“식사는 하지 않겠다 하셨습니다.”
“시샤 님이 식사를 거르신다고? 그런 일이…. 몸이 안 좋아 보이셨나?”
“아뇨. 건강해 보이셨습니다. 걱정 마시지요, 도련님.”
“그래…. 불편하신 점은 없어 보였고?”
“네. 명하신 대로 차와 양산, 신발, 담요, 말동무까지 필요하신 모든 것을 여쭈었습니다.”
“알겠다, 나가 봐.”
집사가 방을 나섰다. 창가에 다가간 이아페는 커튼을 살짝 손으로 들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시샤의 마차가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후….”
갈증이 일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마음에 맞지 않은 일을 하려니 너무도 괴로웠다.
하지만 그것보다, 지금 그녀를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컸다.
사실은 그녀를 잡고 저만 보게 하고 싶었다. 제 옆자리가 아닌 모든 의자를 부숴 버리고, 자신이 건넨 접시 위 음식만 그녀의 입에 들어가게 하며, 음악극의 관객은 오직 둘뿐이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녀에게 놓인 선택지가 오직 자신뿐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시샤의 입에서 나올 거절의 한마디가 두려웠기에.
시샤는 며칠 동안 이아페를 피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그와 같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그가 불편했을 뿐이다.
그러더니 르디엘과 함께 음악극을 본 직후, 갑작스레 이아페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아페는 그것의 답이 ‘확실한 거절’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선을 그어도 알아듣지 못하니 확실히 말하려는 것 아닌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시샤가 ‘자만추’를 원한다 했을 때부터 이아페는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천천히 다가가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걸까. 마음을 드러내 버린 걸까. 그래서, 그녀가 부담을 느낀 걸까.
이아페는 제 모든 행동을 돌이켜보았다.
햇볕 아래에서 양산을 씌워준 것. 그녀가 가진 냉돌의 효력이 다 될 시점에 맞춰서 새로운 냉돌을 챙겨 준 것. 아침에는 그녀가 출근하자마자 마실 차를 직접 준비하고 싶어 조금 더 일찍 출근한 것. 매일 그녀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것….
“다 그럴 만한 일이었는데. 별로 특별한 게 아니잖아.”
그 순간 이아페는 최근 있었던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
“당근… 당근이 문제인가.”
시샤가 당근을 싫어한다는데도 이아페는 먹으라고 말했다. 그때 그녀는 몹시 당황스럽고 불편해 보였다.
그 일을 계기로 다른 것들까지 생각난 게 아닐까?
원래 모든 일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 아니던가.
당근을 강요하는 자신에 대한 불편함이 그녀의 마음속에 나비 효과를 일으켜, 부담스러웠던 기억들까지 연쇄적으로 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를….
쨍그랑. 이아페가 쥐고 있던 컵이 깨졌다. 그의 손에 유리가 박히고 피가 흘렀다.
이 와중에도 이 상처를 보면 시샤가 신경 써 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자신이 싫었다.
그녀에게 받고 싶은 건 그런 싸구려 동정이 아닌데. 온전한 마음, 그것을 원하는데.
시샤는 자신의 밑바닥을 본 사람이다. 그녀는 너무도 다정해서 자신을 챙겨주지만, 이아페도 알고 있었다. 동정은 동정으로 끝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이아페는 시샤가 더는 자신의 밑바닥을 보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피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그녀의 마음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거절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답을 유예하는 편이 나았다.
* * *
“부르셨습니까.”
남부 전체를 다스리는 행정관 실든의 집무실. 조용한 발걸음으로 한 남자가 들어섰다.
바쁘게 업무 중이던 실든이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수도에서 돌아오자마자 쉬지 않고 훈련 중이라던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 일로제 경.”
일로제의 얼굴은 남부의 뜨거운 햇볕 속 훈련으로 검게 그을려 있었다.
일로제 카일라인. 그가 부기사단장이라는 자리에 오른 것을 가문 때문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하는 소리였다.
‘공작가의 장자라는 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었지.’
그의 성이 카일라인이라는 게 밝혀진 건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마저도 우연히 그를 알아본 이를 마주치면서 밝혀졌고.
순수하게 제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한 사람이었고, 그만큼 기사단 내외에서의 신뢰도 두터웠다.
“몸을 푼 것뿐입니다.”
“하하, 그렇게 훈련을 즐길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한데.”
일로제는 대답 없이 작게 미소만 지었다.
“그래, 그래. 바쁜 사람과 사담이 길었군. 본론부터 말하지.”
실든은 합리성을 중시하고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일로제는 그런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폐하께서 공식적으로 마법을 인정한 것은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남부에까지 그 소문이 벌써 쫙 퍼졌어. 마법을 제어할 수 있다고 하니 반응은 나쁘지 않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일로제가 눈썹을 위로 끌어 올렸다.
“며칠 후 수도에서 황제 직속 마법 연구단이 시그나에 당도하네. 다양한 쿨링 마도구들을 가지고 말야. 남부에 납품을 제안한다더군.”
“제가 할 일이 있습니까?”
“자네가 협상에 참여하게. 남부 기사단에서 꽤나 유용하게 쓰일 것 같으니.”
“저보다 더 나은 협상가가 있을 듯합니다만.”
“자네보다 기사단 상황에 대해 잘 아는 이도 없잖아. 빠져야 할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실든이 팔짱을 끼고 뒤로 몸을 기울였다.
‘이아페, 그 아이도 오겠지.’
일로제는 그를 마주치기 껄끄러웠다. 특히 축제에서 그렇게 헤어지고 난 상태였기에 더욱.
다시 보지 않기 위해 돌처럼 던진 말들이었으나, 돌아오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지금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일이었다. 일로제는 모든 감정을 배제한 채 이아페를 맞이하기로 했다.
괜한 생각을 잊기 위해, 일로제는 다시 훈련장으로 나가 검을 휘둘렀다.
* * *
“드디어, 남부에!”
“도착했습니다!”
“윽, 「선풍기」!”
카실의 주위로 바람이 쏴아 불었다.
국소적인 부위에 바람이 불게 하는 주문이 「선풍기」였다.
‘남부로 오는 길에 더워서 간절하게 중얼거렸는데 딱 들어맞았지.’
몇천 년 전 코레아리아에 내가 아는 선풍기가 있었을 리는 없는데. 아마 선풍기와 같은 효력이라 저런 주문이 생긴 거겠지?
어느 시대나 작명 센스는 비슷한 모양이라 생각하는데, 내 옆에서도 바람이 불었다.
나는 마법을 쓰지 않았는데?
뒤를 돌아보니 이아페가 있었다. 어째서인지 이아페가 마법을 걸어 준 것 같았다.
“저기, 이아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응접실로 모시겠습니다.”
그때 나타난 사용인이 우리를 안내했다. 일정보다 다소 늦게 도착한 탓에 여독을 풀 시간 없이 바로 응접실로 향했다.
‘결국 남부에 오는 길에도 말 한마디 못 붙였어.’
이아페와 대화하는 짧은 시간을 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나는 몇 걸음 앞에서 걷고 있는 그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꽤나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마음이 어떨지 궁금했다.
이 지역은 이아페의 형, 일로제가 있는 곳이었으니.
원작에서 이아페가 물빛 축제 이후 일로제를 만나는 것은, 일로제가 로브를 쓴 이들과 함께 흑마법으로 그를 죽이러 왔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둘 사이에 대화가 필요해.’
협상이 끝나면 남부 기사단을 찾아가야겠다. 일로제와 이아페 사이에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알아봐야지.
‘일로제에게 흑마법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흑마법에 대해서는 아이론의 도서관을 한참 찾아보았지만 아무 정보도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또 다른 단서를 쥐고 있는 로디스 공작가는 남부 방문 이후에 다시 찾아갈 예정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생각에 빠진 사이 어느새 응접실 문 앞에 당도해 있었다.
‘그래. 우선은 지금의 협상부터 제대로 하자.’
나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협상에는 실든 행정관 대신 보좌관과 다른 실무자가 나온다고 했지?’
최대한 좋은 인상을 지으며 응접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문이 열린 순간, 나는 곧바로 뒤에 있는 이아페를 돌아볼 뻔했다.
“……!”
회색 머리칼을 깔끔하게 넘긴 남자가 다소 건조한 시선으로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일로제 카일라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