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put it in, I'll be SSS class RAW novel - Chapter 468
〈 468화 〉 귀족 가문의 하극상 – 3
“인, 간…….”
당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유에의 말을 중얼거렸다. 야크샤는 그런 당주의 머리를 잡고 상체와 함께 들었다.
“온몸으로 느끼고 계시겠지만, 우리가 열등하다고 말해도 될 만큼 약하지 않아요.”
“야크샤, 너는 그들을……. 왕으로 섬길, 셈이냐…….”
“연합에 왕이 어디에 있어요? 다들 동등한데.”
“…….”
당주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표정으로 야크샤를 보다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기존 회차에서 죽기 직전에 자신의 생명으로 행했던 선조의 강림은 하지 않았다.
‘단순히 소환하지 못할 정도로 확실히 죽은 걸지도 모르겠지만.’
당주가 야크샤의 말에 설득된 건지 아니면 유에가 너무 강하게 베어서 그럴 여유조차 없었던 것인지는 죽은 지금에선 알 수 없었다. 이쪽은 편할 따름이다. 굳이 레벨링이 필요한 단계도 아니니.
“……당주님이 돌아가시고 말았네요.”
야크샤는 눈을 감은 당주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근처에서 떨고 있는 귀족들에게 당주의 죽음을 알렸다.
“당주가 죽으면 그 뒷자리는 가장 당주의 피가 진한 사람이 이어받게 되어있죠?”
그 말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사티는 끙끙대며 시체 밑에서 간신히 조금씩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힘이 별로 강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생각보다 훨씬 약하다.
“그렇다면 네자가 죽은 지금은 피가 제일 진한 것은 저일까요? 제가 모르는 혼외자식이 있기라도 한 것이 아니라면 아마 그렇겠죠?”
모두에게 묻듯이 하는 말이었지만 그 말에는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나서봐야 죽여진 다음에 그러면 이제 누가 더 진하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 분명했기에.
“사티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후우……. 그렇, 겠지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간신히 시체 아래에서 빠져나온 피투성이의 사티가 지친 목소리로 야크샤의 말을 긍정했다.
“그러면 마침 등장한 유에 씨의 의견은 어때요?”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서서 주변을 경계하던 유에도 동의를 표했다.
“그러면 제가 당주를 하면 되겠네요. 기념으로 피에 젖었지만 기분을 내서 앉아보도록 할까요.”
야크샤는 스스로 당주라 칭한 뒤, 이전 당주의 하반신를 치우고 각종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된, 하지만 피로 인해 거의 새빨갛게 젖은 당주의 자리에 풀썩 앉았다.
“그러면, 모두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야크샤가 정좌하고 인사했다. 그 누구도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반항이나 분노가 아닌, 그저 두려운 탓이었다. 잘못 꺼낸 말 한 마디에 아주 간단히 목숨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아.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유에가 당주님을 죽여준 것은 제 부탁을 들어준 것뿐이니 너무 신경은 쓰지 마세요. 진 가문이 시켰다든지 그런 건 아니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연맹이 좋게 나아가기 위한 극약처방, 이라고 할까요. 네.”
야크샤는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지금에 와서 유에가 당주를 죽인 일에 대해 시비를 걸 배짱이 있는 자는 없겠지만.
“아무튼, 이건 정당한 하극상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모두의 앞에서 야크샤는 자신의 하극상이 정당하다고 선언했다.
과연 하극상에 정당하다는 수식이 붙을 수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야크샤의 말은 이미 일종의 언령이나 다름없었다.
“오늘은 다들 놀랐을 터이니 앞으로 방침과 회의에 대해서는 하루 쉬고 모이도록 하죠. 저는 다른 가문에도 인사를 하고 올게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 이 방의 피를 깨끗하게 치워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야크샤는 이제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티도 머리에 묻은 피를 짜내며
“그리고 혹시 저에게 불만이 있으신 분은 언제든 편할 때 찾아와주세요.”
그리고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찾아오면 바로 숨통을 끊어주겠다는 의도가 느껴지는 미소에, 극소수의 차마 뛰쳐나가지 못한 강경파들의 마음은 완전히 꺾였다.
채 1시간도 되지 않는 면담이 끝나고, 야크샤는 귀족의 새로운 당주가 되었다.
마천루의 고급스러운 찻집.
“야크샤, 잘 해결했어? 다치거나 한 곳은?”
샤오와 린린, 그리고 나와 유에가 일을 정리하고 온 야크샤와 사티를 맞이했다. 둘 다 깨끗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모습이었다.
“네. 생각보다 많이 죽이긴 했지만요.”
샤오의 다급한 질문에 야크샤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래. 고생했어. 힘든 일을 혼자 하게 해서 미안해.”
“별로 안 힘들었어요. 굳이 말하면 재미있었고요.”
크게 걱정하고 있던 샤오와 달리 야크샤는 즐거웠다는 듯 웃었다.
“오랜만에 당주님 얼굴을 뵈니 반가웠어요. 이제 죽었지만요.”
“샤오, 당주를 만나는 걸 걱정하고 있었죠? 이제 죽었으니 안 만나도 괜찮아요. 아, 이제 제가 당주니까 이미 만났다고 해도 괜찮네요.”
“……좋아해도 괜찮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
샤오가 심란해했다. 장인어른을 만나는 걸 걱정했더니 애인이 장인어른을 죽여버리는 이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는 나에게도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당주 일은 귀찮지만, 어려운 일은 앞으로 사티에게 떠넘길 생각이고요. 실세는 사티라고 생각해도 좋겠네요.”
“그렇게 되었어요. 권력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갑작스러워서 얼떨떨하긴 하네요. 잘 부탁드려요.”
야크샤의 옆에서 얌전히 앉아있던 사티가 정중히 모두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 예의 바른 태도에 샤오가 놀랐다.
“성격이 꼬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중해서 놀랐나봐?”
“아, 아닙니다! 괜한 소리 하지 마세요!”
내가 정곡을 찌르자 샤오가 당황했고 사티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제 심한 일을 당하며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많이 성장했다.
“그런데 사티 씨, 피 냄새 너무 나는 거 아닌가요? 실례지만 조금 불편해요.”
“……시체에 10분 가까이 깔려있었으니 어쩔 수 없어요. 저도 자각하고 있으니 참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린린이 놀려도 점잖게 대응할 정도다. 조금 불쌍하게 보일 정도다.
“불쌍하니까 너무 괴롭히지 마, 린린.”
“딱히 괴롭히려고 한 건……. 그리고 제일 심하게 괴롭힌 사람이 할 말은 아니죠.”
“그때는 어쩔 수 없었고.”
“……저는 괜찮으니 그 정도로 해두시면 좋겠네요.”
자기 앞에서 괴롭힌다느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굴욕은 차마 견딜 수 없는지 사티가 조금 화냈다. 이래저래 고생길이 훤하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하루아침에 귀족의 당주가 갈아치워질 줄은 몰랐네요. 한동안 귀족 가문 내에서 암투가 벌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저도 급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전부 죽어라 달려들더라고요. 그래서 쇠뿔도 단김에 뽑기로 했어요. 말이 잘 통할 사람들도 아니니 결국 죽였을 거고. 어차피 죽여야 한다면 단숨에 죽이는 게 낫죠.”
“그게 가능하다는 게 무섭네요. 결코 약한 사람들은 아닐 텐데.”
본디 이벤트로 약해지고 죽어야 할 캐릭터가 문제 없이 생존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다. 그쯤 되면 버그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솔직히 너무 강해서 좀 놀랐다.
“그런데 린린도 어서 당주 이어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이미 거의 당주 대리이긴 해요. 꼬리의 개수에 따라 발언권이 강해지니까요.”
내가 묻자 린린은 의기양양하게 꼬리를 살랑거리며 말했다. 오늘은 자랑하기라도 하려는 듯 4개나 꺼내고 살랑거리고 있다.
부피가 제법 되어서 의자를 옆으로 돌려 앉아야 하는 것을 보면 불편하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지만. 섹스할 때도 털에 간지러워서 재채기가 날 것 같다. 1개로 충분하다.
“린린의 꼬리는 이제 몇 개가 되었나요?”
“6개네요. 구미의 부활까지 앞으로 고작 3개……. 고작 3개라고 할까, 3개만 되어도 사실 많은 편이라는 걸 생각하면 우습네요.”
“꼬리라는 게 그렇게 잘 늘어나는 거였나요? 대단하시네요.”
“……뭐, 교수님의 가르침 덕이죠. 동방에서는 알 수 없었던 이런저런 단련법을 전수해주셨거든요.”
감탄하는 샤오의 말에 린린은 적당히 얼버무렸다. 눈치가 좋아서 편리하다.
“그러면 당주님은 몇 개야?”
“당주님은 4개에요. 저보다 2개 적죠.”
내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린린이 가슴에 손을 대고 말했다. 아주 신났다.
“그러면 지금 당주도 너한테 꼼짝을 못 하겠네.”
“그렇죠. 예전에는 계속 잔소리만 했는데 지금은 늦게 일어나도 아무 말 안 해요.”
신나서 말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소박한 예가 나왔다. 무슨 방학 때 잠만 잔다고 혼나는 애도 아니고. 그만큼 평화롭다는 뜻이긴 할까.
“뭐, 자꾸 레온 님에 대한 것을 집요하게 물어와서 귀찮긴 하지만요. 그래도 그건 제가 딱 잘라 거절하고 있으니 귀찮은 일은 안 일어날 테니 안심하세요.”
딱 잘라 거절한다는 것은 전에 말한 요호족 애들과의 주지육림일까.
다른 상대해야 할 애들이 많아서 그런 거 할 시간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그렇게 딱 잘라 거절한다고 하면 괜히 조금 아쉽다.
“자서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조용히 있던 사티가 입을 열었다.
“……박멸이라도 하자고? 귀찮은 애들이긴 하니.”
자서단을 그리 좋게 여기지 않는 듯한 린린이 흥미를 보이며 반응했다. 박멸이라는 표현을 쓰는 시점에서 거의 벌레 취급이다.
“아뇨. 저희 귀족이 써먹을까 싶어서요.”
“써먹어? 자서단을? 약에도 못 쓰는 애들을 어떻게?”
하지만 딱히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다.
“숙식 제공을 대가로 용역으로 쓸까 고려하고 있어요. 도박장은 하나 남기고 전부 정리할 예정이니까요. 도박장 내부를 다 뜯어고쳐야 하니 많은 일손이 필요하거든요.”
평범한 채용 이야기였다.
“흐음.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월급은 안 주는 건가요?”
“숙식을 제공하는 비용은 깎겠지만, 그렇게 싸게 부릴 생각은 없어요. 최소한 좀도둑질이나 구걸을 하는 것보단 훨씬 잘 벌 수 있게 줄 거고요.”
사티는 그사이 많은 생각을 했던 듯 술술 말했다. 그 옆에서 야크샤는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으로 차를 홀짝였다.
“물론 나중에는 평범한 빈민층도 고용할 생각이에요. 다만 당장 공사 같은 힘 쓰는 일은 평범한 인간보다는 그쪽이 더 잘할 것 같으니. 어때요?”
사티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들도 제대로 된 합법적인 수익 루트가 생긴다면 범죄에 손을 대는 일도 줄어들겠죠. 치안이 회복되는 것도 기대할 수 있겠어요.”
샤오는 사티의 이야기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애초에 진 가문은 치안과 빈민 문제에 쭉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 지금 굳이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딱히 허가를 받고 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
다만 린린은 그리 탐탁지 않아 보였다. 착한 일을 하겠다고 자랑하려는 것 같아 그리 마음에 안 드는 듯하다.
“동방연맹에서는 그들을 고용하는 게 불법이었으니까요. 비위생적이라고.”
하지만 사티의 대답에 바로 응? 하고 당황했다.
“……자사단 고용, 불법이었어요?”
“네. 요호족 쪽에서 만든 법이에요. 꽤 오래전에. 모르셨나요?”
“모, 몰랐어요. 그런 법이 있었군요. 왜 그런 걸 만들었대. 아니, 그야 자서단 때문에 피해를 본 일이 많기야 하지만……. 끄응.”
듣고 보니 할 말이 없어진 듯 린린이 신음했다. 게다가 요호족 쪽에서 만들었다니 도망칠 구석도 없었다.
“뭐, 지금껏 제대로 회의를 한 일이 거의 없으니까 모를 법도 하죠. 항상 싸움판이 벌어지거나 애초에 출석도 안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샤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민망해하는 린린을 위로했다.
“지금 동방연맹에는 서로 이익을 앞세우며 만든 악법이 많이 있어요. 귀족이나, 요호족이나, 그리고 저희 진 가문에서도 없다고는 할 수 없죠. 함께 찾으면서 정리해나가죠.”
샤오가 꼭 주인공 같은 말을 하며 악법 개정의 의지를 드러냈다.
‘딱히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니 편한걸.’
괜히 이쪽의 의견을 귀찮게 물어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전투나 섹스라면 몰라 정치니 법이니 하는 이야기는 솔직히 귀찮다. 삼국지도 내정이 상세한 시리즈는 귀찮아서 안 하는 나다.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그렇게 생각하기 바쁘게 물어왔다. 은근슬쩍 묻어가기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