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이제 영화 촬영은 완전히 초반부에 들어섰다. 그들이 영화를 역으로 촬영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촬영이 곧 끝나간다는 말과도 같았다.
앙상했던 이정의 손목과 움푹 패였던 뺨은 보기 좋게 살이 쪄 건강해 보였고, 계속된 통증에 저도 모르게 늘어지던 걸음걸이는 당당했다.
이 모습이 앓고 난 뒤 건강을 되찾은 모습이라면 좋을 텐데, 야속하게도 대본의 순서는 정반대였다.
“이기현!”
“김하늘! 이 자식!”
“윽, 미안, 미안.”
기현이 하늘의 맑은 낯을 보자마자 그의 목에 팔을 둘러 조였다.
그러나 평소 같았으면 기현이 아무리 숨 막히게 목을 조여도 절대 미안하다 말하지 않고 버텼을 하늘이 어째서인지 곧바로 사과하며 몸을 뺐다.
“뭐냐. 너? 연락 한번 없다가 육 개월 만에 병원 앞이라고 전화하면 다야? 어?”
오랜만에 보긴 했지만, 평소처럼 했을 뿐인데 어딘가 이상한 반응. 게다가 원래도 자주 연락이 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길게 소식이 없었던 적은 처음이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네가 놀랄 만한 사실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미친놈’ 소리 들을 말이고, 하나는 ‘미쳤네’라는 소리 들을 말이야. 뭐부터 들을래?”
“정상적인 선택지가 없는 게 딱 너 같네. 전자.”
“나 죽는대.”
“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얼굴치고는 지나치게 해맑은 얼굴이었다.
“미친놈.”
“거봐.”
결국 기현은 하늘이 예상했던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야. 구라를 치려면 좀 그럴듯하게 치던가.”
당연히 하늘의 말을 믿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은 그런 기현의 반응까지 예상했는지 가방에서 주섬주섬 서류를 꺼냈다.
“자. 의사 선생님. 여기요. 안 그래도 병원 바꿀 거라고 얘기하고 가져왔어. 네가 내 주치의 해.”
“야, 나 이제 펠로우 2년 차야. 주치의는 무슨….”
하늘이 건넨 진단서를 확인한 기현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야…. 너….”
진단서 한 번, 하늘의 얼굴 한 번. 다시 진단서 한 번, 하늘의 얼굴 한 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여러 차례 하늘과 진단서를 번갈아 본 기현이 안경을 벗고 눈가를 꾹꾹 눌렀다.
“진짜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서류까지 조작하면서 널 속이겠냐.”
“그렇지…. 네가 그렇게까지 병신은 아니지….”
마른세수한 기현이 진단서를 반으로 접었다. 매일 보는 진단서지만, 막상 친구의 것이라 생각하자 형용할 수 없는 묵직함이 밀려들었다.
“나 아직 하나 더 남았는데.”
“또 뭔데.”
그리고 보니 하늘이 기현이 알면 ‘미쳤네’라고 할 소식이 있다고 말했었지만, 시한부 선고가 워낙에 충격적이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거.”
하늘이 이번에도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이번에도 진단서일까 내심 걱정했던 기현은 그가 꺼낸 것이 잡지라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거 38페이지 봐봐.”
“신 예술인? 뭐야, 이게.”
기현과 하늘 둘 다 예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기에 기현의 얼굴이 떨떠름했다. 방금 친구가 죽는다는 사실을 들은 게 아니었다면 결코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하늘의 예상이 맞았다. 대문짝만하게 실린 하늘의 얼굴, 그리고 그 아래 설명을 읽은 기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미쳤네.”
[다시 없을 천재! 김하늘의 풍경화 갤러리 드디어 오픈!]“오케이, 컷이요!”
* * *
5월 둘째 주에 시작된 촬영은 두 달을 조금 넘긴 7월 말에 종료되었다. 독립영화만큼 빠른 촬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촬영 퀄리티가 낮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편집은 9월 중으로 마무리될 거에요.”
편집팀이 따로 있는 만큼 촬영 도중에 이미 시작했으니, 한 달 반 정도면 편집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더욱이 영화가 아닌 락 미 오리지널 시리즈이기에 영화관을 확보하기 위해 배급사와 입씨름할 필요도, 홍보를 핑계로 불필요한 자리에 불려 다닐 일도 없었다.
“이렇게 일이 깔끔하게 끝나는 건 되게 오랜만이에요.”
15분짜리 티저 공개 후, 세 편이 한꺼번에 오픈되고, 마지막화 올라간 사흘 뒤 메이킹 필름이 포함된 스페셜 화가 올라갈 예정이었다.
방송국의 정규 편성이 아닌 덕에 업로드 시간이나 일자를 비교적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었지만, 임 감독이나 안 작가, 그리고 이정을 포함한 배우들도 최대한 한 번에 보는 편이 더 기억에 남을 거라 생각했기에 질질 끌지 않고 한 번에 공개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약 한 달 뒤, 9월 첫째 주. 의 티저가 락 미에 업로드되었다.
* 해당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의 질병은 영화 속 가상의 병으로, 실제 인물 혹은 질병과 연관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검은 바탕에 흰 문구가 크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영화는 낡은 식당 안 TV 속 아나운서가 무표정한 얼굴로 뉴스를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오늘 아침 일곱 시경 천재 화가라 불리던 김 모 씨가 숨진 채 자택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김 모 씨가 평소 지병이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하였으며, 보다 정확한 사망원인을 위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최초 발견자는 김 모 씨의 제자로….’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식당 안은 다소 한산해서 놓친 끼니를 때우는 겨우 몇 사람뿐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방금 들은 뉴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뭐야, 요즘 천재 화가다 뭐다 한참 난리였던 사람 아니야?”
“맞네, 맞네. 그 뭐라더라 국내 최초로 어디서 대상도 받았다고 떠들어댔었잖아.”
관심 없는 사람들은 알기 힘든 분야 그림, 그리고 화가. 그런데도 최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화가 김하늘의 사망 소식이었다.
“사람이 딱 예술을 할 거 같이 마르긴 했어도 멀쩡하게 생겼더만 어쩌다 하루아침에 죽었대? 설마….”
“나이 먹더니 귓구멍도 먹었나 병이 있었다잖아. 병이”
그 말을 들은 중년 남성 하나가 혀를 쯧쯧 찼다.
“사람이 밖에 나와서 해도 보고 바람도 쐬고 해야 하는데, 몇 년을 그렇게 집 안에만 있으니 없던 병도 생기지.”
“그러게.”
몇 년 전, 젊은 나이와 잘생긴 얼굴로 작품 발표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으나, 모든 취재와 인터뷰를 거절하고 본인의 자택에서만 생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뜨거운 취재열과 뒷조사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그의 과거뿐, 현재의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와, 미친, 루머 아니고 오피셜이야?”
“그런 거 같은데?”
또 다른 한쪽에 앉아 있던 젊은 커플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또 다른 뉴스를 검색했다. 여러 뉴스를 검색해 본 결과 실제 상황이라고 결론이 났는지, 커플 중 남자 쪽이 푹 한숨을 내뱉었다.
“지난번에 갤러리 오픈했을 때 갈걸….”
“여기 계산이요.”
“네~ 잠시만요!”
아쉬워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식당에서 누군가가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다. 유일하게 홀로, 묵묵히 밥을 먹던 남성.
차에 올라탄 그가 시트를 뒤로 젖히고 소리 없이 울었다.
그것을 끝으로 서서히 어두워진 화면 속, 다시 아까와 같은 글씨체의 문구가 떠오르며 차에 앉았던 남성의 목소리가 나레이션으로 깔렸다.
[데뷔 이후 항상 이런저런 루머들과 소문에 시달려 왔으며 본인이 그리고자 하는 것만 그리는 독불장군으로 유명한 그는 사실 쾌활하고, 장난기 많고, 웃음이 많으며 쓸데없는 고민을 하기도 하고 의미 없는 날 주고받는 선물을 좋아하며, 이 세상을 오래 살아갈 수 없음에 슬퍼하던 평범한 30대 남자였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담당의이자, 15년 지기 친구인 현직 의사다.]└ 주인공 죽이고 시작하는 락 미 클래스
└ 벌써부터 울음벨인데요…….
└ 이이정은 고딩역할부터 30대 역할까지 안 하는 게 없네 동안인 거야 노안인 거야.
└ re: 동노안인 거라고 하자.
└ re:re: ↑이건 뭐 센스도 없고 재미도 없네.
└ re:re:re: 그니까
└ 이거 이이정 오피셜 sns에서 한다는 말은 있었는데 정작 현장 사진은 하나도 안 올려줘서 궁금해 미치는 줄
└ 해리 언니 존예 ㅠㅠㅠㅠㅠ 포스터만 봐도 존잘포스 ㄷㄷ
└ re: 근데 배해리가 원래 키가 저렇게 작았나?
└ re:re: ㅋㅋㅋㅋㅋㅋㅋ 배해리가 작은 게 아니라 다른 둘이 너무 큰 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배해리 170넘는데 이이정이랑 안상후가 180 190이 넘음 ㅋㅋㅋ
└ 이번에 얘네랑 NTO랑 시상식 크게 한다는데 이이정이 상 받았으면 좋겠다. 이름값 대비 상 받은 게 별로 없엉.
└ re: ㅇㄱㄹㅇ 근데 약간 상 받을 수 있는 거보다 진짜 좋은 작품 골라서 하는 거 같아서 믿고 보기 좋음.
└ 안상후 제발 좋은 작품…. 이이정 님 기 좀 나눠주세요 내새끼 짠해 죽음 ㅠㅠ
└ re: 222
└ re:re: 333
최초 공개된 티저에는 어느덧 댓글이 잔뜩 달렸다. 역시나 이정에 대한 댓글이 제일 많았지만, 종종 배해리나 안상후에 대한 댓글도 있었다.
이전에는 반대로 이정에 대한 댓글이 소수였던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그동안 이정의 인지도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