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57
057화
“이정 씨 아니에요?”
영상이 시작되자 영상과 이정을 번갈아 보면서도 긴가민가 헷갈린다는 표정에 그녀의 표정에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이 한곳으로 몰렸다.
“맞는 거 같은데?”
“맞나?”
“이정 씨는 이런 느낌 아니잖아요?”
“분장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앞에 본인을 두고서도 물어보지 않고 굳이 힐끗거리며 비교하던 사람들의 시선은 이정이 본인이 맞음을 인정하고 나서야 멈췄다.
“그거 저 맞아요.”
찍을 때야 환상과 분위기 덕분에 어렵지 않게 술술 찍었지만, 막상 촬영장 밖에서 완성된 영상을 보니 생각보다 더 낯간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이정 씨라고? 오, 완전 대박. 다시 틀어봐 승혜 씨.”
이정인 것이 확실해지자 스태프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자 그나마 이정의 주변에서 자리를 지키던 배우들마저 슬그머니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앗 저도 볼래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아예 노트북으로 크게 보자.”
일 분도 채 되지 않는 영상을 다 같이 보겠다는 이유만으로 촬영장을 정리하다 말고 노트북에 연결까지 하는 열정을 보여주는 이들의 모습에 이정이 헛웃음을 지었다.
“꼭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보셔야 해요?”
처음 뮤비 내용을 알았을 때의 오글거리는 느낌이 되살아나는 기분에 이정이 스태프들을 말렸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정 씨, 이리 와!”
“아니, 저는….”
“빨리!”
영상을 관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것마저 실패한 이정은 꼼짝없이 중간에 앉아 티저 영상이 시작되는 것을 지켜봤다.
― Once upon a time there is a precious treasure which called ‘WISH STONE’
굵은 글씨체의 영어 문장이 흐릿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폐허가 된 한 공간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 소…원의 돌….
목을 긁는 목소리와 함께 발끝에서부터 점점 올라가는 카메라 무빙과 함께 웃고 있는 이정의 옆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대사를 그대로 쓰셨네.’
원래 대사 없이 수록곡만 깔릴 예정이었던 뮤직비디오에 이정의 목소리가 그대로 삽입되었다.
환상 발현을 위해 대사를 넣은 것뿐이었던 그로서는 의도 한 듯 편집된 영상이 민망했다.
“와 목소리 봐.”
“이정 씨 맞는데 되게 어색하다.”
드문드문 시니컬한 구석은 있어도 제 또래 고등학생 같았던 의 규승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스태프들이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쉿, 쉿 안 들리잖아.”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악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질척하고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가 바삐 걸어가던 움직임을 멈추고 갑자기 우뚝 섰다.
― 그것이, 실존했다는 말이지?
그리고, 줄곧 옆으로만 서 있던 악마가 몸을 돌려 카메라와 마주친 순간, 그날 촬영 감독이 그랬듯 스태프들 역시 숨을 들이켰다.
“헉…!”
“와 씨….”
특이하다 못해 과한 비주얼도 시선을 끌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이유는 바로 이정의 표정 그 자체였다.
요사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가 지금 그들 옆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 기필코, 내가 먼저 차지해야 해!
이어서 소원의 돌을 찾는 루티온의 멤버들이 비치고, 악마가 그들 사이를 파고들어 무언가를 속삭이는 장면이 연달아 등장했다.
그리고, 소원의 돌에 손을 가져다 대는 누군가의 그림자를 마지막으로 컴백 날짜와 함께 영상이 종료되었다.
“우와…. 이번 영상 진짜 이 갈고 만들었구나. 아까워죽겠네. 탈뤂하고 나서 찍지.”
“탈뤂이 뭐야?”
“루 플러스 탈출이요. 지금 소속사 이름이 루 플러스거든요.”
지극히 팬 관점에서의 후기를 말하는 루티온의 팬, 승혜와 크게 팬이 아니었던 스태프들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이야, 잘 찍었네. 근데 이거 사람들이 이정 씨인 거 알아보겠어? 알고 보면서도 계속 맞나? 이정 씨 맞나? 이 생각으로 봤는데.”
“저런 연기도 잘하는지는 몰랐네. 치명적인 거 찍어도 잘하겠다.”
“오빠 이런 건 또 언제 찍었어? 말 좀 해 주지.”
마지막 촬영이란 이유로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어디 가고 이제는 모두가 영상에 대해 떠들기 바빴다.
특히 조금 전까지 이정의 차기작에 관해 이야기하던 희인은 조금 섭섭한 눈치였다.
“이거 찍은 지 진짜 며칠 안 됐어. 하은아. 오늘 올라오는지도 몰랐지만, 알았어도 말 안 했을 거야. 이게 차기작은 아니잖아.”
이렇게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볼 줄 알았다면 차라리 티저 공개 일을 하루 늦춰달라고 하는 편이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왜? 멋있는데요.”
“맞아. 되게 잘 어울렸지?”
“이렇게 화려하게 특수분장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즐겨요, 즐겨. 심지어 잘 어울렸으면 말 다 했지.”
이정이 잘 어울린다며 칭찬하는 스태프들의 반응에 진심으로 되물었다.
“저게 화려해요?”
얼굴 반쪽을 차지한 기하학적인 문양은 화려하다기보단 징그럽다, 혹은 기이하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문양이었다.
“지금 댓글 보니까 처음에 나오는 배우 잘생겼다는 말 많은데요?”
“물어보는 사람은 많은데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네. 내가 대답해 줄까요?”
홍 작가는 본인이 또 한 글빨 하지 않냐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감사하긴 한데 일단 지금은 참아주세요. 그나저나 방금 올라온 건데 벌써 저에 대한 댓글이 달려요?”
티저가 올라오자마자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루티온의 팬이니 멤버들의 보기도 바쁜 시간에 이정까지 궁금해할 줄은 몰랐다.
“임팩트 있잖아요. 딱 보자마자 저 사람 누구지? 싶은데 안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요?”
루티온 멤버들을 보기 바쁜 팬 승혜마저도 그가 단박에 시선을 끌었음을 인정했으니 이 정도면 성공적인 등장이었다.
“오빠 타이틀 뮤비에도 나와?”
“아니. 수록곡 뮤비에만.”
이정이 나오는 뮤비가 수록곡 뮤비 겸, 타이틀 뮤비의 프롤로그가 되는 격이었지만 그는 혹시나 스포가 될까 싶어 말을 아꼈다.
“뭐가 됐던 내가 정식 뮤비 뜨면 꼭 챙겨볼게요. 댓글도 달고, 이정 씨 칭찬도 하고.”
팬인 몇몇과는 다르게 굳이 루티온의 뮤직비디오를 찾아본 적 없었던 스태프들이 이정이 나오는 뮤직비디오는 찾아서 보겠다며 말을 더했다.
“네. 제 칭찬 많이 해 주세요.”
“방금 전까지 민망해하지 않았어 이정 씨?”
여전히 오글거리는 컨셉과 분장은 낯간지럽지만, 이정이 그들에게 보지 말라고 할 일은 아니었다.
“보지 말아 달라고 해도 다들 보실 거잖아요.”
“당연하지.”
“따로 저한테 후기 주시는 거 아니면 제 이름 홍보해 주시는 건데 감사하죠.”
“뮤비 보고 꼭 이정 씨한테 후기 남길게.”
“아, 그건 좀.”
심지어 보지 말라고 한들 안 볼 이들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이정은 일부러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굴었다.
“아니다, 저한테 후기 주실 분들은 제 칭찬 먼저 하시고 후기 남겨주세요. 칭찬 없이는 후기 안 받아요.”
“바이럴 마케팅이야 뭐야!”
내내 낯간지러워하다가 갑자기 뻔뻔해진 이정의 태도에 스태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이정 씨 덕분에 울적했던 거 다 날아갔네.”
“그러게요. 덕분에 울다 웃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규승의 마지막 대사로 스태프들을 울게 하고, 악마의 유혹으로 감탄하게 하더니 이제는 본인의 뻔뻔함으로 웃게 하는 이정이었다.
“일단 내가 의도한 건 아니야.”
“와~ 얄미워.”
티저를 보기 전에 어느 정도 정리한 데다,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었던 덕에 환상이 옅어져도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연홍아. 난 원래 이런 성격이야.”
조금 있으면 환상이 깨질 것 같을 때만 배우들의 이름을 부르며 아슬아슬하게 덧칠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탓인지 조절하는 능력만 늘었다.
‘어떻게 하긴 해야 하는데.’
익숙해진 것과, 편한 것은 다르니 앞으로도 환상에 기대서만 살 수 없다는 것은 항상 생각하는 문제였다.
‘망상증 취급받겠지.’
하지만 사고를 당하지 않은 지금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료받고 싶다고 한다면 그건 더 이상 트라우마 치료가 아니었다.
“하여간 성격 독특해.”
“사람 성격은 다 특이해.”
지예의 핀잔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동안 스태프들은 슬슬 촬영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일 또 촬영해야 할 거 같은데 마지막이라니까 되게 새삼스럽다.”
“그러게. 마지막 촬영인데 마지막 같지가 않네.”
척척 정리되는 현장을 보던 지예와 희인, 그리고 민우가 묘한 얼굴을 했다.
“진짜 마지막이구나.”
이정은 환상 때문에 촬영장이 정리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정확히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따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아, 근데 오빠 루티온 뮤비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거야? 루티온 뮤비에 다른 사람 나오는 건 또 처음이네.”
“설마 계약한다는 소속사가 루 플러스였어? 아닌데, 거긴 신생이 아니지 참.”
“소속사 계약해?”
감성적이던 것도 잠시, 세 사람은 이정을 향해 우다다 질문을 쏟아냈다.
“타이틀 뮤비에는 안 나와. 수록곡 뮤비잖아. 계약한다는 소속사 루 플러스 아니고, 다른 데랑 계약 조율 중이야.”
“아 뭐야, 대답이 뭐 이렇게 두루뭉술해?”
“뮤비 다 나오고 회사랑 계약하고 나면 말 해 줄게. 잘못하면 스포라.”
“알았어.”
스포일러에 예민한 직종이니만큼 세 사람 모두가 이정의 말에 수긍했다.
“어쨌든, 수록곡이든 뭐든 최초로 루티온 뮤비에 나온 배우네. 팬들이 궁금해하기 딱 좋겠어. 풀뮤비 뜨는 게 다음 주지? 벌써 기대된다.”
희인의 말대로 이정의 뮤직비디오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 * *
[오늘 루티온 2차 티저] 네. 말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탈뤂 전 마지막 앨범 퀄리티 실화인가요…… 넘 아깝고 아깝다 ㅠㅠㅠ└ 근데 티저 초반에 나온 사람 누군지 아시는 분?
└ re: 222 솔직히 뮤비에 울맴 말고 다른 사람 나오는 거 안 좋아하는데 순간 홀림
정식 뮤비도 아닌 티저 영상만으로도 팬심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서 궁금증을 유발한 만큼 루티온의 팬들 역시 그에 대해 궁금해했다.
[루티온 루어 티저 남자 ㄴㄱ] 제곧내. 알고리즘 따라 흘러 다니다가 발견했는데 ㅋㅋㅋㅋㅋ 얼굴 대맛집 ^^ 설마 뤂 연습생인가??└ 헐 누구지? 아시는 분 답글 좀
└ 아이돌 삘이 아닌데? 배우 아님?
└ re: 배우던 아이돌이던 누군지 아냐구 ㅠ
└ re:re: 알면 내가 말을 했겠지 ㅡㅡ 걍 배우 같다구.
혹은, 루티온의 팬이 아닌 사람마저 티저 영상, 혹은 캡처된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이정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같이 붙어 다니며 촬영을 한 스태프들마저도 순간 헷갈린다고 했을 만큼 확 다른 이미지인지라 티저 속 그가 과 에 나온 이정이라는 사실을 눈치를 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 루티온의 리더인 두경에게 연락이 왔다.
― 이정 씨, 우리 계약해야지?
― 겸사겸사 저번에 말했던 리액션 영상도 찍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