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
1화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거짓말이다.
눈을 뜨니 낯선 사형대가 보였고, 그건 자신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안녕? 난 사형대고 넌 여기에 목이 묶일 거야.’
바로 이렇게.
쾅! 쾅쾅!
아무리 철창을 두드려 봐도 소용없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은 그녀를 골치 아프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처형 집행까지 30분 남았습니다. 부디 다음 생에선 신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요이델 님.”
“그러니까 전 요이델이 아니라니까요!”
“기억을 잃은 척하셔도 감형받으실 수 없습니다. 제발 조용히 좀 계십시오!”
“풀어 드릴 순 없지만, 마지막으로 드시고 싶은 식사가 있다면 얘기하십시오. 성하께서 그 정도의 자비는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런 지독한 범죄자에게 호의를 베푸시다니. 아아, 실로 성황의 자리에 걸맞으신 분이시지요.”
돌아오는 경멸 어린 말들에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으나 꾹 참았다.
“오해예요! 전 정말 성하를 습격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하, 또 그 소리십니까?”
눈물 어린 외침을 백 번쯤 들은 재판관들은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눈빛은 꼭 거대한 빙벽처럼 차가웠다.
“처형 직전엔 다들 살려 달라고 애원하시지요.”
“그렇죠! 제 마음을 이해하시죠?”
“그러나 생과 사는 어쩔 수 없는 운명. 삶에 순종하는 겸허한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제사상 앞에 절이라도 하듯 기도한 그들은 단호하게 등을 돌렸다.
“제가 그런 생각이나 하게 생겼어요? 이봐요! 저기요! 가지 말아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부디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쾅!
철문이 닫히고 어둠 속에 홀로 남았다. 완벽한 고독이었다.
“정말로 요이델이 아닌 걸 어떡하라고요…… 흐엉.”
족쇄로 묶인 손목을 바라보다가 소리 없는 눈물을 훌쩍였다.
억울하고 답답한데 설명을 할 수 없으니 딱 미칠 노릇이었다. 평범하게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이 꼴이라니.
그녀에겐 취미가 하나 있었다.
늦은 밤,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자는 것.
얼마 전 보았던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얼굴도 능력도 전부 가진 자애롭고 상냥한 남자주인공의 일대기.
로맨스 없는 판타지물이었다.
신성국 팔라디움의 주인인 남자주인공. 그 환상 속 세상을 접하는 건 큰 기쁨이고 설렘이었다.
그의 능력을 보며 마음이 얼마나 두근거렸던지.
그래. 그렇긴 했는데, 누가 그 속에 들어오고 싶댔냐고! 그것도 이런 악역으로!
‘내가 요이델이라니.’
무수히 많은 악역 중에서도 ‘요이델’이라는 엑스트라는 조금 특이했다. 성황을 지독히도 사랑한 스토커 같은 인물이면서, 남장을 하고 살아온 여자였기 때문에.
그 사실은 무려 처형 뒤에야 밝혀진다.
“죽기 싫어…… 무서워.”
요이델은 쭈그려 앉아 감옥 한편에 고인 물웅덩이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놓인 사형대가 보이는 조그만 창으로 햇살이 내리쬐자, 웅덩이에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분홍색 머리카락, 독과 같은 붉은색 눈동자. 소설 속 요이델의 외형 그 자체였다.
‘남자주인공을 만나면, 어쩌면 내 얘기를 들어 주지 않을까?’
이게 그녀가 읽었던 이야기가 맞다면, 그리고 그 소설 속의 남자주인공을 만날 수만 있다면, 빌어 보기라도 할 텐데.
이 성국의 주인인 남자주인공이라면, 자애롭고 따스한 빛으로 표현된 그라면,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주지 않을까?
‘아니야, 누가 자신을 해치려던 사람을 도와주겠어.’
아마 미친 사람 취급이나 받겠지.
지금 그녀는 성황인 그를 시해하려 한 혐의로 감옥에 와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앞으로 30분. 죽음까지 남은 시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죽는다.
‘아, 그래!’
요이델은 문득 아까 들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한 번의 자비라고 했다.
다시 한번 쾅! 철창을 치며 사람을 불렀다.
“먹고 싶은 게 생겼어요.”
“네?”
“처형을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겠어요. 대신 마지막 식사를 하게 해 주세요.”
거짓말이었다. 그딴 운명에 수긍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방심한 사이에 문을 열고 탈출할 수 있는, 찰나의 틈이 필요했다.
“어서 준비해 주세요. 시간이 없어요.”
요이델은 결심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탈출이라도 하다가 죽겠다고.
━━━━⊱⋆⊰━━━━
끼이익―
몇 분 후, 스산한 감옥의 문이 낡은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한 간수가 쟁반을 들고 요이델의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아까까지만 해도 울부짖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는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간수가 기시감을 깨닫는 순간…….
퍽!
날쌔게 튀어 오른 검은 그림자가 그의 턱을 들이받았다.
“으악!”
쿠당탕!
쟁반과 접시가 모두 떨어지고 박살이 난 아수라장 속, 거친 숨을 뱉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그 정체는 바로 요이델이었다.
“헉, 허억……. 휴!”
완벽하게 쓰러진 게 맞겠지?
조그만 심장을 부여잡으며 쓰러진 남자의 눈앞에 발끝을 휘휘 저어 보였다. 그래도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떡해, 진짜 저질렀어.”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절반은 두려움, 나머지 절반은 탈출할 수 있다는 환희 때문이었다.
그녀는 간수의 검으로 손목 밧줄을 자른 뒤, 그의 코에 손가락을 댔다.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단순 기절일 뿐이니 금방 일어날 수 있겠지.
“정말 미안해요. 진심으로 죄송해요. 하지만 전 너무너무 살고 싶어요. 금방 낫길 바랄게요!”
이미 기절한 남자를 두고 거듭 머리 숙여 사과했다.
사람을 해쳐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원래도 간이 조그마해서 개미조차 밟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어마어마한 짓을 저지르다니.
스스로 하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생명의 존폐 앞에서는 극단적인 선택도 가능한 것이다.
요이델은 마음으로 깊이 사과했지만, 그를 때려눕힌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렇게라도 살고 싶었으니까. 아주 간절히.
새삼스레 자신의 생존 욕구를 확인하며 통로의 문을 열었다. 감옥의 바깥 역시 안쪽만큼이나 어둡고 눅진했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탈출을!”
쾅!
요이델은 낯선 목소리에 깜짝 놀라 철문을 활짝 열어젖혀 버렸다.
그렇게 기어이 간수 한 명을 더 때려눕혔다. 무거운 철문은 사람을 반쯤 죽이기에 아주 적합했기에.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요이델은 자신이 두 명이나 혼절시켰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거듭 사과했다.
그리고 기절한 두 남자를 질질 끌고 와 복도에 나란히 눕혀 놓았다. 누가 본다면 다정한 연인으로 오해할 만큼 오순도순한 모습으로.
“이러면 금방 발견되실 수 있을 거예요.”
이상한 방향으로 뿌듯함을 느낀 그녀는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요이델은 부디 이들이 기억 상실이나, 여타 문제를 맞지 않기를 바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미친 듯이 내달렸다.
길을 잘 모르니까 일단 환한 빛이 있는 곳으로 가자. 어두컴컴한 감옥과 반대되는 곳으로.
‘좋아,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거야.’
요이델은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발소리를 죽인 채 네발짐승처럼 뛰었다.
땀이 비처럼 쏟아지고 눈앞이 흐려지는데, 설상가상 하얀 신관복을 입은 사람들까지 근방에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게 실감 났다.
사람이 많은 곳에선 벽에 붙어 발끝으로 걸었다. 하지만 숨소리, 심장 소리까지 들킬 듯한 불안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요이델 수련신관님이 도망갔다! 잡아!”
“저쪽이다!”
조금 안심하려던 찰나, 감옥 안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 그녀의 탈출을 알아채고 만 것이다.
안 된다. 이렇게 좌절할 수는 없었다.
요이델은 풀어지는 다리를 붙들고 다시 빛을 따라 걸었다. 막다른 곳에 다다랐을 땐 지하 수로를 타고 내려갔다.
지독한 냄새에 헛구역질이 나올 때쯤, 환한 빛이 쏟아지는 곳이 보였다. 밖으로 나가는 문이었다.
쿵.
그 문을 밀고 나오자, 눈부신 광경이 보였다.
아까와는 아주 다른 공간.
스무 명이 목말을 타도 닿지 않을 만큼 높이 솟은 천장과 유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돔 모양 지붕.
고개를 빙 돌려도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광활하고, 웅장하면서도 고귀한 기운이 느껴지는 성이었다. 환상 속 보물 궁전이 실제로 있다면 바로 여기일 것만 같았다.
이곳은 성궁일까?
성국 대신전의 중심부엔 성궁이 있었으니까. 남자주인공이 주로 머무는 그곳.
“저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찾아라!”
“어? 하지만 저쪽은…….”
마음 놓고 감탄할 틈이 없었다. 바로 근처까지 그녀를 찾는 목소리가 다가왔다.
도망가야 해.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다리와 손의 상처에서 진물이 터져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아직 울 수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달려 나갔다. 그러다 어떤 공간에 다다랐다. 책장이 가득히 세워진 곳이었다.
도서관인가?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폈다.
수십은 족히 되어 보이는, 미로처럼 얽힌 책장들. 저기라면 분명히 찾기 힘들겠지. 냉큼 들어가 주변의 소리를 살폈다.
“휴우…….”
다행히 여기까지 따라오진 않은 것 같았다. 다시 걸음을 더 안쪽으로 옮긴 순간, 긴 옷자락에 발이 걸렸다.
“앗, 꺄악!”
퍽, 하고 요이델의 몸이 책장과 부딪힌 그때.
쿠르르릉―
손으로 짚은 책장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넘어진 요이델을 싣고서 바닥과 함께 천천히, 빙그르르…….
책장이 완전히 돌아가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비밀 공간이 펼쳐졌다.
그곳을 발견한 순간, 억겁의 세월이 흐르듯 까마득하고 섬뜩한 비현실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눈앞에 보이는 또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 정확하게는 도서관처럼 생긴 비밀스러운 집무 공간.
그곳엔 한 남자가 있었다.
천사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어떤 은발의 남자가.
‘……피?’
냉기가 가득한 이 공간의 주인인 듯 당당히 서 있는 남자와, 그의 뒤로 펼쳐진 광경.
족히 수십 구는 되는 마수와 인간의 시체가 가득히 쌓여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숨이 콱 막혔다. 목을 졸린 것도 아닌데 압도적인 기운에 호흡을 할 수조차 없었다.
하필이면 왜 이곳에 들어오게 된 걸까. 죽음을 피해 도망쳤더니, 그보다 더한 위험 속으로 들어왔다.
팔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엎어진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옥죄는 공포만 느끼던 그때.
“쥐새끼가 있었군요.”
부드럽고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 있던 남자는 차츰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걸음걸이는 고아하고 아름다웠으나 동시에 무서웠다.
그는 검을 허공에 휘둘러 핏방울들을 쉽게 튕겨 냈다. 물론 그의 피는 아니었다.
튀는 핏방울이 불결하다는 듯 짜증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검에는 아직도 많은 혈흔이 묻어 있었다.
“보셨습니까?”
그는 잠시 한숨을 내쉬고 나긋하게 말했다.
“보셨냐고 물었습니다.”
“네? 아, 아뇨. 아무것도 모, 모, 못 봤는데요.”
“……무엇을 못 보셨다는 건지.”
다가온 남자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밤하늘의 달을 본떠 만든 것처럼 정교하고 날카로운 외모였다.
그때, 그의 눈매가 아름답게 휘어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홀한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허리를 굽힌 그는 그녀의 턱을 가볍게 쥐고, 곧장 차가운 시선을 내리꽂았다.
미소 띤 얼굴이 단번에 서늘해졌다.
“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