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대신전의 유리온실 응접실.
면접은 편안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원로원과 재판관, 행정관 등 대신전의 중심 구성원들이 양옆으로 함께 자리해서 요이델은 숨이 턱턱 막혔다.
‘나도 면접관이 아니라 저쪽 면접자 자리에 앉아야 할 것 같아.’
장소라도 편한 곳인 이유를 알겠다. 긴장감에 숨을 들이마시는 사이, 면담이 시작됐다.
몇몇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마침내 아까 보았던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올가 님, 앉으세요.”
느긋한 분위기와 느리게 느껴지는 동작에 비해 행동은 빠릿빠릿한 사람이었다. 다른 후보들은 며칠씩이나 먼저 올라와서 대기하지 않았으니까.
훨씬 먼저 올라와 이곳저곳 다니며 성국의 분위기를 파악한 후보자는 올가가 유일했다.
“듣기로는 성국에 오기 전, 지상 대륙에서 만난 곤궁한 아이에게 빵을 나눠 줬다지요.”
“하지만 한 명에게 주면 배고픈 아이들이 떼처럼 몰릴 텐데요.”
“일부러 이목을 끌은 듯하더군요. 냄새를 맡고 온 여럿에게 나눠 줬다고 합니다. 대신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개중 재능이 있는 아이를 알아보고 학술원 입학 추천을 권유했다더군요.”
“어쩐지, 그래서 검문소를 겨우 통과할 정도의 돈만 소지하고 있었군요. 하지만 그 대책 없는 선의가 도움이 될는지는 잘…….”
“투자라고 볼 수도 있지요. 가장 열의가 넘치기도 하고 학술원의 신조와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면접관들의 사이에 조심스러운 말이 오갔다.
‘생긴 것만큼이나 착한 사람이구나.’
메디아 사람이지만 휘스테론이나 라이오스처럼 눈동자 색에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
요이델은 습관적으로 방긋 웃으면서 앞을 보다가 흠칫했다.
“크흠.”
‘여기서는 면접관이니까, 절대 웃어서는 안 돼. 나는 냉정하고 사사로움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안 돼, 자꾸 웃음이 나오네.’
금세 엄한 표정을 지은 요이델은 스스로 흡족하게 여기며 올가를 바라봤다. 올가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메디아 수장 일가 소속 마법사.’
서류를 보니 그녀의 실제 나이는 60대 후반이었다. 능력치 덕분에 노화가 더딘 듯했다.
“여기 오기 전에 지상 대륙을 방문하셨네요?”
“네. 신세 졌던 사람이 있어서요.”
“브리칼트와 관련이 있나요?”
그녀가 방문한 곳은 브리칼트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타 왕국이었다.
아무래도 브리칼트와 관련된 소동이 연이어 터지고 난 후라서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면 조심스러웠다.
“브리칼트와 연관은 없습니다. 그곳은 정보 길드였으니까요.”
“정보라면 왜죠? 보통 정보상들은 암흑가의 소문에 능통할 텐데요. 소문이라면 메디아 대륙에서 의뢰해 받으시는 것도 충분할 듯하고요.”
사람을 외관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그녀가 다른 계략을 꾸미고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게 좋으니까.
“면접을 보는 자리인 만큼 솔직해야겠지요.”
올가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포근하게 미소 지었다.
“저에겐 지난 수십 년간의 기억이 없어요. 이름도 메디아에서 신세진 분이 수여해 주셨죠.”
신세라면 수장 일가를 말하는 거겠지. 그들에게 이름을 부여받았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메디아식 이름은 아닌 게 특이한데. 왜일까?
서류에 적힌 특이 사항 중 하나로 기억 상실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는 결격 사유는 아니다. 메디아에서 보장을 해 줬을 정도이니 연기하는 것도 아닐 테고.
“그 기억을 찾기 위해서였죠. 저는 메디아 태생이 아닙니다. 아마도 지상 대륙 출신이겠지요.”
면접관들과 올가 사이의 질답을 듣던 요이델이 물었다.
“가족을 찾기 위해서였나요?”
메디아는 공식적으로 교류를 닫은 상태였으니까 그곳에서 구체적인 단서를 찾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어떤 아이를 찾고 있어요.”
“아…….”
자식이 있었구나.
요이델은 그제야 그녀가 밖으로 나온 이유를 이해했다.
이후 면담은 계속되어 해가 저물어서야 끝이 났다. 숙소로 돌아온 올가는 편지지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콜록…….”
요즘 들어 기침이 심하네. 이상한 일이지.
올가는 자신에게 마구 짜증 냈던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안부를 꼭 전하라고 성질을 부렸기 때문이다.
올가는 요이델을 생각하고 살짝 미소 지었다. 왠지 모르게 정이 간다.
[왜일까요? 도련님의 사나운 성격과는 전혀 다른데 처음 도련님을 봤을 때만큼이나 친숙한 느낌이 들어요.]그리고 설명을 하나 덧붙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성하의 반려분이시래요. 놀라웠어요. 저도 그 파동을 느꼈거든요.어쨌든 성하만큼이나 상냥한 분 같아요. 이분만큼 우리 도련님도 성질을 죽였으면, 하고 생각했답니다.
전 잘 적응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걸 보면 누가 걱정해?! 하고 화내시겠지만요.]
━━━━⊱⋆⊰━━━━
시간이 지나자 요이델을 향한 광기 같은 관심은 차차 누그러져 집착 같은 관심으로 진화했다.
“음, 신관님. 마음에 드세요?”
“조금 더 여기를 들어도 되지 않아? 비켜, 카멜리아. 내 가위질이 나아.”
“신관님은 내 미용 실력이 좋다고 하셨어.”
“그건 앞에서 구리다고 말하기 미안하니까 하신 말씀일걸. 내 가위질이 더 좋다고 하셨거든?”
시종들은 요이델의 앞머리 다듬기를 놓고 씨름했다.
“신관님, 그동안 앞머리는 절대 손을 못 대게 하신 이유가 있으셨군요.”
앞머리를 휙, 걷어 올리자 반려의 표식이 보였다. 그동안 바람 불 때 앞머리부터 사수하느라 팔이 얼마나 아팠는지.
“이왕 모두가 알게 된 거, 아예 드러내 놓고 다니면 어떠세요? 서클렛 같은 걸로 집중되게 해서요.”
“아, 아니에요. 그렇게까지는…… 평범하게 해 주세요.”
“하지만 이마가 동그랗고 예쁘신걸요.”
시종들은 아쉬움에 울상을 지었다. 무언의 부탁이었다.
“……끄응, 알았어요.”
“맡겨만 주세요!”
어려운 부탁도 아니니까 들어줄 수 있지.
앞머리를 사선으로 넘겨 가볍게 잘라 이마를 드러낸 후, 긴 머리들은 구불구불 컬을 넣어 아래로 늘어뜨리자 두 번, 세 번 돌아보게 만드는 화사함이 더해졌다.
“거울 좀 보세요. 너무 아름다우세요, 신관님.”
요이델은 민망한 듯 웃으며 고맙다고 대답했다. 그때 시종의 앞치마에서 뭔가가 슥 나왔다.
“그래서 말인데, 영상구에 담아 가도 될까요?”
“아뇨.”
“……크흡, 오늘은 물러나 드릴게요.”
시종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때 요이델의 눈에 뭔가가 포착됐다.
“그런데 아까부터 다들 뭘 적고 있는 거예요?”
“아, 저희끼리 휴가 일정을 짜고 있었어요.”
“휴가요? 전부 같은 날에요?”
뒤를 돌아보자 시종들은 음흉하게 입가를 가리고 웃고 있었다.
“곧 연인의 날이 있으니 저희가 빠져 드려야지요!”
“네?”
“아이, 신관님도 참.”
시종들은 부끄러워하며 옷을 좌르륵 펼치고 분류해 놓았다.
“이건 신관님이 성하와 낮 데이트 때 입을 옷. 음, 이건 저녁 식사 때 입을 옷. 또…… 시종장님, 그거 어디 있죠?”
“여기 준비해 놨지.”
“잠옷까지 더하면 완벽하게 하루의 옷이 완성, 꺄악! 신관님! 이러지 마세요!”
“잠옷이 왜 나와요!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요이델은 몽땅 가져다 침대 사이에 쑥 집어넣어 버렸다. 이런 이상한 건 버리고 숨겨도 자꾸 어디서 가지고 나오는 거야?
요이델은 시종들이 쳇, 하고 혀를 차며 다음 계획을 짜는 찰나의 모습을 목격했다.
눈이 마주치자 시종들은 얼른 상처받은 강아지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그 음흉함 뭐였어요?”
“하지만 신관님―”
“안 돼요. 빠져 주지도 말아요. 이런 휴가는 절대로 안 돼요.”
“힝, 네.”
대충 옷을 갈아입고 나온 요이델은 곤란함에 한숨 쉬었다.
‘성하가 연인의 날 같은 걸 신경 쓸 리 없잖아.’
오히려 주변에서 더 기대하고 눈을 번뜩이는 듯했다. 자신에게도 이러는 걸 보면, 성하에게는 더 굉장한 압박과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아닐까.
그로서도 상당히 곤란한 상황일 텐데.
“잠시 나갔다 올게요.”
“성하를 만나러 가신다면 여기 이 옷을―”
쾅!
얼굴이 빨개져서 문을 세게 닫고 나왔다. 정말 왜 저런 음흉한 얼굴을 하는 거야. 요이델은 로사리움을 나와 재빨리 걸었다.
플로테스를 데리러 본관 응접실로 갔는데, 사람들이 없었다.
‘어디지? 안 보이네. 벌써 외부 일정이 끝났나?’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꾸앙.”
성하와 플로테스가 또 장난을 치고 있잖아? 요이델은 멀찍이 몸을 숨겨서 상황을 관찰했다.
플로테스의 작은 앞발이 성하의 옷 안을 깔짝깔짝 긁자 그는 작은 몸뚱이를 훌쩍 안아 올렸다.
불만이 가득한 플로테스가 발을 파닥거리다가 그를 맹렬히 째려봤다.
“이것을 탐하십니까?”
“꾸우. 늉, 뉴응. 우음마.”
율리시스의 물음에 플로테스는 어서 내놓으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평범한 손수건이 아니었다.
요이델이 준 엉망진창 헝겊 조각. 그를 위해 만들어 준, 나름대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이었다.
“제 것입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플로테스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 유치한 행동도 그가 하자 이상할 정도로 우아해 보였다.
“당신은 가질 수 없습니다.”
율리시스는 웃으며 플로테스에게 완강한 거절을 표했다.
그러자 플로테스가 퐁! 소리와 함께 인간화하여 율리시스를 쳐다보았다.
그는 평소에는 몰라도, 인간 아기로 변한 작고 연약한 플로테스에게는 모질지 못했다.
“아브아.”
특히 이렇게 말할 때는.
그래서 율리시스는 플로테스를 바라보다가,
“경, 밖에 있습니까.”
그냥 다른 사람에게 넘겨 버렸다.
요이델은 그 모습을 보고 빨리 그곳을 나와 멀리 도망갔다.
‘어떡해, 엄청 신경 쓰잖아!’
━━━━⊱⋆⊰━━━━
“아슈레오 씨, 연인의 날이라는 게 뭘까요?”
“으응? 지금 나에게 묻는 거야, 요이델 씨?”
옆자리에서 광속도로 뭔가 적고 있던 아슈레오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이론으로 말하자면 사랑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나라에서 권장하는 특별한 날이고 축복받을 날이지만, 사실은 상인들의 대목이지.”
“아슈레오 씨, 생각보다 냉정하네요.”
“원래 그런 특수한 기념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괜히 들뜨고 설레기 마련이거든. 주머니도 쉽게 열리고. 이때 연인과 관련된 물품은 통상적으로 다른 달에 비해 매출이 약 20배 증가하여 그와 연계된 부가적인 수익 창출이…….”
요이델은 신나서 말하기 시작한 아슈레오를 놓고 동관을 나왔다.
역시 같은 연애 무연고자끼리 이야기 해 봤자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휘스는 서프라이즈 전력이 있고, 라이는 순수해서 잘 모를 것 같은데 누구에게 묻지?
‘하일 님은 또 불온서적을 참고하시겠지. 마르셀리나 님은 잔뜩 치장해 줘서 두근두근하시다가 몰래 따라붙으실 게 분명해. 시종들은 음흉하게 웃기만 하고.’
다 좋은 분들인데 조금씩 이상하다. 이럴 때는 또래인 여자 친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도저히…… 아!
“혹시 파멜라 신관님 있나요?”
“괜한 걸음 하시게 만들어 죄송하지만 파멜라 신관은 초청 일정이 꽉 차 있어서 저희도 보기 힘듭니다.”
포기한 요이델은 일단 상점가로 나가서 괜찮은 선물들을 찾아봤다. 상점가에는 사냥대회 이후 연인들의 선물로 자리 잡은 손수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요이델은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건 선물로 너무 소소한데.
‘성하에게 어울릴 만한 반짝반짝한 게 있었으면 좋겠어.’
저벅.
그때 누군가가 요이델의 앞에 다가와 섰다.
“요이델 신관님?”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