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힘이 빠져나가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빠른 속도로 체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율리시스는 정말로 요이델의 체력을 받아 갔다.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녀의 기운이 자신에게 감도는 게 기분 좋았기 때문이었다.
힘이 앗아질수록 입맞춤이 짙어지고 요이델의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심장이 쿵쿵을 넘어서 몸 밖으로 탈출할 듯한 기분이었다.
결국 요이델은 율리시스의 등을 툭툭 쳤다.
아쉬운 듯 기나긴 여운을 남긴 그가 천천히 멀어졌다. 그는 자신의 손에 감겼던 긴 분홍색 머리카락을 놓아주었다.
“푸하, 아…….”
긴장감에 숨도 제대로 못 쉬던 요이델은 정신이 들자 돌처럼 굳어 버렸다.
요이델은 그의 어깨를 밀어내며 시선의 갈피를 못 잡았다.
“이건 페어링만이 아니잖아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힘의 공유를 위한 단순한 접촉과 더 감정적인 관계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압니다.”
율리시스는 외려 뻔뻔한 얼굴로 옅게 미소 지었다. 눈은 조금도 웃지 않은 채.
목소리는 잠겨 조금 갈라져 나왔다.
“하고 싶었습니다.”
“하, 하고……!”
율리시스는 자신만의 불타는 당근을 보고 웃음을 참기 위해 애썼다.
“덕분에 힘이 나는군요.”
율리시스는 양심 없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두근두근 뛰는 심장의 소리를 느꼈다.
요이델의 힘은 본인처럼 밝고 따스해서 언제나 그를 충만하게 한다.
“이 기운은, 느낀 적 있던 기운이군요.”
“언제요?”
“……글쎄요.”
본인도 모호한 듯 그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왜들 그리 멍청한 사랑 타령이나 하며 절절매는지 알 것 같았다. 율리시스는 요이델을 진지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힘보다 사람의 마음 같은 게 더 좋을 수도 있다는 말, 이제 알겠습니다.”
“…….”
“그런 것보다 당신의 마음을 얻길 원합니다.”
그의 손길이 요이델의 얼굴을 감싸고 다시 한번 살짝 당겨 가볍게 입을 맞췄다.
━━━━⊱⋆⊰━━━━
철컹.
드르르륵―
성궁의 지하 감옥.
일반적인 감옥과 다르게 죄질이 악한 사람들을 수용하는 공간이었다.
“아직 살아 있었군.”
율리시스는 키베르크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어차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지금 죽으면 아쉬우니까. 브리칼트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는 듯도 하니, 기억을 읽을 용으로 놔두면 쓸 만할 거다.
물론 쓸모는 거기까지지만.
“앞으로는 입을 잘 놀리는 게 좋을 겁니다.”
율리시스의 낮고 어두운 말이 차가운 감옥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피식 웃으며 턱을 손으로 밀어 올린 율리시스는 천천히 키베르크의 얼굴을 살폈다. 제법 볼만한 몰골이었다.
“요, 요이델은…… 그년은…….”
소식을 들은 듯했다. 쓸데없이 민첩하군.
“말문은 막는 편이 나은가.”
요이델을 향한 모욕적인 말에 율리시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리고 한참 후, 율리시스는 감옥에서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는 간수를 불렀다.
“경.”
“부르셨습니까, 성하!”
율리시스는 뒤로 가볍게 눈짓하며 미소 지었다.
“저자가 자결을 시도했습니다. 혀를 깨물던 걸 간신히 막았으니, 차후 이상 동태가 없는지 면밀히 살펴 주십시오.”
“조치하겠습니다!”
“치료는 하지 말고 놔두십시오. 간단한 지혈만 하면 됩니다.”
율리시스는 더러워진 손을 깨끗이 닦았다. 이런 감각은 요이델에게 전달되지 않으니…….
이렇게 다행일 수가.
미소 짓던 얼굴은 금세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요이델에게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지독할 만큼 냉정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불쾌하군.’
저런 것의 머릿속에 요이델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요이델이 준 엉망진창 자수 손수건을 품에서 꺼내 경건히 입을 맞췄다.
마음 같아서는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 준 손수건을 빼앗고 싶지만, 미움받겠지.
요이델은 얼굴이 붉어진 채 바쁘다고 후다닥 나가 버렸다. 늦었다고 자신을 째려보면서.
‘오늘이군, 부원장 후보와 대면하는 날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율리시스는 어쩐지 묘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기우일까. 이 불안감의 기원은 무엇인가.
‘문을 닫았던 메디아가 제 사람을 내어 줬다는 건 머지않아 교역을 재개할 의사가 있다는 뜻.’
좋은 징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요란하기 짝이 없는 메디아 수장들을 다시 맞닥뜨릴 수 있다는 생각에 골치가 아팠다.
그래도 지금까지 그래 왔듯 적당한 거리만 유지하면 될 터.
큰일은 없을 것이다.
‘그 전에 브리칼트부터 처리해야 하나.’
요이델의 추측대로 브리칼트가 금술을 행한 게 메디아와 연관이 있고, 그 증거가 확실하다면 한 번에 괴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보다 친자 감별 결과로 혹여 상처받을지 모르는 요이델의 감정이 더 중요했다.
사고, 재해, 다 좋으나 요이델에게 자신이 의심받지 않으면서 요보힐데 공작가를 처리할 방법이 필요했다.
……어쩌면 메디아를 끌어들이는 게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
“반려님께서 이른 아침 산책을 나와 주변의 쓰레기를 수거함. 이후 개인 생활 후 성궁에 방문. 낮에는 면담이 있는 관계로 면접장 도보 이동…….”
역사를 기록하는 동관의 사관 신관들은 이미 요이델의 뒤를 따라다니며 동선을 메모해 두기 시작했다.
휙.
그들은 요이델이 뒤돌아보면 부리나케 숨었다. 당초 기다리겠다는 율리시스의 말은 주위 환경으로 인해 깨져 버렸다.
‘이 하일은 사실 두 분의 대화를 우연히 듣고 관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성후 님!’
‘저도 하일과의 오해로 다투다가 알게 됐답니다. 저는 반려님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하일은 반려라는 걸 알아서 말이 오가다 보니…….’
하일과 마르셀리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며 미안해했다.
과거 하일이 자신을 맹렬히 보던 것도 반려라는 사실을 알아서였다고.
‘그래서 말인데, 이제 제 목마를 타 주시지 않으실는지요?’
모든 전말을 알게 된 요이델은 한숨 쉬었다.
“하일 님이 갑자기 극존칭을 하고, 눈이 운 것처럼 퉁퉁 부었던 것도 그래서였어.”
정말 거짓말을 못 하는구나. 그리고 휘스테론이랑 라이오스도 알고 있었다고 했지.
‘미안, 델. 여자인 건 지난 축제 때부터 알고 있었어. 반려인 건 그 전부터 알아서…… 그 축제 날 성하한테 들키지 않도록 붙들어 놓은 것도 우리야.’
그렇게까지 노력해 줬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요이델은 주변인들의 빠른 눈치에 감탄했다.
‘그런데 왜 친자 검사 결과는 아직까지도 안 나오지?’
이쯤이면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여쭤봐야겠다. 그런데 누구한테 물어야 할까.
‘마르셀리나 님은 지금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야, 너무 들떠 계셔. 하일 님은 더하지. 아슈레오 씨는 덤덤하지만 분야가 아예 달라서 잘 모르고, 성하는…….’
아까의 일을 떠올리니 대낮부터 얼굴이 벌게졌다.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이 얼굴을 찰싹 때렸다.
조각난 반지는 되살릴 수 없어서 일단 따로 보관해 놓았다.
‘그런데 왜 키도 조금 커지고 머리도 자랐을까?’
단순히 환각 마법 반지가 깨진 것뿐인데 많은 변화가 생겼다.
페어링이 더 깊어져서 상대의 기분을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게 된 것도 그랬고, 키도 3센티미터 정도 더 컸다.
이렇게 긴 머리를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조금 걸리적거리기도 하고 어색했지만 시종들이 다듬어 줘서 한결 나았다.
‘나이도 약간 든 느낌이야.’
앳된 티가 한결 없어졌다.
깨어난 직후,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신기한 한편 무척 걱정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속인 거니까, 신전 사람들은 물론이고 시종들도 무척 실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종들은 이제 땋은 머리도 할 수 있다며 기뻐했다.
‘고마운 사람들이야.’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충만해졌다.
요이델은 그냥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브리칼트에도 이 얘기가 들어갔을 텐데, 잠잠해.’
애초에 나를 여기 보낸 이유가 뭘까.
요이델은 곰곰이 고민하다가 눈가를 문질렀다.
“눈이 아프네…….”
“의료신관! 의료신관 거기 있나!”
요이델의 중얼거림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몽땅 튀어나와 그녀의 건강을 살폈다.
“요이델 님께서 아프시다! 당장 안구 분야 최고의 의료신관을 불러와!”
“여기 몰래 숨겨 두었던 성수가 있습니다. 선조께서 상으로 받은 가보이지만, 드리겠습니다.”
“아녜요! 괜찮아요!”
다 어디 숨어 있다가 나온 거야? 도망치자! 요이델은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에게서 재빨리 달아났다.
“헉, 휴우, 저 사람들 모두 진심이야.”
겨우 건물 귀퉁이에 몸을 숨긴 요이델은 누구에게 들킬세라 숨을 돌렸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꺄악!”
“아이쿠.”
처음 보는 얼굴의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이 사람은 누구지?
눈웃음이 둥그스름하고 목소리가 무척 다정했다. 신관의 복장이 아닌 걸 보면 외부인인 것 같은데…….
“본의 아니게 더 놀라게 해 드리고 말았네요. 괜찮으시면 잡고 일어나시겠어요?”
“아, 앗. 네! 감사해요!”
요이델은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 옷을 툭툭 털었다.
“무서운 천둥을 피해서 도망친 아기 양 같은 신관님이군요.”
“아! 혹시 예술가이신가요?”
“아쉽게도 평범한 마법사지요. 올가라고 합니다, 신관님.”
“아, 올가 님! 제 이름은―”
“요이델 신관님이시죠.”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하긴 상황이 이러니까 널리 이름이 퍼져 나갔을 거다.
그런데 올가라는 이름,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하던 요이델은 눈을 크게 떴다.
“부원장 후보님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