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올가 님!”
낯선 사람은 바로 올가였다. 지리가 익숙하지 않아 종종 길을 헤맨다 들었는데, 다행히 적응을 한 듯했다.
“신관님께서도 구경을 나오셨나 보군요. 아, 혹시…… 그렇군요, 호호. 곧 성국 연인의 날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래서는 아니에요!”
역시 그녀도 오해하고 있다. 아, 그렇지! 올가 님이라면 뭔가 알 수도 있어. 물어보자.
“그럼 즐거운 쇼핑 하시길 바라요, 신관님.”
“잠시만요! 올가 님, 혹시 오늘 시간 괜찮으신가요?”
“신관님의 초대라면 언제든지요. 제가 도움을 드릴 일이 있을까요?”
━━━━⊱⋆⊰━━━━
상점을 모두 둘러본 요이델과 올가는 카페에 앉아 한숨 돌렸다.
그렇게 돌아다녔는데도 적당한 걸 고르지 못했다.
“휴…… 상인들은 대단한 것 같아요. 물품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요. 겨우 여기만 돌아다녔는데도 다리가 쿡쿡 쑤셔요.”
“그렇지요?”
올가는 요이델을 미소로 바라보며 포크로 꾸덕꾸덕한 초콜릿 케이크를 슥 갈랐다.
포슬포슬한 시트를 드러내며 폭 갈라진 케이크 사이로 짙고 촉촉한 가나슈가 반지르르한 윤기를 흘리며 접시 위로 퍼졌다.
올가는 자른 조각을 요이델의 입속에 쏙 넣어 주었다.
“음! 와, 세상에. 엄청 맛있어요! 올가 님도 드셔 보세요!”
“잘 드셔서 기뻐요.”
살짝 웃음을 터뜨린 올가는 옷소매로 요이델의 입가를 슥슥 닦아 주었다.
“오, 올가 님! 옷소매가 더러워져요.”
“아하, 아아…… 이런. 제가 또 그랬군요. 오랜 습관인지 몸이 먼저 움직이는군요.”
올가는 묘한 얼굴로 시선을 내렸다.
툭.
그때 요이델과 올가의 눈앞에 시원한 얼음이 가득 들어 있는 음료 잔이 놓였다.
“저기, 이건 시킨 적 없어요. 저희 게 아닌 것 같아요.”
“저쪽에 계신 신사분께서 시키셨습니다.”
이런 전통적인 수작을 건 남자는 누구일까? 종업원의 손짓을 따라 고개를 돌린 요이델은 눈을 크게 떴다.
“안녕하세요, 신관님. 또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카렐로 씨!”
“하아, 기억해 주고 계셨군요……. 너무 영광입니다.”
카렐로는 감동받은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그가 왜 여기 있지? 요이델은 의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 놀라셨군요. 저도 대신전에 가려는 길에 신관님을 보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그만…… 그런데 옆에 분은 누구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올가를 향한 물음에 요이델은 둘을 서로 인사시켜 줬다.
“올가 님, 이쪽은 카렐로 씨라고 제가 아는 분이에요. 대원로님의 가족이시죠.”
“어머나, 닮았군요. 대원로님을 뵌 적 있어요.”
올가의 웃음에 카렐로가 정중히 신사적인 예를 갖춰 인사했다.
“카렐로입니다, 레이디.”
“저는 편하게 올가라고 불러 주세요. 요이델 님에게 면접을 본 마법사예요.”
“그런데 카렐로 씨, 대신전에는 무슨 일로 가시나요?”
그는 가방 안쪽에서 서류를 꺼내어 요이델에게 보여 주었다.
성국의 인장이 찍힌 합격 증서였다. 말하자면 공무원 합격증 같은 것.
“우와, 대신전에서 일하게 되신 거예요?”
“비슷하지만 저는 학술원 쪽으로 가게 되어서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신관님을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으나, 제 능력이 거기까지는 되지 않아요.”
“앗,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죄송해요.”
“아니요! 아닙니다! 저도 농담이었습니다. 하핫, 최근에 새로 인력을 많이 뽑는다는 소식도 들었고, 이전엔 없던 학술원의 시작이라서 흥미로웠습니다.”
“모험심이 강하시군요, 멋져요.”
“정말입니까? 소심하다는 평을 듣는 저에게는 최고의 칭찬입니다.”
빙긋 웃던 그는 돌연 머뭇거렸다.
“하지만 마르셀리나 할머님의 수혜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이름 없이 치른 시험이었죠.”
“그런 오해를 많이 받으셨군요?”
“하하, 들켰네요.”
그는 멋쩍은 듯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 색이나 피부색이 밝은 편이고 말투가 상냥해서 그런지, 백합이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성하도 하얗긴 하지만 연약한 느낌은 없다면, 이 사람은 연약함이 90퍼센트라서 갈대처럼 휘청휘청할 것 같았다.
보호해 줘야 할 것 같달까? 마르셀리나 님의 혈육이기도 하고.
카렐로는 수줍은 듯 웃었다.
“신관님의 마법 덕분에 올해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서 아직도 마음이 설렙니다. 성하께 세례도 받았고 말이지요.”
“아! 저도 봤어요. 정말 잘됐어요. 카렐로 씨는 성하의 팬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에 카렐로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눈이 꿈속을 회상하는 듯했다.
“세례식은 여러모로 꿈이 이루어진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이델 님, 괜찮으신가요?”
카렐로는 다정하게 허리를 숙여 요이델의 표정을 살폈다.
“그날 큰일이 있으셨는데…… 아프신 곳이 있을까 봐 많이 걱정했습니다. 두 분 다 무사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주신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 저와 성하는 둘 다 멀쩡하니 괜찮아요!”
요이델이 씩씩하게 팔을 움직이자 카렐로도 안심한 듯 웃었다.
그때 돌연 반짝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카렐로 씨는 성하의 관심사에 대해 잘 알고 계시죠?”
“네? 아, 네……. 반려님이신 신관님에 비하면 미숙하지만, 혹시 무슨 일로…….”
고민하던 카렐로는 눈치 빠르게 추측해 냈다.
“연인의 날 때문이군요.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말요?”
좋아, 이제 아무 문제 없어.
━━━━⊱⋆⊰━━━━
율리시스는 요즘 부재중인 요이델을 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전에도 이런 적이 있지 않았나?’
분명히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났다. 자신의 생일 무렵이었다. 요이델이 그와의 만남을 극도로 꺼리며 다른 이들과 하하호호 하고 다닌 게.
싫다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인간관계를 자신에게로 국한하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요이델이 원하니까.
잠시 옛일을 반추하다 휘스테론이 요이델을 껴안았던 게 떠올랐다.
‘라이랑 휘스는 소중한 친구예요.’
그래, 그것도 이해한다. 그럴 수 있다. 포옹으로 친근함을 표현하는 나라도 있다 했으니.
사내놈들과 친하게 지내도 이해…….
뚝.
“성하, 펜이 부러지셨습니다.”
“아, 아니, 성하의 옥체가! 괜찮으십니까?”
율리시스는 살짝 베인 손에 무덤덤하게 치유 마법을 걸었다.
“괜찮습니다.”
괜히 펜이 스스로 부러져서 그녀에게까지 통증이 가겠군. 그건 곤란하다.
……아닌가, 다쳤으니 오늘은 한 번 더 내 안부를 확인하러 와 주려나. 그렇다면 나쁘지 않다.
율리시스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들었다.
“그보다 학술원 관련 행정 업무자는 전부 선출된 것입니까?”
“네, 지난번 보고드린 것에서 변동은 없습니다.”
“허허, 이제 곧이군요. 제가 입학하는 것은 아니나 괜히 마음이 설렙니다.”
소규모 회의장에 모인 소수의 신관들 사이에 편안한 웃음꽃이 폈다.
가장 핵심적인 실무를 책임진 그들 가운데에는 세 원로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대원로 예하, 이번에 종손자께서 학술원의 행정 업무 담당으로 뽑혔다지요?”
“미숙한 아이입니다. 제 혈연이긴 하나 절대 너그럽게 봐주지 마시고, 혹독하게 대해 주세요.”
“다행입니다. 나중에 대원로님께 미움을 받을까 걱정하였는데, 하하하.”
회의의 막바지, 의견을 나누느라 삼엄했던 분위기는 차차 누그러져 편안해졌다.
그러나 율리시스는 그렇지 못했다.
‘요이델에게 중매를 시켰던 그 남자를 말하는 건가.’
그의 안색이 나빠졌다.
둘이 만남을 가졌던 날, 창가에서 훈훈한 분위기를 나누던 둘을 똑똑히 목격했다.
속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회의가 파한 후 홀로 집무실로 돌아온 율리시스는 찝찝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요이델에게서 단기간 내에 그렇게 편안한 미소를 이끌어 낸 남자는 대원로의 종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
학술원의 관계자라면 요이델과 자주 만날 가능성이 크다. 라보르비치의 학술원으로 보내는 것은 불가하고 마땅한 이유도 없다.
늦은 밤, 율리시스는 복잡한 머릿속을 잠재우기 위해 밤 산책을 나왔다.
“좋아한다……. 안 한다…….”
그런데 유리온실 근처에서 이상하고 음산한 저주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입니까, 원로.”
“아! 성하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하일은 자랑스러운 듯 뿌듯하게 웃으며 다 떨어져 가는 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또 헛짓을 하나 생각했지만, 그를 본 율리시스는 그냥 옅게 미소 지었다.
“이걸 왜 제게 건네는지 모르겠군요.”
“성하를 위하여 미래를 점쳐 드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점 말입니까.”
“그거야 성후…… 아차차.”
하일은 자신의 입을 꾹 다물며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요이델 신관님과 성하의 미래에 대한 것이지요. 바로 요이델 님께서 성하와 무사히 결혼을 하게 될는지, 아닌지.”
“무사히?”
율리시스는 그 한 마디를 보다 예리하게 들었다. 하지만 눈치 없는 하일은 뿌듯하게 끄덕였다.
“예. 이 하일이 지켜본 결과! 성후 성하가 되실 분께서는 성하를 조금 멀찍이 대하는 면이 있고 안달 난 쪽은 성황 성하로 보입니다.”
미친 것 아닌가. 가뜩이나 아픈 속을 쑤셔 댄다.
“그러니 두 분이 반려로 묶인 사이더라도 성후 성하의 마음을 잡지 않으면 위험하다, 이게 바로 이 하일의 결론입니다! 굉장하지요?”
“대단하십니다.”
율리시스는 하일을 보며 상냥하고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서 하일은 율리시스의 눈이 실은 가늘게 뜨였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두 분의 행복한 미래, 저의 소원, 성국인 모두의 바람을 위하여 미래를 점쳐 보고 있었습니다.”
“……사술은 금지일 텐데, 원로께서는 그를 자신 있게도 말씀하십니다.”
“아아! 그것은 이건 엄밀히 따지자면 요정의 전통, 꽃점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사특한 마법이 아닙니다.”
하일은 당당하게 꽃잎이 다 떨어진 줄기를 팔랑거렸다.
“그래서 결과가 어찌 나왔습니까.”